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상담하러 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거예요…30년 심리 상담한 저도 겁이 덜컥 나요”
“한 사람이 상담하러 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거예요…30년 심리 상담한 저도 겁이 덜컥 나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4.16 18: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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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의 대모’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 인터뷰
중독은 인간이 그만큼 나약하다는 방증
지역사회에서 직업을 갖고 일할 때 중독 끊는 경우 많아
중독 치료는 혼자가 아닌 다중적 팀(심리, 사회복지, 간호, 중독자, 중독자 가족 등)의 접근이 필요
선진국은 치료공동체프로그램 통해 중독 치료...병원에서는 거의 안 해
중독 치료는 단순히 끊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회복 필요
중독에서 회복하기 위해서는 영적 변화 등 인간 자체가 총체적으로 변해야 함
게임중독 질병화되면 정신병원 입원이 용이해져...낙인과 트라우마 남겨
의료모델만으로 중독치료 접근하면 치료율 1%도 안 돼
심리자격증 남발하는 문제는 심리상담치료에 역효과..‘돌팔이’ 양산해
중독회복 프로그램에서 타인을 도울 때 자신의 변화 감지하는 경우 많아
심리학자 위상 높이고 심리학을 생활화하고 대중화시킨 학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어
한국심리학회 코로나19 무료심리상담 진행...자원한 심리학자들에 감사
행복은 주관적인 것...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성취해나갈 때 행복 느껴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1990년 대학원을 마치고 임상심리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한 후, 그는 국내 한 정신병원에 심리상담과장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는 심리상담을 터부시하던 시절이었다. 의료모델만으로 인간의 정신을 관리하려 했던 시대 상황에서 그가 배운 심리학은 운신의 폭이 좁았다.

그가 병원에서 한 것은 심리검사를 통해 심리 평가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 병원에 들어가던 그 해,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17년간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던 분이 그 병원의 원장으로 취임을 했다.

미국에서는 심리상담이 보편적이었고 그 보편성을 알고 있는 원장은 그에게 “왜 좋은 공부를 해 놓고 심리상담을 하지 않냐”고 자꾸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정신병원에서 심리상담을 하라고 강제한 곳은 아마 그곳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인간의 운명이란 알 수가 없다. 그는 그렇게 학문적 심리상담을 현실 상황에 접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어느 날, 그는 붕대로 귀를 싸매고 병원을 찾은 여성을 보게 된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알코올 중독에 빠진 남편이 칼을 자신의 얼굴을 향해 던졌고 귀를 맞았다고 했다. 붕대를 풀어 본 귀는 크게 찢어져 있었다.

만약 얼굴이나 정수리를 맞았으면 어쩔 뻔 했을까. 그는 그때, 중독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를 비롯해 식구 누구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었다. 그 같은 중독에 의한 인간성의 파괴는 그가 느낀 삶에의 충격이었다.

그는 해외의 자료들을 찾았고 실제 외국의 중독정책 담당자를 만나고 중독센터들을 많이 견학했다. 외국에서 그가 느낀 건, 중독의 치료는 정신과 약물이라는 생물학적 모델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다는 거였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중독자와 그 가족의 치유 방법으로 인지행동기법 즉, 심리상담이 많이 활용되고 있었다. 마침 미국에서 인지행동치료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교수가 있었다. 그를 따라다니며 배웠고 현장에 자신의 지식을 적용했다. 중독에서 회복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는 체험으로 알게 된다. 전인적 치료를 위해서는 의사와 심리상담가,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한 팀이 돼 다층적으로 접근하는 멀티 팀 어프로치(multi team approach)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보건복지부 산하의 한국음주문화연수센터 본부장, 전국알코올상담센터 기술지원단장, 국무총리실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중독예방치유센터장, 서울시 위탁 강서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장, 국제중독기구인 콜롬보플랜 ICCE 우리나라 초대 이사 등을 역임했다.

그가 만든 센터들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 최초가 됐다. 알코올중독부터 마약중독, 도박중독, 미디어중독(인터넷중독, 게임중독, 스마트폰중독) 등 소위 4대 중독이라고 불리는 중독 분야에서 직접 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해 온 그를 언젠가부터 세상은 ‘중독의 대모’로 불렀다.

남들은 하나의 중독 분야를 연구하는데도 벅찬데 그는 어떻게 그토록 다양한 중독의 분야들을 거치게 된 것일까. 그는 그 이유를 ‘절대자가 준 소명(召命)’이라고 생각했다. 중독과 관련해 30년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중독의 대모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58·총신대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를 만난 건 지난 14일 서울 동작구의 총신대 교정에서였다. 지난 2018년 9월 한국심리학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올해 8월에 퇴임한다. 그는 2년간 심리학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준비된 심리상담사가 심리상담을 할 수 있도록 심리서비스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심리학을 대중화시키고 생활화 시키려 노력을 기울인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했다. 게임중독을 의학적 중독의 체제로 편입시킨 것이다. 조 학회장은 반대했다. 게임중독이 청소년기에 많이 발생하는데 이 아이들의 치료를 정신병원이라는 약물 중심의 의료시스템에만 맡길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실제 이 아이들에게 정신과 치료는 우울증 약과 불안장애 약물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심리상담을 통해 충분히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아이에게 정신병원 입원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트라우마를 안긴다는 것은 치유 방법과 윤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건 조 학회장이 중독과 관련해 전 세계를 다녀본 후 내린 결론이었다.

