[긴급 인터뷰] 기선완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환자들 사망은 장기입원의 누적된 폐해가 드러난 것”
[긴급 인터뷰] 기선완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환자들 사망은 장기입원의 누적된 폐해가 드러난 것”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3.0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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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완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교수 긴급 인터뷰
오랜 기간 갇혀 있으면 시설증후군 생겨…무기력해지고 자기주장 못해
만성 정신질환자 개인 위생관리는 의료진의 책임
만성 환자는 공공병원이 담당…정신병상은 대학·종합병원에 둬야
만성 정신질환자 약물 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정신과 수가만 정액제 모델…좋은 약 못 쓰고 프로그램도 없어
탈원화는 수단이지 목적 아냐…치밀하게 계획하고 천천히 진행돼야
의료급여 제도로 장기입원 조장돼…정신사회재활 프로그램 체계 구축해야
사회적 지지는 거주, 직업인데 무늬만 그렇고 잘 운영 안 돼
인간답게 발전하는 게 회복…당사자·가족·치료자가 치료 계획 함께 세워야

“그런 질문은 별로 좋지 않은 질문이에요.”

기선완(58)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치고 나왔다.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치유가 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기 교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과거의 안 좋은 경험들 때문에 울분을 토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대안을 마련하기 보다는 증오심에 빗댄 비난을 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이유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을 이었다. 기자는 잠시 침묵했다.

경북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던 정신장애인 환자 7명이 사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집단 사망이었다. 이들은 이 병원에 장기입원해 있던 환자들이었다.

언론은 이들의 사망 원인이 환기가 안 되는 실내 구조와 창문마저 열 수 없게 만든 폐쇄적 공간의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과연 그것만이 문제였을까.

기 교수는 입원한 정신장애인들이 약물에 찌들고 이로 인해 개인위생 관리가 안 되도록 만들어버리는 치료 구조, 무기력증을 겪게 되는 과정, 자기주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되어버리는 폐쇄병동의 근본 속성이 그들을 그렇게 감염병에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치유의 세 축으로 의학적 치료, 정신사회재활치료, 사회적 지지 체계 구성을 해답으로 내놓았다. 이중 의학적 치료는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와 같은 지불 체계가 구성돼 있지만 당사자와 가족, 치료진이 수평적 관계에서 치료를 진행할 수 있는 민주적 치료 과정의 결여, 지역사회에 나와도 주거가 없어 나올 수 없는 환경에 대해서도 그는 ‘메스’를 댔다.

그의 사유를 관통하는 핵심적 개념은 ‘탈시설화’였다. 이를 위해서는 대안이 없는 급속한 탈원화가 아니라 인권 보호와 양질의 치료, 사회적응 등의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기자는 그를 만나기 전에 연일 들려오던 청도대남병원 환자들의 사망 소식을 접하며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착잡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을까. 그래서 다짜고짜 폐쇄병동에서 인간이 치유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기 교수는 “그런 질문은 좋지 않다”고 퉁을 쳤다.

짧은 침묵 후 기자는 교사 앞에서 수업을 듣듯이 그의 철학을 들기 시작했다. 기 교수는 한국 정신보건 역사에서 탈시설화를 선도적으로 주창한 의사 그룹 1세대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정신과 환자 7명이 사망한 문제의 본질은 장기입원의 문제 때문인가.

“직접적 사인은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호흡 부작용이 심하게 왔거나 폐혈증이 와서 사망했을 거다. 그렇지만 선행 사인(死因)은 장기입원으로 인한 신체 면역력 저하가 아닐까.”

-신문들은 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이 환기구가 낡았다는 등 폐쇄병동 내 건축 구조를 문제 삼고 있다. 이를 경우 우리는 어떤 본질을 놓치게 되나.

“환기가 잘 안 되면 아무래도 (그럴 수 있다). 그 병원이 격리·폐쇄된 공간이고 과밀하게 환자들이 있었으니까 금방 바이러스가 퍼졌겠지만, 그런데 그게 본질은 아니다. 사망에 이르게 한 다른 문제들이 있을 거다.”

