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
[책] 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
  • 마인드포스트 편집부
  • 승인 2018.06.2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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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속 친구, 뮤즈, 신, 폭군에 관한 심리학 보고서
환청...자아가 던지는 '소통의 대화'

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찰스 퍼니휴 지음, 박경선 옮김, 박한선 감수/444쪽/2만원/에이도스 출판사

 

"아이들은 왜 현실에 없는 가상의 친구를 만들고 서로 대화하는 것일까?"

"운동선수의 혼잣말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

"잔다르크가 들었던 '신의 목소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머릿속 목소리 환청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버지니아 울프, 사무엘 베케트, 찰스 디킨스 등 작품 속 등장인물들과 대화를 나눈 작가들의 창의성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엄마에게 "머릿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라고 말한다면 엄마는 즉시 조현병을 의심하고 걱정에 빠질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환청을 들으며 괴로워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수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말을 거는 목소리가 용기를 북돋우거나 건전한 의미에서 비판하고, 혹은 창의적인 영감을 제공해준다면 어떨까?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인간의 의식과 마음에 접근할 수 있는 탁월한 실마리가 되지는 않을까?

환청, 혹은 머릿속 목소리에 대한 대중적 편견과 선입견에 반기를 드는 책이 나왔다. 저자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영국 더럼대 교수 찰스 퍼니휴다. 과학 분야의 저널에 다수의 글을 발표했고, 심리학적 방법론을 적용한 글쓰기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를 친구처럼 격려하고, 뮤즈처럼 영감을 주는 내면의 목소리가 단순히 조현병 증상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가 던지는 소통의 도구이자 대화의 실마리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환청=조현병'이라는 등식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지난 1938년 독일의 쿠르트 슈나이더 박사가 환청을 조현병의 1급 증상 가운데 하나로 명명하면서 이러한 믿음이 대중적으로 굳어졌다. 저자는 이러한 편견에 맞서 평범한 사람들도 실재하지 않는 목소리를 듣는다고 강조한다. 조현병 환자의 75%가 환청을 경험하는 건 맞지만, 그런 목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전부 조현병에 걸린 건 아니라는 소리다.

사실 환청은 조현병 뿐 아니라 기타 정신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는 증상이다. 심지어 정신병적 소견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나타난다. 그러나 누군가 목소리를 듣는다고 하면 의사와 일반인을 막론하고 두려워하며 기피한다. 언론매체에서 조현병이나 환청을 다루는 방식도 이와 같다. 이 책에 따르면, 언론매체 2012-2013년 사이에 올라온 200여 개의 신문기사를 분석한 결과 환청을 통제력 상실, 폭력, 자해 등과 연관시켰으며, 범죄, 자살, 자살 충동 등과 연관시킨 기사들이 대부분이라는 게 밝혀졌다.

책은 1920-1930년대 인간의 의식을 탐구하면서 '내적 발화(inner speech)'와 '혼잣말(private speech)'에 관해 연구했던 피아제나 비고츠키의 개념과 목소리 환청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가 밖으로 소리내어 말하는 외적 발화가 내면화되면서 내적 발화가 생긴다는 비고츠키의 주장을 파헤치는 저자는 아이들의 혼잣말에서 인간 의식의 사회적 기원을 밝혀내고, 내면의 혼잣말이 내적 자아와 나누는 일종의 소통적 대화라고 주장한다. 곧, 내적 발화가 대화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환청은 인간의 마음과 사고의 작동원리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다. 저자는 역사, 문학, 철학, 예술, 심리치료, 뇌영상 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성과를 토대로 '내 안의 목소리'의 정체를 해부한다.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혼잣말하고, 가공의 놀이 친구를 만들어 대화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을 비난하고 격려하는 혼잣말을 하는 운동선수, 당대에는 흔하지 않았던 묵독이라는 굉장히 이상한 행동을 했던 성 암브로시우스,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단어를 통해 독자에게 말하고, 읽기를 통해 작가의 말을 듣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 동생 테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빈센트 반 고흐, 중세시대의 신비주의자로 유명한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노리치의 줄리안과 마저리 켐프, 그리고 잔다르크의 일화의 의미를 대화적 사고의 맥락에서 살피는 이 책은 인간 내면의 목소리와 사고의 작동, 그리고 목소리 환청이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외적 대화가 사회적으로 형성되듯 인간의 내면적 자아도 다양한 얼굴을 하며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아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 여러 조각이 뭉친 것으로, 이 파편적인 자아가 서로서로 대화를 나눈다.

“누구나 파편화되어 있다. 일체(一體)의 자아 같은 것은 없다. 우리 모두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어서 매 순간 일관된 ‘나’라는 환영을 만들고자 분투한다. 누구나 어느 정도씩은 해리되어 있다.”(332쪽)

우리의 머릿속 목소리는 우리의 자아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이다. 설령 자신을 괴롭히는 폭군이라 해도 말이다. 목소리는 내면의 자아가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대화이고, 의미이며, 소통하고자 하는 표현이다. 운동선수의 혼잣말,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중세의 신비주의자, 목소리 환청에 시달리는 환자, 예술가의 창의적 작업은 내면의 자아가 던지는 소통적 메시지다. 따라서 주변의 누군가 목소리를 듣는다고 말한다면, 우려와 공포의 시선을 거두고 엘레너 롱든의 에피소드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엘레너 롱든은 어린 시절 조직적인 성폭력을 당한 이후 지독한 환청에 시달렸다. 심지어 "머리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머릿속 목소리를 내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그의 정신과 의사는 암 치료가 더 쉽기 때문에 조현병보다는 암에 걸리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엘레너 롱든은 테드(TED) 강연을 통해 자신이 겪어온 사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당신의 문제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다.”(310쪽)

 

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찰스 퍼니휴 지음, 박경선 옮김, 박한선 감수/444쪽/2만원/에이도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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