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수 “그렇죠. 운명은 개척하는 거예요”
전현수 “그렇죠. 운명은 개척하는 거예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5.18 20: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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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정신과 의사 전현수 원장 인터뷰
명상의 핵심은 자기 현재에 집중하는 것
불교 만난 후 세상 구성 요인과 원리 알게 돼
깨달음 얻기 위해 병원 문 닫고 세계 떠돌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원리 알면 삶에 도움돼
삼매에 들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지혜의 문 열려
일어나는 괴로움을 정확하게 보면 줄이거나 없애 수 있어
조현병·양극성장애 환자들은 정신과 약 절대적으로 필요
현재에 집중하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해야
인간은 타자의 도움 없이 한 순간도 존재 못해
세계는 인과의 고리...마음 다스리는 훈련 필요
마음 다스리고 정확하게 사물 보면 행복해질 수 있어
진리 체득 후 정신장애인들에 도움 주고 싶어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기자에게는 오랜 의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세상이 말하는 ‘긍정의 힘’이었다. 폭압적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한 걸음 더 앞서거나 남들을 밟아야 하는데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력과 권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것을 갖지 못하는 이들은 언젠가는 강자가 되겠다는 꿈을 소망하며 책을 펼치게 된다. 바로 ‘긍정’이라는 키워드다.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긍정의 소비적 가치는 한때 힘을 발휘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긍정과 관련된 코드의 책들을 보면서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애를 썼다. 마치 학교에서 성적이 꼴찌인 아이가 아침과 밤마다 “나는 전교 1등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1등을 놓치지 않겠다”는 신념을 반복하는 위험한 자기 확신이 그랬다.

이 이상과 현실이 상호 부작용할 경우 인간은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정신의 동굴로 숨어버린다. 정신질환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논리인데 우리 사회는 이 불안한 가설을 진실인양 강요하고 있다. 이 의문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정신과 전문의를 알게 됐다. 전현수(64)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이다. 1985년 전공의 2년차 되던 해 아내를 통해 불교학자 고익진 박사를 만나면서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고 박사는 전현수 원장에게 어렇게 말했다.

“불교는 인간의 고통을 없애는 완벽한 시스템이다. 의학도 인간의 정신적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다. 불교가 가진 인간의 고통을 없애는 시스템의 용어만 바꾸면 훌륭한 정신의학이 될 것이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고 박사가 질문을 주면 이를 공부해서 다음 달에 가서 답을 하고 확인했다. 불교와 정신치료의 융합은 그렇게 구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고 박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 원장의 수행도 답보 상태에 이른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위빠사나 수행법을 담은 서적들을 접하게 된다. 2003년, 그는 병원 문을 닫고 미얀마로 향했다. 미얀마 양곤에서 탁발을 하며 진리를 갈망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불교, 심리학, 정신의학 전공자들과 불교와 심리치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불교심리치료학회로 발전한다. 그는 윤회(輪回)를 알고 싶었다. 다시 길을 떠났다.

2009년 말레이시아 타이핑의 명상센터를 돌아 스리랑카로, 다시 인도로 가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그는 의문을 물었다. “생과 생이 연결돼 있습니까?” 달라이 라마는 태어나자마자 전생이 기억났다고 했다. 그는 수행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전생을 보고 미래생을 보게 됐다. 그리고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은 치밀하게 과학적이고 검증된 진리인 것을 알게 된다.

당시 한국에서 명상에 의한 심리치료는 부재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정신의학과 명상에 관한 논문들이 한 해 수천 편씩 쏟아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이를 접한 한국의 정신과전문의들은 한국에 이를 역수입했다. 2017년 한국명상학회가 탄생했다. 전 원장은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기자는 전 원장에게 긍정이 주는 위험스러운 논리에 대해 물었다. 그는 “긍정·부정이 아니라 사물을 정확하게 보는 훈련을 해야 된다”고 답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라는 말일까. 나의 소견으로는 그의 말을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사물의 진실을 정확히 봐야 한다고 요청했다. 불교가 아라한식이든 팔정도니 논리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착하게 살라는 인류 보편의 요구를 어떻게 실천하며 살 것이냐는 의미로 귀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 원장은 “한 가지 죄를 지으며 그 업이 수천 개로 오고 한 가지 선을 지으면 그 업이 수천 개로 온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 문정동의 그의 병원을 찾았다. 그 병원 출입문에는 이번 달과 다음 달에 각각 일주일간 ‘수행’을 이유로 잠시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현수 원장.

