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누구나 아파요...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됐으면”
“살다보면 누구나 아파요...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됐으면”
  • 우가은
  • 승인 2020.04.06 18: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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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자살 생존자 우가은 양의 정신건강 이야기
학교서 받은 정신건강 상담에 실망...위클래스 믿지 못해
정신장애 42%가 청소년기에 발병..조기개입 그만큼 중요
청소년 정신건강 서비스가 오히려 편견과 낙인 강화해
마음 아픈 청소년을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면 문제 해결 안 돼
낙인 찍혀 차별을 경험한 아이들은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청소년들이 직접 학교 자살예방 교육에 강사로 활동해야

우가은(16) 양은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 육성 프로그램인 ‘스타 프로그램 2기’를 수료하고 자살 생존자로서 비슷한 아픔을 겪는 청소년들을 위해 활발한 동료지원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19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에서 열린 생명사랑위기대응 심포지엄에서 응급실 기반 청소년 자살 시도자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 연설했다. 또 국회에서 열린 자살예방포럼에 발표 및 토론 패널로 참여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차별 해소 방안을 청소년 대표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서울특별시와 자살예방행동포럼 라이프에서 주관한 영라이프콘서트에서 유튜브 스타 ‘달지’와 함께 무대 공연 및 강연을 진행했다.

우가은 양,
우가은 양

안녕하세요, 저는 멘탈헬스코리아에서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로 활동하고 있는 중학교 3학년 우가은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해결해야 할 다양한 사회 문제가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한번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 사회 문제 중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과연 정신건강은 몇 번째나 될까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정신건강은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암을 뛰어넘어 가장 높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질병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신건강은 우선순위 리스트에서 가장 밑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산, 교육, 서비스의 수준,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편견과 차별까지.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정신건강 문제를 대하는 모든 면에서 별로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정신질환이 있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을 경험했던 청소년으로서, 학교 현장에서 왜 이런 편견과 차별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지, 그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정신건강, 늘 사회적 의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먼저 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청소년이 정신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경험하게 되는 상황을 짧게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저의 첫 정신건강 서비스의 경험은 학교 위클래스(Wee class)였습니다.

학기 초 시행하는 정서행동검사에서 ‘우울증이 의심됨’이라는 결과가 나와 상담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상담을 받으면 조금 덜 아플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위클래스에 갔을 때 상담 선생님은 저의 이야기는 듣지 않으시고 바로 “왜 이렇게 생각했니?” 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대한 저의 대답은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응답했습니다.”

위클래스 선생님은 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전혀 공감을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고 마지막에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너는 그렇게 생각했다니 의문이구나”라며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너는 외부 정신상담사를 불러야 하니 부모님께 말씀드리겠다고 하셨고 저는 거기에 대해서 반대하며 안 된다고 울고불고 사정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받은 첫 정신건강 서비스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학교에서 이러한 검사를 진행할 때마다 우울증으로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하여 거짓으로 설문을 제출하게 됐습니다. 저는 여전히 위클래스를 믿지 못하며 다른 친구들에게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짧은 에피소드이지만 이 안에는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잘못된 통계를 만들며, 조기 개입을 실패하게 하는 이유들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래도 ‘그건 일부의 잘못된 상담사 케이스고 좋은 상담사들도 많아’라고 무시하고 지나치실 건가요?

정신장애의 42%는 청소년 시기에 첫 발병을 합니다. 즉 이 시기에 정신질환에 대한 조기 예방과 조기 발견, 치료는 매우 중요하죠. 조기 예방과 조기 치료를 위해 마련한 청소년을 위한 정신건강 서비스가 오히려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고, 조기 발견과 치료를 방해하고 있다는 현실. 이것은 일부 청소년의 왜곡된 전달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는 더 나아질 수 있으니까요.

부실한 위클래스 정신상담...외려 편견 강화해

저는 정신질환이 발생시키는 수조 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예방과 조기 개입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청소년들을 ‘관리와 문제의 대상’이 아닌 문제 해결의 주체로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 정신건강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실제적으로 청소년에게 도움이 되는 지역사회 협력 체제를 만드는 것, 마지막으로 학부모와 교사를 대상으로 제대로 된 정신건강 교육을 진행하고 의무화하는 것입니다.

첫째, 마음이 아픈 청소년들을 ‘문제의 대상’, ‘치료의 대상’으로만 계속 바라본다면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교육감 중 누군가는 ‘자살을 시도했던 학생’을 가리켜 ‘위험한 아이’라고 얘기하시더군요.

한 번 낙인이 찍혀 차별을 경험한 아이들은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하지 않게 되며 조기 치료가 아닌 고립과 방치의 악순환 고리를 타게 됩니다. 그러나 완전히 관점을 혁신해 ‘문제의 대상’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멘탈헬스코리아는 자살, 자해, 불안, 무기력 등 다양한 아픔을 가진 청소년들을 ‘아픔의 경험 전문가’, ‘피어스페셜리스트’로 육성하고 ‘회복의 롤 모델’로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다양한 조기 개입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어른은 물론이고, 같은 십대들 역시 자살이나 자해, 정신질환에 대해 매우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저 역시 또래 친구들로부터 ‘정신병 있는 애랑 이야기하기 싫어’, ‘정신병은 너의 잘못이야’, ‘더러워 보여’ 이런 말들을 들어야 했습니다.

