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인 예술 활동은 병든 세계에서 살아남은 자가 생존을 증명하는 활동"
[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인 예술 활동은 병든 세계에서 살아남은 자가 생존을 증명하는 활동"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4.20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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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예술활동 기회 비장애인보다 열악..정부 지원 예산도 적어
장애인 예술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냉담'
장애인 예술가 10명 중 7명은 월 수입 '0원'
정신장애인 예술활동 기회 많아져야
돈 되지 않는 출판업을 하는 건 예술의 위대함 믿기 때문

저는 대구대학교에서 장애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옥탑방 프로덕션’이라는 1인 출판사와 <마인드포스트> 기자도 겸하고 있어요.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가끔 외부 강연도 나갑니다. 나중에 정신장애 분야의 전문가가 될 거란 목표로 말이죠.

그래서 어느 분야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집중이 분산되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요령 있게 해 나가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공부하고 느낀 내용을 <마인드포스트> 기사에 쓰는 거죠.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 ‘장애예술학’이란 수업을 가장 좋아합니다. 문학, 음악, 미술 등 장애인들의 예술 활동과 법 제도 및 인물과 역사를 배우는 과목이에요.

제가 출판사를 차린 이유도 저를 비롯해 많은 당사자들의 이야기와 문학을 담은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게 꼭 필요했던 과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의 예술 활동은 비장애인들의 예술 활동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고 합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을 어딘가에 발표할 기회도 없고, 창작 활동을 위한 정부의 지원 예산도 매우 적다고 합니다.

대중들 역시, “장애인이 예술을 얼마나 알겠어? 만든 작품들이래야, 안 봐도 뻔하지!”라며 장애인 예술에 대한 관심과 평가가 굉장히 부정적이라고 해요. 이는 현저히 적은 수입 활동으로 이어져 생계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정신장애인 미술작품을 의미하는 '아르브뤼(art bruit)'를 창시한 프랑스 화가 장 뒤뷔페(1901~1985). 아르브뤼는 원생미술, 혹은 순수미술 등으로 의역되며 정신장애인들의 예술 세계를 지시하는 기표가 된다.
정신장애인 미술작품을 의미하는 '아르브뤼(art bruit)'를 창시한 프랑스 화가 장 뒤뷔페(1901~1985). 아르브뤼는 원생미술, 혹은 순수미술 등으로 의역되며 정신장애인들의 예술 세계를 지시하는 기표가 된다.

한국고용정보원(2009)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 예술인 수는 약 1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7년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실시한 장애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예술인 중 69.3%가 월 평균 수입이 0원이고, 12.8%가 10만 원 이하의 수입을 벌고 있다고 해요.

겨우 20%도 안 되는 장애인 예술인이 예술 활동으로 월 10만 원 이상의 수입을 받는 겁니다. 그리고 74.8%의 장애인 예술인들이 창작 발표의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출판이나 전시회, 공연 같은 발표의 기회가 부족하다보니 수입이 적을 수밖에 없는 거죠.

장애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도 87.7%가 부정적이거나 그저 그렇다고 반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장애인들의 예술 공연을 감상할 때 감동을 받고 흥미롭게 보지만 작품에 대한 전문성 평가는 아주 낮다는 논문도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자료가 매우 심각하게 느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원래 “예술은 배고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장애인들의 예술도 배고플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레 받아들여 질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전 최승자라는 시인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1952년 충남에서 태어나 고려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1979년 ‘문학과 지성’ 가을호에 다섯 편의 시를 발표하며 시인 활동을 했습니다.

시인 최승자.
시인 최승자.

그녀의 시집들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고 수많은 시인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주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베스트셀러를 낸 스타 시인이었지만 그녀의 삶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2011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시를 쓰는 일에 회의를 느껴 우연한 계기로 명리학, 사상의학, 점성술 등 신비주의 공부에 빠졌습니다. 이후 조현병으로 포항의 요양원과 경기도의 병원을 오가며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전 3평짜리 고시원과 여관방을 전전하며 술로 끼니를 때우곤 했습니다.”

인터뷰 당시 시인은 키 149cm에 몸무게가 34kg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외삼촌이 포항에서 그녀를 찾아 보살피기도 하고, 모 출판사에서는 매달 약간의 생활비와 시인이 시를 쓰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조현병을 겪으면서도 계속 시 쓰는 작업을 해나갔고, 11년 만에 새 시집을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집의 발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병든 세계에서 병이 들어 하릴없이 살아 있는 자가, 살아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기 쉽지 않은 자가 여전히 시를 써서 생존을 증명하고 있다. 살아 있기 때문에 가까스로 새로이 시를 쓴다.”

전 이 발문을 읽으며,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장애인들에게 시를 포함한 문학, 미술, 음악 등의 예술 활동의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예술 활동은 ‘병든 세계에서 살아남은 자가 생존을 증명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왕성한 창작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제도와 법, 지원 사업이 더욱 필요합니다. 또한 창작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대중들 역시 당사자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저의 자서전을 세상에 발표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20여 곳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아 직접 출판사를 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당사자들의 원고를 책으로 출판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인 미술을 일컫는 '아르브뤼' 작가 주영애 씨의 작품.
'아르브뤼' 작가 주영애 씨의 작품.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 역시도 새 책을 출판할 인쇄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고를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유통시키는 건 제가 직접 작업해서 인건비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이와 잉크, 인쇄소 기계를 돌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부 비용을 출혈해야 합니다.

결국 책을 팔아서 겨우 마련한 돈으로 다른 책을 인쇄하기 위해 쓰다 보면, 제게 돌아오는 몫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나마 책을 통해 강의 자리가 들어오면 생활비에 보태 쓸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돈이 되지 않은 출판업을 하며 책을 만들려는 이유는 예술의 위대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조현병과 같은 정신장애를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이 사회 속에서, 장애인을 무조건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를 나타내고 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마인드포스트>가 계속 당사자들의 시를 발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죠.

당사자인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우리가 추는 춤과 연기하는 공연에는 우리들의 세계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들이 겪는 차별과 아픔과 고통은 물론, 우리들의 기쁨과 행복과 희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들을 예술을 통해 세상에 나타냈을 때, 세상은 우리들을 더 깊이 공감하고 더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승자 시집의 발문을 저만의 해석으로 다시 말씀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죽은 것과 다름없이 밤마다 병으로 고통 받으며 살아 남은 제가 책을 만들어 생존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아 있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책을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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