-전문가들은 정신병동 환자들의 집단생활과 개인위생 개념의 미비를 원인으로 꼽더라. 동의하나.

“아무래도 개인위생 관리가 정신장애인들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치과 치료가 중요하다. 이분들이 충치가 생겨서 아프면 나가서 치료해서 뽑기는 해도 (임플란트를) 해 넣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가 빠지면 음식을 못 드시고 점점 말라간다.

그 분들은 자기주장도 세게 못한다. 병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너무 오래 갇혀 있다 보니까 이른바 수용화증후군(Institutional syndrome)이 생긴다. 무기력해지고, 관심도 없고, 느낌도 없고, 처지기 때문에 자기주장을 못한다.

만성 정신장애인들이 개인위생 관리에 특별히 관심을 둬야 하는 건 맞지만 그게 환자들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의 개인위생 관리는 치료자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의료진들이 소홀하게 하지 않는가.

“그렇다. 철저하게 해줘야 하는 건 사실이다. 그 병원에서 그걸 소홀하게 했는지는 평가할 수 없다. 가 보지 않았으니까.”

-정부 방역당국이 전국 420여 개의 정신병원 폐쇄병동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그 조사 내용을 보면 폐쇄병동 근무자들이 중국을 방문했는지의 여부, 환자의 폐렴 여부, 외부 방문객 제한 여부 등이다. 그것도 서면조사였다. 이게 본질적 해결책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 당장은 감염 관리가 우선이니까. 폐쇄된 공간에 감염이 일어나면 아주 빨리 확산돼서 거기 있는 분들이 다 고통을 받을 테니까.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장기입원 구조를 변화시켜야 되겠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감염 관리를 일단 할 수밖에 없다. 그건 감염관리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지.”

-이번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의 잇따른 환자 사망은 그동안 숨겨왔고 외면해왔던 정신의료 문제들이 일제히 터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누적된 문제들이 결국 터진 거다. 장기입원의 폐해가 드러난 건 사실이다.”

-강제입원과 장기입원, 그리고 부적절한 약물 복용이 정신병원의 특징이다. 모든 약물에는 부작용이 따르는데 의료권력은 이 문제를 부인하고 회피해왔다.

“모든 약물은 다 부작용이 있다. 만성 정신장애인들한테는 부작용에 대해 더 예민하게 보고 약물 조정을 잘 해줘야 한다. 그래서 약물 사용에 대한 알고리즘이나 가이드라인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약을 안 쓰게 되면 증상 조절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안 쓸 수는 없다. 결국 약을 쓰는 것만큼은 의사의 권한으로 남겨두는 것이 남용을 줄이기 위해서 제일 적절하다. 만성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약물 치료의 주의 사항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환자에게 양질의 치료가 되도록 개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약물 치료를 안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약물 부작용이 있다는 걸 의사들이 부정을 하지 않는가.

“아니다. 약물 치료의 부작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 누구나 약물 치료의 부작용을 다 인정한다. 그런데 의료급여의 환자의 경우 정액제 치료다. 그 정액제 치료의 한계 안에서 좋은 약을 쓰기 어렵다.

치료자의 수가 적고 환자 수가 많은 세팅(치료 시스템) 하에서는 병동 안전이나 관리를 위해 약물을 조금 더 많이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의사들이 부작용을 다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증상 조절을 위해 안 쓸 수도 없는 부분도 있다.”

-정액제인 의료급여 수가는 그동안 수없이 문제로 제기돼 왔는데 정부가 이를 외면하는 이유가 뭘까.

“정부가 만성 정신장애인들을 맡아서 관리를 하면 조금 더 나을 수 있다. 그런데 부담이 된다. 그래서 민간병원들에 다 맡겨 놓은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만성 정신장애인들이 입원해 있는 정신병원들이 대게 다 민간병원이다. 그렇게 돼 있으니까 정부 차원에서는 수가라도 관리를 하려고 했던 거다.

