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조현병 당사자가 행복할 수 있는 10가지 원리 (2)
[이관형 기자의 변론] 조현병 당사자가 행복할 수 있는 10가지 원리 (2)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3.17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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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고백하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전 '힘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힘내라'라는 말에는 제가 연약해 보이거나 의기소침해 보인다는 전제 조건에서 나오는 말인 것 같아서요.

전 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결코 연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끔 우울하거나 침체될 때도 있지만 누구보다도 '화이팅'이 넘치는 적극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힘내란 말에는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의미가 더 큼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조현병 환자라고 해서, 의지나 정신력이 약해 병에 걸린 것이 아니란 걸 미리 밝혀 두고 싶습니다.

또한 병의 고통과 증상으로 인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존재도 아닙니다. 오히려 직접 병을 밝히지 않아도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목적을 성취하며 살아가는 당사자들도 많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번에 언급한 다니엘 피셔 박사의 10가지 리커버리 원리 중 후반부 5가지 원리에 제 삶을 대조하고자 합니다.

다니엘 피셔 박사 (c)마인드포스트 자료 사진.
다니엘 피셔 박사 (c)마인드포스트 자료 사진.

6. 사람들은 언제나 의미를 만든다는 것을 인정하라.

사람들은 어떠한 현상이나 결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곤 합니다. 행운이나 불행이 찾아오면 자신이나 타인, 심지어 제 3자에게서 그 원인을 찾곤 합니다.

조현병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력이 있어서 유전이 되었다거나, 가정과 군대, 혹은 사회에서 받은 상처와 트라우마로 조현병이 발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모는 조현병을 가진 자녀를 보며 건강하게 키우지 못한 죄책감에 자신을 탓합니다. 종교 단체에서는 조현병이 사단에 의한 병이라며 몸에서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한때는 이 병이 아버지 때문이라며 원망하기도 하고, 병을 낫게 해준다는 종교 집회에서 귀신을 쫓는 기도도 받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병의 근본적 원인이 아버지의 폭력이라 생각하니, 제 마음 속엔 분노와 증오가 쌓이고 가정 분위기도 어두워졌습니다. 때로는 내 병을 완전히 낫게 해주지 않는 하나님과 교회에 의심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어느 순간부터 조현병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이 반드시 나아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조현병을 통해 저처럼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과 강연을 통해 희망을 줄 수도 있었습니다.

조현병은 성공과 출세만을 향해 있던 인생의 목표를 180도 바꾸어 주었습니다. 교만하던 저는 이 병을 통해 조금이나마 낮아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현병은 인생의 참된 방향과 목적, 가치를 일깨워준 것입니다.

7.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

전 조현병을 숨기고 충분히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회와 사람들 속에 섞여서 튀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으며 평범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과 강연으로, 그리고 <마인드포스트>에 글을 연재하며 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제가 암이나 당뇨병, 심장질환 같은 병을 겪고 있다면 굳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질병들 중 유독 조현병에 대해서만 엄격한 잣대로 바라보는 사회로 인해 이렇게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전 범죄 전과는 물론, 누굴 때리거나 헤친 적이 없고, 심지어 욕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를 마치 잠재된 시한폭탄이나 예비 범죄자로 보는 것을 잠자코 바라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1%나 되는 조현병 당사자들 모두가, 침묵하고 숨고 감추려 한다면 언론과 사회는 더더욱 왜곡되게 바라볼 것이 자명합니다.

그래서 이렇게라고 목소리를 내야만 속이 후련할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더라도 바른 소리를 하고 왜곡된 편견과 오해를 바로 잡고 싶었습니다.

8. 모든 감정과 생각을 인정하라.

제가 조현병이 발병한 이유는 아마도 너무 참아 왔고 속으로 삭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치원 때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당연히 전 아무 대항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울거나 어머니 등 뒤로 피할 뿐이었죠.

학교에 가서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반항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때려도 가만히 있으니 더 만만히 보았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취업을 해서도 상사의 압력과 기세에 눌려 스트레스 받는 직장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때의 상처와 기억들이 병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씻을 때마다, 밥 먹을 때마다, 잠자려 침대에 누울 때마다 떠올라서 홧병이 날 지경이었죠.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화나면 그 화를 현명한 방법으로 표현하기로요. 누군가 제게 나쁜 말을 하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면 그에 대해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합니다. 다분히 감정적이거나 피해망상에서 오는 것이 아닌, 누가 봐도 화나고 상처되는 상황이라면 그에 대해 표현하고 바로잡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현명하고 이성적으로 제 감정을 표현하면 상대방도 수긍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더군요. 물론 누군가는 당사자가 화내거나 요구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은 너의 조현병으로 인한 증상이 아니냐"며 깎아내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가 당해도 화가 나는 상황이라면 화를 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부당한 말과 행동을 당하고도 무조건 참는다면, 그 사람은 당사자이건 비당사자이건 마음과 영혼이 병들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인군자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였으면 합니다.

다니엘 피셔 박사 (c)마인드포스트 자료 사진.
다니엘 피셔 박사 (c)마인드포스트 자료 사진.

9. 의미 있는 꿈을 따르라.

조현병 당사자라고 해서 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만의 인생의 목표를 정해야만 삶이 더 재미있다고 봅니다. 물론 좋은 성적으로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가서 억대 연봉에 멋진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을 꿈 꿀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조현병이 발병되기 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과 꿈을 좇아 살았습니다. 하지만 조현병은 제게 좀 더 의미있고 가치 있는 꿈을 꾸게 해 주었습니다.

조현병을 통해 제 책을 출판할 수 있었고, 이 책을 통해 대학과 요양원에 초대되어 강연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에서 장애인식 개선 전문 강사로까지 위촉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강연 경험이 극히 적은 저는 전문성과 지식을 더하기 위해 대구대학교 대학원 장애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또한 제 출판사를 통해 다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으며 나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좀 더 많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낸다면 우리 사회도 장애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변할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게 주어진 꿈이자 사명이라 생각하며 목적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10. 존엄한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

저는 조현병 당사자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화이팅하게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병 없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들보다도 행복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조현병 환자'란 타이틀이 제 노력과 살아온 과정을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저뿐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이 있는 당사자건, 비당사자건, 가족이건, 종사자이건 이 10가지 원리에 따른다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의 행복은 학력과 재력, 집 평수와 차량의 종류, 사는 지역의 땅값과 회사에서 받는 연봉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대니얼 피셔 박사의 10가지 행복 원리를 다시 살펴보면 그 어디에도 위의 세상적인 조건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덧붙여, 당신이 조현병이건, 조울증이건, 우울증이건, 불면증이건, 이러한 타이틀도 당신의 행복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습니다.

병명에 자신의 행복을 맡기지 마십시요. 다니엘 피셔 박사의 10가지 행복 조건을 채워 가며 당신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누군가 당신의 병명으로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사회가 당신의 병명으로 인해 당신을 어떻게 대하든, 당신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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