최근 한국심리학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국민이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는 있는 가운데 학회 산하에 코로나19 특별대책위원회를 꾸려 국민들의 무료 심리상담을 7월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코로나19의 물리적 방역을 위해 의사·간호사들이 대구로 자원해 내려갔듯이 심리적 방역인 무료상담에는 교수와 심리상담 1급 자격증 회원 230여 명이 자원했다고 한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심리상담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교수실에 들어서자 조 학회장이 따뜻한 차를 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독의 대모’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

-인간은 왜 중독에 빠지는 겁니까.

“인간이 그만큼 나약하다고 봐요. 그런 거에 의지하지 않으면 본인이 살기가 힘든 거죠. 왜 그럴까. 이유는 많아요. 생물학적으로 의존된다, 부모가 잘못 키워서 그렇다, 사회적인 문화가 있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중독자가 돼야 하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우리나라 중독 유병률은 5~6%에요. 동일 시대 환경에서 사는 사람 모두가 중독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죠. 왜 이 사람들은 더 할까. 많은 이유들을 계속 찾으려 연구를 하고 있지만, 이건 철학적인 얘기인데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거라고 봐요.”

-중독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중독자가 다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중독 치료와 관련한 일을 한지) 30년이 되는데 다양한 중독자, 가족, 예방부터 재활까지 온갖 일을 다 했어요. 제가 그동안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중독에서 어느 정도 회복하고 지역사회에 가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사회구성원으로서 활동 가능할 때 이 사람들이 (중독을) 끊었어요. 그런 사람들의 예후가 훨씬 좋았어요. 중독을 끊게 하려면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종국적으로는 직업을 갖게 해야 돼요. 제가 만났던 대부분의 중독자들도 직업을 갖게 해 주세요(라고 요청해요). 그건 돈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본인이 살아간다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진정으로 회복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중독자들이 회복을 하려면 직업재활을 반드시 동행해야 돼요.”

-중독자의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교수님이 최초로 제기하셨는데요. 어떤 효과가 있습니까.

“제가 1990년부터 중독 프로그램을 했는데 그때는 중독자가 거의 다 병원에 입원했어요. 사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기 보다는 가족과 술, 약물, 도박 등과 접촉이 차단된 시설에 있었을 뿐이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병원에서 잘 지내다가 (병원을) 나가면 마트에 가서 술 마시고 다시 그냥 엎어져가지고 오는 거예요. 그걸 비일비재하게 보면서 회의감이 들었죠.

그래서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나 보니까 회복 프로그램으로 멀티 팀 어프로치(Multi Team Approach)를 하더라고요.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팀들이 다양한 회복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진행하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우리나라 최초로 창살 없는 정신병원을 표방한 성안드레아병원에 근무하면서 중독회복 교실에 심리상담사로 참여를 하게 됐어요. 중독자들을 위해 이렇게 멀티 팀 어프로치를 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의사부터 저 심리과장, 사회복지사, 간호사 다 참여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혼자 했을 때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어요. 그래도 퇴원하면 마트에서 술을 몽땅 취해서 금방 실려오는 거예요. 정말 많은 실망을 했죠. 어떻게 해야 이 중독자들이 회복할 수 있을까?

또 그때 프로그램을 하면서 교훈을 얻은 게 있어요. 예를 들어 그 당시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교육 및 집단상담을 실시했는데 당연히 집단상담은 제 전공이니까 의사나 심리과장, 사회복지사 중에서 제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한 그룹에 열댓 명씩 3개월 프로그램을 한 후에 ‘당신에게 끊어야 되겠다는 동기를 부여한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프로그램이었나’라고 물으면 공평하게 (의사·상담사·사회복지사) 2대 2대 2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사실, 그때 제가 겸손해졌어요. 아, 중독 프로그램은 특정한 전공이나 사람만으로는 안 되는 거구나 하고 느꼈죠. 처음에는 당혹스럽고 속이 상했어요. 심리상담하면 심리학자가 최고인데 왜 내가 일 등이 안 됐지? 프로그램을 잘 못하고 있나 하는 반성도 들고 힘들더라고요.

나중에 (중독자) 사람들의 욕구라든지 힘든 걸 도와주는 사람은 학문적 지식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죠. 사회복지사나 간호사들의 경우, 심리상담이 전공이 아니지만 그분들을 자주 만나 친절하게 대하거든요. 나는 프로그램 시간만 가서 집단상담만 달랑하고 오는 거였죠. 그러니까 아무리 제가 상담에 우수한 실력이 있어도 이 사람들한테는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았어요.

