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바란다, 정신장애인의 일자리를 보장하라”
“국가에 바란다, 정신장애인의 일자리를 보장하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5.14 2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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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사회서비스 사업에 정신장애인 참여 막으라고 통보
금기(禁忌)가 있기에 욕망하는 게 아니라 절망하는 것
정신장애인이 직업의 영토에 편입되도록 국가가 앞장서야

14일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8개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사업 중 5개 사업에서 정신장애인이 근무를 했다는 이유로 정신장애인 결격사유를 이 사업들의 해당 법에 규정하라고 보건복지부에 통보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이용자 보호를 위해 각 사업의 제공인력의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지자체가 제공인력 결국 사유를 철저히 확인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 것이다.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사업 운영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장애인활동지원, 노인돌봄,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가사·간병 방문지원, 지역사회서비스투자사업, 발달재활서비스, 언어발달지원, 발달장애인부모상담 등 8개 사회서비스를 전자바우처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가 제공기관에서 바우처로 결제하면 사회보장정보원이 비용을 지급하는 구조다.

쉽게 말해 저 8개 사회서비스의 한 곳에 인력으로 제공돼 일을 하면 나중에 정부 기관을 통해 돈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정신장애인 서비스 제공 내역 (c)감사원.

그런데 이 사업 서비스 중 5개 사업에서 중증정신질환자 24명이 일했다는 이유로 이들의 근로 참여를 막아야 한다는 게 감사원의 입장이다.

우선 장애인활동지원, 노인돌봄, 가사·간병 방문지원 등 3개의 사업은 모법이 정신장애인이 제공인력에 포함되지 못하도록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활동법 제29조와 노인복지법 제39조 13은 정신건강복지법 제3조1항에 따른 정신질환자의 경우 해당 일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 제3조1항에 보면 ‘정신질환자란 망상, 환각, 사고(思考)나 기분의 장애 등으로 인해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정신질환이 있으면 치유된 정신장애인은 어디에서도 일을 할 수 없다. 쉽게 말해 ‘정신병자’는 바리스타나 공장 부품 조립 이외에 어떤 직업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이 안에 내재돼 있는 것이다.

감사원 보고서는 결격 정신장애와 관련해 “조현병, 망상장애 등 중증정신질환 관련 코드를 주상병으로 하여 의료기관에서 90일 이상 진료 받아 서비스 제공에 위험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를 선별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용자 보호를 위해 각 사업에 제공인력 결격사유를 규정하라”고 했다.

정신장애인은 의사, 약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위생사, 영양사 등의 자격증을 딸 수 없다. 하다 못해 뱃사람(선원)도 될 수 없도록 관련 법들이 규제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근본 이유는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공통의 이데올로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안적 시선으로 분석하면 정신장애인은 이성이 없는 존재로 길거리에서 플라스틱 통을 사람에게 휘두르기도 하고, 하다 못해 이마트에서 껌을 한 통 훔칠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이 같은 행동을 비정신장애인이 하면 언론이 기사화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비정신장애인인데 슈퍼에서 껌을 훔쳤다고 언론이 ‘대서특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정신장애인은 다르다. 같은 방식으로 슈퍼에서 새우깡을 훔치면 이들은 기사화된다. 언론은 그렇게 사유한다. 정신장애인으로 밝혀진 어떤 존재가 정당한 금액을 주지 않고 몰래 슈퍼에서 꿀꽈배기를 훔쳤다. 이는 사회적 안전과 건강성을 침해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걸 기사화해야 한다라고.

그리고 그 기사를 접하는 시민은 정신장애인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한 번 더 각인하고 이들이 공동체에서 벗어나 산골짜기 정신병원이나 정신요양시설에 들어가 평생을 살아야 하는데 기꺼이 합의하게 된다.

기자는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뱃사람이 된 적이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힘든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뱃일의 노동 강도는 높았다. 그러나 기자는 뱃사람들에게 어울려 그 일을 마치고 정당한 돈을 받고 하선(下船)한 때가 있다.

정신장애인은 정신장애인이기 때문에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결격 규정을 미리 규정함으로써 세상으로 나갈려는 의지를 선제적으로 박탈당하는 데 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이 왜 간호사가 될 수 없는가. 정신장애인이 왜 영양사도 될 수 없는가. 의사는 왜 될 수 없는가. 이 왜에 대해 사회는 직접적 응답을 거부한다. 다만 이미지에 의해 드러나는 정신장애인의 폭력적 위험성에만 ‘노동 결격’의 사유를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신장애인은 산후조리원도 보육시설도 운영할 수 없다. 정신장애인은 돌봄의 대상일 뿐, 어떤 경우에도 돌봄의 영역 안에만 있어야 하며 돌봄의 수동적 존재 대신 돌봄의 주체가 되려 한다면 법과 사회, 이데올로기는 이를 완강히 막아 서게 된다.

제공인력의 결격 사유로 내세운 법령 및 지침들 (c)감사원.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이 편견을 뚫고 승리했다는 직업적 서사는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바리스타이거나 주유소 주유원이거나 부품조립을 단순 반복하는 형태로 제한된다. 우리 헌법은 직업의 자유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는데도 정신장애인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장애인활동지원과 노인복지, 가사·간병에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참여를 봉쇄한다는 이 이데올로기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2016년 1월부터 2019년 6월까지 결격사유가 없다는 5개 사업에 투입된 인력은 총 8만4천353명이었다. 이 중 정신장애인의 인력은 24명이었다. 이들은 감사원 보고에 따르면 ‘조현병 등 중증정신질환자’들이었다. 이들의 인력 비율은 전체의 0.2%에 불과하다. 이들이 사고를 쳤는가.