-만성정신질환자에게 프로이트 정신분석을 하지 않듯이 명상도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한 건 전혀 없어요. 옛날에는 명상 하면 동굴에 들어가서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걸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명상에 대해서 알려지면서 서양에서도 채택되고 있어요. 명상의 핵심이 자기 현재에 집중하는 거예요.

만성질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정신적 문제가 있는 이들이 현실 생활을 잘 못하는 특징이 있어요. 예를 들면 밥을 먹을 때 오늘 뭐할까 생각하고 잘 때는 기분 나쁜 일 생각하죠. 잘 때 명상을 하면 현재의 호흡에 집중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올바르게 지도 받으면 누구든지 정신건강이 좋아져요. 제대로 하면 나쁘지 않아요.

단 이건 있어요. 명상도 여러 종료가 있는데 삼매(三昧)를 닦는 명상이 있어요. 그건 호흡을 통해 현재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그때 정신적 토대가 굳건하지 않고 자칫 너무 심하게 집중하다 보면 정신건강에 안 좋아지는 경우는 있어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이가 지도를 받으면서 명상을 하면 제일 좋죠.”

-수행을 위해 병원 문을 닫고 미얀마와 국내 선원을 찾은 건 어떤 절박함 때문이었을까요.

“내가 불교를 만난 게 1985년 전공의 2년차 때였어요. 그때 내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게 됐어요. 세상이 어떻게 구성됐고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를 알고 난 뒤에 그것이 생활에 도움이 됐어요.

또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알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정신적 문제도 해결되겠다 (생각했죠). 그래서 내가 불교하고 정신치료 두 길을 가게 됐죠. 병원을 문을 닫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철저하게 명상을 경험하고자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죠.”

-세상이 돌아간다는 원리는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은 자기 생각으로 생각하는데 세상은 어떤 원리에 따라 돌아가요. 세상은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것 같아도 두 가지로 구성돼 있어요. 하나는 생명 가진 존재이고 하나는 생명이 없는 것이에요. 이 두 가지로 나눠요. 생명 가진 것은 잘 보면 무수하게 많지만 나와 남으로 나눌 수 있어요. 생명 가지지 않은 것은 물리 법칙에 따라 돌아가요. 나름대로 돌아가는 원리가 있어요.”

-하필이면 남방불교를 수행의 도움처로 삼으셨습니까.

“불교는 세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초기 불교, 대승불교, 티벳 불교가 있어요. 내가 해 보니까 초기 불교는 과학이고 검증된 진리예요. 그게 나한테도, 정신과 치료를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됐어요. 그래서 그걸 하게 됐죠.”

-남방불교 수행법인 위빠사나(통찰)는 호흡법을 의미합니까.

“그건 아니에요. 남방불교 수행법은 사마타와 위빠사나에요. 사마타는 고대 팔리어인데 삼매를 닦는 수행이에요. 선정(禪定)은 들어봤죠? 삼매는 순간삼매, 근접삼매, 본삼매가 있어요. 본삼매를 선정이라고 하죠.

불교 수행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몸, 귀, 코, 정신으로 관찰하는 건데 그건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면 맨눈으로 보면 세포가 보이나요. 세포 보려면 현미경이 필요하죠. 사마타는 마음이 한 대상에 확고하게 집중된 상태의 삼매예요. 삼매가 되면 우리 육안(肉眼)으로 볼 수 없는 지혜의 눈이 열려서 보여요.

물질은 두 가지가 있는데 손의 경우 덩어리로서의 물질이고 이걸 이루는 고요한 성질이 있어요. 그건 존재하는 동안 안 변해요. 그 고요한 성질을 보는 것이 위빠사나예요.”

-이데아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데아라기보다는…모든 물질은 존재했다 사라져요. 존재하는 기간은 고유한 성질을 유지해요. 정신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삼매를 얻기 전에 보면 이 손은 안 변해요. 내 거잖아요. 그런데 지혜의 눈이 생겨서 보면 이걸 이루는 구체적이고 궁극적 물질이 보여요. 그것이 계속 일어났다 사라져요.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건 변하지 않고 이건 내 거라 할 수 없는 (상태가 돼요).

