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해야죠”…정신장애인은 선거의 들러리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
“투표? 해야죠”…정신장애인은 선거의 들러리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4.09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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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투표 참여율 42%에 불과...타 장애보다 낮아
정신요양시설·공동생활가정·정신재활시설 등 투표 의지 높아
정신병원 입원 정신장애인의 보편적 투표권 국가가 마련해야

강북구에 살고 있는 정신장애인 김덕수(49) 씨는 이번 4·15총선에서 투표를 적극적으로 할 작정이다. 집으로 배달된 후보들의 정책 공약집을 꼼꼼히 보는 건 아니지만 대충 누구를 찍어야 할지는 마음에 둔 상태다.

역시 정신장애인 김미현(45·여) 씨도 총선일에 투표장으로 갈 생각이다. 국민의 의무로서 투표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마음이다. 지금까지 대선이나 총선에는 반드시 투표해 오기도 했다.

4·15 총선을 6일 남겨두고 정신장애인들의 정치적 참여 의지가 높다. 2013년 민법이 개정돼 기존의 금치산자의 경우 투표권이 사실상 박탈당했지만 지금은 금치산자 제도가 성년후견인 제도로 바뀌면서 정신장애인의 투표 권리도 강화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피성년후견인의 투표권이 있다는 점도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식 확인하기도 했다.

“투표 반드시 할 것”...정신장애인, 수동적 아닌 능동적 정치주체로 변해

그렇지만 정신장애인들의 투표하려고 해도 거소투표가 마련되지 않는 경우와 인지 능력이 떨어져 투표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던 시절들이 많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그 당시 정신장애인의 투표율은 42.7%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신요양시설은 더 낮았다. 당시 자폐성장애인의 투표 비율이 63.9%에 비하면 정신장애인의 정치적 참여도는 장애 범주 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정신건강복지법이 2017년 제정되면서 정신장애인의 정치적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점도 총선에서의 참여도가 높아질 거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성남의 한 사회복귀시설에서 정신건강전문요원으로 일했던 정모(35·여) 씨는 지난 총선 때 내원하는 정신장애인들과 같이 투표에 대해 논의했다고 했다. 정씨는 “투표에 대해 정보를 알리고 후보 공약도 같이 보고 했지만 투표로 이어지는 경우는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연세가 높은 정신장애인은 투표율이 높았는데 젊은 사람들은 투표날이 노는 날도 생각해 참여도가 낮았다”고 전했다. 당시 시설 인원 50명 중 30명이 투표장으로 가서 투표를 했다.

다만 그는 “개인적으로 정신장애인들이 투표를 하도록 조력하는 것뿐”이라며 “될 수 있으면 종교와 정치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지시하거나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보통 지역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정신요양시설의 경우는 어떨까. 경기 북부의 서울정신요양원 백윤미(40·여) 원장은 “지난 7일 요양시설에 거소투표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투표 당일 마음이 변한 이들과 애초에 하기 싫어했던 사람들을 빼고 모두 투표했다”며 “거소인 280여 명 중 180명 정도가 투표를 마쳤다”고 말했다. 백 원장에 따르면 거소투표를 위해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직접 내소를 했으며 선관위 측의 투표함 준비 과정에 요양원 직원들은 일절 관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서울 정신재활시설 한마음의집 최동표 원장은 총선 사전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회원 10여 명이 모두 사전투표 장소로 가서 투표한다. 최 원장은 “가서 바람도 쐬고 인증 사진도 찍을 것”이라며 “우리가 투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정치인들도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정신요양시설 거소투표 진행하는 경우 많아...정신병원은 불투명

그는 대형 정신병원들의 정신장애인들이 투표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는 “정신요양시설은 투표할 가능성이 높지만 정신병원은 그렇지 못하다”며 “이는 정신병원이 투표권의 사각지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이 막연한 기우는 아니다. 역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그해 지방선거에서 장애인의 투표 평균 비율은 71.3%였다. 그 중에 장애인 거주 시설 장애인은 투표율이 95.7%로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정신요양시설 정신장애인의 투표율은 35.3%였고 정신병원 입원 정신장애인들은 10.4%만 투표에 참여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박경수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정신의료기관(정신병원)의 투표 안내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선거권 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정신장애인은 주민등록지를 해당 병원 지역으로 이전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병원 소재지와 투표 지역이 상이한 경우 투표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입원 중 사전 투표소에 가서 직접 투표하지 않는다면 거소투표를 하는 방법만 남는다”며 “정신의료기관 내에서 거소투표에 대한 안내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안내 불이행에 대한 어떤 벌칙 규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정신병원 입원환자의 선거를 보장을 위해 특별한 규정을 제정해 관리하고 입원 시설에서의 거소투표와 입원 전 거주지역에서의 투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 정신병원 입원 정신장애인들의 보편적 투표권을 위해서는 국가가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대형 정신병원 입원 환자들의 투표권 박탈을 지적한 최 원장의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지점이다.

취재를 하면서 기자는 정신장애인들이 투표를 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높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투표할 권리를 박탈당한 정신장애인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의심은 떨칠 수 없었다. 다만 개인만 놓고 봤을 때 정신장애인의 투표권 행사 의지는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정신병원 입원자들의 보편적 투표권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정신장애인 당사자 권모(48·여) 씨는 “아직 정해 놓은 후보는 없지만 정책 공약집을 보면서 비교하고 있다”며 “정신건강 정책이 있는 후보면 밀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장애인도 유권자라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서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며 “거소 투표를 해서라도 모든 이가 투표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씨는 지금까지 대선과 총선에 거의 빠짐없이 투표를 해왔다.

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정신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권위는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으며 차별 없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는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며 “선거 사무 공무원과 투표관리원, 유권자 모두가 소중한 한 표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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