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고통이 있죠. 꽃을 피어내기 위해선 많은 것들이 필요해요. 햇빛도 물도 비바람과 폭풍도요.”
“삶에는 고통이 있죠. 꽃을 피어내기 위해선 많은 것들이 필요해요. 햇빛도 물도 비바람과 폭풍도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4.07 18: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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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가 이지원 씨 인터뷰
응급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곳은 병원밖에 없어…병원에 거부감 없어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세상이 아름다웠지만…이제는 그를 놓아줘야 할 듯
치유에 긍정적인 부모님 영향 커…몸이 멀쩡한 것에도 감사
긍정적 마음으로 좋은 그림 그리고 싶어
돈만 바라보고 일만 하며 산다면 너무 힘들 것…그림을 즐겨
사랑은 늘 해야 하는 것…이웃에 대한 사랑도 실천해야
회복은 느리지만 꾸준히 일어나는 것…멈추지 않는 것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어린 시절부터 그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그냥 좋았다. 다른 과목의 성적은 양에 차지 않았지만 미술 성적만큼은 늘 우수했다. 고3 무렵, 담임선생님이 미술을 권했다. 먹물 냄새가 좋아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 시절, 정말 열심히 그렸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대학원 시험에 떨어졌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사촌언니의 소개로 애니메이션 회사 페인팅부에 계약직으로 얼마간 일했다.

다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세상을 알고 싶었고 밑바닥부터 배우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골동품 회사 큐레이터 모집에 지원했다. 큐레이터를 지원하던 그 마음속에는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라는 의문이 밀려왔다. 4개월을 다녔고 회사가 폐업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무엇을 해야 할까. 우울해졌다.

집에만 있으면서 망상이 밀려왔다. 24살 겨울이었다. 그 시절, 자신을 지탱해 주던 기둥이 부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족이 그를 정신과로 데리고 갔다. 처음 마주한 노년의 정신과 의사는 상담 시간이 오래 흐른 후 물었다. “왜 아팠니?” 그는 “우정도 사랑도 일도 모두 안 돼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울었던가.

대신 어머니는 긍정적이었다. “감기 걸리면 병원 가듯이 정신적인 것도 치료하면 된다”고 했다. 의사는 그에게 매일 한 장씩 우편엽서에 그림을 그려 자신에게 보내라고 했다. 잊고 있던 그림에 대한 욕망이 생겼다. 엽서 말고도 드로잉북을 사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0대의 어느 지점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연우(가명)였다. 세 번쯤 그와 만나면서 사귀자는 말에 병이 있다고 고백했다. “무슨 병인데?” “컨디션에 기복이 있는 거야. 괜찮아.” “나한테 왜 이야기하는 건데?”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 주려 그랬어.” 이후 연락 없이 몇 년을 지냈다.

20대 후반, 대학원에 진학했다. 같이 공부하는 한 살 어린 남자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의 말대로 “그는 친하면서도 나를 외롭게 했다.” 그로테스크한 자화상을 비롯해 밥 먹는 시간을 잊을 정도로 그림에 몰두했다.

그러나 대학원 졸업을 위해 필요한 전시를 진행하지 않았다. 휴학을 했고 제적됐다. 다시 미술학원에 강사로 나가 일을 했다.

서른 살 무렵, 연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를 다시 만나면서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림도 예쁘고 아름답게 변했다. 그러나 연우는 떠났고 다시 그는 집에서 마음의 문을 닫고 지냈다. 서울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연우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어느 날, 연우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환청이었다. 5년을 그 목소리와 대화하며 보냈다. 이후 그 목소리는 다른 남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연우 대신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려나 생각했다. 그러나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마흔 살 무렵, 광주로 내려갔다. 그곳 사회복귀시설 요한빌리지를 다니다 우연히 정신장애인 요양시설 소화누리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을 돕고 자립하게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올해로 3년째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시설에서는 작업실을 제공했고 전시 지원까지 도왔다. 그리고 2018년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주제는 연우를 기다리며 그린 사랑 이야기였다.

이제 마흔세 살의 이지원(43·여) 씨. 그는 정신과 약을 먹으며 그림을 그린다. 요즘의 고민은 ‘어떻게 가치 있게 살까’이다.

기자는 최근 이지원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고 거절했다. 기자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지원 씨가 인터뷰를 허락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삶의 내력을 적은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이 앞머리 이력은 이 글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인터뷰는 광주에 살고 있는 그와 서면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지원 씨.
이지원 씨.

-동양화와 서양화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동양화는 한·중·일과 아시아 쪽, 서양화는 서양권의 그림으로 생활환경에 따라 재료가 다르고 하던 사람들이 다릅니다. 동양화는 지필묵에 식물성 종이에 그리고, 서양화는 캔버스 천에 유성 물감 등으로 그립니다. 기법도 다르고 전통도 다릅니다.”

