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최고의 선택을 할 권리가 있다..정신건강 소비자들 목소리 내야”
“우리는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최고의 선택을 할 권리가 있다..정신건강 소비자들 목소리 내야”
  • 김가현
  • 승인 2020.04.13 19:3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멘탈헬스코리아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 김가현 양 기고문
정신과 의사에 마음의 아픔 말하자...“신천지 빠지지 말라” 황당한 조언
대안학교 가겠다고 하니 정신과 의사는 “문제아들 가는 곳”이라며 반대
지지받기 위해 정신과 찾았지만 상담에서 더 큰 상처 남겨
학교 ‘위클래스’ 상담에 만족 느껴...상담은 ‘공감’과 ‘지지’ 우선돼야
정신건강 소비자들의 목소리 높여 정신서비스 생태계 변화시켜야

김가현(17) 양은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 3기로 자신이 경험했던 불안, 강박, 공황장애, 자살 충동에 대한 다양한 아픔의 경험을 세상에 당당히 오픈하며, 대한민국 청소년 정신건강의 조기예방과 개입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또한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인 현재까지 총 여덟 번의 정신과 및 심리상담 서비스를 이용해본 소비자로서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선택에 있어 고민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정보 제공 및 동료 지원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김가현 양.
김가현 양.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불안이 심했다. 처음에는 어리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나의 상태는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악화돼갔다. 분리불안으로 시작된 것이 우울, 강박, 공황으로 발전해갔다.

이러한 우울, 불안 등이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나는 한계에 점점 다다랐다. 결국 나는 매년 찾아오는 불안, 우울, 강박이 너무 싫어 자살 충동을 느끼고 난간에 서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높이에 발걸음을 뒤로 했고 매일 누군가가 수면제를 먹여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 차에 치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나의 첫 정신과 방문은 시작됐다.

#에피소드1. 정신과 의사는 나 같은 아이가 신천지에 빠진다고 말했다.

나는 부모님이 자주 싸우시는 것에 항상 불안했다. 잠깐 괜찮아지더라도 부모님이 싸울 때면 우울과 공황이 다시 찾아오곤 했다. 나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부모님이 소리 지르고 싸우셔서 불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나에게 신천지 관련 얘기를 한참 하셨다.

나는 그냥 요새 코로나19 때문에 신천지가 화두에 있으니 얘기하시나 보다 하면서 듣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 상담 때 나 같이 정신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신천지에 빠진다며 조심하라고 또 한 번 말씀하셨다.

나는 정신과 선생님의 말씀이 매우 마음에 거슬렸다. 그 당시 나는 신천지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았는데 내가 신천지에 빠질 수 있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뱉었다는 사실이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부모님이 다퉈서 마음이 힘들 뿐인데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는지가 아니라 부정적인 얘기를 하시니 너무 상처가 됐다. 내가 힘들고 싶어서 힘든 것도 아니고 힘드니까 정신과에 오는 것인데 말이다. 무슨 의미로 말했는지는 알겠으나 정신과 선생님께 그런 말씀을 들으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에피소드2. 정신과 선생님과 토론한 썰

2019년 9월 초였다. 나는 늘 그렇듯이 약을 받으러 정신과에 갔다. 나는 그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기에 정신과 선생님께서 어느 학교를 갈 것이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거꾸로 캠퍼스’라는 대안학교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자퇴와 대안학교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고등학교는 대안학교를 가고 싶었다. 특히 그 학교에 가면 나의 취약점인 대인관계 능력과 발표 능력을 키울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일방적인 교육 방식이 아닌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대해 탐구하고 여러 과목의 방면에서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러한 수업 방식을 자유학기제에서 해 봤기에 그 장점을 잘 알고 있어 더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정신건강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정신과 선생님의 생각도 궁금했다. 나는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왜 그 학교를 선택하게 됐는지에 대해 먼저 물어보실 줄 알았지만 대안학교란 말을 하자마자 바로 반기를 드셨다. 마치 정신과 선생님은 ‘반대’, 난 ‘찬성’으로 찬반 토론을 하는 것 같았다.