궁극적 물질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내 통제를 따르는 게 아니에요. 정신도 보면 정신 인식 과정이 있고 우리가 뭘 생각하는 순간에 정신들이 착착 일어나요. 그리고 그 각각의 정신이 우리에게 작용하는 게 다 보여요. 그걸 위해 수행하는 거죠.”

전현수 원장.

-정신의학계에서 명상치료를 이단(異端)으로 보지 않을까요.

“이단 아니에요. 내가 본격적으로 명상을 한 건 2003년인데 어지간한 건 그때 다 깨달았어요. 그렇지만 내가 명상한다는 소리는 안 해요.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니까. 그러다가 2017년에 가톨릭병원의 채정호 교수를 중심으로 정신과 의사들이 대한명상의학회를 만들었고 제가 고문이 됐죠. 그때부터는 명상한다면 알아주니까.

이단이 아니에요. 완전 정통이에요. 왜 정통이냐면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이 연수 받으러 미국을 가요. 한국에서는 명상에 관심도 없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미국에 가보니까 명상을 이용한 프로그램들이 많고 관련 논문이 수천 편이 나와요. 그래서 미국에서 명상을 접해서 한국 들어와서 명상하는 거죠.

내가 쓴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미국의 유명한 위즈덤출판사(Wisdom Publications)에서 출판됐어요. 또 2018년에 불교정신치료 강의라는 책을 냈어요. 놀라운 게 미국의 스프링거(springer) 출판사가 제 책을 출판하기로 결정이 됐어요. 내가 보니까 서양에서도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서양의 어려운 문제들을 뚫고 나가는데 불교에 관심을 많이 가지구나 생각하죠. 이단이 아니에요. 앞으로 주류가 될 거예요.”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일까요.

“그렇죠. 우리가 몸과 마음에서 오는 괴로움을 피할 수가 없어요. 안 아플 수가 없잖아요. 정신적으로는 누가 나를 배신하면 기분 나쁘지 않을 수 없잖아요. 또 사람과 어울려 사니까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게 괴로움이 안 올 수가 없어요. 그 괴로움을 정확하게 보면 줄이거나 없앨 수가 있어요.

몸에서 오는 고통은 아무도 피할 수 없어요. 또 누구나 암에 걸릴 수 있어요. 그렇지만 몸의 속성을 알면 괴롭지 않게 투병 생활할 수 있어요. 예컨대 나는 모기가 내 몸을 물면 그냥 가만히 있어요. 2003년 이전에는 모기가 오면 쫒거나 잡았거든요. 2003년 그해 내가 미얀마에 가서 한 달 수행을 했는데 여름철이었어요. 거기서 수행은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보는 거예요.

내게 모기가 앉더라고. 그래서 가만히 있어 봤죠. 그러다 보니까 일어나는 현상을 정확히 보게 되더라고요. 놀라운 경험을 한 게 옛날에는 이걸 정확하게 보기 전에는 모기가 물면 이만큼 가려웠는데 이제는 별로 안 가려워요. 나는 의사잖아요. 이 메커니즘은 뭘까 보니까 어떤 요인이 작동해요. 일단 내가 감정적 반응을 안 해요. 그냥 담담하게 보는 거죠. 감정이 우리의 고통을 증폭시키는데 그게 줄어들어요.

두 번째는 이걸 계속 반복하니까 담담해져요. 가려운 걸 있는 그대로 보면 가렵다가도 안 가려워요. 그 안 가려운 게 마치 전체가 안 가려운 것처럼 느껴져요. 그걸 겪고부터는 모기가 날아오면 ‘아, 피도 좀 주자’(웃음).”

-혹시 삶의 문제를 해결하며 바쁘게 살아가지만 마음만은 고요한 상태가 깨달음 아닐까요.

“깨달았다고 해도 모든 게 다 일어나요. 그런데 그걸 보는 게 다른 거예요. 누가 나를 긁는다고 할 때는 그걸 다르게 보는 거죠. ‘아, 저 사람도 힘들어서 그러고 그런 마음 상태 속에 있구나’ 느끼는 거죠. 그걸 보고 내가 괴롭게 느낄 때 내가 괴롭게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이 돼 있구나. 그렇게 보는 게 달라져요.

