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운명은 강하다, 그러나 자유의지는 더 강하다
[이관형 기자의 변론] 운명은 강하다, 그러나 자유의지는 더 강하다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5.13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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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결정론이 우생학 이름으로 근대에 안착
유전적 정신장애인은 낙태 가능...모자보건법의 우생학
삼청교육대, 잠재적 범죄 차단 명목으로 인권 탄압해
조현병 당사자를 예비 범죄자로 지목...언론이 공범

2002년 여름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가 개봉됐습니다. 이 영화는 미래인 2054년 미국 워싱턴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내용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리크라임’이라는 최첨단 시스템은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죄를 저지를 사람까지 미리 예측해 줍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특수 경찰들은 미리 범죄가 일어날 장소에 잠복하고 있다가, 범죄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이 나타나면 체포하여 감옥으로 보냅니다. 즉, 잠재적 예비 범죄자들을 미리 체포하여 범죄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막는 것이죠.

이 영화의 세계관은 ‘운명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영화 속 ‘운명 결정론’의 편에 선 인물들은 ‘프리크라임’을 맹신하고 지키려 노력합니다. 이 시스템은 오류가 없고 범죄를 100% 정확하게 예측함으로써 사회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반면 ‘자유의지’의 입장에 선 인물들은 누군가 반드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운명론적 관점을 거부합니다. 아무리 ‘프리크라임’이 누군가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 경고해도, 그것은 가능성일 뿐 인간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통해 충분히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음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관은 영화 속 먼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프리크라임’과 같은 시스템이 현실에서, 그것도 우리나라 법령에 따라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생학’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운명 결정론’이 더 강화되어 나타납니다.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지을 정도니까요.

모자보건법 시행령.

위의 캡쳐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 3조 제 2항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으로 “유전성 정신분열증, 유전성 조울증, 유전성 간질증, 유전성 정신박약, 유전성 운동신경 원질환, 혈우병, 현저한 유전성 범죄경향이 있는 정신장애, 기타 유전성 질환으로써 그 질환의 태아에 미치는 발생 빈도가 10퍼센트 이상의 위험성이 있는 질환”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태아에게 위와 같은 질환의 가능성이 10퍼센트 이상 있다면 낙태를 해도 좋다는 법적 승인을 내린 것이죠. 위에 명시된 질환 중 ‘현저한 유전성 범죄 경향이 있는 정신장애’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에게 유전성 범죄경향이 있으니 낙태해도 좋다는 판단은 마치 영화 속 ‘프리크라임’보다 더 운명론적이고 강제적이기까지 합니다.

이 모자보건법은 1973년 5월 28일 대통령령으로 제정됐습니다. 당시는 박정희 정권으로 경제 개발과 산업화 발전을 위해 인구 증가율을 낮추고 가족계획을 국가 시책으로 채택하던 때입니다. 즉 인구 억제 정책에 따라 불임 시술과 피임 시술을 지원·장려하는 차원에서 모자보건법이 제정된 것입니다.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왕 태어날 아기라면, 장애가 없고 건강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만들어진 법이 모자보건법입니다. 이는 우생학의 사상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물론, 낙태의 위험을 피해 이미 태어난 장애인들 역시 이런 우생학적 사회 분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영화 속 특수 경찰들이 ‘프리크라임’ 시스템으로 잠재적 범죄자들을 잡아다 가둔 것처럼, 전두환 정권은 치료감호제도를 만들어 정신장애인들을 가두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형벌만으로 교화·개선이 불가능한 상습범과 ‘정신질환자’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1980년 12월 18일에 사회보호법을 제정하고 치료감호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이 법은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만든 악법으로 “죄를 범한 자로서 재범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 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해 보호 처분을 해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법”이란 타이틀을 내걸었습니다. 이 문구만 읽으면 명분이 정당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법은 삼청교육대를 만든 법적 근거로서 뒷받침 됐습니다.

삼청교육대는 범죄자와 전과자를 포함해 무직자, 부랑자, 노숙자까지 입소 대상자로 삼았습니다. 심지어 할당량에 눈이 먼 경찰과 형사들에 의해 통금시간에 돌아다니거나 문신과 장발 등의 이유로, 혹은 길에서 술을 마시거나 심지어 버스를 기다리던 평범한 시민들도 갑자기 끌려갔습니다. 이들 중에는 지적장애인과 정신장애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장애인은 곧 위험 인물이라는 개념이 사회 인식 속에 전반적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인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쏟아지고 있는 조현병 관련 범죄 뉴스에 달린 댓글들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조현병 정신병자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영구적으로 격리가 필요합니다. 힘  없고 죄 없는 국민들이 언제까지 희생당해야 되냐고요. 격리시켜서 치료하세요”

“제발 국민들 좀 보호해주십시오. 병이 미약하든 약물치료든 어쨌든 일단 조현병으로 진단받은 환자들 제발 그들끼리 잘 치료 받게 법률 좀 마련해주세요. 정신병자들 무서워서 살겠습니까? 최근 흉악범죄 관련은 무조건 조현병 환자였습니다. 세금 더 내도 좋으니 제발 그들끼리 치료받게 해주세요”

“조현병 환자를 둔 가족입니다. 조현병 무섭습니다. 눈에 밟히고, 마음 아프더라도 병원에서 꺼내주면 안 됩니다. 그들은 거짓말에 굉장히 능하고 한 순간에 돌변합니다.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집니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이하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조현병 환자들 사회랑 격리 시키든지 관리를 해야 해요! 전과자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이에요!”

언론은 무분별한 보도를 통해 ‘조현병 환자는 곧 예비 범죄자’라는 프레임으로 또 다른 ‘프리크라임’ 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언론의 ‘운명 결정론’에 대한 세계관이 커질수록 그 프레임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는 언론이 만든 ‘프리크라임’을 맹신하며 사회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조현병 환자들을 따로 격리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영화의 결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예측에 따라 잠재적 범죄자로 지목된 주인공이 자유의지를 통해 범죄의 유혹을 이겨냅니다. 이는 곧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정확성에 오류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죠. ‘운명 결정론’의 세계관으로 무장되었던 사람들은 이 한 번의 오류로 인해 더 이상 ‘프리크라임’을 믿지 않게 됩니다. 결국 이 시스템은 폐기처분되고 말죠.

이처럼 잘못된 ‘운명 결정론’에 맞서 ‘자유의지’가 승리하는 영화의 결론이 우리 사회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물론 언론들은 ‘조현병 환자는 곧 잠재적 범죄자’라는 프레임 시스템이 오류가 없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동안 뉴스를 통해 근거를 뒷받침했던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하는 순간, 언론은 신뢰성에 큰 손실을 입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댓글을 통해 열변을 통하던 사람들도 더 이상 언론의 뉴스를 아무런 판단 없이 무분별하게 흡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론은 비슷한 형식과 내용의 조현병 관련 범죄 보도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들의 ‘프리크라임’ 시스템이 더욱 믿을 수 있고 절대적이며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영화 속 결말처럼 그 프레임도 언젠가 사람들의 외면 속에 폐기처분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 이 글은 본 기자가 학업 중인 대구대학교 대학원 장애학과 수업 교재 <한국에서 장애학 하기(조한진 외)>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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