그런데 초기에 환자들의 인권 보장이 안 되고 오히려 정신병원 소유주들의 입김이 센 상황에서 정부하고 민간병원들이 타협을 했다. 내과나 외과 환자의 경우 (의료급여는) 수가가 낮아도 정액제가 아니다. 유일하게 정신과만 정액제가 됐다. 그래서 지금도 정액제로 내려오고 있는 거다.

정부 입장에서는 포괄수가제였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정교한 포괄수가제가 아니고 정말 입원한 환자 당 얼마 식으로 수가를 딱 정액으로 묶어 놨다. 그 수가가 적었기 때문에 좋은 약을 쓸 수도 없었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투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무리 좋게 얘기해도 폐쇄병동은 수용 시설이라는 근본적 본질을 갖는다. 격리와 수용은 정신장애인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멍에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장애인 중에 일부는 점점 더 나빠지고 기능이 떨어지고 행동 조절이 워낙 안 돼는 치료저항성 조현병 등이 있다. 그런 분들한테는 어느 나라건 간에 시설에서 관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공의료 기관에서 그런 분들을 입원 치료한다. 사회적 적응이 안 되고 기능이 떨어져 황폐화돼 있는 분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장기입원보다는 적절하게 지역사회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지역에서 개인위생 관리도 받고 일상생활, 기술훈련도 하고, 사회기술훈련도 하고 집단치료도 하고 약물 증상 교육도 받고 가족교육도 받는 거다.

이렇게 하다가 좋아지면 직업훈련을 해서 직업을 갖고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게 환자를 위해서도 좋고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좋다. 정부에서도 오랫동안 입원해서 수동적인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나와서 조금이라도 일을 해서 돈도 벌고, 건강보험료도 내고, 식당에서 밥도 사먹고 하는 등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병원에 10~20년 갇혀 있는 것보다 좋은 거다.

그런데 민간병원에서는 이득이 있어야 운영을 할 게 아닌가. 지금 정액제이고 수가가 낮지 않나. 민간병원들에 이득을 취하지 말라고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들이 자기 이득 부분 빼고 나면 아무래도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치료 서비스가 줄어들고 식사도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여러 구조가 만성 정신장애인들의 장기입원을 더 조장하고 양질의 치료를 못 받게 하는 문제에 기여하고 있는 거다.”

-누군가는 정신장애인을 빗대 살아서는 비난받고 죽어서는 외면받는다고 했다. 이 비유가 적절할 거 같다.

“그 비유가 슬픈데 그렇게 안 되도록 바꿔봐야 한다. 정신장애인들은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제일 문제다. 이 편견과 낙인이 생기는 이유는 보통 사람들하고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얘기는 증상이 심할 때 엉뚱한 얘기를 하거나, 안 들리는 걸 들린다고 하거나, 혹은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몸이 구부정하고 뻣뻣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달리 보이기 때문에 편견과 낙인이 생긴다. 낙인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말 양질의 치료를 잘 해 줘야 한다. 그렇게 차이를 없애야 한다. 편견에 대해서는 교육, 홍보, 인식 개선의 노력을 많이 해야 된다. 편견 때문에 차별이 나온다. 차별적 행동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법적으로 소송을 걸고 제도를 바꾸고 하는 행동을 과감하게 취할 필요가 있다.”

-탈원화만이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인가.

“탈원화를 어떤 목적을 갖고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탈원화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정신장애인의 인권 보장과 양질의 치료를 받게 해 주는 거다. 장기적으로 입원시켜서 관리하는 것은 당사자에도 그렇고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된다.

학교에서도 장애인 학생 학급을 따로 만들어서 교육 시키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 학생들과) 같은 반에 넣고 공부를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게 왜 그런가. 장애인도 같은 식구고 동료고, 사회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걸 어려서부터 알리고 협력해서 더불어 사는 걸 가르쳐주려고 하는 거 아닌가.

우리 사회도, 어른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 장기간 입원시켜서 관리하는 것이 문제가 더 많다는 건 이미 다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하지 말자는 건데 이것도 전략이 필요하다. 그냥 갑자기 할 수 없다. 10년, 20년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분들을 갑자기 퇴원시켜서는 이들이 적응을 할 수 없다.

