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수 “혼자 있으면 나아지지 않아요…작은 관계라도 만들어서 관계맺어야 해요”
전인수 “혼자 있으면 나아지지 않아요…작은 관계라도 만들어서 관계맺어야 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4.27 18: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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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수 정신건강 잡지 ‘멜랑콜리아’ 편집장 인터뷰
우울증인 줄 알았는데 20대 후반에 성인 ADHD로 진단돼
깊은 괴로움은 상처를 남기고 정서적으로 이상하게 만들어
고통은 인간을 파괴할 수도 있고 성장시킬 수도 있어
정신적으로 고립된 이들에 정보 전하려 잡지 만들기 시작
치유되려면 세계와 상호작용 맺어야..관계맺음 필요해
수치심이 인간의 고통을 더 강화시켜...정신장애인 자살률과 관련돼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도움이 되는 삶 살고 싶어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고 중학생 시절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까지 그는 일반적인 생애주기를 거쳤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던 어느 날, 그는 대학을 자퇴하고 다시 시험을 보고 서울예대 극작과를 들어갔다.

예대에서는 ‘예술병’에 걸려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외향적인 인물들이 많았다. 그는 적응이 어려웠다. 휴학을 하고 군대를 다녀왔다. 복학했지만 이상하게 우울증상이 심해졌다. 정신과를 찾아가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병명을 사회공포증과 우울증으로 알고 있던 그는 28살 무렵, 찾아간 정신과에서 뜻밖에 성인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곳 정신과에서 준 약물이 자신에게 맞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왜 그토록 정신적·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지 깨닫게 됐다.

그렇지만 심리적 어려움은 오래 갔다. 대학 졸업 후 1년 정도 집에만 있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가 내린 결론은 해외여행이었다. 짐을 챙겨 남미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페루, 칠레를 거쳐 유럽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을 돌아다녔다.

일 년 후 귀국. 출판사에 취직해 일을 시작했다. 2년 후 그곳을 나왔다. 다시 긴 방황이 시작됐다. 자신이 고통받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는 것이 제한적이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자신이 정신장애 관련 잡지를 내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정신장애인과 정신과 전문의들을 만나며 그가 획득한 정보를 책에 실었다. 그렇게 1000부의 첫 잡지를 출간했다. 일 년에 두 번 나오는 그 잡지 ‘멜랑콜리아’는 지금 2회를 찍었다.

잡지 초반에는 미국 작가 앤드류 솔로몬(Andrew Solomon)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앤드류 솔로몬은 자신이 겪고 있는 우울에 대해 사회문화적·역사적 접근을 다룬 책 ‘한낮의 우울’의 저자이다. 이 책은 우울에 대해 작가의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그는 이 책의 문장들을 잡지에 실었다. 기자는 잡지 멜랑콜리아를 읽으며 그가 앤드류 솔로몬에 깊은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점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멜랑콜리아 편집장 전인수(35) 씨를 만난 건 지난 23일 <마인드포스트> 사무실이었다. 기자가 내민 커피를 그가 한 모금 마셨다.

전인수 멜랑콜리아 편집장 (c)마인드포스트.

-우울증과 사회공포증을 겪었고 이후 성인 ADHD 진단명을 받았습니다. 이는 병명이 바뀐 건가요, 아니면 우울증과 사회공포증 위에 성인 ADHD가 포개진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ADHD였는데 그걸 모르고 나는 집중을 못하구나, 나는 바보구나라는 생각에 자꾸 빠져들었어요. 그런 생각에 우울증이 오고 사회공포증이 왔죠. 그 병명을 모르는 상태에서 우울증과 사회공포증만 생각한 거죠.

병원에 처음 갔을 때 우울증 약만 주더라고요. 그걸 먹어도 특별히 나아지는 느낌이 없었어요. 군대 갔다 와서 우울증 약을 계속 먹었는데 그때 약을 여러 가지 바꾸는 기간이 있었어요. 그때 아토목세틴이라고 ADHD 약을 먹었는데 괜찮은 느낌이 들어요. 성인 ADHD인 걸 안 건 28살 때예요.”

-성인 ADHD와 아동 ADHD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에 아동의 경우는 과잉 행동이 같이 오는 경우가 많고 성인의 경우는 과잉이 없고 주의력 결핍만 있어요. 그걸 통칭해서 성인 ADHD라고 하죠.”

-본인이 겪는 성인 ADHD의 경험을 말해줄 수 있습니까.

