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나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이는 자부심이자 정체성입니다"
[이관형 기자의 변론] "나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이는 자부심이자 정체성입니다"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5.08 18:3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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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문제 안고 있어...조현병도 그 문제 중 하나일 뿐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변화의 힘 나와
당사자 선언은 나의 자부심과 정체성, 가능성의 탐색
내가 걸어온 길을 다른 이가 또 이어갈 것이라 믿어
이관형 작가.
이관형 작가.

"나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제 머릿속에는 날마다 떠오르는 상처와 기억들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머릿속을 계속 맴돌며 저를 괴롭힙니다. 삽으로 그것들을 머릿속에서 퍼내고 싶을 정도죠.

어느 날은 꿈에서까지 나타났습니다. 잠에서 깨어 보니 아직 새벽 5시였고, 제 티셔츠는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죠. 어찌나 괴롭고 힘들었던지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침대에 엎드려 그것들을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갔습니다.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께 그 상황을 말씀 드렸죠. 그리고 약을 늘리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지울 수 있는지? 아니, 먼 훗날이라도 더 건강해지면 그것들이 자연히 사라지게 되는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명확한 해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런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게 잘 해내고 계세요.”

한번은 제가 속한 교회 청년 공동체 사람들이 저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병을 알고 저를 두려워하거나 무시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어느 카톡방에서 그런 제 생각을 밝혔습니다. “정말 교회 사람들이 제가 아프다는 이유로 편견을 갖고 있나요?” 그리고 카톡방에 있던 한 형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대답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다 아파. 관형아, 넌 잘하고 있어.”

그 두 대답의 앞 문장은 묘하게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가 있고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건강에 있어서도 크고 작은 질환으로 아프기도 하고 장애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제가 조현병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다만 이 병은 금방 사라지지 않고, 어쩌면 평생 안고 살아갈 확률이 큽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저에게 달려 있는 것이죠. 절망적일 수 있지만, 그 뒷 문장의 대답이 제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훌륭하게 잘 해내고 계세요.”

“관형아, 넌 잘하고 있어.”

어쩌면 저를 결정짓고, 저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뒷 문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조현병 환자고 평생 아파해야 한다는 절망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말이죠. 조현병 환자라는 절망조차 희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제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떳떳이 외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세상은 이 문장만으로 저를 함부로 평가할 것입니다. 불쌍하고, 불행하고, 악하고, 연약한 존재로 볼 것입니다. 그것은 조현병 관련 뉴스의 댓글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의 어둠과 악함의 원인을 조현병 환자에게 돌리려는 책임 전가에서 온 것입니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클릭 수를 늘려서 광고비로 먹고 사는 기자들이 만든 프레임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열등감과 불만을 조롱과 비난을 통해 상대적 우월감으로 해결하려는 네티즌들의 댓글일 뿐입니다. 이것으로 제가 두려워하거나 상처를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이 문장은 제게 자부심과 정체성, 그리고 가능성을 탐색하게 해 주었습니다. 평생 조현병 환자로서 증상을 안고 사는 저의 모습,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17년 넘게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서 자살시도 한 번 하지 않은 제가 연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갖고도 혼자 1인 출판을 해 나가고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제가 의지력이 약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일부 사건으로 모든 조현병 환자들을 혐오와 증오의 대상으로 만드는 기자들보다, 댓글로 연예인들을 사망에 이르게도 만드는 악플러보다 제가 더 악하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더 이상 숨기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당당히 말하겠습니다. 많은 이들은 저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일부 문제로 전체를 매도하는 좁은 시각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편협한 사고는 그들의 부족함입니다. 오히려 제 삶의 모습과 태도는 그들 스스로의 생각과 마음을 반성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나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에 달하는 조현병 환자들과 여러 정신장애인들을 위해 먼저 나아갈 길을 닦아 놓겠습니다. <마인드포스트> 기자로, 장애 인식 개선 강사로, 공부하고 책을 만들면서 그 길을 가겠습니다.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상처받으면서도 꿋꿋이 걸어가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루어낸 것이 하나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은 하나도 나아지는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제가 갔던 길을 이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사회도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나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이것은 자랑입니다. 조현병 환자라는 사실이 제게는 자랑이고 자부심입니다. 20대의 시절, 10년 동안 약에 취해 침대에 누워 보내면서 소중한 일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과 햇빛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가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기쁨이자 행복이 되었습니다. 남들은 오지 않기를 바라는 월요일 아침이 제게는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조현병 환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이 모든 것이 조현병을 통해서만 깨닫고 느낄 수 있는 축복입니다. 언젠가 당신도 기쁘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조현병 환자입니다!”라고요.

 

이 글은 본 기자가 학업 중인 대구대학교 대학원 장애학과 수업 교재 <한국에서 장애학 하기(조한진 외)>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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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응원합니다. 2020-05-24 18:28:13
위기를 기회로!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저 또한 아픔과 슬픔이 있지만, 견뎌내고 이겨 내려고 합니다. 아픔이 있었기에 따뜻하게 사람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응원합니다. 지지합니다.

권혜경 2020-05-09 18:56:42
이관형 선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니 "인생은 해석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선생님의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가 매우 감동을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