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세요, 정신장애인 정치세력화합시다!”
“투표하세요, 정신장애인 정치세력화합시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4.12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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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언 기자의 사전 투표기
사전 투표율 역대 총선·대선 최다
투표를 통해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를 정치화해야
정치에 관심 갖지 않으면 정치도 우리를 관심 갖지 않을 것
15일 총선에 투표해 정신장애인 정치성 알려야

토요일이었던 지난 11일 오후 한 시 무렵. 옷 몇 가지를 세탁소에 맡기고 세탁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행정복지센터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하늘은 맑고 더없이 푸르렀다.

종종걸음으로 도착한 행정복지센터 정문 앞으로 20여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자는 그들 사이로 끼어들어 뒷줄에 섰다. 느릿느릿한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기자의 뒤를 보니 어느새 20여 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빠르구나 싶었다. 앞줄에는 노인 서너 명이 보였다.

이날은 4·15 국회의원 선거(총선) 사전 투표일이었다. 선거를 위해 오기 전에 서울 강북에 사는 정신장애인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님, 저 투표했어요.” 투표를 해야 하는데 어디서 하는지 몰라 헷갈린다는 그에게 주민센터에 가면 사전 투표를 할 수 있다고 귀띔해줬는데 그렇게 했다고 한다. 누굴 찍었냐고는 묻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후보 중 몇 번을 찍었는지 얘기해줬다.

기자는 긴 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정치적 의지가 높았던 적이 있었을까. 뉴스에서는 이번 사전 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라는 보도를 잇따라 내놓고 있었다. 다시 5분여 정도가 지나 기자는 센터 정문에 가까이 서게 됐다. 사전투표사무원이 온도측정기로 사람들에게 발열 체크를 하고 있었다. 무사히 통과.

시계를 보니 1시 22분이 지나고 있었다. 줄 서서 기다린 시간이 20여 분이 채 되지 않았다. 기자는 앞 사람을 따라 투표장소로 이동했다. 투표소는 2층에 있었다. 이 경우 지체장애인은 어디서 투표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형계단을 오르니 투표소가 나타났다. 무심한 듯한 모습의 남자 투표관리원이 소독제를 손으로 가리키며 “손 소독하세요”라고 말했다.

소독을 마치자 그가 투명하고 얇은 비닐장갑을 건넸다. 신분증 제출. 기자의 주민등록을 확인한 투표관리원이 “마스크 내려 주세요”라고 요청했다. 신분 확인이었다. 다시 통과. 투표지는 두 장이었다. 한 장은 지역구 출마자들에게, 한 장은 비례대표 용지였다.

기자가 사는 인천의 모 선거구는 모두 다섯 명의 지역구 후보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정의당, 국가혁명배당금당, 무소속. 투표소에 들어가 인주(印朱)로 두 장의 용지에 찍고 나왔다. 이 모든 것을 하는 데는 일 분이면 충분했다. 투표소 밖으로 나오니 한 곳에 사용한 비닐장갑이 한 포대나 쌓여 있었다. 한 시 30분이었다. 투표를 위해 줄을 서고 실제 투표를 한 모든 시간이 불과 30분이면 충분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기자는 집으로 배달된 선거공보물을 투표를 한 이후에야 열어보았다. 투표를 마치고 집에 와서 꿔다놓은 가마니처럼 방 한 구석에 있던 선거공보물을 확인한 것이다. 기자는 일단 마음에 둔 정당과 후보가 있었기 때문에 홍보물이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번 훑어보고는 가야 하지 않았냐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유구무언.

이틀 간의 사전 투표는 이날이 마지막 날이었다. 기자는 몇 개의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이 이렇게 맑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청명했다. 전국의 사전 투표율은 26.69%였다.

정신장애인들은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권리인 투표를 하지도 못하고 설사 했다고 해도 집단적인 투표 참여가 아닌 어쩌다 한 명 정도의 투표에 불과했으므로 정치인들이 정신장애인의 정치성을 눈여겨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최근 기자는 정신장애인들의 투표 참여 의지를 기사로 쓰기 위해 정신장애인 지인(知人)들과 통화를 했다. 웬걸. 대여섯 명의 그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투표를 하겠다고 답했다. 한 정신요양원에도 전화를 해 보니 그들은 이미 요양소에서 사전 투표를 모두 마쳤다고 답했다. 정신요양원은 정신장애인들의 집단적 이동이 어려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함을 마련해 직접 요양원을 찾는다. 투표함 개설 과정에 정신요양원 직원들은 어떤 경우에도 참여할 수 없다. 비밀투표이자 자유투표의 가치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15개의 장애유형 중 정신장애인의 투표율은 늘 가장 낮은 것으로 분류된다. 정신장애인은 국가에 요구사항을 할 수 있는 집단적 정치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치권력은 정신장애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아마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 정신장애의 구분을 뚜렷하게 할 줄 아는 정치인이 몇 명이나 될까. 정치적으로도 타자화된 정신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세력들에 불과했다. 누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겠는가.

그런데 시간은 흘렀고 어느 순간 정신장애인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신장애인 정치단체인 파도손과 한국정신장애연대, 한국정신장애인협회,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이 국가의 정신장애인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의 활동이 아직 십여 년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정치적 투쟁이 정치권력에 어느 정도의 문제의식을 만들도록 했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너무 늦었던 것은 아닐까. 정신장애인인 우리는 이렇게 고통받는데 왜 정치적으로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이 의료적이고 수용소적인 관점으로만 우리를 바라보는 것일까. 왜 그 긴 시간을 우리는 고통받았던 것일까.

이제 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시기다. 이제, 정신장애인은 파도손과 한국정신장애연대와 같은 정치성을 띈 단체를 만들어갈 것이고 그 목소리가 하나로 모아질 때 정치권력이 더 이상 정신장애인을 무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자는 믿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일단 투표를 하라. 기자는 정신장애인 동료들에게 요청한다. 15일 투표장으로 가서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라고. 지금의 투표 한 장이 아무 힘이 없을 것 같지만 그 목소리가 모이면 우리는 충분히 우리의 존재성을 정치화할 수 있고 우리의 요구사항을 권력에 요구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저절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 자발적이고 자율적 시민들의 힘이 오래 시간의 투쟁을 통해 완성되는 체제라면 우리의 목소리도 지금은 작지만 투쟁을 하고 시간의 검증을 받아가면서 어느 순간 우리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인정되고 살펴봐야 되는 의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기자는 믿는다.

그러므로 기자는 외친다. 투표합시다. 우리의 목소리를 냅시다. 그 목소리가 완결되는 지점은 바로 정신장애인 집단의 정치화이고 정치세력화이다. 정신장애인 동료 여러분. 투표장으로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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