물론 고요한 마음도 있겠죠. 마음이라는 건 어딘가에 가서 영향을 받아요. 마음이 괴로울 때는 괴로운 거에 마음이 가 있는 거예요. 그럴 때 마음을 괴롭지 않은 곳에 두면 고요함으로 연결이 되겠죠.”

-이 세계는 명상과 참선을 내세운 사기꾼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렇죠. 옛날에는 참선이라고 했고 지금은 명상인데 명상이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돈벌이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겠죠. 사람들을 혹하게 하려고 자기가 경험 안 한 거, 또 상대방이 경험 못 한 걸 경험할 수 있다고 하면서 현혹시키는 게 있겠죠. 조심해야죠.”

-불교정신치료는 인간의 괴로움을 덜어보자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경우 정신과 약물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초점이 괴로움을 줄이는 건데 약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특히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 환자들은 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어떤 사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가 있게끔 하는 뭐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인과의 법칙이죠. 그래서 약이 필요하면 약을 먹으면서 올바른 노력을 해야 돼요.

정신질환에 걸리는 건 옛날에 잘못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거기서 벗어나려면 올바른 노력을 해야 하는데 병의 상태가 위중하면 올바른 노력을 하기가 힘들어요. 필요한 경우에 약을 써야죠. 환청, 망상을 갖고 올바른 노력을 할 수가 없어요. 그때 약을 쓰면서 안정되고 여유가 생기면 자기에게 도움이 되게끔 노력해야죠.

그런데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 환자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명상을) 해야 해요.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는 세 가지가 중요해요. 첫째, 약물 치료. 그 다음이 올바른 노력을 할 수 있게 치료자가 도와주는 것. 다음이 가족의 협조. 이 세 개가 잘 받쳐주면 좋은 결과가 와요.”

-금강경(金剛經) 마지막 구절에 나오듯 ‘이 세계의 형체 있는 모든 것들은 물보라 같고 그림자 같은 것’입니까.

“내가 수행을 해보니까 나라는 존재는 정신적이고 물질적 현상으로 돼 있어요. 그게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사라지고 일어났다 사라져요. 내가 계속되는 게 아니에요. 나라는 건 정신적·물질적 현상이에요. 인과의 법칙상 일어났다 사라지고 일어났다 사라지는 게 우리에요. 그러니까 모든 현상은 열반 빼고 다 일어났다 사라져요. 우리가 그걸 못 보니까 계속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전현수 원장.

-현재에 집중하라는 건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는 마태복음의 잠언과 같은 맥락일까요.

“똑같다고 볼 수 있죠. 내일 일은 내일 일어났을 때 해야죠. 제일 좋은 건 현재에 집중하고 내일 일어나면 그때에 맞게 하면 돼요.”

-인간이 종교망상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요.

“욕구라고 해서 뭔가 바라는 게 있잖아요. 위대한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욕구요. 그렇게 강력한 존재가 나에게 이건 이렇다 하면 그럴까 하면서 거기에 넘어가는 거죠. 나처럼 정확히 보면 그런 욕구에 안 빠지죠.”

-정신적 장애를 가졌다는 건 다른 의미에서 깨달음의 형태가 아닐까요.

“그런 건 아니죠. 정신장애는 뭘 잘못 보기 때문에 자기 몸과 마음이 괴롭고 주위사람들도 괴로운 상태죠. 깨달음하고는 아무 관계없어요. 정신장애가 발생하는 걸 보면 잘 살아가다가 어려움이 닥쳐요. 그 어려움을 잘 보고 자기 힘으로 안 되면 주위의 도움을 받아서 극복하면 정신장애가 안 생겨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 남하고 의논도 안 하고 자기도 이상한 생각을 하면 정신과 물질의 변화가 오면서 이상한 상태로 빠지는 게 정신장애죠.”

-전생(前生)의 죄로 현생(現生)에 천민으로 태어나고 고통받는 거라고 말하는 건 지배자들의 체제 안정을 위해 고안된 이데올로기가 아닐까요.