이건 정말 뭘까. 그러면서 중독치료는 의사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나만 하는 것도 아니고 멀티(multi)로 다양한 방법으로 도와야 하는 거구나라는 교훈을 얻었어요. 그러다가 2000년대에 보건복지부 산하의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본부장으로 가게 됐어요.

그때 보건복지부가 제게 준 과제가 지역 센터에 알코올상담센터를 설치하고 프로그램을 한 번 만들어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중독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는지 전 세계를 돌아다녔어요. 그랬는데 (외국에서는) 치료 공동체 프로그램을 하는 거예요. 병원에서는 거의 안 하더라고요.

 

치료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독자들의 회복률도 무척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 치료 공동체 프로그램의 목표는 술을 끊게 하고 마약을 끊게 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 자체를 개조(改造)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더라고요. 술 먹지 마, 이런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어떤 꿈을 갖고 어떻게 사회 안에서 협력하며 살아야 하는지 인간 자체를 개조시키는 프로그램을 하더라고요.

프로그램을 통해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 꿈에 도달하기 위해 술 먹고 마약하고 널브러져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멈추게 해야지 술을 끊거나 마약을 끊는 게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술·마약 끊는 게 목표가 되면 막상 술을 끊고 난 후에는 이 사람들이 삶에 대한 동기가 없어진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자신의 삶의 꿈과 목표를 세우고 그 꿈을 향해 가는 중에 (중독이) 걸림돌이 되니 이를 없애야 된다는 거예요. 이걸 없애고 그 다음에 할 일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런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제가 한국 지역사회에 알코올상담센터를 설치하고 치료공동체도 만들고 중간집과 직업재활시설, 그리고 쉼터 등 원 스톱 서비스 시스템(One Stop Service System)을 세팅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지역사회 세팅하고 멀티 팀 어프로치를 하도록 제가 계속 격려를 한 거죠. 이건 의사만 해서도 안 되고 심리, 사회복지, 간호사, 회복된 중독자, 중독자 갖고 공히 같이 가야 된다.”

-도박에 빠져서 손가락을 잃으면 발가락으로도 한다고 합니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빠지는 걸까요.

“그만큼 중독성이 강한 거죠. 한 번 빠지면 본인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죠.”

-중독은 죽어야 끝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무서운 말 같습니다.

“죽어야 끝난다고 봐요. 중독자들을 만나보면 십 년을 안 한다고 해서 그 욕구가 없는 게 아니에요. 제 주변에 알코올중독자가 18년 (술을) 끊은 사람도 있었거든요. 술을 끊었으면 술 마시고 싶은 욕구가 없어야 되잖아요. 아니에요. 계속 있다는 거죠. 마음속으로 오늘 하루만 참자. 내일은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즉 지금 안 마시고 있어도 술을 마시고 싶은 갈망, 욕구가 계속 있거든요.

어느 쯤에는 재발도 해요. 그러니까 중독자들은 (치료 과정에서) 계속 재발할 수도 있고 고통스러운 기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래서 자기를 표현할 때 ‘나는 아직도 알코올중독자 김입니다, 알코올중독자 박입니다’ 이렇게 말하지 ‘술 끊었어요’라고 이렇게 말을 안 해요. 전 세계적으로 그래요. 그만큼 중독에서 회복하는 것은 어려워요.”

‘중독의 대모’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

-우리 사회가 알코올 중독에 대해 관대한 문화도 중독 현상에 일조하는 걸까요.

“저는 작용한다고 봐요. 중독자가 되는 데는 사회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술을 허용하는 거예요. 술을 허용하는 국가에서 알코올중독자가 가장 많아요. 대표적인 게 아일랜드거든요. 거기는 80% 이상이 술 문제가 있다고 할 정도에요. 술을 허용하는 문화권일수록 알코올중독자가 많아요. 사회문화적인 특징이 중독에 부녕히 영향을 미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중독을 질병화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대해 반대하신다고요. 왜 그렇습니까.

“반대해요. 만약 게임중독이 질병 코드가 되면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게임 중독자가 돼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병원에 아이들을 보내야 해요. 그게 법이 되는 거예요.

병원에 보내야 되는데 문제가 뭐냐면 약만으로는 치료시킬 수 없다는 거죠. 병원에서 단순히 얘를 면담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얘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부작용도 너무 커요. 얘는 정신과 환자라는 낙인도 찍히고 학교도 못 가요. 그렇다고 해서 치료가 됐나? 치료가 안 돼요. 아이한테 정신과 환자라는 닉네임만 붙여주는 거죠.

그래서 원인 규명도 안 됐고 치료법이 없으니까 병원에 보내는 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학교에 보내면서 오후에 센터들이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거거든요. 또 청소년의 경우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가 대상이 돼야 해요. 부모가 태도를 바꾸고 아이하고 잘 지내는 것만 연습해도 엄청 좋아져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병원이 아닌 바깥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회복시킬 수 있는데 굳이 단점이 많은 병원으로 보낼 필요가 있냐 이 말이에요. 의료 프로그램이 효과가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이야기해요.

