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조현병포비아에 대한 언론과 사회의 광기는 우생학과 맞닿아 있어"
[이관형 기자의 변론] "조현병포비아에 대한 언론과 사회의 광기는 우생학과 맞닿아 있어"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4.14 1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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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정권 하에서 장애인은 '자비로운 죽음' 대상...28만여 명 절멸
게르만 민족의 인종적 우수성 주입...우생학이 안락사의 이데올로기
발달장애 학교 반대하는 지역주민...혐오와 증오의 정치학
조현병에 대한 혐오는 장애 전체에 대한 광기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 독일 제국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이 괴물의 안락사를 막는 것이 불법인지, 아닌지 조사해 달라.”

이 편지를 쓴 주인공은 작은 마을의 농장 노동자이자 나치의 추종자였던 ‘크레취마르’였다. 훗날, 나치 친위대 요원이자 히틀러의 주치의였던  ‘칼 브란트’는 나치 전범 재판에서 이 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기형아의 아버지는 총통에게 이 아이, 혹은 이 괴물의 생명을 죽일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히틀러는 나에게 이 아이를 진찰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시각장애아였고, 백치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리 하나와 팔 하나가 없었습니다.”

크레취마르의 부인은 임신 5개월 만에 아들을 출산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장애가 있었고, 두 부부는 마을에서 가까운 소아과에 찾아갔다. 부부는 의사에게 안락사를 요청했지만 의사는 안락사가 불법이라며 거부했다. 결국 부부는 ‘이 괴물의 생명을 죽일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히틀러에게 보낸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자비로운 죽음을 강권했던 20세기의 문제적 인간 히틀러.

편지를 받아 든 히틀러는 내심 기뻤다. 자신이 실행하고자 했던 계획을 더욱 정당화시킬 수 있는 사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히틀러는 다음의 문서에 서명한다.

“치료에 가망이 없을 만큼 병세가 무겁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 환자의 병세에 관해 엄격한 감정을 실시한 뒤 특별 지명한 의사에게 자비로운 죽음의 처치에 대한 허가 권한을 부여한다.”

히틀러는 자신의 주치의였던 ‘칼 브란트’를 크레취마르 부부가 사는 마을로 보냈다. 결국 아이는 용해제 형태의 진정 최면제가 투여되어 의식을 잃고 며칠 후 사망한다.

이후 히틀러는 자신의 직무실로 15명의 정신과 의사를 호출한다. 그리고 훗날 T-4 작전으로 이름 지어진 비밀 안락사 프로그램의 꿈을 실행하겠다고 공표한다. 이 프로그램의 감독관으로 임명된 주치의 칼 브란트는 ‘불우한 생명체들에게 자비로운 죽음을 부여한다’는 목적으로 정신질환자를 포함한 장애인들에게 안락사 실험을 실시했다. 결국, 장애 아이를 키우는 독일의 많은 부모들은 나치에 의해 아이들을 빼앗겼고, 많은 장애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밝혀진 나치의 기밀 문서에 따르면, 모르핀 주사, 약, 청산가리 가스나 화학무기에 의해 27만5000명의 장애인들이 안락사를 당했다고 한다. 이때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연구하고 실행했던 안락사 방법은 나치의 지배영역에 있던 양로원, 보로시설, 구금시설, 노인 요양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이때 36만 명의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또한 이 안락사 방법은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사용되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비극의 뒤에는 우생학이라는 학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히틀러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칙’을 철저히 추종했다. 히틀러와 나치는 게르만 민족이 순수하고 우수한 혈통을 갖고 있는 반면, 유대인은 열등하고 더러운 민족이라 여겼다. 그동안 유대인들은 독일의 상업, 무역, 금융, 유통, 해운업 등에 종사하며 경제권을 주름잡았다.

그러자 나치는 ‘유대인이 독일 영토 내에 거주하며 결혼 등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혈통을 더럽힐 수 있다’고 선전했다. 이로 인해 독일인들은 앞다투어 유대인들을 혐오하고 증오했다. 히틀러와 나치는 우생학을 이용해 유대인 학살의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

영화 ‘300’으로 대표되는 고대 로마와 아테네, 스파르타에서도 장애인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했다. 특히 스파르타에서는 원로들이 신생아의 건강 상태를 감별하였다. 감별 결과 적합하지 않을 경우 버려지거나 노예로 삼았다.

