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기 "안 되는 일을 안 되는 일이라고 인정하고 쿨하게 놓아버리는 것도 멋있는 일입니다"
최명기 "안 되는 일을 안 되는 일이라고 인정하고 쿨하게 놓아버리는 것도 멋있는 일입니다"
  • 배주희 기자
  • 승인 2020.04.26 20: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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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터뷰
강제입원은 전적으로 환자의 선택권 존중해야
정신장애인들이 취업해 자립할 수 있도록 사회의 지속적 교육 및 홍보 필요
약 복용이 본인을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끔 도와야
'왜 늘 나만 상처 받을까' 생각 들면 먼저 내 마음 상태가 튼튼한지 파악해야
미래의 배우자에게 정신과 치료 받는다고 했을 때 그것까지 모두 포함해 사랑해 줄 수 있어야
정신질환 유전은 반드시 일어나는 일 아니다
코로나 블루 극복 위해서는 구체적 목표 세우고 바삐 살아야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다"의 정답은 "안 되는 걸 억지로 하지 말자"를 실천하는 것
정신장애인들 한 분 한 분이 다 소중해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어요"

그가 정신장애인 환자들에게 가장 용기를 주는 말일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은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저명한 인물이다. 시사교양을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그를 모를 수가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는 범죄자나 일반 사람들의 심리 분석을 주로 해주면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래서 선뜻 다가가기 힘들 것 같은 유명인사다. 하지만 그의 진료실에서는 환자들의 작은 상처에도 귀 기울여 주며 참으로 따스한 위로를 전하는 의사이기도 하다.

활발한 방송 출연으로 많은 이들에게 좋은 정볼를 주고 있는 최명기 원장.(c)광화문의 아침 영상 갈무리
활발한 방송 출연으로 많은 이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고 있는 최명기 원장. 사진=광화문의 아침 화면 갈무리

늘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최명기 원장이지만 이번에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기자는 그를 찾아갔다. 다음은 일문일답.

-  선생님께서는 정신과를 전공으로 특별히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또한 만약 정신과 의사를 하지 않으셨으면 무엇을 하셨을지요?

"철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정신과가 제 적성에 맞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에 만족하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가 아닌 다른 일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 수많은 정신장애인의 보호자들이 힘든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매번 증상이 있을 때마다 병원에 갈 수도 없고 계속해서 입퇴원을 반복하는 것도 고문 같은 경험이기에 보호자의 역할 중 노하우 세 개를 알려주신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첫번째는 환자분에게 적절한 치료 방법과 효과가 있는 약과 알맞은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로 환자 분이 병식을 잘 키워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약을 잘 복용할 때 칭찬해주세요. 세 번째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 정신과 강제입원률이 2018년 4월 이후 37%로 떨어졌는데 강제입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정신장애인들을 강제입원 등의 사유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타해의 위험이 있는 경우는 부득이하게 입원치료를 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전적으로 환자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c)마인드포스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 (c)마인드포스트

- 정신장애인에게 사회에서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신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에 대해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당사자들에겐 취업을 해서 자립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아서 지속적으로 관리를 하며 살아가면 직장생활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취업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사람들의 편견을 없애기 위한 지속적인 교육 및 홍보가 필요합니다."

- 말을 듣지 않고 병식이 전혀 없는 환자는 어떻게 치유를 하시는지요?

"보호자가 아닌 '환자 분'의 입장에서 약을 복용 및 치료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정신장애인분들도 모두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십니다.

약을 복용하는 것이 본인을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끔 도와드려야 합니다. 단지 증상을 없애기 위해서 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하게끔 도와드려야 합니다."

때로는 작은 상처에 더 아파해야 하는 때가 있다.(c)clueplus
때로는 작은 상처에 더 아플 때가 있다고 하는 최명기 원장 (c)clueplus

- 선생님께서는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고 저서에서 언급하셨습니다. '왜 늘 나만 상처받을까?'라고 생각하는 정신장애인들에게 해 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안전한 항해를 하려면 날씨와 바다 상태를 유심히 살펴야겠죠. 돛단배는 작은 바람에도 뒤집히잖아요. 통통배 역시 파도가 조금만 거세게 일어도 뒤집힐 듯이 뒤뚱거립니다. 그런데 항공모함은 어떤가요? 어지간한 폭풍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처럼 거센 풍량이 와도 어떤 배를 타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가 받는 영향은 다른 법입니다.

스스로 상처를 받았다고 느낄 때 타인이나 상황에 대해서만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는 바다와 날씨 상태에만 신경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다나 날씨 상태가 안 좋은 날을 매번 피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런 날, 어쩔 수 없이 바다에 나가야 하는 일도 있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배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낡은 곳은 수선하고, 부족한 곳은 보강해야 하는 것이죠.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를 튼튼하게 만들려면 일단 배의 상태를 꼼꼼히 점검해야 하듯이, 만약 내가 남들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 편이라면 내 마음 상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본인의 내면을 파악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 까요?