예를 들어 두통이 있을 때 약을 먹잖아요. 낫는 것이 확실해요. 그러니까 그 방법을 통해 치료를 받아요. 그런데 이건 (게임중독은) 약이 없어요. 의료 모델에서 최우선은 약물치료인데 그게 안 된다는 거예요. 의사들이 아이들의 심리치료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니 심리치료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게임질병이 코드화되면 게임중독을 병원 밖에서 치료하는 것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의사들이 이건 의사들이 하는 건데 니네가 왜 하냐고 문제를 지금 안 삼아서 그렇지 문제 삼으면 처벌 받을 수 있어요. 법에 징역 5년 이하에 5천만 원까지 물게 돼 있어요. 우리로서는 황당하죠. 의사들이 이것을 왜 했을까. (게임 질병 코드화를) 우리나라 의사들이 WHO에 적극적으로 권유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있죠."

-적극적으로 나섰단 말입니까.

“네. 이상하죠. 의사들이 평소에 아이들 게임에 문제 있다고 나서서 적극적으로 치료에 개입한 부분이 적은데, 이건 아니라고 보는 거죠. 왜 애들을 볼모로 그렇게 의료화를 시키려고 할까 너무 아쉬운 거예요.

스마트폰 중독률이 36%가 넘어요. 유치원부터 초등학생 이상 있는 집은 스마트폰 때문에 문제 안 되는 집이 없어요. 그럼 부모들이 가장 하기 쉬운 게 병원에 입원시키는 거예요. 환자가 엄청 늘어나겠죠. 병원에 데려다 놓으면 애들이 뭐하겠어요? 병원에서 빈둥빈둥 놀 거 안 봐도 뻔한데.

그럼 애들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분명히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의사 선생에게 물어봤어요. 애들 병원 오면 무슨 약을 주냐고. 그랬더니 대부분 우울증 약하고 불안장애 약을 준대요."

-언젠가 텔레비전에 강원도 카지노에서 사는 여성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하는 말이 “딱 한 번 잭팟(jackpot)에 걸려서 돈을 따면 이곳을 떠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중독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없어요. 그 사람 잭팟 터지면 그걸 가지고 다음 잭팟 터질 때까지 또 할 거예요. 저는 못 빠져나온다고 봐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잿팟 터질 확률이 얼마나 돼요. 벼락 맞을 확률하고 똑같아요. 지금 강원랜드 생긴 이래 잭팟이 몇 번 터졌어요. 통계적으로 봐도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자기가 핑계를 대는 거죠.”

-우리나라 국민성이 중독에 더 잘 빠지는 유전자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들더군요.

“있다고 해요. 경쟁 성향 때문에 우리나라가 성장한 점도 있다고 봐요. 사회문화적 원인도 있고 국민 자체의 민족성도 있다는 데 동의해요.”

‘중독의 대모’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

-지난해 7월에 강원랜드 ‘카지노 건전화 자문위원회’가 발족했고 교수님도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카지노가 건전해질 수 있을까요.

“그렇잖아도 나한테 왜 거기 갔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잘못된 거예요. 제가 카지노를 권장하러 거기 간 게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가서 어떻게 하면 중독자를 줄일까하는 안을 내고 있어요.

거기 온 사람들이 중독되지 않도록 하고 중독됐을 때 어떻게 치료를 할까를 제 전문성을 이용하려고 나를 모신 거죠. 내가 거기 가서 카지노가 성장해야 된다 이런 걸 도우러 간 사람이 아니에요. 회의록도 다 있고 제가 맡은 분야도 중독 예방치유 부분이에요.

그래서 예전 중독자분들이 저한테 어떻게 교수님이 거기를 가냐고 항의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그랬죠. 내가 안 가면 누가 가나. 회의록을 봐라. 예방 잘 하자고 간 거지 중독자들 더 많이 들락거리게 하려고 갔겠냐고. 섣부르게 얘기하지 말라고. 노력하면 안 하는 것보다 카지노가 건전해질 거라고 봐요."

-중독자들에게 중독 치유 상담하잖아요. 그럼 병 주고 약 주냐고 항의하는 중독자들도 있더군요.

“아니 그것도 안 하면 어떻게 할까요? 나는 진짜 중독자들한테 말하고 싶어요. 그럼 술도, 강원랜드도 똑같은 오천만 명에게 제공이 되고 있는 거잖아요. 멱살 잡고 끌어다 하라고 그랬어요? 다 자기 손으로 하고 자기 발로 갔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한 것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못 지겠어 하면 어떡할 건데요. 그렇죠?