당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수호자 계급의 강화를 위해 임신과 출산이 통제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국가가 우수한 남녀를 선별하여 짝을 이루고 강인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먼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도 우생학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많은 논란을 일으킨 모자보건법 14조에 다르면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한다고 되어 있다. 우생학이란 단어가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정신장애의 경우 태어나기도 전에 장애를 확인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낙태를 하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충분하다.

근래의 뉴스 사례만 보아도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 수준을 알 수 있다. 3년 전, 서울 내 특정 지역의 특수학교 건립을 앞두고 장애 아동의 부모들은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했다. 주민들이 아파트 집값이 떨어진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인에게 학교가 뭐가 필요하냐”며 조롱하는 주민도 있었다. 그 이면에는 장애 아동은 공부를 해도 사회에서 쓸모없다는 우생학적 관점이 자리 잡고 있다.

우생학은 열등한 장애에 대한 비장애의 우위성과 권위를 갖게 한다. 장애와 비장애는 함께 공존할 수 없으며 우위의 존재들이 사는 세상에 열등한 존재는 배제되어야 한다. 독일 내 유대인처럼, 스파르타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처럼, 내가 사는 공간, 내가 사는 세상에 장애인은 함께 거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역시 한 뉴스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뉴스에 따르면 아파트 장애인 주차장에 어떤 주민이 차를 주차했다가 과태료를 부과해야 했다. 그리고 화가 나서 다음과 같은 벽보를 써 붙였다.

“장애인 씨, 장애인이 이 세상 사는데 특권입니까? 우리 아파트는 아시다시피 주차장이 협소하여 부득이 장애인 칸에 주차하면 차량 앞 유리에 전화번호 있으니 연락해서 이동 주차해 달라면 되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구청에 장애인 칸 주차 신고하여 과태료 부과시킵니까? 장애인은 특권이 아니라 일반인이 배려하는 겁니다“라고 따져 물었다.

“장애인이 이 세상 사는데 특권입니까? 장애인은 특권이 아니라 일반인이 배려하는 겁니다.”

이 말은 히틀러와 나치가 유대인을 풀어 주면서, 스파르타 원로가 장애를 안고 태어난 신생아를 살려 주면서, 강서구 주민들이 학교로 등교하는 장애 아동을 받아들이면서 했을 법한 말은 아닐까.

“우리가 너를 우리 땅에서 살아가게 해 주었으니 특권 같은 것은 기대하지 말아라. 죽이지 않고 같은 공간에 살게 해 준 것만으로 충분히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장애 중에서도 가장 혐오 받는 유형이 정신장애고, 특히 그중에서도 조현병이다. 조현병은 우리나라 인구의 1%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까운 주변에서 조현병 환자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모두가 나치를 피해 벽장 속에 숨어 살았던 유대인처럼 자신의 병을 숨긴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는 버려지거나 노예로 팔려나간 스파르타의 아기들처럼 병원이나 요양소에 보내어지기도 한다. 조현병 환자라는 타이틀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원으로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이제는 열등을 넘어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조현병 환자가 우리 집 윗층에 살고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파트 집값이 떨어지는 걸 걱정하는 차원을 넘어, 무서워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려 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도 포털 사이트에 조현병을 검색해보면, 매일매일 새로운 뉴스의 조현병 관련 사건사고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조현병 관련 뉴스가 전하는 메시지는 크레취마르가 히틀러에게 보낸 편지와 동일하다. “이 괴물(조현병 환자들)의 생명을 죽일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내용처럼 말이다. 뉴스를 본 사람들은 이 땅에서 조현병 환자들이 사라지길 원하고 최소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영원히 바깥 세상에 나오지 못하기를 바랄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생명이 조현병 환자라는 집단의 ‘묻지마 범죄’로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언론의 메시지는 우생학보다 더 잔인하고 더 편견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말하고 있다. 크레취마르의 자녀를 향한 안락사가 독일 내 장애 아동들을 죽였고, 유대인을 죽였고, 독일 전체를 살인의 광기에 물들였듯이, 조현병에 대한 혐오는 정신장애를 포함한 장애 전체를,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와 동성애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 사회는 우생학에 근거한 혐오와 증오의 광기로 병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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