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조현병 관련 부정적 언론 보도 행태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
[이관형 기자의 변론] "조현병 관련 부정적 언론 보도 행태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4.21 18:3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론이 정신장애를 구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장애인의 시선 아닌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세계 해석 아쉬워
극복·보살핌 프레임 치우고 장애적 삶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장애인 당사자 시각으로 당사자 다루는 연구 주제 필요
조선 시대 장애인 복지 수준 높아...일제 강점기에 처우 나빠져
조현병과 정신장애 왜곡 보도 연구로 논문 주제 삼으려 해

지난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앞장서 장애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본 기자는 네이버 뉴스에서 ‘장애인’이란 단어를 검색해 봤습니다.

▲문대통령 "재난은 장애인에 더 가혹…불평등없도록 시스템 정비" (연합뉴스)

▲처벌 없다고… ‘장애인고용법’ 비웃는 공공병원 (세계일보)

▲서울시 6개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고용률 미준수 (노컷뉴스)

▲장애인 활동지원 9만명까지 확대… 특수학교 182곳으로 4곳 더 증설(서울신문)

▲공공기관 10곳 중 3곳, 장애인사업장 생산품 구매 ‘외면’ (서울신문)

위 뉴스는 장애와 관련된 법과 제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뉴스는 장애인들의 생활과 편의를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국가와 기업, 기관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찾던 뉴스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장애인들의 삶과 목소리’에 대한 기사입니다. 앞서 언급한 기사들은 장애인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까지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장애인들을 구제의 대상으로, 편의 제공과 배려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장애인들만 먹여 살리네?”라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입장을 듣고, 인터뷰 기사를 더 많이 생산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장애를 ‘극복’한 성공 스토리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의 애잔한 모습들 말고요.

‘극복’ 아니면 ‘보살핌’이라는 프레임을 치우고 평범한 장애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를 바랐습니다. 숫자와 통계 자료에 매달리기보다 직접 장애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목소리를 듣는 것이 진짜 취재가 아닐까요?

이와 같은 역할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장애와 관련된 법과 제도를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다양한 연구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기자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라는 사이트에서 다시 ‘장애인’을 검색해 봤습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학위논문 제목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장애인 직업재활훈련의 비교 연구 (김병화.2014)

▲장애인 재활보조기구의 사용실태와 활성화 방안 (하영호.2004)

▲지역사회 정신보건 프로그램 환경이 정신장애인의 사회참여에 미치는 영향(백선영.2014)

▲시각 장애인을 위한 Android Platform기반의 통신시스템 구현(오재균.2012)

 

간혹 장애인의 삶을 다룬 논문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장애 관련 재활과 시스템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이는 장애와 관련된 기관 혹은 사회복지 계통의 입장에서 다루어진 논문으로 느껴집니다.

장애인 당사자의 시각에서 당사자에 대해 직접 다룰 수 있는 연구 주제도 흥미있지 않을까요? 저는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관점의 연구를 제안해 봅니다. 그것은 장애에 대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입니다.

이관형의 카드뉴스 (c)마인드포스트.

저는 <마인드포스트> 기자로 카드뉴스를 만들어 왔습니다. 짧은 글이 들어간 20여 개의 이미지를 묶은 카드뉴스는 다른 텍스트 기사들에 비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해 왔습니다.

특히 “히틀러에게 전해진 부모의 편지”, “조선 임금 선조의 스트레스 잔혹사”, “북한의 정신병원 49호 이야기”, 최근 올린 “조선시대 정치인의 길을 걸은 정신장애인들”에 이르기까지 카드뉴스는 페이스북에서도 많은 조회수와 공유 횟수를 기록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독자들이 긴 글보다 짧은 글을 선호해서, 혹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묶어 쉽게 읽혀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묶음의 카드뉴스를 만들기 위해 제가 연구했던 방식이 기존의 정보 전달 방식에 비해 독자들에게 참신하게 와닿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존 뉴스들은 법과 제도, 장애 관련 차별과 피해에 대해 수없이 많이 다뤄왔습니다. 그 틈에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차별화된 분야가 ‘역사와 문화’였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 속 자료를 찾기 위해 ‘조선왕조실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이트에 들어가 ‘심질(心疾)’, ‘광질(狂疾) ’같은 옛 단어를 검색했습니다.