위클래스에 다녀오고, 자해를 하는 사실, 자살을 시도했던 사실이 알려지면, 일상생활에서 아주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쟤는 자살 시도자니까, 쟤는 자해하니까 저래’라고 판단합니다.

낙인 찍혀 차별 경험하면 도움 요청 않고 고립돼

학교에서는 ‘예방 교육’의 이름으로 나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예방 교육’들은 효과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면 자해와 자살을 시도해본 사람들의 말을 여전히 듣지 않고 있으니까요.

현재는 형식적인 생명존중 영상과 ‘자살은 나쁜 것, 나쁜 행동’, ‘자해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알리고 있습니다. 편견을 해소하고 인식을 개선하려면 자해를 경험해 본 사람이, 자살을 시도해 본 사람이, 왜 했는지 그리고 나를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는지, 어떤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말할 수 있는 기회와 오픈해도 괜찮은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인식 개선에 굉장히 효과적일 뿐 아니라 왜 했는지, 왜 아픈지를 알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올해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 100명은 정신의학회 발표를 비롯해 전국 교육감이나 장학사 대상으로도 강연 활동을 하며 청소년들이 충분히 조기 개입 활동의 주체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나갔습니다.

앞으로는 저와 같은 청소년들이 직접 학교 자살예방 교육에 강사로 활동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기반이 마련되었으면 하며, 청소년들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고 청소년 정신건강 리더로 활동할 수 있는 장들이 확대돼야 할 것입니다.

 

(c)멘탈헬스코리아.
(c)멘탈헬스코리아

두 번째로는 정신건강 서비스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하게 저희 청소년들을 ‘문제아, 골칫거리’가 아니라 ‘소비자, 고객’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 여러분이 돈을 내고 정신건강 서비스, 상담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나는 내 의지로 상담사를 선택하지도 못하며, 그 상담사가 경험도 없고 수련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상담 실력이 형편이 없다면 어떨까요? 내 정보를 누군가에게 발설하고 다닌다면요? 그런데 소비자로서 불만족한 부분을 말도 못하고 혼자 삼켜야 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말도 안 되겠죠? 변화해야 합니다.

미국 학교들의 경우 학교 재정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보통 학업 상담, 진학 상담, 심리 상담으로 상담이 세분화되어 있고, 그 중 심리 상담의 경우 5명 이상의 전문 상담가가 상주하고 있는 학교도 있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정신건강 서비스 소비자로서 철저하게 대우하고 있기에 상담의 질, 비밀 보장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 평가 시스템 역시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학교에 파견되는 상담사들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주세요.

청소년이 학교 자살예방 교육에 강사로 활동해야

그리고 학생들이 상담사를 선택하고, 평가할 수 있는 소비자로서의 기회와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그래서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정 폭력, 친족 성폭력을 당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지만, 신고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사회적 지원 체계가 없어 성인이 될 때까지 숨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정신질환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가정 폭력 피해자 청소년들을 구출하고 사회적으로 책임져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의 가장 곁에 있는 부모와 학교 교사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신건강 교육 의무화와 확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네가 정신병자야? 정신과에 왜 가’라고 치료를 말리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치료를 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굉장히 많은 변화를 요구하시는 부모와 선생님들도 있습니다. 변해야 하는 건 맞지만 절대로 그것이 남들에 의해 강압적이거나 아픈 사람 잘못이 되는 폭력성을 가지면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구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준으로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손 내밀어 주길...우리는 모두 아픈 존재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저는 어립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많이 아파봤고 힘들었고 눈물 흘렸고 겪어봤기에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미숙하고 아직도 가끔 정신건강이 위태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 위태로움이 저를 여기에 서게 만들었고 이렇게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같은 사람이고 평범한 학생이기도 합니다. 편견 없는 세상에서 아프면 나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하나 충분히 바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편견이기에 없애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게 되시는 분들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손 내밀어 주십시오. 다르지 않다 생각해주십시오. 그럼 하나하나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언젠간 한 번쯤은 아플 거구요. 지금도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때 따뜻한 시선과 도움으로 다시 나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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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예랑 2020-04-07 08:45:10
가은양, 글 너무 잘 읽었어요. 전 한국의 정신건강 생태계 변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한 대학생이에요. 저도 중학생 때 우울감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의 위클래스와 현 시대의 청소년들이 찾을 수 있는 위클래스가 큰 변화가 있어 보이진 ㅇ않아서 더 마음이 아프네요. 이렇게 실제 중고등학교의 정신 건강 서비스의 실태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자세히 알 수 있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더 분발해야겠네요. :) 4명 중 1명은 정신건강 문제를 앓는 이 시대에서 정신병에 대한 편견을 사라지는 게 맞지요. 우리 같이 정신적 질환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고, 자유롭게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응원할게요 가은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