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장애학 관점으로 본 당사자 원칙..."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이관형 기자의 변론] 장애학 관점으로 본 당사자 원칙..."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3.30 18: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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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마인드포스트>의 슬로건을 아시나요? 바로 “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입니다. 즉, 정신장애를 포럼이나 학술대회, 혹은 언론과 미디어에서 다룰 때, 당사자의 입장과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당사자 원칙'이 중요한 이유는 과거 역사적 흐름을 살펴볼 때 당위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흑인 인권 운동을 일으킨 주체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엑스' 등으로 대표되는 흑인 당사자입니다. 왕과 봉건 제도에 대항하여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고, 인권 선언문을 선포한 이들도 시민 당사자들입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신분 차별에 반대하여 일어난 봉기의 주체들 대부분이 노예나 천민 출신의 당사자들이고 최근 벌어진 '미투(Me Too) 운동'도 여성 스스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장애인, 특히 정신장애인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대중의 왜곡된 시선이 두렵거나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염려가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물론, <마인드포스트> 외에도 ‘조우네 약국’, ‘텐데시벨’, ‘안티카’ 등 유튜브, 팟캐스트, 책을 통해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과 활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파도손처럼 당사자들 중심으로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주장하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매드 프라이드’ 축제처럼 사회와 시민들에게 직접 다가가 우리의 목소리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신장애 당사자들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인 편입니다. 여전히 혐오스럽고 두렵거나 불쌍한 존재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회와 미디어에서 다루는 관점대로 정신장애인은 관리 대상이자 기피 대상일 뿐입니다. 심지어 전문가 집단인 학계와 정부에서조차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입장은 배제되곤 합니다. 그 이유를 장애를 바라보는 의료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의 예를 통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장애학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책인 <한국에서 장애학 하기 (조한진 외)>에 따르면 의료적 관점에서는 장애인을 치료와 교육, 재활의 대상으로 바라본다고 합니다. 즉 장애를 ‘개인의 비극’ 혹은 ‘건강 이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선 정신장애 역시 뇌의 도파민 호르몬 이상으로 인해 생긴 질병이며, 이를 치료하기 위해 약물을 필요로 합니다. 정신장애는 '개인의 비극'이자 '건강의 손상'을 입은 것이기에 적절한 약물치료로 낫게 하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한편, 사회적 관점에서는 장애인들이 겪는 문제들을 사회가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활동보조 지원, 장애인복지법 같은 서비스와 정책,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휠체어나 안내견, 복지사나 활동보조인 등의 서비스가 대표적이죠. 정신장애인은 사회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장애인보호작업장 등의 시설을 통해 기술과 직업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당사자 원칙이 전혀 없는 의료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은 정신장애 당사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요? 당사자의 목소리와 주장이 철저히 배제된다면, 당사자의 모임이나 집단이 힘이 없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사자 원칙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의료적 관점은 정신장애인을 압박 붕대로 고정시키고 마취나 다름 없는 진정제 주사로 통제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약을 통해서 증상을 진정시키고 도발적 행동을 잠재운다면 적어도 겉으로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당사자 원칙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회적 관점은 보호작업장을 수용소와 같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정신장애인들은 일하는 포로가 되고 사회복지사는 그들을 감독하는 간수가 되겠죠. 작업장은 제품의 생산치를 높이고 불량품을 줄이는 것이 주된 목표이기에 당사자들을 더욱 다그치고 엄격하게 대할 것입니다.

이처럼 당사자 원칙이 없다면 의료적 관점이든 사회적 관점이든 정신장애인의 인권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외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당사자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이죠.

결국 의료적 관점보다, 사회적 관점보다, 가장 중요하고 먼저 앞세워져야 하는 것이 당사자 원칙입니다. 약물과 입원을 통해 병이 회복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병원 안에서, 의사 앞에서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경제적 지원과 서비스 환경을 통해 사회 생활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 역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러한 권리는 당사자 원칙을 통해 지킬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당사자 원칙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저 역시 당사자 원칙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정신장애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외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겠습니다.

 

- 이 글은 본 기자가 학업 중인 대구대학교 대학원 장애학과 박사과정 수업 내용을 참고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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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0-03-31 07:36:41
생각과 시야를 넓히는 좋은 글 감사해요.
내가 경험한 것은 솔직하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Why n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