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시인 김미현의 시선] “회복은 기적 같은 선물...지나온 날들에 감사해”
[당사자 시인 김미현의 시선] “회복은 기적 같은 선물...지나온 날들에 감사해”
  • 김미현
  • 승인 2020.05.15 1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존감 낮은 아이로 살아와…아빠의 주사에 심한 우울증
중년의 나는 예쁘지 않고 조현병 있어도 내 모습 좋아
되돌아보면 모두 소중한 기억들…현재를 사랑하며 살고파

어느덧 봄이 지나가고 있다. 아빠는 2017년 1월 25일에 돌아가셨다. 벌써 3주기를 맞이했다. 나는 아빠를 보내고 하늘에서 날 지켜주는 아빠 덕분에 참 감사하게도 잘 살아가고 있다. 내 병명은 조현병. 24살 1999년에 처음 발병해서 여섯 번 정도의 입원을 했고 현재 약물치료도 잘 받고 있다. 2016년 1월에 일주일인가 보름 정도 입원을 한 이후엔 지금까지 재발하지 않고 매우 잘 지낸다.

내 나이 벌써 마흔다섯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난 지금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약도 잘 챙겨 먹고 있고 여가 생활도 잘 하는 편이고, 나를 잘 관리하고 있다. 책도 꾸준히 보고 정신장애인 팟캐스트 방송 텐데시벨에도 참여하고 요즘에는 마인드라디오라는 정신장애인들이 참여하는 라디오 방송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제일 활동이 많은 건 정신장애인 예술 단체 안티카에서의 활동이다. 물론 코로나19 때문에 모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안티카에 참여하면서 연극을 해보기도 했고, 팟캐스트 방송과 그 밖에 여러 예술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해 오고 있다. 특히 작년 2019년 10월 26일에는 정신장애인들의 축제 매드프라이드(Mad Pride)가 광화문광장 세종로 공원에서 열렸는데 참여했던 나는 참 가슴 뿌듯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런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는 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나는 글을 쓰고 있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개인 블로그에 시를 습작해서 올리고 전자책도 세 권 출간하고 종이로 된 책으로도 한 권 출간 됐다. 텐데시벨을 활동하며 같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공동 집필한 텐데시벨이라는 수기집과 첫 시집 ‘눈을 감으면’은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물론 많은 양의 판매를 올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랑스럽다. 그리고 작년에 출간한 ‘그림자 속 낮길’도 블로그에서 습작한 시를 퇴고해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출간하게 됐다. 물론 종이로 된 책은 알라딘과 네이버스토어에서만 판매되고 있지만 나름대로 흡족하다.

아빠는 살아 계실 때 나를 참 많이 힘들게 했다. 아빠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술을 드셨으니까. 아빠는 알코올중독자로 주사도 심했기에 가족을 많이 힘들게 했다. 아빠를 사랑했지만 증오심과 미워하는 마음도 컸다.

엄마와 나를 괴롭힐 때는 차라리 아빠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빠에게 나는 참 못된 딸이었다. 아빠는 술만 안 드시면 법 없이도 사실 분이었다. 조용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술을 안 드실 때는 참 다정다감하고 자상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술은 우리 집안의 화목을 빼앗아 갔다.

나는 어렵게 사는 우리 집의 가난이 싫었다. 아빠가 술을 많이 드시는 것도 싫었고 엄마와 아빠가 자주 다투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었다. 내 외적인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자존감도 낮았다. 불평과 짜증이 많았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마흔다섯 살의 나는 나를 사랑하는 어른으로 변했다. 예쁘지도 않고 약물 부작용 때문에 뚱뚱한 모습의 조현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자이지만 나는 지금 내 모습이 좋다. 이게 바로 회복의 길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내가 조현병에 걸려 정신장애인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을까? 내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시를 쓰고 책을 출간하는 시인이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정신장애인으로 2003년에 장애등록돼 장애인으로 살면서 많은 기쁨의 순간을 맞이했다. 정신장애인들의 문학회 모임에 나가 글을 쓰고 백일장에 나가 장원과 준장원을 하고 그래서 등단도 하고 책도 출간하기까지 모든 게 정신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았기에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아빠로 인해, 가난으로 인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온 나이지만 나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비록 약을 먹고 살아가지만 육체적으로는 건강한 사람이었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아빠였지만 부모님이 두 분 모두 살아계셨고 가난했지만 먹고 씻고 잘 수 있는 집이 있었다. 되돌아 봤을 때 이 모든 건 참 소중한 것들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그것도 서울에서 태어나 부모님과 함께 잘 살아 왔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하고 지금은 노모(老母)와 함께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가끔 부자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하긴 하지만 회복되어 가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회복이라는 건 재발하지 않고 지금의 순간에 잘 적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회복의 길에서 나는 지그시 두 눈을 감고 회상해본다. 지나온 날들에 감사하며 모든 고통과 좌절의 순간에서 벗어난 내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들을 떠올리며.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