“그렇게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이용하겠죠. 전생에 죄라기보다는 우리에게는 수없이 많은 전생이 있어요. 셀 수 없어요. 끝이 없는 전생이 있어요. 그 끝없는 전생에서 뭔가 했던 것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자연법칙에 따라 결과를 남겨요.

우리는 죽는 순간에 다시 태어나는데 살아오면서 무수하게 했던 행위들 중에 뭔가가 다음 생을 결정해요. 천민으로 태어나도 다른 생에서는 엄청나게 좋은 걸 할 수 있어요.

이 생에 천민으로 태어났다면 천민으로 태어날 만한 어떤 업이 작용해서 태어난 거죠. 이 사람의 모든 것이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이 생에 그럴 뿐이에요. 예컨대 재벌 집에 태어나거나 천하게 태어나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 사람의 모든 과거가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무수한 것 중에 어떤 것이 이렇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거죠.”

-지배자들은 그걸 이용하는 겁니까.

“지배자들은 이용할 수도 있겠죠. 그럼 그건 그 사람들의 나쁜 업이에요. 과보를 받게 돼 있어요. 나쁜 일하면 무조건 받는데 하나 나쁜 짓 하죠? 그럼 (과보로) 받는 건 천 개 이상이에요. 좋은 걸 하나 하죠? 우리가 남을 하나 돕죠? 그럼 천 개 이상을 받아요.”

-인간은 운명이 결정돼 있습니까. 아니면 자유의지가 중요합니까.

“조건에 관계없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지라는 건 없어요. 자유의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남의 어떤 강요로 안 하고 내 스스로 했다 그게 자유의지라면 그런 자유의지는 있어요. 그런데 내가 이 순간에 내가 살아온 조건과 관계없이 내 마음대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자유의지는 없어요.

운명은 결정돼 있는 게 아니에요. 태어날 때 이재용(삼성그룹 부회장)이는 재벌가에 태어나잖아요. 그런 조건은 있어요. 그렇지만 이재용이 딱 태어나고 나면 태어난 뒤에 마음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때 마음에서 뭔가를 하면 그게 또 새로운 조건이 되죠. 고정된 운명은 없어요. 항상 원인과 결과로 계속 있을 뿐이에요. 정확하게 보면 그렇게 보여요.”

-그럼 운명은 개척하는 겁니까.

“그렇죠. 운명은 개척하는 거예요. 지금 나한테 있는 이거는 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영향이 있어요. 내 과거생의 영향도 있어요. 두 가지 영향이죠.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음이 결정돼요.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났는데 우울해요. 그렇다면 그건 우울할 만한 조건에서 우울한 거예요. 그때 왜 내가 이렇게 됐나, 누구 때문이야 그러면 그게 새로운 원인이 돼서 또 하루가 전개돼요. 그렇지만 그때 지혜롭다면 ‘아 내가 우울할 만한 상태구나’라고 느끼죠. 그렇지만 나에게 도움되는 걸 하자. 일어나자 억지로라도. 그게 또 새로운 조건이 돼요. 원인과 결과가 끝없이 이어져요. 이 세상은 인과의 법칙이 계속 되는 거예요. 미래는 아무도 알 수가 없어요.”

-도움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힘든 걸 말하는 것도 도움이라고 말했습니다. 거절당하는 상처가 두려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할 때가 많지 않나요.

“나는 ‘부탁한다’, ‘거절한다’라는 말을 되게 싫어해요. 그런 건 없어져야 해요. 우리가 생각하는 부탁한다는 건 들어달라는 거예요. 그러면 부탁하는 사람도 부담스럽고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워요.

내가 힘들 때 힘든지 아닌지를 다른 사람이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내가 힘들다, 밥을 안 먹어서 배가 고프다 그러면 그걸 들은 사람이 그래요. 그럼 같이 밥 먹읍시다 할 수도 있고 바빠서 안 되겠다고 가는 사람도 있을 거잖아요. 그럴 때 부탁은 내 상황을 아무도 모르니까 상황을 알리는 거 또한 내가 할 일이에요.

그렇게 알리고 나서 그 사람이 어떻게 나오든지 그냥 ‘저 사람은 상황이 그렇구나’ 혹은 ‘내가 시간이 없지만 다른 친구에게 연락해서 밥 먹게 해 주겠다’ 이런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부탁을 그냥 나를 알린다라는 마음으로 하면 어렵지 않아요. 거절도 그래요. 누가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 나는 사정이 이래서 그걸 못 들어준 걸 거절로 생각하면 곤란해요.