"정신장애인 분들은 특히 대인관계에서 상처를 받으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야 합니다. 상처난 마음을 위로로 닦아내야 한다는 것이죠. 무관심과 소외감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면, 나를 위로해 줄 그 누군가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 형제, 친구, 그 누구든 상관 없습니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잘 위로해 주는 강력한 누군가가 내 인생에 존재한다면 '남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대인관계의 갈등의 대부분은 서로의 '안전 거리' 를 존중하지 않는 데서 비롯됩니다. 나는 내가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좋은 성격을 지녔다고 믿지만, 막상 상대 입장에서는 한 번 본 사이에 가까운 듯이 구는 내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상대가 듣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데도 미주알고주알 자기 치부를 다 드러낸 후, 자신이 했듯이 상대도 속마음을 드러내길 원하는 사람만큼 부담스로운 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꼭 드리고 싶은 말은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두르지 말로 한 걸음, 한걸음,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이 무엇 보다 중요합니다."

진료실에서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c)마인드포스트
진료실에서의 최명기 원장 (c)마인드포스트

- 결혼할 때 정신장애인임을 상대방 배우자에게 알려야 할까요? 일명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언제가 적절할까요? 정신장애인이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정신장애를 앓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롭고 힘이 드는 일입니다. 물론 부모님이 계시기는 하지만 점점 연세가 들어가십니다. 배우자와 자녀처럼 정신장애인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둘이 서로 사랑을 해서 결혼을 결심했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 있는 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나를 사랑할 때 진정한 사랑입니다."

-유전이 될 수도 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출산을 아예 포기하는 정신장애인들이 많습니다. 정신장애인들의 출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두 분 중에서 어느 한 분도 조현병이나 양극성정동장애가 아닌데 자녀는 조현병이나 양극성정동장애인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두 분이 모두 조현병이나 양극성정동장애인데 자녀는 조현병도 아니고 양극성정동장애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정신질환의 가족력이 유병율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확률의 문제일 뿐입니다. 내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해서 내 자녀가 꼭 정신질환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자녀를 가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정신과와 동시에 경영학을 전공하셨던 남다른 이력이 있으십니다. 어떠한 과정으로 이런 이력을 가지게 되셨고 의사 생활을 하시면서 다른 의사분들과 차별화되는 포인트가 있으십니까?

"전문의가 된 후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서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이후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환자분과 소통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명 '창살 없는 감옥' 코로나 블루(c)raporcian
일명 '창살 없는 감옥' 코로나 블루(c)raporcian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우울감 호소입니다. 급기야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나타났습니다. 코로나19에 우울감을 뜻하는 영어(blue)가 합성된 것인 이 코로나 블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코로나 블루 예방을 위한 최선의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목표 설정'입니다. 집안이나 제한된 공간에 갇혀 지내는 경우에는 무엇이든지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울감 해결에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일 등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간표를 만들어 좀 더 체계적이고 바쁘게 생활하는 것도 코로나 블루 예방에 효과적일 것입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직장이든 집안이든 내가 위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무엇인가를 향한 목적 의식을 잃지 않는다면 코로나 블루와 같은 증상은 잠깐 머물다 가는 바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방송출연을 하며 각종 시사 문제에 도움을 주고 있는 최명기 원장.(c)뉴스토리 화면 갈무리
방송 출연을 하며 각종 시사 문제에 도움을 주고 있는 최명기 원장. 사진=뉴스토리 화면 갈무리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아픈 삶에 지쳐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분들께 조언을 해주실 수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저는 그분들께 '안 되는 걸 억지로 하지 말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죽어라 공부한다고 해서 누구나 1등을 하고 누구나 A학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부를 안 하고 논다고 해서 꼭 꼴찌를 하거나 F학점을 받으란 법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노력만 하면 안 될 일이 없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노력에 관계없이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는 게 세상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기 보다는 하는 데까지 해보다 안 되면 포기하고, 그 노력과 시간을 '되는 일'에 쏟아붓는 게 훨씬 현명합니다.

때로는 그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온전히 즐기는 데'만 쓰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자신을 바꾸고자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학대하기보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되, 나쁜 점은 줄여나가고 좋은 점은 늘려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부모님을 바꾸려고 설득을 멈추지 않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없습니다.

그분들에게 바뀌라고 하는 건, 그분들 스스로 당신이 살아온 세월은 온통 부정하라는 말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답답해도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합니다. 그분들을 설득하는 데 썼던 시간과 에너지를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백 배 나은 전략입니다.

제가 말하는 포기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앞뒤 없는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조금 영리하게 '나를 위해 살아가자'는 이야기입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일을 될 때까지 해 보겠다며 끝까지 놓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집착에 가깝습니다. 안 되는 일을 안 되는 일이라고 인정하고 쿨하게 놓아버리는 것도, 무언가를 끝까지 제대로 해내는 모습 이상으로 멋있다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정신장애인은 무슨 의미입니까.

"저에게 정신장애인은 소중한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기자는 인터뷰 마지막 질문의 답을 듣고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장애인 입장에서만 의사들이 소중하다고 절실히 느껴왔다. 하지만 의사에게서 당사자들이 소중하다고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멘트를 받아적으며 '생각지도 못했던 큰 선물'을 받은 것 마냥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당사자들을 향한 최명기 원장의 따스한 시선에 감동을 표하며 앞으로의 그의 행보를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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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0-04-27 19:16:38
기사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마지막 질문과 답에 울컥하고 되네요.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관계일 때, 그 속에서 회복의 씨앗이 싹트는 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