미국에도 회전문 현상이 있지 않았나. 그래서 갑자기 그들을 내보내기보다는 일단 치료적 환경을 개선하면서 그들에게 여러 치료적 서비스를 주고 천천히 나오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거주 시설이나 재활시설을 깔아야 되고 그 다음에 새로운 입원환자는 급성기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단기간 입원 가능한 곳으로 보내야 한다.

그렇게 입구를 정리하고 출구를 천천히 나오게 하면서 지역사회에 여러 시설과 인력을 까는 게 중요하다. 급격하게 탈수용화만 하다 보면 정신병원과 비슷한 장애인 시설, 말로는 거주시설이지만 그냥 한 방에 여러 명 자는 그런 시스템이 된다. 그런 시설들이 깔리면 환자들은 시설만 옮기게 되는 것이다. 전략적으로 이분들의 인권과 양질의 치료, 사회 적응을 위해 치밀하게 계획해서 천천히 이뤄져야 한다.

저는 탈원화라는 말은 잘 안 쓰고 탈수용화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병원도 장기간 수용되는 게 문제고 시설도 장기간 수용되는 게 문제다. 저는 탈수용화라는 말을 잘 쓴다.”

-정신병원을 나와도 갈 곳이 없어서 정신병원에 눌러앉는 ‘사회적 입원’도 많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그게 우리나라 의료급여 제도의 문제다. (처음에는) 건강보험이었지만 부모님 나이 드시고 환자도 만성화되고 제대로 재활치료를 못 받게 되면 결국 의료급여자가 된다. 기초생활수급자도 되고.

의료급여 1종이 돼서 입원을 하게 되면 본인 부담금이 없다. 보호자들이 부담도 없다. 당연히 입원시켜 놓은 게 보호자들한테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 될 수 있다. 나오면 귀찮고. 그러다가 부모님 돌아가시면 형제자매들이 그렇게 하겠나. 장기입원이 조장되고 있는 거다.

그래서 장기입원이 조장되지 않도록 의료급여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 정신장애인들이 치료가 잘 돼서 사회에 적응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의학적 치료를 잘 받아야 된다. 다른 신체장애와 달리 정신장애는 의학적 치료를 계속 받아야 되는 문제가 있다. 급성기 때 약물치료를 잘 해서 재발 안 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자꾸 재발하면 그만큼 환자에게 손해다.

두 번째는 정신사회재활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의학적 치료는 의사들이 책임을 지고 해야 되겠지만 정신사회재활치료는 좀 다르다. 회복 개념으로 당사자와 가족과 치료진들이 하나의 팀을 이뤄서 수평적 관계에서 치료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환자에게 적절하고 다양한 치료프로그램들이 있어야 된다.

세 번째가 사회적 지지 체계다. 재정 지원,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 같은 수가 제도, 직업을 알선해 주는 프로그램들, 거주 지원. 또 가족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의식주를 받쳐주는 건 결국 재정이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라는 의학적 치료에 대한 지불 체계는 그래도 좀 있다.

그런데 지역사회에서 해야 되는 정신사회재활 프로그램 시스템은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지만 숫자가 부족하고 예산이 또 한정돼 나온다. 한정된 예산에서 나오고 더 (임금을) 올려주지도 않고 해서 인건비 상승비도 못 쫓아가는 데가 많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많이 생겨서 운영을 하고 있지만 그냥 ‘맛보기’로 하고 있는 거다. 제대로 된 재활시스템을 깔아놓지 못하고 있다.

그 다음이 사회적 지지. 재정이나 거주, 직업에 대한 지원은 무늬만 그렇고 잘 운영이 안 되고 있다. 이 세 축이 필요한데 두 축이 형편없고 의학적 지불 체계만 돌아간다. 그게 문제다. 사회적 지지 체계는 나중에 예산을 통해서 만들면 되겠지만 재활치료 프로그램에 대한 지불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없으니까 결국 문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다.”

-교수님은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개혁 방안을 정부에 요구했다. 요구의 핵심은 무엇인가.