정신과 선생님은 대안학교 자체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신 분이었다. 세상을 날아다닐 것 같은 비행 청소년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편견을 갖고 계셨다. 또한 그 곳을 가면 인생 망치는 줄 아셨다. 사실 그렇지 않은 대안학교도 많은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학교만의 자유로운 기숙사 생활을 통해 대인관계 능력도 기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싶은 주제로 깊이 탐구할 수 있어서 좋다고 내 선택의 이유를 말씀드렸다. 또한 제일 중요한 문제인 내 마음이 강박적인 학교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환경에서 좋아질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정신과 선생님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반대하는 이유들을 계속 말씀하셨다. 그렇게 수십 분간 찬반 토론을 끝내고 나니 나는 너무나 기진맥진해져 진료실을 나왔다. 난 나의 선택에 대해 정신과 선생님과 다시 한 번 정리해보고 지지를 받기 위해 간 것인데 말이다. 그동안 진료 현장에서 대안학교를 얘기한 청소년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또한 그렇게 대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다.

하지만 난 그 이후에도 그 병원에 1년 가까이 갔다. 그 이유는 또 다시 약 부작용이 일어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었고 불안과 우울에 둘러싸였던 날들은 정말 끔찍했다. 다시는 그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는 그 토론 이후로 정신과 선생님께 힘든 일을 잘 털어 놓지 않았다. ‘또 나의 이야기에 반박하겠지’라고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부모님에게 느낀 대화 방식의 답답함과 상처를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도 똑같이 받아야만 했다.

#에피소드3. 심리상담 이야기

나는 정신과를 포함해 심리 상담 등 총 여덟 번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보다도 소중했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충격이 너무 커 힘들었을 때 엄마의 권유로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상담이 진행되었고 여덟 번에 걸친 상담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나는 강박장애가 와서 손이 다 헐 때까지 씻고 목욕도 했다. 나는 4학년 때의 좋았던 기억을 되살려 다시 상담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완전한 실패였다.

매주 상담 선생님께서 잘 지내냐고 전화를 해주셨는데 나는 그게 너무 부담스러웠고 거부감까지 느꼈다. 그래서 상담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 외에도 나는 상담을 한 번 더 받았고 위클래스(Wee class) 상담에 만족을 느끼면서 현재는 위클래스 상담 서비스만을 이용 중이다.

#여덟 번의 정신건강 서비스 경험을 통해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총 두 차례의 상담을 받았을 때 한 번은 성공적이었고 다른 한 번은 대 실패였다. 그 둘의 차이점이 뭘까?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느꼈던 부담감에 있었다. 성공적이었던 상담은 내가 마음을 편하게 갖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해야 서로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진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상담에서는 이게 더욱 필요하다. 내담자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진정성 있는 ‘관심’과 ‘공감’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감은 “그랬구나” 화법의 공감이 아닌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는 호기심과 공감으로 내담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의 에피소드처럼 나의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토론을 벌이듯이 반기를 자꾸 드시는 정신과 선생님도 있다. 이 병원은 약뿐만 아니라 상담도 꽤 오랜 시간 해주는 병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을 닫아버리게 되었다.

세 번째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법의 제시 여부이다. 내담자는 상담자가 공감해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안 증세나 우울 증세를 줄여주는 데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원한다. 상담이 끝나고 나 혼자 이겨내야 할 때에는 우울이나 불안 증세를 덜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내가 조금이라고 덜 힘든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신건강 서비스의 소비자 후기와 평가가 많아져야 하고 안 좋은 평가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으로 신고하고 후기를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 어떻게 하면 소비자를 더 만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의사나 상담자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나는 약에 대한 부작용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불안이 심해져서 약을 먹었는데 더 심해지고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손과 발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병원을 바꿨다. 하지만 바꾼 병원은 위와 같이 쌀쌀맞게 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래 다녔다. 약이 겨우 잘 맞는 곳을 찾았는데 병원을 또 다시 바꾸면 부작용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였다.

나처럼 현재 이용하고 있는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약 때문에, 어디가 좋은 지 몰라서, 정보가 부족해서 등의 이유로 여전히 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이는 정신건강 회복에 있어 최선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최고의 선택을 할 권리가 있다. 때문에 정신과, 심리상담센터 역시 성형외과나 피부과처럼 소비자들의 후기가 많아져야 하고, 서비스 제공자들은 그 후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서비스 질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족하다. 네이버에 보면 누군가 후기를 남겨도 안 좋은 평가의 경우 영업방해 신고를 받았는지 모두 삭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정신건강 서비스들은 제대로 된 소비자 후기가 거의 없어 일단 가서 오래 기다린 뒤에 상담을 받고 나서야 여기가 괜찮은 병원인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여덟 번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경험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허신행 2020-04-21 12:00:14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당사자에게도, 의료인에게도 깊은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