자기가 가서 술 사먹고 자기가 도박장 가서 했어요. 제가 처음에 이 일을 하려고 할 때 기재부(기획재정부) 가서 돈을 받아야 하잖아요. 갔더니 왜 제 발로 가서 제 손으로 사 먹은 사람들한테 국가가 돈을 줘야 하냐는 거예요. 그거 설득하려고 엄청 힘들었어요. 이게 정말 사회 문제가 크다, 외국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다 하고 있다고 설득하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병 주고 약 주냐? 그럼 싹 없애라는 거잖아요. 술도 싹 없애면 그럼 안 하나요? 미국에서는 술을 못 마시게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불법으로 술을 사들이고 술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거예요. 우리는 (술의) 폐해나 부작용을 알려서 절주(節酒)하도록 해야지 그 자체를 없앨 수는 없죠.

우리나라 중독자가 5~6%고 나머지 95%는 아니잖아요. 그럼 그 사람들의 권리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그 주장은 맞지 않다고 봐요. 그래서 단호하게 얘기해요. 본인들이 한 거다. 본인들이 책임져야지, 왜 국가한테 그 책임을 돌리냐. 그러니까 못 끊은 거예요. 자기가 시작했으니 자기가 끊어야지요. 자기 문제로 봐야 중독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어요."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던 1990년대에는 심리학자가 지역사회에서 치료하는 것이 금기시됐던 시절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금기돼 있었죠. 그 당시에는 심리학자가 병원에서 상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왜 가능했냐. 내가 근무하던 병원 원장님이 미국에서 17년 동안 정신과 의사를 하다가 한국으로 오신 분이에요.

그런데 이 분이 외국에서는 심리학자들이 너무나 활발하게 상담을 하는데 왜 나보고 자꾸 안 하냐는 거예요. 그 원장님이 한국 의사였으면 안 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 분이 미국에서 17년을 보고 한국에 오신 분이예요. 그런 분이 자꾸 저를 불러서 왜 좋은 공부를 하고 상담을 안 하냐, 이렇게 된 거예요.

나는 당황했지요. 왜냐하면 그때 상담을 안 했으니까. 그래서 제가 할 수가 없다 그랬더니 황당해하시면서 저한테 그럼 자기가 상담을 해 볼 테니까 그걸 보고 집단상담을 준비해 보라고 했어요. 코워크(cowork·협업)를 하라면서 본인이 상담을 진행하는 거예요. 제가 상담을 이끄는 게 아니라 원장님이 하는 걸 내가 보고 배우는 거예요. 또 미국에서 인지행동치료를 전공하신 교수님이 계셔서 그 분에게서 프로그램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중독을 제대로 공부한 의사는 열 명 내외라고 했습니다. 나머지 의사들은 중독을 의료적이고 생물학적 모델로 접근한다는 의미인가요.

“사실 열 명이라고 하지만 저는 열 명도 안 된다고 봐요. 의사들은 병원에 오면 약물 주는 거 외에는 다양한 시도는 안 하는 편이죠. 약물 주는 거 외에는 이 사람들이 오랫동안 어떻게 지내는지를 잘 몰라요. 우리는 지역사회에서 이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거든요. 의사들은 그걸 보지 않아요.

내가 보면 이런 거 같아요. 정신과 의사 선생들이 정신과 쪽을 하려고 할 때는 약물치료가 아니라 상담을 하고 싶어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게 수가가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못 하는 부분도 있다고 봐요. 그렇지만 중독 이쪽은 재미가 없는 분야예요. 왜냐하면 쭉 약 타러 와야 되는데 안 오고 예후도 안 좋고 그럼 뭘 하겠어요. 다른 환자들도 많이 있는데. 그래서 의사들이 관심을 안 갖는 분야에요.

그런데 계속 본인들이 주도를 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주장을 하는 거 같아요. 나는 그건 환자에 대한 윤리라고 봐요. 본인들이 책임질 수 없는 분야를 자꾸 의료모델로 만들어서 약 주는 걸로 끝내는 건 저는 맞지 않다고 봐요. 그렇게 회복되는 경우는 1%로 안 된다고 보고되고 있어요.

외국에 가보니까 정신과 의사가 상담에서 메인 역할을 하지 않아요. 일단 (선진국에서는) 최장 28일, 즉 4주 이상은 입원시키면 안 돼요. 그리고 의사들은 지역사회에 나오지 않고 네트워킹만 해요. 알코올중독자나 마약중독자가 약물로 인해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하면 그걸 치료받으러 가는 거지 중독 자체를 치료하러 가지는 않아요. 그게 치료 프로그램이에요. 정신과 의사가 코워크하는 사람으로 존재하지 그가 메인 치료자가 되는 건 아니죠.”

-중독 예방에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역할을 한다고 봐요. 지금까지는 나약함을 절대적인 술에 의존했다면 일단 절대자에게 의존을 하는 거죠.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종교에 의존하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봐요.”

-인터넷으로 일주일 공부하고 심리자격증이 남발되고 있습니다. 어떤 대책이 없을까요.

“저희가 일정 수준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을 못하게 하려고 법 제정을 하고 있어요. 좀 도와주세요(웃음).”