“핵심은 더 이상 장기입원의 관리에서 벗어나 계획을 잘 수립하자는 거다. 급성기 환자들은 급성기 치료를 받고 지역사회에서 관리 받을 수 있게 하는 거다. 장기입원된 환자들은 거기에 프로그램을 집어넣어서 발전시킨 후 지역사회로 나오게 하고 지역사회는 여러 가지 인프라를 구축해 현행의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거다.

이걸 단기간에 해결하려 하다 보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계획을 세워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천천히 탈수용화와 지역사회 관리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정신장애인의 삶과 인간으로서의 권리 등의 그동안 외면했던 문제들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장기입원의 폐해가 두드러지게 나오지는 않았지 않나. 그런데 이분들이 집단 감염에 걸리고 몇 명이 사망함으로 인해서 ‘아 이런 병원이 있었구나, 이렇게 관리되고 있었구나, 이런 사각지대가 있구나’ 그런 것들이 드러났다. 경북 청도면 대도시와는 관계가 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갑자기 (코로나19가) 퍼져서 집단 감염이 생기리라고는 다들 예상을 못했을 거다. 그런데 그런 비극이 벌어졌다. 그걸 계기로 사각지대에 오래 입원해 있는 분들이 있고 이 분들의 신체 건강 상태가 나빴고 입원해 있던 환경이 열악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을 거다.”

-폐쇄병동에서 인간이 치료될 수 있는가.

“그런 질문은 별로 좋지 않은 질문이다. 폐쇄병동도 역할이 있다. 아주 급성기의 심각하게 행동조절이 안 되는 사람을 어떻게 관리하겠나. 폐쇄병동은 나름의 역할이 있다. 그런데 폐쇄병동이 꼭 필요한 역할보다 과잉으로 사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다.

그렇게 단정적인 질문은 ‘약물치료는 부작용이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질문과 같다).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써야 되는 이유들이 있는 것이고 조심해서 잘 써야 되는 거다. 폐쇄병동도 나름의 역할이 있는데 장기간 환자들을 놓아두어야 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거다.”

-우리는 정신과 치료의 궁극적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된다. 회복의 의미를 다시 구성해야 하지 않나.

“한창 재활을 떠들다가 회복 개념으로 다 바뀌었다. 싱가포르, 홍콩은 이미 회복 개념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회복이 되면 비록 병이 싹 낫지 않더라도 환자가 좋아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과정에서 더 인간답게 발전하는 것이 회복이다.

그래서 치료 과정에 당사자와 가족을 참여시키고 치료 목표를 같이 설정하게 하고 치료 계획도 같이 수립하게 한다. 그리고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깨닫는 것들이 많이 생긴다. 치료자도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환자와 가족이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되게 하는 것이 회복이 아닌가.

그런 회복 개념으로 선진국들은 다 바뀌었다. 그렇게 리커버리 오리엔티드 트리트먼트(recovery oriented treatment·회복지향 치료)를 한다.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 생각들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계가 조금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되돌아보면 아직도 정신과 폐쇄병동과 정신요양원 일부에서는 일상적인 폭력과 차별, 배제, 광기가 작동하는 곳이 많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제가 정신병원과 정신요양병원을 다니면서 평가한 건 아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 과거에는 제가 많이 다녔다. 입원적합성 평가를 하느라고 서류만 보지 않고 정신병원이나 요양병원을 직접 방문했다. 제가 공중보건의를 강화에서 했는데 그때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이다. 그때는 정말 눈물 날 정도로 형편없었다.

지금은 아주 노골적인 학대나 폭력은 없겠지만 그래도 은근히 정신장애인들이 차별받고 괴로움을 당하는 현실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정신병동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보호사들이다. 이분들은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거나 훈련을 받은 이들이 아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관리하는 사람과 갇혀 있는 사람으로 나뉘게 되면 어떤 차이가 확 생겨버린다. 관리하는 사람은 권위적이 되고 갇혀 있는 사람은 주눅이 들게 된다. 우리 정신장애인들이 자기주장을 못하는 경우가 많고 해서 아무래도 우습게 보이는 거다. 제가 보지 않았으니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얻어맞는 경우도 있을 거다.”