내 상황을 알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걸 하면 살아가는 데 하나도 안 어려워요. 그런데 내가 보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니 부탁과 거절에 힘들어 하더라고.”

전현수 원장.

-정신건강을 위해 비교하지 말라고 했지만 인간의 욕망은 늘 비교 속에서 자신을 찾지 않습니까.

“그렇죠. 비교라는 게 보면 세 가지예요.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 못하다, 비슷하다. 이런 말은 비교를 하는 사람들이 잘 쓰는 말이에요. 비교의 언어에요. 비교의 언어가 나처럼 없어지면 그냥 다르다는 걸 느끼게 돼요. 두 사람이 있으면 모두 현재 생과 과거생의 영향으로 지금 여기 있는 거잖아요. 앞으로 이 사람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한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지만 다음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비교하는 사람들은 비교하는 마음의 조건이 있으면 비교를 해요. 그 조건이 없어지면 비교를 안 하겠죠. 비교하는 사람을 잘 봐요. 비교할 때 두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비교해요? 아니면 한두 개를 비교해요. 하나만 비교하잖아요. 그래서 비교가 성립되는 거예요.

나는 명상을 잘하지만 골프는 하나도 못 쳐요. 우리는 많이 한 걸 잘해요. 누구든지 잘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를 비교해요. 두 번째 비교하는 사람들은 결과를 가지고 해요. 과정을 보는 사람은 없어요. 그 다음에 비교하는 사람은 항상 내가 기준이 돼요. 사람을 볼 때 딱 바로 자신에게 돌아와요. 그래서 자기하고 비교해요. 보기만 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과정을 보고 전체를 보면 지혜가 생겨요. 그럼 비교가 없어져요.

비교의 제일 큰 문제는 뭐냐면 남의 인생이 나한테 들어오는 거예요. 나한테 맞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비교가 그걸 방해하는 거죠.”

-인간은 타자의 도움 없이 나 자신으로만 존재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없어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어요. 지금 숨 안 시면 살 수 있겠어요. 우리가 수태되는 순간부터 어머니의 영양분을 받아요. 지금 이 옷만 해도 다 누가 만들어준 거잖아요.

잘 보면 언제나 우리는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요. 그만큼 남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예요. 그리고 나도 남을 돕고. 그래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걸 항상 추구하면서 살아야 돼요. 또 나도 좋고 자연도 좋고.”

-철학에서는 인간의 단독성을 말하지 않습니까.

“철학에서 어떤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우리는 연결되어 있고 남의 도움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어요. 명상을 하면 이것을 알 수 있어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있잖아요. 이거 잘못된 번역이에요. 생각에다 면죄부를 준 거죠. 마치 생각이 우리의 속성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이에요. 코기토(cogito)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데카르트가 나라는 게 정말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부인할 수 없으니까 이런 말을 한 거예요. 코기토(cogito)를 봐요. 코그나이즈(cognize·인식하다)예요. 이건 인식한다, 넓게 말하면 정신작용이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나는 내가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런데 생각이라는 건 경우에 따라서는 안 하고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걸 처음 번역한 사람이 정신작용을 생각으로 했는데 이게 자꾸 잘못 알려서 어제 있었던 일 생각하고, 내일 올 일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는 거죠. 그래서 이 번역이 안 좋아요. 나는 정신작용이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해야죠. 사람이 인지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생각은 안 할 수가 있어요. 요즘 보면 다 생각중독증으로 살아가요. 마약중독 비슷하게. 생각이 무지하게 많아요.”

-인간은 인간이 가지는 속성인 고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신체적인 고통은 절대로 없을 수 없어요. 그런데 정신적 고통은 노력하면 없앨 수 있어요. 신체가 찢어져서 쓰라린 건 막을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마음의 고통은 노력하면 깨끗하게 없앨 수 있어요. 명상이 거기에 접근하는 길이에요.

-깨달음이란 게 결국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것 그 이상의 어떤 것일까요.

“먼저 종교가 무엇인지 좀 볼게요. 서양의 종교는 릴리전(religion)이에요. 릴라이(rely·의지하다)에서 파생된 말이죠. 서양 종교는 인간이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걸 종교로 본 거예요.