자주 인용되는 검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8년 범죄건수는 200만여 건이고 이중 정신장애인에 의한 범죄는 8천여 건, 0.4%였다. 그렇지만 이 같은 물리적 통계에 근거해 발화해도 정신장애인이 지니는 위험성과 폭력성의 이데올로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고기를 물고 있는 곰의 아가리처럼 너무나도 완강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왜곡된 시선을 고쳐야할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다시 한 번 보자. 8개 사업 중 정신장애인의 결격 사유를 규정하지 않는 5개 사업을. 이 사업은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 지역사회서비스 투자사업, 발달재활서비스 사업, 언어발달지원 사업, 발달장애인 부모상담 지원사업이다.

여기에 감사원이 보고했듯이 “90일 이상 정신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았을 경우”에 “서비스 제공에 위험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의 선별”이 그 24명이었다. 우리가, 정신장애인이 왜 위험한지 설명해 보라.

정신장애인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서비스 투자사업에 참여해 일도 할 수 없는가. 발달재활사업은, 발달장애인 부모상담 지원 사업에 왜 정신장애인이 참여할 수 없는가. 역사적으로 공고화된 정신장애인 위험의 서사는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엄연히 차별의 그림자로 덮여 있다. 왜 우리가 위험한가. 우리가 위험하다는 근거를 대 보길 바란다.

금기가 있기에 욕망한다는 프로이트적 사유가 있다면 우리는 금기가 있기에 절망하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이 노인을 돌보면 안 되는가. 정신장애인이 장애인활동지원을 하면 안 되는가. 어떤 근거 때문에 우리, 정신장애인은 노동의 영토에 편입할 수 없는가. 감사원은 그 근거를 대기 바란다.

듣기 좋은 말로 노인복지법과 장애인활동법에서 정신장애인의 결격사유를 두고 있고 그 말미에 “전문의가 요양보호사·활동지원인력으로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했는데 정신장애인이 직업을 갖기 위해 일단 의료적 시선에서 전문의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 아닌가.

전문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치유된 정신장애인은 직업을 갖는 게 그만큼 어려워진다. 전문의에게 반항하라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자유로운 직업의 선택을 갖기 전에 정신장애인은 의료 권력에 순응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외박을 하기 위해 쥐죽은듯이 정신병동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정신장애인의 처지와 고스란히 포개지는 풍경이다.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다. 정신장애인에게 노동은 치유의 한 부분이다. (c) hanion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다. 정신장애인에게 노동은 치유의 한 부분이다. (c) hanion

감사원은 ‘중증 정신질환자’가 서비스 제공인력으로 활동한 사례도 밝혔다. 거기에 보면 정신장애인 D씨는 건강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채용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조현병 증상으로 의료기관에 내원해 치료받았다”고 적었다.

이 정신장애인 D씨는 자신의 병명을 발화하는 순간 직업을 잃을 수 있다. 그러므로 주치의를 찾아가는 것을 극도로 숨겼을 것이다. 세상은 정신질환을 숨기지 말고 정신과를 찾으라고 말하지만 실상 세계의 풍경은 변한 게 없다. 정신질환이 있는 한 인간은 그 병을 숨기게 된다.

커밍아웃은 그만큼 위험하고 그만큼의 차별 받음을 감수해야 하는 모험인 것이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34조는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직업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일자리 창출, 창업 지원 등 고용촉진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유로운 취업의 법적 확인은 현실 세계와 모순적으로 충돌한다.

지난 2019년 7월 김승희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은 정신장애인의 직업생활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만한 기구가 없으므로 정신질환자직업생활지원센터의 설치와 운영의 근거를 마련하는 법안을 발의했었다. 이 법은 아직 국회 보건복지소위에 계류 중이다. 21대 국회가 출범하면 자연 소멸된다.

정신장애인이 노동의 영토로 편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가와 법의 무지에 있다 (c)health.re.kr
정신장애인이 노동의 영토로 편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가와 법의 무지에 있다 (c)health.re.kr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다. 김승희 의원처럼 정신장애인의 노동과 생활이라는 사회적 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들은 있다. 그러므로 현실이 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정신장애인은 더 이상 정신적 훼손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세계의 ‘밥버러지’들이 아니다. 그 밥버러지들을 누가 생산해 냈는가. 바로 국가가 아닌가. 정신장애인이 합법적으로 다양한 직업의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국가 스스로 짓밟는 행동이 아닌가. 국가는 반성하라.

그리고 정신장애인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라. 정신장애인이 내적으로 힘들다면 그들은 알아서 약을 먹고 알아서 정신병원을 찾는다. 물론 가고 싶은 병원을 찾는 것이 그만큼 힘들지만 적어도 자신의 병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을 컨트롤하면서 자신의 일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존재들에게 왜 국가는 취업의 권고가 아니라 취업의 박탈을 우선순위로 내세우는가 말이다.

얼마나 큰 요구를 해야, 얼마나 강한 목소리를 내야 국가는 우리 정신장애인을 되돌아보는 것일까. 우리 정신장애인이 장애인활동지원사업에, 노인돌봄서비스 사업, 가사·간병 방문 사업이라는 고귀한 노동의 영토에 편입되기 위해 얼마나 더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국가에 바란다. 우리를 배제하지 말라. 우리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존재다. 그 일자리를 나눔이, 그렇게 하찮고 불편한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바리스타 하나에만 목을 매야 하는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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