-이런 날림으로 심리자격증을 딴 이들에게서 심리상담을 받으면 어떤 해악(害惡)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돌팔이’가 진료를 하는 것과 똑같아요. 예를 들면 병원에 가서 이 사람이 고혈압인데 진단을 잘못해서 당뇨병 약을 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거랑 똑같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돌팔이인 거죠.

돌팔이면 진단도 못 내릴 거고 진단을 못 내리니 제대로 된 치료법도 없을 거고 오히려 얕은 지식으로 사람 속을 후벼파서 안 만난 것보다 못한 후유증을 겪게 되겠죠. 이건 정말 우리가 감시하고 제재를 가해야 되는 부분이에요. 아픈 사람을 가지고 장난치는 건데. 있을 수가 없죠.

제가 (상담학) 트레이닝 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36년차거든요. 공부할 때는 빼더라도 만 30년 이상을 상담을 하고 있는데 저는 지금도 누군가가 저한테 오면 겁이 덜컥 나요.”

-왜죠?

“두려워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문제가 다 달라요. 그리고 제가 그 사람을 100% 치료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요. 제가 만나는 그 사람은 그 사람 일생을 갖고 저를 만나러 와요. 일생을 다 알려줘요. 상처받은 모든 것들을. 그걸 내가 다 알게 돼요. 그러니까 그냥 한 사람이 상담을 하러 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거예요.

겁이 덜컥 나요. 내가 그 사람 일생을 다 들었어요. 그러면 치료를 못 해 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 사람한테는 정말 안 되는 거잖아요. 지금도 굉장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사람을 만나는데 어떤 때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아요. 제가 상담을 하고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진단을 내리고 이 사람이 이렇게 됐다라고 말하기가 주저가 돼요.

그리고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최종적으로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내리지만 그 우울증이 되기까지는 다 사연이 달라요. 똑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기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적용해서 좋아지지도 않아요.”

-일종의 한계를 느끼는 건가요.

“한계를 느끼죠. 그리고 실패도 해요. 어떤 사람은 안 돼요. 제가 숨길 때가 있어요. 아, 이 사람은 내 몫이 아니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100% 치료 못합니다.

저는 학부·석사·박사를 심리학을 했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성실하게 과정을 모두 마친 사람이에요. 수십 년 동안 상담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두려워요. 그런 작업인데, 모르는 사람이 용감하다고 일주일 배워서 상담을 한다고? 일종의 치료 행위인데 그게 맞아요? 그건 있을 수 없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법이 제정돼서 제대로 자격 있는 사람들이 상담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돌팔이들이 가장 잘하는 게 이해한다기 보다는 지시하고 명령하는 거겠죠.

“돌팔이를 만난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힘들면 나약해지니까 그 어떤 거에 의존하고 싶잖아요. 현란한 말솜씨로, 말도 안 되는 행위들을 통해서 꼬드기는 거죠. 그리고 힘들어하는 사람들한테 사기 치는 거고요. 정말 이 부분은 어떻게든 고쳐져야 한다고 봐요.”

-심리학회의 모법(母法)인 심리서비스법 법제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금 열심히 하고 있고 제가 법제화의 필요성을 얘기하면 반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일단 어떤 문제가 있냐면 사람들이 요즘은 심리상담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굉장히 증가했어요. 그런데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기준이 없는 거예요.

내가 문제가 있고 부부 관계가 안 좋아서 도움을 받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도 몰라요. 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나 (상담 관련) 간판 걸고 해도 규제를 안 받아요. 그래서 교육 안 받고 상담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해요. 일주일 교육 안 받고 해도 돼요. 그게 문제고요.

그 다음에 내가 너무 힘들어서 갔는데 그 사람이 돌팔이다. 공부를 안 했다. 그럼 안 되죠. 그래서 이 법을 만들기 위해서 만났던 모든 사람은 (법제화) 안 돼라고 얘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저는 될 거라고 확신해요. 왜냐하면 이건 기본이니까요.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해야 되는 건 논란의 여지가 없어요. 논란이 있을 수도 없고요.”

‘중독의 대모’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

-미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의 심리 욕구 단계를 5단계로 나눴고 마지막을 자아실현의 욕구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노년에 이를 수정해서 이타적(利他的) 욕구를 인간의 최고 욕구로 집어넣었습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일단 내가 먹고 살 수 있을 때 뭔가 욕구도 생기는 거죠. 지금 밥도 못 먹게 생겼는데 무슨 꿈을 가지고 남을 돕고 하겠어요. 매슬로의 욕구 단계가 맞다고 보고요.

저는 이타적인 부분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해요. 왜냐하면 저는 중독자나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때 봉사활동을 시키거든요. 요양원이나, 나보다 못한 데 가서 청소도 하고 씻겨도 드리고 하는 걸 반드시 제 프로그램에 넣었어요.