그렇지만 이 동양, 특히 불교라는 의미에서의 종교는 인간이 가진 궁극적인 의문이 있어요. 내가 왜 태어났나, 죽으면 내가 어떻게 되나, 왜 저 사람은 불행하고 나는 행복하나 이런 모든 의문을 추구하고 실천하고 목적을 달성하는 게 종교죠. 불교가 그런 종교예요. 그런데 깨달음이란 게 결국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깨달음을 너무 단순화시켜요. 배 고프면 먹고 잠 오면 잔다, 그것도 하나의 깨달음이죠. 그런데 그것에만 국한시키면 문제가 있어요.”

-어떤 부분이 그렇습니까.

“그분들 중에 어떤 분은 ‘자, 인간은 그대로 부처다’라고 해요. 기독교의 신을 믿기가 그렇게 쉬워요? 코로나19 시대에 신이 왜 이런 질병을 줬을까. 그거 믿기 쉬워요? 그처럼 이것도 굉장히 믿기 어려워요. 나 지금 괴로워 죽겠는데 부처라고 자꾸 얘기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럼 깨달으신 겁니까.

“나름대로는 그렇죠. 나한테는 의문이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어떻게 태어났고 지금의 행불행은 왜 있고 (아니까). 부처님이 삼매를 닦으면 그걸 여실히 볼 수 있다고 그랬어요. 나는 내가 삼매를 얻기 전에는 이 말을 이해를 못했어요. 그런데 내가 삼매를 얻어 보니까 ‘아 이래서 이런 표현을 하구나’ (싶었죠).

어떤 사람이 공부하려고 해도 공부 못 하잖아요. 마음의 번뇌가 많아서 그래요.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어요. 그런데 방해하는 세력이 마음에 하나도 없으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져요. 예를 들어 곱추다라면 그 사람이 곱추가 된 게 과거생의 원인일 수도 있고 이생의 원인일 수 있어요.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도 못 보고 죽고 난 뒤에도 못 보기 때문에 이 생 중심으로만 생각해서 원망도 하고 화도 내죠. 금수저나 흙수저다 이야기를 해요. 너무 근시안적으로 보면 곤란해요.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괴로움과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법을 제시했어요. 나는 그 길을 따라 가보았어요.”

전현수 원장.

-이 세계는 무의미합니까.

“인간은 자살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끝이 아니에요. 우리는 죽자마자 바로 태어나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건 제대로 못 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정확하게 보면 할 일이 무지하게 많아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건 세상을 무의미하게 보고 있는 거예요. 세상은 그런 게 아닌데.”

-정신장애인이 된다는 것도 과거의 업 때문에 그런 겁니까.

“정신의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사람이 타고 날 때 기질이 있어요. 기질이 있고 환경이 있어요. 그래서 둘의 합으로서 정신장애가 되거든요. 좀 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이 생의 요인도 있을 수 있고 과거생의 요인도 있을 수 있어요. 정통 의학에서 이건 금기니까 말하니까 곤란해요.

중요한 건 정신장애가 되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또 있어요. 내가 환자들에게 똑같이 치료를 해요. 그런데 어떤 환자는 낫고 어떤 환자는 조금 낫고 어떤 환자는 안 나아요. 나는 똑같이 해요. 정신장애에 중요한 건 필요하면 약을 먹어야 돼요. 약을 먹으면서 순간순간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걸 해야 돼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나하고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잠깐이고 나머지 시간은 자기 혼자서 쓰잖아요. 그때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빨리 좋아져요. 인과의 법칙이에요. 그렇게 된 건 뭐가 있어서 된 거예요. 거기서 벗어나려면 뭔가를 해야 해요. 예를 들면 내가 우리 사무원에게 존경을 받고 싶으면 사무원의 마음에 드는 뭔가를 해야겠죠. 그냥 존경이 오기만을 바라면 안 돼요. 저 사람 마음에 ‘우리 원장님 참 존경스럽다’ 이렇게 마음이 오도록 뭘 해야죠. 모두 인과의 법칙이에요.”

