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이 ‘동네북’인가?… ‘정신질환’을 늘 갖다붙이는 언론에게
정신장애인이 ‘동네북’인가?… ‘정신질환’을 늘 갖다붙이는 언론에게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3.13 19: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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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신속성·정확성 필요... 하지만 차별이 함의되면 성찰해야
혐오에 의해 완성되는 법... 언론이 정신질환 부정적 감정 증폭시켜

13일 헤럴드경제와 중앙일보, 노컷뉴스는 ‘정신병력이 있는 30대 남성이 아버지를 둔기로 살해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존속살해 혐의로 A(35)시를 긴급 체포해 조사하고 있으며 A씨는 ‘횡설수설’하는 등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그러면서 이 매체들은 “A씨가 정신병력(정신장애,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경찰출입기자가 사건에 대해 경찰의 브리핑을 그대로 쓰는 것을 윤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기사는 신속해야 하고 정확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 신속성이 차별과 편견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읽혀질 수 있다면 언론은 한 번쯤은 자기반성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언론이 생산하는 정신장애인 혐오는 시민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킨다.
언론이 생산하는 정신장애인 혐오는 시민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킨다.

이번 사건도 그렇다.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 A씨가 어떤 방식으로 정신적 질병을 가졌는지 어떤 상태인지, 정신질환의 정확한 병명이 무엇인지 이들 매체는 확인해 보지도 않았다. 다만 경찰이 조사에서 “A씨가 횡설수설하고 있으며 정신질환이 있는 걸로 보인다”는 멘트를 하니 이를 신속하게 기사화한 것이다.

언론 신속함 중요하지만 약자 배려해야

언론에 한번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은 혹 정신질환을 존재론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신질환이라는 표상을 통해 당신들의 기사 클릭수가 늘어나기를 기다리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신질환은, 그게 비록 추정적이더라도, 일단은 기사로 내보내는 게 기자의 보도 태도라고 생각하는가.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왜 꼬리표처럼 모든 사건의 뒷배경으로 ‘정신질환’을 집어넣는지 그것부터 물어보고 싶다.

혐오는 법을 정초한다. 당신들이 쓴 기사 한 꼭지를 통해 시민은 정신질환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가지게 되고 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은 이유 없이 사람들을 공격할 수 있는 ‘폭탄’ 같은 존재로 비치게 만드는 편견의 생산에 기자들, 당신들이 관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혐오가 조성되면 너무나 쉽게 법은 정초될 수 있다.

현재 정신장애인은 의사도 간호사도, 약사도, 요리사도, 하다못해 뱃사람도 될 수 없다. 자격증을 따는 데 법이 막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신장애인은 지방정부의 청사를 방문할 수도 없고 도서관 등 공공기관을 이용할 수 없도록 일부 지자체 정관이 규정하고 있다.

혐오가 있었기에 이 같은 말이 되지 않는 법들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혐오를 누가 생산하는가.

인간은 미지(未知)의 존재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진다. 그것은 근원적 공포를 생산하고 공포를 없애기 위해서는 그를 이해하기 보다는 한 곳에 가두고 격리시키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이 격리와 배제의 차별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늘 해 왔다.

어쩌면 기자도 사람인 이상, 그것도 불편한 존재인 정신장애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자들은 공적 영역에서 공적 의제를 다루며 그 의제를 국가 기구에 제안해 하나의 완성된 법과 제도를 만들도록 공동체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사회적 의제가 엉뚱하게 정신장애인을 두려운 존재로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학습시키는 의제 생산이라면 누군가는 그러한 언론 발언을 막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언론이 정신장애인 편견 강화시켜... 성찰해야

지금, 헤럴드 경제, 중앙일보, 노컷뉴스가 생산한 기사를 읽고 시민은 어떤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아마 시민은 “정신장애인은 두려운 존재다. 그는 사고를 쳤다. 그것도 아버지를 죽였다. 경찰이 정신질환자 같다는 말을 했다. 그는 정신질환자다. 살해했다. 따라서 정신장애는 무서운 병이다.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가둬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라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언론이 정신장애를 혐오와 편견으로 표상한다면 누군가는 그 글쓰기를 멈추게 해야 한다.
언론이 정신장애를 혐오와 편견으로 낙인찍는다면 누군가는 그 글쓰기를 멈추게 해야 한다. (c)kr.123rf

언론에 묻는다. 왜 당신들은 정신장애인이라는 표상을 이토록 혐오로 구성해 내는가. 당신들의 둔감한 감수성으로 인해 정신장애인은 끊임없이 배제와 차별의 틀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은 언론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 공적 기구가 정신장애라는 특정 인구집단을 차별과 혐오로 만들어낸다면 정신장애인은 어디로 가서 하소연할 수 있겠는가.

사건은 사건으로만 보도... 정신질환 낙인찍는 보도 태도 변화 필요

사건은 사건 자체로만 기술하라. 모호한 ‘정신질환으로 알려졌다’라는 식의 보도 태도는 이제는 멈췄으면 한다. 그리고 사실, 이런 기사를 보는 것도 이제는 지친다. 얼마나 많은 배제와 차별, 죽음과 감금이 있어야 당신들은 정신장애와 관련한 자신들의 보도 태도를 성찰할 수 있을까. 언론에 바란다. 자제해 주기 바란다. 정신장애인이 시민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이들의 욕구와 처지, 사회적 삶에 대한 지원의 응원을 언론이 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정신장애인은 살아서 비난받고 죽어서 외면당하는 존재들이다. 왜 우리가 인간으로 이 세계에 태어나서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 역시 시민적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 참여성을 막아버리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게 언론이라면 기자들은 먼저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혐오가 아닌 자유를 원한다. 우리를 혐오라는 이유로 가두지 말라는 호소에 귀기울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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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범 2020-03-14 09:26:51
일반 중범죄자들이 정상참작을 받기위해 혹은 구치소보다 편한 치료감호를 받기위해 일부러 정신질환자처럼 행세하거나 변호사를 사서 위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도 다 정신질환자로 보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