-선생님의 인생이 그림과 떨어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달란트를 주신 것 같아 감사드리는 부분입니다. 각자 다들 달란트가 있을 거예요.”

-첫 증상이 환청이 들리는 것도 아니고 망상에 빠졌다고 하는데 어떤 망상을 한 겁니까.

“사실과 다르게 혼자 생각에 빠졌던 것 같아요. 도망쳐야 된다는 생각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 정신과적 어려움을 겪을 때 내면적으로 ‘나를 지탱해 주던 기둥 같은 것이 뚝 부러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그때까지 잘 지내다가 다리 부러지듯이 뭔가 부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게 저를 지탱해주던 것이 부러진 거라고 느낀 거예요.”

-24살 겨울, 처음으로 정신과 외래를 갔습니다. 그때 스스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은 겁니까.

“힘들었던 일 년이 있었지만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건 몰랐어요. 그땐 정신과가 있는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제가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민감해지고 하니까 부모님께서 얼른 정신과를 가게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게 다행이었을까요.

“다른 방도가 있었을까요? 부모님께서 어려운 결단을 해 주셔서 치료받게 된 게 다행인 것 같습니다. 그 당시의 상태를 의사 선생님께서 물이 가득 차서 출렁거리는 물컵에 비유하셨어요. 출렁거리는 물컵은 물이 한 방울만 떨어져도 넘치게 된다구요.”

-대학 졸업하고 2년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건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의지 때문이었습니까.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돈을 벌어야 했고, 그러다가 멈춰진 거지요. 자연스럽게 공백기가 생긴 것 같아요.”

-미술학원 강사, 애니메이션 회사 계약직, 큐레이터, 예술치료센터 그림 선생 등의 직업을 거쳐 왔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이었을까요.

“그 중 하나에 마음을 두고 꾸준히 했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엔 세상이 궁금해서 회사도 다녔는데, 나중에는 그림 그리면서 돈 벌 수 있는 것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그림 가르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서 2018년도에는 아동미술실기지도사 민간 자격증도 따고 나름대로 준비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림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서 그것에 만족합니다.”

이지원 씨.

-입원을 했던 병원들이 선생님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나요.

“친한 친구들에게 입원했었다는 이야기는 안 해요. 고생한 것도 있고, 입원하면서 제가 가진 편견도 있었구나 느끼기도 했고요.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지난해에 센터에서 인터넷 지킴이 자조모임을 해서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했는데 나만의 인식 개선이라고 하면서 그림 작업을 한 게 있어요. 병원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생각해 보니 병원의 긍정적인 면은 도움의 손길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니는 병원 사람들이 친절하고 성실하고 잘 대해 주었어요. 엽서로 제작한 게 있어요. 그래도 비상시엔 기댈 데가 병원이라는 생각을 혼자 해요.”

-30대 초반 사랑하던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게 환청일 줄 알았습니까.

“아니요. 하느님이 둘을 맺어 주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음의 소리랑 환청이랑 구분이 힘든 것 같아요. 에피소드가 어느 날 어머니께 내가 들리는 소리가 들리는지 물었는데, 어머니는 안 들린다고 하셔서 환청이 있구나 인정하게 됐어요. 정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본 것 같아요.”

-광주 사회복귀시설 요한빌리지 다니면서 환청과 대화하지 않는 걸 훈련했다고요. 어떻게 대화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일할 때는 ‘얘기 안 할 거야’ 하고 환청한테도 이야기했고 신경을 안 썼지요. 이야기하려고 하면 낮엔 이야기 안 할 거야 하고 일하고 활동하고 했어요.”

-무얼 해서 먹고 사나 하는 문제의식은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현재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운가요.

“자립할 정도의 수입이 안 돼 부모님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그림을 그릴 시간을 갖기 위해서 어느 정도 포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연우(가명)라는 한 남성을 오랫동안 사랑했습니다. 그와는 어떻게 된 겁니까.

“30대 때 사귄 것 같습니다. 잠시 사귀다 연락이 끊기고 혼자 5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지금은 포기가 됐습니다. 놓아주었습니다.”

-그를 만나면서 세상은 아름답고 예쁘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세상이 아름답던가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하잖아요. 그 사람을 만나고 긍정적인 마음이 생긴 것 같아 그건 감사하는 부분입니다.”

-연애의 실패도 인간을 성숙하게 할 수도 있지요. 헤어지면서 어떤 감정이 들던가요.

“기다리는 기간이 너무 오래여서…. 기다리는 동안은 보고 싶은데 못 보니까 힘들었고 괴로울 때도 있었습니다.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나니 홀가분했습니다.”

이지원 씨.
이지원 씨.

-대학원 시절, 한 살 연하의 남성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자신을 외롭게 만든다고 했더군요. 사랑이 사람을 외롭게 만들던가요.

