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싶었어요..청소년 고민 털어놓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원해요”
“말하고 싶었어요..청소년 고민 털어놓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원해요”
  • 손제윤
  • 승인 2020.03.15 1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제윤 멘탈헬스코리아 피어스페셜리스트 기고
자녀의 내적 고통에 부모가 들어주지 않고 내버려둬
힘들어도 아닌 척해야 인내심 있다며 칭찬 받는 사회
청소년들이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 필요
손제윤 멘탈헬스코리아 피어 스페셜리스트.
손제윤 멘탈헬스코리아 피어 스페셜리스트.

고1 겨울 방학 때, 멘탈헬스코리아의 리더쉽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를 수료했다. 피어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며 나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해 이전보다 잘 인식하게 되었다.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지만 정작 청소년들은 그 문제의 해결 방안 논의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자해, 자살을 나쁜 것으로만 여긴다.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은 직접 나서서 정신건강 문제를 말하는 것을 마치 숨겨야 되는 일, 말하면 안 되는 일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나의 정신건강 문제나 청소년들의 자해, 자살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고 감추어야 한다는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소외되고 음지에 있던 청소년들이 사회에, 어른들에게 용기 내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것이 사회의 편견을 깨는 작은 변화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 자해문화 나쁘다고만 여겨..어떤 고민 있는지 들어야

청소년들이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 이유를 어른들은 정말 모를까? 많은 어른들은 “그때가 좋을 때”라고 하면서 무엇이 힘든지 자세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왜 힘들어 하는지 보려고 하지 않고 자해 등 일부 청소년들의 극단적인 행동만을 나쁜 일이라고 평가하고 쉬쉬하려고만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아픔을 꺼내려고 시도를 하기도 전에 철저히 배제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성적 때문에, 친구 때문에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거나, 다른 고민 때문에 물어봐도 입을 꾹 닫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청소년들이 많다. 자녀가 그렇게 행동하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녀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하기보다는 버릇없다고 혼을 내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어가기 일쑤이다. 그것을 유발한 마음 속 원인은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겉으로 보이는 행위에만 집착해서 자녀를 다그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모난 부분을 망치로 두드려 인위적으로 둥글게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도 ‘행복한 척’, 고민이 많은 데도 ‘즐거운 척’, 자신은 괜찮다며 대부분 ‘긍정적인 척’을 참 잘한다. 힘들어도 괜찮은 척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 인내심이 있다고 칭찬을 받는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어떤 것이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허용된 범위’가 좁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습관적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내면도 진짜 괜찮은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처방약보다는 주변에서 해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훨씬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 학교생활 때문에, 성적 때문에, 가정적인 이유 때문에, 아니면 뚜렷한 원인도 없이 힘들고 고단해 지쳐 있는 청소년들이 많다. 그런 순간에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 등 누군가가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는 삶에 한 송이 꽃을 피워낼 수 있다.

괜찮다는 아이도 내면 지쳐있을 것...따뜻한 말 한마디 소중해

나는 유독 시험을 치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시험을 보기 전엔 손발이 떨리고 심장이 요동치듯 두근거린다. 시험이 다가와 이런 힘든 마음이 커지면 몸 여기저기에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손톱으로 팔이나 다리를 꾹꾹 눌러 손톱자국을 내기도 한다. 심리적 압박감으로 이런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하는 것이었다.

성적, 친구 문제 등 여러 가지 고민을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과 감정을 터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밝은 척, 괜찮은 척하며 지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남에겐 부담을 주는 일 같기도 하고, 과도한 관심을 받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듣고서 별거 아닌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내 말을 듣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해서 오히려 상처가 될까봐 아예 말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나처럼 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의 아픔이 단순하게 취급되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까 두려워 미리 숨어버린다.

이렇게 마음을 ‘숨겨버린’ 청소년들이 마음을 열도록 만들고,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청소년들이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건강한 어른과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힘들면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그래도 괜찮다고, 그게 당연하다고 해주는 열린 마음의 어른들과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다.

수동적이던 청소년들이 이제 용기 내어 말하고 있다. 사회에 적극적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구체적인 개선 방안에 대해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용기 있는 활동들이 몇몇의 도전적인 청소년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화가 되고 분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말하지 않을래요’라고 말하는 수만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소년들이 함께 뭉쳐서 적극적으로 극복해가도록 논의하고 용기를 내서 어른들에게, 이 사회에 요구하고 말하고 바꾸자.

이 글을 쓴 손제윤 양은...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로 현재 청심국제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손제윤 양은 2019년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 육성 프로그램인 <스타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대한민국 청소년 정신건강의 인식 개선과 조기 개입의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펼쳐왔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주최한 2019년 학교 정신건강 전문가 연수교육에서 ‘학교 내 정신건강 교육 및 지원 실태와 개선 방안’에 대하여 청소년 대표로 발표한 바 있다. 이 밖에도 멘탈헬스코리아가 주관한 청소년 자해 인식 개선 프로젝트의 글로벌 청원 및 광화문에서의 오프라인 캠페인을 주도하였으며 이는 한겨레21과 KBS 추적 60분 <소리없는 아우성, 청소년 자해>편에 방영되기도 했다. 손제윤 피어스페셜리스트가 제작한 청소년 정신건강과 자해에 관한 유튜브 컨텐츠는 멘탈헬스코리아의 ‘멘탈 꿀단지’채널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