왜냐하면 그 분들한테 나중에 자신이 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들을 꼽으라고 하면 이구동성으로 봉사활동 갔다 온 걸 얘기해요. 어떻게 보면 좀 나쁜 말이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내가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욕구를 느꼈다는 건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분들이 봉사를 하면서 ‘아, 내가 제대로 살아야 되겠구나. 나는 이렇게 신체가 멀쩡하고 건강한데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고 느끼죠.

봉사활동을 갔다 오면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변해요. 저는 제가 하는 프로그램에 반드시 봉사활동을 넣어서 시켰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고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행위는 이타적인 행동을 했을 때에요. 저부터도 마찬가지에요. 이타적인 행동을 했을 때 내가 충만해지고 기쁘고 행복감을 많이 느끼거든요.

그래서 저는 메슬로가 말한 이타적 행위가 최고의 가치라는 것에 동의를 하고요. 그러니까 자아실현만 하면 안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했을 때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사람들이 그걸 경험했을 때 변한다. 저는 그런 거에 동의합니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우울해졌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한국심리학회가 지금 질병관리본부, 보건복지부랑 같이 코로나19 무료 상담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사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제일 좋은 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이걸 누구한테 원망을 하겠어요. 받아들이고 건강 수칙을 어떻게 지킬 건지에 대해서 본인들이 주의를 해야죠.

그리고 전염병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잖아요. 또 다른 전염병이 계속 올 거고요.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가 삶의 태도들이 바뀌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냐면요.

이전에 제가 감기가 자주 걸렸어요. 내가 피곤해서 걸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손발 잘 씻고 마스크 잘 쓰니까 피곤하지도 않고 감기가 한 번도 안 걸려요. 일단은 활동량이 많이 줄어들었거든요. 안 피곤한 거예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아, 피곤하지 않고 손발 잘 씻고 하니까 감기가 안 걸리는 거예요. 저는 감기를 달고 살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을 그냥 우울하다고만 보지 말고 오히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을 해 봐야죠. 나의 생활규칙도 바꿔보고 습관도 바꿔보고 전반적인 삶의 행태에 대해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또 이 시간이 좀 생산적인 시간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요즘은 이전보다 사람들을 덜 만나잖아요. 저는 많은 활동을 하기 때문에 항상 바빴어요. 아침 조찬부터 시작해서 하루에 평균 4번 정도 회의에 참석하고 저녁 12시에 퇴근할 정도로 바빴는데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몰랐어요.

내가 내 인생에서 뭘 하고 싶었지? 그런데 요즘 쉬면서 내가 좋아하는 걸 알게 됐어요. 이걸 하니까 되게 기쁘구나. 그래서 쉬면서 내가 좋아하는 걸 더 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하니 마음의 여유도 생겨요. 물론 제가 월급 받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할 거예요. 맞아요. 소상공인이나 경제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코로나19가) 직격탄이니까. 그 분들은 다른 각도로 봐야죠.

저는 이번 기회에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전염병 시대에 대비해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한국심리학회가 무료 상담을 하면서 보니까 질병에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슈가 많은데 이것도 총체적으로 장기적 플랜(plan)을 세워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사실 무엇을 어떻게 할 거냐. 내가 죽지 않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간적인 부분을 허락받은 걸 감사할 수도 있다고 봐요. 이 상황이 너무 힘들지만 우리가 긍정적으로 어떻게 해결할까를 고민하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심리학회가 전 국민 대상으로 무료 심리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인력 지원 등의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그건 없어요. 너무 감사한 게 상담자를 교수하고 (심리상담) 1급자만 했는데 3일 만에 230명이 신청을 한 거예요. 처음에는 두 개 선으로 하고 지금은 세 개 선으로 늘렸는데 폭증을 하지 않을 정도로 돌아가고 있어요.

그건 우리가 완급 조절을 했어요. 우리가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았고요. 왜냐하면 이게 너무 많아지면 대책이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서 하루에 세 개 라인이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거든요. 그러니까 여섯 번이 돌아요. 열여덟 명이 하루에 도는 거예요. 그런데 매번 그런 시간들을 채워질 정도로는 오고요. 더 많이 필요하면 우리가 계속 회선을 늘리려고 했는데 지금 세 개 정도 가지고 되는 거 같아요.”

-심리상담 요청 대상자 중 30~40대가 전체의 42%를 차지해 가장 높았습니다. 이를 어떻게 분석해야 할까요.

“지금 가장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시기잖아요. 그래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똑같이 어떤 제한을 했을 때 활동을 안 하는 어르신들보다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사람들의 고통이 심하죠. 더 심한 건 애들일 거예요. 걔네들은 전화를 못 해서 그렇지.

그래서 활동이 제한되는 것이 가장 큰 영향이 아닐까. 경제적인 부분에서 보면 이제 경제 행위를 시작한 시기잖아요. 자리를 잡고 해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안 되니까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두려움도 많고 직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거든요.

그래서 30~40대는 직장이 불안정하니까 그거에 대한 호소를 많이 하고 있어요. 혹시 일하다가 우리 회사가 문 닫아서 나도 실직자가 되는 거 아닌가. 이런 현실적인 불안들이 많다고 보고 있어요.”