“생각해보면 저만 좋아했던 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잘 해 주려고 했는데 (그가) 저한테 냉정했었던 것 같아요.”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접고 재능과 상관없는 일을 해서 돈을 모아야 하는 존재들이죠. 선생님은 좋아하는 그림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건 아닐까요.

“저는 요즘 행복하게 지낸다고 생각해요. 센터를 통해서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고 여러 선생님들이나 동료들이 응원과 지지를 해 주어서 행복합니다. 광주 와서는 외로운 게 없어졌어요. 그림 그리고 활동할 환경도 만들어져 있고요.”

-2018년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돈이 좀 모이던가요.

“돈이 될 거란 생각은 안 하고 열었어요. 그림은 안 팔렸고요. 친척들이 축하금을 주긴 했어요. 첫 개인전이라고요. 다음 전시부터는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대학원에서 그린 게 그로테스크적인 자화상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삶이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한 건가요.

“그림을 그릴 때 그 때 상태에 대해서 나온 것 같아요. 병이 걸린 현실, 그런 것에 대한 마음, 내 모습, 그런 이미지가 나온 것 같아요.”

-어머니가 긍정적이었어요. 팔 아픈 사람도 있고 다리 없는 사람도 있는데 선생님은 몸이 멀쩡하다고. 그리고 정신적인 것은 병일 뿐 치료하면 된다고 응원했는데요. 어머니의 긍정적 마음가짐이 선생님의 치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어머니도 같이 힘드신 부분이 있으셨을 텐데 그래도 병에 걸린 걸 숨기고 쉬쉬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 주신 것 같아요.

지금도 몸이 멀쩡한 것에 감사드리고, 이만만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부모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감사하지요.”

-정신과 약물을 끊고 싶어서 병원 상담에서 좋은 얘기만 했다고요. 그렇게 약을 끊은 건가요.

“복용량을 한 알까지 줄였다가 바로 증상이 또 나타나 다시 늘렸어요. 그 당시엔 회복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던 때였어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라고 생각하며 어제보다 조금 더 일하며 지냈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솔직하게 상태를 털어놓지 못해서 놓친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지원 作 '목이 긴 여인'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약 잘 먹고, 밥 잘 먹고, 잠을 지나치게 오래 자는 걸 피하고, 오메가 쓰리(건강 기능 식품)도 먹고 있어요. 요즘 집에만 있는 시기인데 그래도 하루에 뭐라도 한 것 있게 지내자 하고 있어요. 집에서 그림 그리고 책 읽고 마음껏 생활하고 있어요.”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었죠. 지금 그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인가요.

“지금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작품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요.”

-어떻게 가치 있게 살까를 고민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좋은 그림 그리고 싶고요, 사람들과도 따뜻하게 정을 나누며 지내고 싶어요.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행복하게 지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복음(福音)을 실천하며 살고 함께 나누며 사는 것 같아요.”

-만약 선생님에게 그림이 없는 삶을 살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림 활동이 부진했던 적은 있지만, 돈만 바라보고 일만 하며 산다고 생각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실제로도 그런 시기가 있었고요. 지금은 그림이 재미있어요.”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어떻게 풀어냅니까.

“가능한 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지 않도록 쉬엄쉬엄 산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센터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고, 부모님과도 이야기를 나누어요. 그리고 시도 읽고요. 요즘은 이해인 수녀님 책을 많이 봐요.”

-이 병이 선생님에게 무엇을 가르쳐줬다고 생각하십니까.

“삶에는 고통이 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작은 것이 소중하다. 꽃을 피어내기 위해선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해요. 햇빛도 물도 비바람과 폭풍도요.”

이지원 作 '창문의 성모 마리아'

-기다리는 모든 것은 떠나게 마련이지요. 선생님에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요.

“부활의 노래 ‘네버엔딩 스토리’ 들어 보세요 살다 보면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랑은…늘 해야 하는 것. 젊었을 때 이성과의 사랑도 있지만, 이웃 간의 사랑도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사랑은 함께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떠오르네요.

-회복이란 무엇일까요

“회복에 대한 시를 쓴 게 있어요. ‘거북이의 땀’이란 시예요. 창작소에 올려져 있어요. 회복은 느리지만 꾸준히 일어나는 것, 멈추지 않는 것. 요즘은 재미나게 사는 것이 좋아요.”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방금 우편으로 선물을 보냈답니다. 제가 만든 엽서 세트예요. 센터에서 인식개선 활동할 때 만든 것이에요. 저만의 인식개선을 한다 생각하며 글자를 예쁘게 꾸미는 작업을 해 보았어요. 작은 선물입니다. 목요일쯤 도착할 거예요^^.” 기자는 이틀이나 남은 목요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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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0-06-21 14:21:21
이지원작가님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인터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