-인간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행복하려면 난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정확하게 보는 훈련을 해야 돼요. 사물이든, 세상이든, 다른 사람의 마음이든 정확히 보고 거기에 맞게 해야 돼요. 거기에 맞지 않으면 나한테 괴로움이 와요.

두 번째는 내 마음에서 나를 괴롭히는 게 있잖아요. 막 화가 난다든지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요. 그건 마음을 잘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 돼요. 정확하게 보는 노력과 내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면 마음의 괴로움이 줄어들어요.”

-약물은 반드시 필요합니까.

“약물은 필요한 사람에게는 꼭 필요해요.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는 약물 토대 위에 올바른 노력을 해야 해요. 약을 써야 돼요. 약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약을 먹어보면 알 수 있어요. 약이 필요한 사람은 꼭 먹어야 돼요.”

이야기는 기자도 모르게 기자의 상처를 드러내게 했다. 기자가 물었다.

-저는 조현병 발병 이후 오랜 시간 운명을 원망하여 살았습니다.

“잘 봐요. 조현병으로 고생하긴 했지만 얻은 것도 있어요. 그걸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돼요. 인생에서 그게 중요해요.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보는 거. 조현병 때문에 내가 고생을 했지만 그걸 통해서 내 인생이 바뀐 것도 있을 거예요. 그걸 정확하게 봐야죠.

요즘 우리는 긍정적으로 봐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하지만 긍정·부정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정확하게 봐야 돼요. 세상은 세상의 원리에 따라 정확하게 돌아가요. 내 생각하고 차이가 나면 그만큼 괴로운 거예요. 현실을 왜곡하지 말고 정확하게 봐야 돼요. 정확하게 안 보면 그 차이만큼 힘들어요. 힘든 걸 잘못 처리하면 정신적 문제가 생겨요.”

전현수 원장.

-보이지 않는 걸 본다는 것, 들리지 않는 걸 듣는다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우리는 물질적인 존재거든요. 뇌라는 것도 그렇고 뇌가 잘못되면 다르게 느낄 수 있어요. 다르게 지각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조현병 치료에 굉장히 중요해요. 영화 뷰티풀마인드 봤죠? 존 내시가 영화 처음에 애들이 뛰놀고 있어 참 귀엽구나 그랬는데 10년이나 세월이 지나도 애들이 안 크잖아요. 그때 존 내시가 깨달음이 와요. 아, 내가 보는 게 사실이 아니구나.

그 전에는 존 내시가 자기는 문제 없다고 약도 안 먹고 입원하고 이상한 걸 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도 애들이 안 커요. 그래서 내 눈에 보이는 게 사실이 아닐 수 있구나 생각한 거죠. 그래서 자기를 안 믿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약도 먹고 안정이 되니까 경제학 이론으로 노벨상 받을 때 노벨상 위원회에서 사람이 찾아와요.

재밌는 게 딱 처음 보는 사람이 오니까 자기를 안 믿는 거지. 옆에 있는 학생에게 저 사람 보이냐고 물어봐요. 보인다고 하니까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요. 안 보인다면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그게 조현병 치유에서 중요해요. 우린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건 내가 달라지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확인해야 돼요.

자기를 믿지 말고 옆에 사람이 있으면 보이냐, 들리냐, 어떻게 느껴지냐고 물어보고 아무도 없을 때는 그냥 모른다고 하고 빨리 집에 와야죠. 그게 중요해요.”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을까요.

“나는 부처님이 경험한 거를 다 경험해 보고 싶어요. 어지간한 건 다 경험했는데 아직 좀 못 한 게 몇 가지 있어요. 이 생에 여건이 되면 경험하고 싶어요. 또 나도 프로이트나 융처럼 불교정신치료의 체계를 확실히 세우고 싶어요. 두 개가 같이 가는 거 같아요. 하나는 진리를 내가 체득하는 거. 다른 하나는 진리를 체득한 후에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마음. 1985년 이후로 이 두 개가 계속 같이 온 거죠.”

도인(道人)의 풍모라고 하니 전 원장이 웃었다. “내가 서른 전에는 다른 사람과 똑같았는데 그 후로 달라졌어요.” 기자는 다시 스스로의 고통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고요하게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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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0-05-19 12:04:56
인터뷰 기사를 읽는 것만으로 책한권 읽은 것같은 깊이있는 깨달음을 주네요. 두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