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질환 진단명은 진단명일뿐...행복은 장애등급 순이 아니잖아요"
[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질환 진단명은 진단명일뿐...행복은 장애등급 순이 아니잖아요"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4.10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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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 출판사 창업해 회사생활 대신 혼자 일하는 방식 택해
신체정신적으로 완벽히 건강한 사람 없어..장애 기준 고정된 게 아냐
장애 등급 때문에 낙담하거나 자기 가치 절하할 필요 없어
내 인생의 가치와 행복 결정하는 건 나 자신

2019년 11월 29일, 그날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날입니다. 두 가지 큰 이슈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날 오전에, 수년 간 공들여 출판한 책 <바울의 가시> 1천 2백여 권이 창고 화재로 모두 불타버렸고, 그날 오후에는 대구대학교 장애학과 박사 과정 면접을 보았습니다.

사실 장애학을 처음 접하다 보니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관련 도서를 읽기는 했으나 면접을 준비하기엔 역부족이었죠. 그래도 주눅들지 않고 면접에 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역시나, 잘 알지 못하는 질문이 나왔지만, 틀려도 자신 있게 틀리자는 마음으로 그럭저럭 대답했습니다. 그 자신감 덕분인지 대학원에 합격할 수 있었고요. 다만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관형 씨는 장애인인가요? 아닌가요?”

사실, 이 질문은 살면서 오랫동안 고민해 온 주제입니다. 저는 스무 살 때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군대를 면제 받았으며 현재까지 약을 먹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조현병 환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정적으로 장애등급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애초에 신청하지도 않았고요. 또한 어려움이 전혀 없던 건 아니지만 회사생활도 하고 석사 학위도 받았으며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화재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책을 다시 펴낸 것도 정신과 내면이 건강하다는 증거겠죠. 이런 점에서 스스로를 정신장애인이라 여기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애인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장애를 규정 짓는 데는 여러 가지 접근법이 있습니다. ‘의학적 접근법’으로 보면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인 DSM-5(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따라 조현병을 가진 정신장애인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과거의 저는 망상, 우울, 불안, 경도의 관계 관념, 피해망상 등의 증상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 역시 환자를 바라보는 의사의 선택 편향에 따라 진단이 결정됩니다. 망상, 우울, 불안 같은 증상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현상이니까요. 이 증상을 질환으로 볼 정도로 심각한지의 여부도 결국 의사의 주관적인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기능적 제한 접근법’은 넓은 의미에서 ‘평상시의 활동 중 어느 것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제한되는 사람’을 장애인으로 특정합니다. 즉, 직장에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손상이 심한 사람을 뜻하죠.

의학적 접근법이 질환에 집중한다면, 기능적 제한 접근법은 질환에 따른 손상으로 사회생활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집중합니다.

(c)함께걸음.

저는 사회로 나가 다섯 번 정도 취업과 퇴사를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 근무하는 기간도 상당히 짧았습니다. 결국 회사 생활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죠.

그렇다고 인생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공과 하던 일의 연장선에 있는 일인 출판사를 창업하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회사생활 대신 혼자 일하는 방식으로 기능적 제한에 해당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정치적 접근법’은 좀 더 광범위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환경에 초점을 둡니다. 장애인 의무 채용 제도나 장애인지원금과 같이 법과 제도를 통해 일자리를 제공하고, 장애인에 대한 문화적 인식과 당사자의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외에도, 유엔(UN)의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여러 가지 장벽과의 상호 작용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등하게 사회에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는 장기간의 신체적, 정신적, 지적, 또는 감각적인 손상이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사회보장법은 장애를 “의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손상 때문에 상당한 수익을 얻는 어떤 활동에 종사할 수 없음”으로 정의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에 따라 장애를 여러 가지로 정의합니다.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이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라고 명시합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장애’라 함은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차이를 이유로 장단기간 발생하여 일상과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주는 사회적 태도나 물리적 문화적 장벽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거나 제한받는 것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죠.

이처럼 장애라는 기준은 국가 기관과 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누구나 신체적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건강할 수 없고, 누구나 장애의 범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장애의 기준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에 절대 불변의 진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비장애인, 장애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은 이 장애 기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합니다. 우리나라 장애등급 기준이 1등급에서 6등급으로, 혹은 경증과 중증으로 나뉘는 건, 법이나 지원 제도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정적이고 서류에 명시되는 것일 뿐입니다. 장애 등급이 본인이나 타인의 행복, 인격과 살아온 인생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됩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장애 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로 낙담하거나 자신의 가치를 평가 절하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타인에 대해서도 장애 등급에 따라 시선을 달리 볼 필요도 없습니다. 어쩌면 장애 등급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혈액형, 출신지, 성별로 평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저 역시 조현병이란 단어로 인해 내적 갈등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진단명과 장애 등급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확실한 진단명으로 장애 등급을 받아서 병역 문제를 좀 더 확실하게 해결할까도 생각했습니다. 또한 등급을 받으면 장애인 전형으로 여러 가지 혜택과 지원을 누릴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조현병 환자라는 타이틀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나는 이런 병을 갖게 되었을까? 이대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무섭거나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평생 숨기고 살다가 들키면 어쩌나? 같은 생각들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직장과 학업에 도전하고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진단명은 그냥 진단명일 뿐이고 장애 등급은 그냥 장애 등급일 뿐이구나. 그것들이 나의 삶에 약간의 영향을 줄지도 모르지만, 내 인생의 가치와 행복을 결정하는 건 결국 나 자신에게 달려 있구나! 내 인생의 주도권은 한 장의 진단서나 장애 등급 숫자가 아닌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학원 면접 당시 교수님의 질문은 제게 중요하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교수님의 질문이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스무살 때부터 조현병을 가졌고 지금까지도 약을 먹고 있습니다. 한편 행정적으로는 장애 등급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조현병은 제가 삶을 살아가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병을 통해 인생을 가치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의학적 접근법에 따라, 혹은 기능적 제한 접근법, 사회 정치적 접근법에 따라 장애인으로 분류되든 분류되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접근법들이 저를 어떻게 정의 내리든 제 대학원 공부와 학업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1급과 2급, 경증과 중증, 혹은 진단명이 학업을 비롯한 우리의 삶과 행복을 가로막지는 못합니다.

저는 장애 등급은 물론 ‘장애’라는 단어 자체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에는 본가에 따른 성씨가 중요했고, 출신 지역에 따라 편견을 가졌으며, 한동안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단정짓는 게 유행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진 문화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장애도 그 사람의 특징 중 하나일 뿐 중요한 이슈는 아니라고 봅니다. 숫자나 단어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단정짓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기 때문이죠.

생각해보면 장애 등급보다도 우리가 더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가치 있는 것에 열정을 쏟으며,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데 인생을 거는 모험을 하는 것이죠. 그것이야 말로 나의 인생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어떤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이 있든, 결국 내 인생은 내 마음에 달린 것이고,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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