‘중독의 대모’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

-심리학회장으로 지난 2년을 돌아보는 소회가 어떻습니까.

“일이라는 게 그런 거 같아요. 한도 끝도 없어요. 보람을 느낀 건 기존 (한국심리학회) 회장님들이 안 했던 일들에 주력을 뒀던 거예요. 이전 회장님들이 주로 학자로서 심리학회를 관리했다면 저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대중화하고 생활화하는 데 중점을 뒀거든요.

또 한국심리학회가 생긴 지 74년이 됐는데 모법(母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일주일 만에 상담사 자격증을 따게 만드는 건 우리가 방치한 거거든요. 사실 우리가 잘못한 거죠. 그런 사람들이 상담을 하면 안 된다고 우리가 얘기했어야죠. 어쩌면 우리가 공범자고 동조자예요. 나는 그렇게 봐요.

그래서 그걸 없애는 활동을 많이 했죠. 지금 모법 법제화가 90%까지 갔다고 봐요. 우리가 이걸 (국회에) 제출만 하면 될 정도로. 제 임기 동안에는 못하겠지만 올해 12월에 하게 되면 우리가 90%를 해 놓고 마지막 마무리만 하면 되는 입장이니까. 그간 우리끼리 심리학의 질적인 부분에서 결속을 다졌다면 조현섭 회장이 돼서는 심리학을 외부에 알리고 우리 현안들을 다루는 실질적인 행동을 하는 회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어요).

옛날에 회장님들은 이런 일이 생겨도 자원봉사라는 무료 상담 자체를 기획을 안 했어요. 나는 안 된다, 이걸 해야 된다(고 주장했죠). 그래서 행동하는 회장, 심리학을 일반 사람들에게 대중화시키고 일반화시킨 그런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국내 알코올중독센터와 도박중독센터 기틀을 다졌습니다. 척박했던 중독 현장에서 하나씩 업적을 만들어왔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에 만족하십니까.

“아뇨, 만족 못하죠. 저는 하고 싶었던 게 외래 센터만 만드는 게 아니었어요. 그게 아니라 풀시스템(full system)을 만드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중독자들을 치료하려면 중독자들의 욕구나 수준을 반영하는 프로그램이 나와야 돼요.

중독자들 중에는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많고 가족들과 떨어져서 프로그램을 받아야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외래 센터는 왔다가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럼 이 사람들을 위한 숙소도 만들어줘야 되는데 그게 풀 시스템이고 치료 공동체죠. 지역사회의 집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프로그램을 하는 거거든요. 취업도 하고.

그 다음에 또 외국에 나가보니까 중간집(half-way house)이 있어요. 이건 치료공동체에서 충분히 프로그램을 마치고 내가 회복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고 직장을 갖게 되는데 가족들이 안 받아주니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돼요. 그런 중간집도 만들고 또 직업재활시설도 만들어주고 이게 원스톱서비스(One Stop Service)인데 이게 될 때 회복이 잘 됐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냥 외래 센터만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는 없어요. 그래서 회복이 제대로 안 되는 거거든요. 알코올중독의 경우 제가 원스톱서비스 시스템을 처음 만들었어요. 그게 지금도 유지되고 있어요. 그런 시스템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중독자들 회복하는 데 굉장히 힘이 됐을 텐데 그걸 못 만들어 놓은 건 아쉽죠.

개인적으로 저는 모든 중독을 책에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적나라하게 봤어요. 그런 역할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 사람인데 정말 운명적인 거 같아요. 한 중독 분야를 하기도 어려운데 저는 많은 중독을 현장에서 프로그램 개발하고 전파하고 평가하고 그렇게 이 분들이 회복되는 걸 봐왔거든요.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말이죠.

그래서 제가 받아들이는 게 ‘이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숙제구나’ 싶어요. 제가 한국심리학회를 그만 두더라도 우리나라의 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심리학자들의 위상을 높이고 심리학을 대중화하는 활동을 계속 하고 싶어요.”

-인간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

“글쎄, 저는 행복은 내 마음 속에 있다고 봐요. 어떤 것이 행복하다고 제가 말할 수 없어요. 본인이 정한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는 거거든요. 행복은 주관적인 거라고 봐요. 저는 행복이라는 건 주어진 삶을 내가 받아들이고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 나만을 위한 삶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사람을 돕고 성장시키는 데 기여하는 거죠. 그걸 통해서 서비스를 받은 사람들이 정말 좋아졌다면 이타적 행위인데 저는 굉장히 행복했어요.”

행복과 이타적 행위. 무언가 가슴에서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오후가, 뼈아프게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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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0-04-17 09:18:27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님 인터뷰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1독 하시길 바랍니다.
코로나 심리상담으로 자원봉사해주시는 선생님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 인터뷰를 들으니 "치료공동체"의 꿈이 한발 더 나간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