“ADHD도 분류가 많더라고요. 전형적인 ADHD가 있고 ADD(주의력 결핍 장애)도 있어요. 이건 ADHD에서 H만 뺀 건데요. ADHD 환자는 외향성이 있더라고요. 뭔가를 잘 이뤄내고 뭔가에 잘 집중하죠.

ADD는 굉장히 의존적이고 수줍음을 타고 감정의 변화가 심해서 혼자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우울증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지옥이 됐다고 했습니다. 지옥의 어떤 풍경이었습니까.

“힘들었을 때 제가 느낀 풍경은 캄캄한 방에 그냥 있었던 느낌. 그래서 계속 과거의 나쁜 일들을 되새김하면서 방안에 갇혀 있었어요.”

-나오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그때 나온 게, 여행을 가려고요. 출국을 한 거죠.”

-그때 사람들도 안 만났겠어요.

“혼자 있는 일 년 동안 서서히 사람들을 안 만나게 된 거죠. 마지막에는 혼자 있었어요.”

-극단적 선택의 충동 같은 건 없었습니까.

“마음은 있었는데 실현은 안 해 봤어요. 생각은 많이 했어요.”

-과거의 삶을 되찾기 위해 수많은 치료 방법을 찾아다녔다고 했습니다. 저의 경우 위로를 얻고 싶어 찾아간 곳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어떻던가요.

“온갖 방법을 시도한 건 아니고 정신과를 가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잡지를 만들면서 정보를 모으다 보니까 도움이 되는 걸 많이 접하게 됐어요.

과거에 제가 힘들었을 때는 정보가 많이 없었어요. 매체도 다양하지 않았고 다들 숨기는 경향이 강했죠. 지금은 심리학 텍스트도 많고 모임도 활발하게 해서 정보를 많이 얻고 있어요.”

전인수 멜랑콜리아 편집장 (c)마인드포스트.

-폭식증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 게 두려웠다고 한 정신장애인이 말하더군요. 저 역시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아침이 오는 걸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많이 힘들었을 때는 아침이 없었죠. 계속 자고 먹고. 깨어 있기 싫었던 거 같아요.”

-앤드류 솔로몬은 “우울증을 통한 자기 성찰은 삶의 지혜가 된다, 살아야 할 이유들을 분명히 찾게 된다”고 했죠. 이는 현란한 언어적 수사가 아닐까요.

“저는 꼭 그렇게는 생각 안 해요. 일시적인 우울이나 기분장애는 내면을 탐구하면서 삶의 의미를 배우게 되는데 계속 자살 시도를 하거나 삶이 불가능한 환경에 처하면 지혜롭게 되기보다 이상해져 버리거든요.

너무 괴로움이 심하면 나중에 그 사안에서 벗어나도 그 흔적이 남아요. 이상해지는 거죠. 변화는 생겼는데 그게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보통에서 벗어나서 돌아오는 거 같아요.

독일어권 작가 헤르타뮐러의 '숨그네'라는 소설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와요. 주인공이 수용소에 있다가 돌아와요. 수용소에서 고통을 많이 겪다가 돌아와서 겨우겨우 사는 거죠. 수용소에서 충격을 받았어요. 가족과 밥을 먹는데 파리가 날아와 앉아도 가만히 있는 거예요. 괴로움은 흉터를 남기고 사람이 달라지는 거 같아요.”

-고난이 인간을 성숙시키고 성장시킨다는 논리에 동의합니까. 너무 긴 고난은 인간을 파멸시킨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간성이) 파괴하지 않을 정도는 괜찮을 같아요. 니체가 한 말 있잖아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영화 베트맨의 악인 조커가 그걸 비꼬아서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괴상하게 만든다고 했죠.

니체도 조커도 둘 다 맞는데 조커가 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고통은 인간을 파괴할 수도 있고 성장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같은 경우는 어떨 것 같아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선이 있는데 그 선이 유동적이고 모호하고 넓은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정신적 증상이 중증이냐 경증이냐로 인생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인생의 흐름이나 운이 작동을 하는 거 같아요. 갑자기 좋은 약이 나오면 사람이 좋아지잖아요. 환경적 조건이 나쁠 때 사람이 망가질 수 있는 거 같아요.”

-자기연민은 그 자체로 죄가 될 수는 없지만 죄의 씨앗을 키우는 핵심기제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학교 수업 들을 때 교수님이 자기연민을 조심하라고 얘기를 했거든요. 제가 고통을 받고 있고 고통스런 감정에 빠져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나아지지 못하잖아요.