-정신병원을 전면적으로 해체해야 하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아주 만성적으로 경과가 나빠져서 황폐화되는 환자들은 시설에서 관리하는 게 낫다. 대게 그런 병원들은 공공병원이다. 그리고 정신과 입원실은 모두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 두어서 다른 내과환자나 외과환자처럼 똑같이 들락날락하게 함으로써 똑같은 환자라고 생각하게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정신병원을 다 없애고 모든 정신과 입원 시설은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두는 나라들이 있다. 그런 걸 메인스트리밍(mainstreaming·주류화)이라고 한다. 정신병원을 단독으로 두면 그게 낙인이 된다. 그러니까 정신병원은 다 없애고 입원시설은 필요하니까 급성기 환자들을 위해서 (마련해야 한다). 치료를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두는 시스템을 갖는 나라들이 있다. 그런데 그건 정책적 선택으로 보여진다.

대만이나 싱가포르의 경우 거점 병원들이 있는데 다 공공병원이다. 만성 환자들을 맡아서 관리하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지역사회에서 치료받는 쪽으로 정책 전환을 했다. 제가 대만이나 홍콩, 싱가포르를 예로 드는 이유는 우리와 비슷한 아시아권 나라들이고 그런 치료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더 하실 말씀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거다. 아까 말한 대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의학적 치료, 정신사회재활치료, 그리고 사회적 지지. 우리나라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잘 안 되고 있다. 그 다음에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친구들 만드는 소셜 네트워크 같은 게 필요하다. 이건 법제화하기는 어렵다.

그 다음에 엔타이틀먼트(entitlement)라고 해서 자격 같은 걸 주는 거다. 외국에는 의료급여나 생활보호대상자에 타이틀을 주는 것이 꽤 다양하게 있다. 바우처도 주고 쿠폰도 주는 게 사회적 지지다. 그 다음, 제도와 법을 잘 만드는 것. 이런 건 지금 당장 환자들에게 (영향이) 오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해 나가면 된다.

의학적 치료는 그래도 수가 체계가 있다. 그런데 정신사회재활은 예산으로 하고 건강증진 기금에서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할 게 아니라 지불 체계가 있어야 활성화된다. 재활치료 프로그램에 지불 체계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없다. 그러니까 활성화가 안 된다. 매년 예산 올려달라고 해 봐야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 다음에 인구 10만 명 당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하나씩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체계와 거주 시설이 있어야 한다. 이걸 좀 해야 한다. 나는 사회복지학 교수님들이 답답하다. 아니, 여태까지 뭐 했냐 이거지. 이걸 목숨 걸고 만들었어야지. 왜 이거를 여태까지 못 만들고. 그러니까 항상 교수들이 제일 문제다(웃음).

교수들이 현실은 모르면서 말이 많다. 너무나 이상적인 얘기를 하거나 비판을 한다. 비판은 쉽다. 만들어 내는 게 어렵지. 뒤에서 비판하는 게 제일 쉽다. 이상적인 입장에서 비판만 하고 현실을 모르니까 그게 문제다. 지불 체계를 보면 치매만 해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따로 있다. 이걸로 치매 환자들 평가 받아서 주간보호센터도 가고 병원에도 가고 방문 목욕, 방문 간호 다 하지 않나. 이 제도 하나 생김으로써 치매 환자들 관리가 많이 좋아졌다.

치매는 정부에서 국가가 담당한다고 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생기고 그렇게 돼 있지 않나. 그런데 정신장애는 이런 게 없다. 탈수용화를 주장만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대안을 내놓고 만들어야지. 갑자기 탈수용화 시키면 회전문이 되거나 아니면 정신장애인들 잔뜩 받아서 거주시설에 몰아넣는 상황이 안 생기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나.”

사진을 찍는 동안 기 교수는 아직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대안을 마련하기 보다는 증오심에 빗댄 비난을 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이유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그가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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