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의 나로 살아가기..."자살을 생각하는 소중한 별들에게"
열일곱 살의 나로 살아가기..."자살을 생각하는 소중한 별들에게"
  • 윤예영
  • 승인 2020.03.27 18:5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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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챙겨주니..주변서 ‘외톨이 되고 싶냐’ 겁박
챙겨주던 친구가 나를 욕하고 이간질해 충격
선생님께 고민 털었지만...“너도 잘못 있을 거”라며 상처 줘
극단적 선택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전화...“괜찮아, 힘들었지” 말 듣고 눈물
거창한 것보다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가 더 소중해

윤예영 양은 올해 17세로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의 친구 관계 문제, 우울증, 자살 이슈에 대해 온·오프라인을 통해 동료지원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윤혜영 양.
윤예영 양.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것’, 혹은 ‘모든 것을 끝낸다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뉴스나 기사로는 많이 봤더라도 자신이나 주변의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면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치부해버릴지 모릅니다. 저는 지금 누군가에겐 생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있는 ‘자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피어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 활동 이전에도 자살은 스스로 죽음을 초래할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생명을 끊는 행위라는 이론적인 지식과 함께 많이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적인 설명일 뿐 힘든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지지나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그 아픔을 경험하고부터는 말이죠.

중학교 2학년 때의 저는 저보다도 친구들을 더 많이 챙겼던 사람이었습니다. 학기 초에 친구들을 사귀고 함께 놀며 사이가 좋았던 저는 친한 친구들 외에도 도움이 필요하거나 혼자 다니는 친구를 챙기며 함께 다녀주었습니다.

그러나 혼자 다니는 친구랑 같이 다녀준다는 이유로 친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저에게 멀어져만 갔습니다. ‘네가 쟤를 왜 챙기니? 아싸(아웃사이더의 준말·외톨이) 되고 싶구나. xx인가?’라는 욕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어렸기에 친구들이 너무나도 무서워 그 친구를 챙겨줬던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 친구들을 잃어가는 것도 두려웠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서 얘기하는 모든 것들이 중학교 2학년이였던 저에겐 버티기 힘든 무게였습니다.

매일 밤마다 친구와 전화를 하며 하루하루를 울며 보내면서 점점 힘들어져 갔지만 혼자 다니는 친구를 챙겨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았습니다. 그게 맞는 걸 알지만 정작 나를 챙기는 방법을 몰랐던 저였으니까요.

이렇게 시간은 갔고 이후 친구를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습니다. 제가 항상 챙겨주던 그 친구가 저를 뒤에서 욕하고 다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절대 그럴 친구가 아니라고 믿었기에, 제가 도와줬던 친구였기에 저는 애써 부정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정 뒤에는 엄청난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게 저에 대한 뒷담화를 하며 저를 더욱더 힘들게 했습니다. 챙겨주려고, 친구니까 좋은 마음으로 했던 모든 순간들이 저에게 후회로 돌아오며 너무 커다란 벽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무서웠고 친구라는 것이 무서워 하루하루를 울면서 지냈습니다. 학교 가는 것도 무섭고 사람들의 시선이 다 나에게 집중 되는 것 같아 두려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를 시작으로 ‘자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살”. 어쩌면 제가 가장 많이 고민한 단어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너무 힘들었던 저는 고통 없이 죽고 싶어 인터넷에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을 검색해보았습니다. 도움을 주려고 만들어 놓은 자살 예방 안내문은 힘들고 지친 저에게는 행복해지는 길을 막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자해, 자학도 많이 봤지만 샤프심이 살짝 닿아도 아팠던 어린 저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선생님에게도 얘기를 해 보았지만 결국 돌아오는 답은 ‘우울증은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조금만 더 버텨봐. 너도 잘못이 있을 거 아니야’ 등의 상처가 되는 말들뿐이었습니다.

어렸기에 상처는 배가 되었고 살기엔 너무 힘들다고 생각되어 유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 한 줄, 언니들에게 한 줄, 친구들에게 한 줄씩 써 가며 이렇게 마감할 삶이었다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나 싶었습니다.

속상함 한 방울, 미안함 한 방울 후련하게 울고 보니 보이는 것은 핸드폰이었습니다. 유서도 썼는데 인사는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새벽이었기에 받지 않을 것 같던 친구들도 '무슨 일 있냐'며 전화를 받았고 '엄마한테 혼날 것 같아 방에 왔다'는 친구들과 '너 전화니까 받는 거야'라는 지인들의 전화를 받으며 너무 힘들고 고마워서 펑펑 울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울었던 것이 처음이라 두려웠지만 쌓인 게 참을 수가 없어 모든 걸 뱉어냈습니다. ‘괜찮아,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잘하고 있어, 미리 알았어야 하는데 미안해, 내가 먼저 연락할 걸 그랬다’라고 말하는 친구들과 지인을 보며 너무 고마웠고 속상했지만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받는 위로이자 인정이었으니까요.

그 이후 조금씩 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 보자라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방에 하루 종일 있으며 스트레스도 풀고 피시(PC)방도 가며 마음을 안정시켰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갈 수 있는 어디든 가고 싶어 찾아보고 지하철을 타고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 일 이후 사람을 무서워했던 저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참여하며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고 우울한 것도 점차 사라지며 자살에 대한 생각을 접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자살에 대한 생각이 고칠 수 없는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생각하는 자살은 아무리 노력해도 온 힘을 다해서 알아 달라고 말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희망의 빛 한줄기이자 모든 것을 놓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자살은 고칠 수 없는 병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며 자신을 알아달라는 마지막 몸짓입니다. 그저 조금의 관심, 함께 다시 해 보자는 희망의 손길, 말 한 마디가 필요할 뿐이었습니다.

저 또한 처음에 아무것도 모를 때는 인터넷의 지식만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해주었는데 그것은 극히 일부일 뿐 진심으로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거창한 것이 아닌 당신 곁에 많이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다면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지 말고 말 한 마디, 따뜻한 목소리로 위로해주세요. 그리고 그 친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주세요. 그게 무엇이든지 자살은 불치병이 아닌 조금의 관심을 원하는 한 사람의 진심입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소중한 별들에게

소중한 그대들이 제가 말한 한 마디로 인해 자살을 내려놓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별들은 어두운 밤에 환히 빛나듯이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제일 행복할 것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어요.

저는 처음에 좋아하는 것이 친구들과 전화하는 것밖에 없어서 힘들 때마다 친구들과 전화를 많이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울한 게 많이 나아지고 편해졌어요.

이 일이 있고 나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찾으며 노래 부르는 것도 즐겁고 만드는 것, 요리하는 것도 하고 싶어 여러 계획을 세우며 바쁘게 살다 보니 행복하기도 하고 안 좋은 생각을 할 상황도 많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꼭 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항상 곁에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태어나줘서, 지금까지 잘 지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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옝옝이 2020-03-28 15:16:44
오와아앙

민이 2020-03-28 09:47:41
너무너무 멋있구 공감됩니다 화이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