내가 매력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처럼 자기연민에 빠지면 그 기준을 잃어버리고 왜곡시켜 버려요. 그래서 '나는 고통스럽기 때문에 매력이 있어'라고 주장해 버리면 안 되는 거죠. 자기 연민에 빠지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돼요.”

-멜랑콜리아 잡지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33살에 만들었어요. 만들 게 된 계기는 혼자 일 년, 이 년 지내다 보니까 정보를 접할 수가 없잖아요. 제가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들거든요.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만들었어요. 저 같이 고립돼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하게 된 거죠.”

전인수 멜랑콜리아 편집장 (c)마인드포스트.

-1인 출판사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뭡니까.

“수입이 적다는 거요(웃음). 다른 건 모르겠어요. 마케팅을 할 만한 소재가 없고 해서.”

-인문학 서적은 만 부 넘기기가 힘들다고 하더군요.

“한 번 책 내면 천 부씩 내고 있어요. 아직 다 안 나갔어요(웃음).”

-멜랑콜리아를 한 번 출간하면 비용은 얼마 정도 듭니까.

“500만~600만 원 정도 드는 건 같아요. 처음에는 일해서 이런 저런 영상 찍어서 일 호를 냈고 지인들에게 판매를 좀 했어요. 겨우겨우 2호 냈죠.”

-3호는 준비 중입니까.

“일을 해서 돈을 좀 모은 다음에요. 3호는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 중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섭외해서 인터뷰를 하고 그 사람의 작품을 같이 실으려고요. 미술이나 에세이, 소설이나 작품들이 들어가게 하려고요.”

-후원자가 113명이더군요. 이들의 도움으로 충분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게 배송비 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후원자들에게는 잡지 출판할 때 사 줄 거냐 물어서 사겠다 하면 보내줘요.”

-인맥은 어떻게 쌓은 거예요.

“인맥으로 하는 게 아니고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한테 나 이런 거 한다고 보내는 거죠. 부모님도 하고 형도 끌어들이고 해서 최대한 많이 주변에 알려주라. 그 중에는 모르는 사람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들어오기도 하고요. 반은 지인이고 반은 모르는 사람들.”

-선생님은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황입니까.

“아니죠. 같이 살고 있고 지원을 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도움은 받고 있어요. 같이 살고 있으니 독립은 아니죠.”

-부모님에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예전에는 많이 싸웠어요. 누가 (이 병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가족 관계도 누가 옳다 그르다라고 정리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지금은 서로 많이 터치를 하지 않는 거 같아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거다?

“네 거리를 두는 거죠. 원래 거리를 두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정신장애인은 영원한 미성년(未成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 역시 정신장애인을 미성년으로 바라봅니다. 동의하십니까.

“정신장애인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 힘들어요. 그렇게 깊은 건 제가 충분히 몰라서요. 저는 (정신장애) 등급이 없어요. 대신 약은 먹어요.”

-‘치유의 여정은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지만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다. 같은 처지의 나그네들에게 안식과 위안과 응원을 얻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협력하라는 이야기입니까.

“제가 혼자 있을 때 갇혀 있으면 나아질 가능성이 많지가 않더라고요. 나아지려면 뭔가 상호작용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관계라도 만들고 늘려야 하는데 정신적으로 어려우면 그런 과정이 너무 힘들잖아요. 그런 관계맺음이 필요해요. 도움이나 제도도 필요하고.”

-병들고 가난하면 친구들이 다 떠나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전인수 멜랑콜리아 편집장 (c)마인드포스트.

-그럼 어떻게 협력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요. 사실 저는 거기에 대한 답을 내놓지는 못해요. 우울증, 조울증, 경계선장애 이런 분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 들어가면 모임이 항상 깨지더라고요. 이상하다. 뭔가 좀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증상을 이해받으려고 하는 노력이 없이 가벼운 모임만 하다가 깨지고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보이잖아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정리를 하면 굉장히 좋은 말과 경험이 많아요. 제가 잡지를 만든 건 그걸 책으로 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정신장애인들이나 그 가족 일부에서는 그렇게 고슴도치처럼 서로를 찌르더군요.

