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인 삶을 책으로 내려면 전문성과 검증된 정보 가져야"
[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인 삶을 책으로 내려면 전문성과 검증된 정보 가져야"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3.19 19:1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판과 언론의 공통점은 올바른 정보의 전달
언론이 조현병 등 정신질환에 틀린 정보 전달 많아
한 번의 진단명을 내리기 위해 공부하는 게 정신과 전문의들

저는 1인 출판사 '옥탑방프로덕션' 대표로서 책을 만들고 정신장애 언론 <마인드포스트> 기자로서 글쓰고 카드 뉴스를 만듭니다.

출판사와 언론사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출판사는 소설을 만드는 문학지가 아닌 이상, 한 문장의 글을 쓸 때도 그 출처와 사실 관계를 따져야 합니다.

언론사도 기사를 쓸 때 단 한 문장도 하나의 단어와 토씨조차 틀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 보도를 하는 언론사에 비판적인 이유도, 정확한 사실 관계나 출처 없이 틀린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책을 만들때도, <마인드포스트> 기자로서 글을 쓸 때도, 충분한 자료 조사와 검증을 거쳐 신중하게 정보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것이 ‘출판 정신' 혹은 ‘기자 정신’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입니다. 이 기본을 잊는다면 기자는 ‘기레기’가 되고, 기사는 ‘가짜뉴스'로 전락하고 말겠죠.

오늘 약을 타기 위해 2주에 한 번씩 상담을 받는 병원에 갔습니다. 10년이 넘게 절 지켜보신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께 근황을 털어 놓았습니다.

“바울의 가시 이후로 다른 책의 출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신장애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담은 책이에요.”

그 후로 한 15여 분 동안 의사 선생님께 여러 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군가 이 상황을 보면 학생을 야단치는 주임 선생님의 모습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전 해명하려 해도 너무 당혹스러워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의 말에 결국 설득당하고 말았습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우선 출판사의 입장에서 자서전이나 시처럼 당사자들의 삶과 문학을 책으로 만드는 건 가능하나 전문적인 의학 서적이나 학문서를 만드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출판사와 편집자가 의학적인, 혹은 심리학적인 기본 지식이나 배경 이론이 전혀 없이 전문 서적을 출판해 내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적어도 관련 논문과 책들을 찾아 보고 전문가의 검증과 도움을 거쳐야만 이런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환자들을 진찰하고 대학 교수로 일해 온 자신도, 한 명의 환자를 대할 때마다 의학 서적을 펴고 줄을 그어 가면서 자료를 참고한다고 하셨습니다. 한 번의 진단명을 내리기 위해 수없이 고민하고 공부해 가면서 진단서를 작성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의 올바른 판단인지, 오류는 아닌지를 점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전 전문가의 원고를 가져와서 편집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하고 잉크를 종이에 이쁘게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출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의사나 교수들을 찾아가 정신의학 혹은 심리 분석과 관련된 책들을 계속 찍어내면, 옥탑방프로덕션도 정신 의학 전문 출판사가 되는 건 줄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교정교열을 하고 디자인을 이쁘게 해도, 그것만으로는 출판인이라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대구대학교 대학원 장애학과에 입학한 이유도 그와 같습니다. 정신장애를 비롯해 무수한 장애인들의 삶과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담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전문성과 배경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단순히 학위가 필요해서, 강의 할 때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 입학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인드포스트> 기자로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조현병의 이해 시리즈’라는 타이틀로 카드 뉴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조현병을 안고 잘 버텨온 건 사실이나 조현병에 대한 이론도 정보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대한조현병학회에서 나온 ‘조현병, 마음의 줄을 고르다’라는 책을 참고로 카드 뉴스를 만들기로 정했습니다. 물론 학회 측에 허락도 받았구요. 결코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를 몇 개 모아서 만들거나, 제 추측과 생각이 들어간 카드 뉴스는 만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인드포스트>도 엄연히 언론사고 저도 기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글을 씁니다. 그 거룩한 사명감과 부담감으로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팩트에 근거한 기사와 카드 뉴스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만약 제가 초심을 잃고 우리가 비판했던 언론사의 기자들과 다를 바 없게 된다면, 독자 분들이 회초리를 들어 바로잡아 주십시요. 저 역시도 독자 분들의 관심과 책망을 통해 보다 더 전문적인 기자와 출판인으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권혜경 2020-03-23 08:37:51
기자님과 의사선생님과의 신뢰있는 관계도 참 부럽네요. 또 조언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기자님의 태도도 훌륭합니다.
경험있는 당사자의 글은 그 자체로 도움이 되지만 객관성과 전문성에 대해 일반화하거나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주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