근현대사 속의 정신장애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들어가 1920년대부터의 기사도 검색했습니다. 이외에 부족한 자료를 보충하기 위해 관련된 서적들을 구입해 필요할 때마다 펼쳐 보았습니다. 보기에는 쉽고 단순한 카드뉴스가 실은 많은 연구와 정성이 들어가야 완성이 가능한 것이죠.

하지만 아직도 저의 짧은 지식과 부족한 자료로 인해 쓰지 못한 기사들도 많습니다. 오래 전부터 쓰고 싶던 ‘조현병 환자의 범죄에 대한 언론 보도의 역사’입니다.

최근 조현병에 대한 언론 보도의 행태를 보며 그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찾아보고 연구했습니다. ‘조현병 포비아’ 현상으로 대표되는 기사는 ‘정신분열병’으로 불렸던 20년 전에도, 50년 전에도 있었고, 심지어 약 100년 전인 1922년 11월 15일 동아일보에도 있었습니다.

<기사내용 일부 해석>

“황인수는 항상 정신에 이상이 있어 정신병자의 명부에도 등록된 자인데, 지난 5일 오후 4시 반경에 자기 집에서 장모 김화순을 몽둥이로 머리를 때려, 김화순은 3시간 반만에 그만 절명하였다. 원인은 평소에 정신에 이상이 있음으로 자기 장모가 자신의 처에게 접근치 못하게 한 것에 분개하여 그리한 듯 하며, 범인은 체포되었지만 경관의 눈을 속이고 도망하였다.”

저는 좀 더 과거의 자료를 찾다가 조선 세종대왕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질’과 ‘광질’을 검색하자 비슷한 내용의 역사 기록(세종 18년 5월 25일 신묘 3번째 기사)이 나왔습니다.

<기록 내용 일부 해석>

“형조에서 아뢰기를, “홍천군의 죄수 이귀생이 장인 신득룡을 때려 죽였으니, 율에 의거하면 참형해야 할 것이오나, 귀생은 원래 심질(心疾.오늘날의 정신질환)이 있사오니, 명례의 율문에 의거하여 의논해서 아뢰도록 하여, 성상께서 재결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록을 발견할 수 없을 뿐, 어쩌면 “고려시대에도, 삼국시대에도 이와 같은 사건들이 있었겠구나” 생각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도 했습니다. “조현병이든, 정신분열증이든, 심질이든, 표현만 달라졌을 뿐 이 병에 걸리면 정말 장인이든 장모든 때려죽이게 되는 것인가?”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정창권 교수님이 쓰신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와 <근대 장애인사>를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조선은 장애인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살기 좋은 복지 선진국이며, 정신장애인들도 편견을 당하지 않고 일반 백성들과 잘 섞여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들어 가난과 상해 등으로 정신장애를 비롯한 장애인 수가 늘어났고, 이들에 대한 처우도 나빠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우생학 정책에 따라 장애에 대한 왜곡된 편견과 언론의 보도 행태가 시작됐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된 것입니다.

정창권 교수님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수천 장의 고전 문헌을 읽고 조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의 지식 수준은 아직 한참이나 부족합니다.

지금 언론에서 ‘조현병 포비아’를 내세우며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일제의 잔재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은데 저는 이를 뒷받침할 배경 지식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합니다. 근거 자료와 기록이 있음에도 머릿속에서 정립이 되지 않아 차마 기사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확정하기 이르지만, 제가 쓰고자 하는 박사 과정 논문 주제는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장애에 대한 언론의 왜곡된 보도가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이 논문의 이론적 배경을 쓰기 위해서라도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언론의 정신장애 관련 보도 행태를 연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지금의 언론 기사가 사실은 일제의 잔재임을 밝히고 그 악습으로 인해 많은 당사자들과 장애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 장애인들이 살기 좋았던 시대상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오늘날 제가 연구하는 자료와 읽는 책들, 그리고 공부하는 내용들이 언젠가 세상에 나와 빛을 발하기를 희망합니다.

- 이 글은 본 기자가 학업 중인 대구대학교 대학원 장애학과 수업 교재 <한국에서 장애학 하기(조한진 외)>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동수 2020-04-25 14:57:41
제국주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본격화 되면서 그 체제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가난과 질병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됩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적 효율성의 이름아래 이들을 열등한 자로 규정하고, 격리시킴으로써 사회적으로 매장을 해 왔습니다. 결국 제도->질병양산 -> 열등화 -> 격리 매장...
그런 과정으로 일본제국주의 시대부터 정신장애인에 대한 탄압방침이 강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