“외국의 자조모임이 흔하고 많은 것처럼 우리나라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깊은 관계는 힘들더라도 느슨한 관계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 병의 원인을 알고 싶어 방황했습니다. 결국 정신병원 입원이 종착지였습니다. 치유의 길이 너무나 힘겹고 멀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저는 죽지 못해서 살았다?(웃음) 저를 이해를 못하시는 분은 ADHD의 과잉행동이 뭐가 괴롭냐 해요. ADHD는 기복이 엄청 심해요. 혼자 고립되는 것도 엄청 심하고.

전 가끔 제가 자살을 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인 거 같다는 느낌을 받고는 해요. 제가 지금 죽어도 저를 모르는 사람은 뭐라고 하겠지만 저를 아는 사람들은 뭐라고 안 할 거다라고 생각하죠.

그 누구도 이걸 갖고 참고 살지는 않을 거다라는 생각들이 많이 들어요. 저만 제가 힘든 거를 알잖아요. 제가 힘든 걸 안다면 아무도 제가 자살을 해도 뭐라고 못할 거 같아요.”

-인간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죽음에 대한 책이 있는데 거기서 그러더라고요.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미래에 얻을 이득이 지금까지 얻은 이득보다 적으면 자살을 택한다고요. 사실 본인이 느끼기에 난 지금까지 너무 괴로웠고 계속 괴로울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중단을 하는 것도 선택의 일부다(라고 생각해요).”

-정신장애인들의 자살률이 비정신장애인에 비해 높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더 괴롭고 고통스러우니까요. 앤드류 솔로몬이 그런 말을 했거든요. 우울함을 느껴봤지만 심한 우울증보다 수치심이 더 고통스럽다고. 그래서 자기는 수치심을 많이 느끼는 형태였다면 자살했을 거라고. 정신장애인도 그런 수치심에 많이 노출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치유가 무엇이라고 정의내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치유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조금 덜 고통스러운 게 치유인 거 같아요. 뭔가 증상이 없어지는 건 가능하지 않고 몇 개의 증상이 없어진다고 해서 괜찮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에게는 상한선이라는 게 있어요. 특정 압력 이상의 압력을 받으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고통이 (상한선 아래로) 내려가는 게 치유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인수 멜랑콜리아 편집장 (c)마인드포스트.

-살면서 뼈아프게 후회됐던 일이 있습니까.

“후회됐던 건 예술을 하겠다고 했던 거죠(웃음). 진로를 바꿨던 선택이 조금 후회돼요. 예대로 간 게 후회돼요.”

-예술을 배우는 게 훨씬 낫지 않습니까.

“그때 좀 인생이 바뀌었어요. 그냥 모르겠네요.”

-뜻밖인데요.

“왜냐면 가서 배운 것도 명확하지 않고. 예술적 재능도 없었고. 방황을 너무 했고.”

-정신장애인에게 이 세계는 발버둥쳐도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받는 낙인이 우리를 죄 없는 죄인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페미니즘이 소수자를 모두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신장애인들도 소수자니까 같이 연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소수자와 약자를 모두 포함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면 좋겠는데 레즈비언이나 성소수자들을 만나면 본인의 힘든 것밖에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말을 꺼내는 순간 얘기가 안 돼요. 자기 힘든 것만 생각해요.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겠죠. 소수자들이 배려받아야 하는데 서로 다른 소수자들끼리 연대를 안 하고 공감을 안 해요. 그러니까 소수자를 위한다는 이야기가 사회생리학을 모르는 순진한 소리가 아닌가 싶어요.

페미니즘이 소수자의 이론이라고 등장을 했는데 정신장애인이 거기에 가면 소수자의 소수자 취급을 받잖아요. 그럼 도대체 무엇으로 주장해야 하지 그런 게 있어요.”

전인수 멜랑콜리아 편집장 (c)마인드포스트.

-선생님은 자기 병을 통해서 깨달은 부분들이 있습니까.

“깨달았다기 보다는 여러 가지를 볼 수 있었던 같아요. 다른 사람의 힘든 점을 이해하게 되고 예술 작품이나 문화적인 것을 이해할 때도 고통스러운 경험 없이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고통의 경험이 있으면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되죠.”

-저는 그런 경험이나 깨달음 없어도 병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아무것도 없어도 돼요. 그냥 건강하고 평범하고 보통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르게 살고 싶었다?

“다르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없으니까 아쉽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저에게는 없는 선택지죠.”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일단 가족에게 걱정 안 끼치고 살고 싶네요. 건강하게 살고 싶고.”

심리치유 매거진 '멜랑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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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0-04-28 13:42:02
전인수 편집장은 솔직한 인터뷰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멜랑콜리아 잡지 저도 사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