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내게 ‘예쁘지 않아도 되는 같은 사람’이라고 누군가 말해주었다면”
“사춘기의 내게 ‘예쁘지 않아도 되는 같은 사람’이라고 누군가 말해주었다면”
  • 신승연
  • 승인 2020.05.20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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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스페셜리스트 신승연 씨 ‘탈코르셋’ 기고문
“억압적 여성성에 굴복했을 때 여성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사람이고 당신의 모든 결점은 결점이 될 수 없어”
주제인 '탈코르셋'의 정의. 출처는 페미위키.

제목:  I'm beautiful in my way?

부제목 : 여성이 되는 모든 여자아이에게.

I'm beautiful in my way

난 나대로 아름다워

'Cause god makes no mistakes

신은 실수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난 그의 작품이니까)

I'm on the right track baby

난 제대로 하고 있어

I was born this way

이게 내가 태어난 모습인 걸

Don't hide yourself in regret

후회 속에서 널 숨기지 마!

Just love yourself and you're set

너 자신을 사랑하고 네 탄생 그대로를 사랑해

lady gaga-born this way

흔히 말하는 자존감 고양을 위한 노래 톱 3에 꼽히는 노래다. 눈두덩이에 푸른 글리터를 바른 가가의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무대이다. 대포알 같은 가슴, 딱 붙는 수영복으로 부르는 노래. 신의 완벽을 반영한 나는 나 그대로 아름답다는 말.

따라서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성별, 인종, 성 지향성, 외모 등을 긍정하기에 더없이 알맞은 노래. 한참 내가 외모 강박이 극에 달했을 때 볼펜으로 손목에 그려 넣고 다녔을 정도로 좋아했었다.

길고 긴 글 앞에서 한 가지만 알고 넘어가자. 필자는 자기 긍정의 정신적 효과와 십대 여성의 외모 고민을 깡그리 무시하고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조금, 거시적이고 큰 이야기를 하려 한다. 왜 우리는 모두 예뻐지려 했을까.

다양화된 미의 기준. 무쌍(쌍꺼풀이 없는) 아이돌이 흥하고, 일률적인 유행보다는 카테고리화된 패션이 흘러가는 길거리. 자신이 무얼 좋아하든, 꾸밀 자유가 있으니 자신만의 기준에 맞게 꾸며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은 초콜릿보다 달콤하게 우리를 사로잡았다. 당장, 내가 그랬다.

나는 늘 불만족의 대상이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기억의 첫 번째 이미지는 예쁜 어린이집 선생님을 동경하면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살이 찐 선생님 반이 되지 않아 기뻐하던 모습이었다. 눈 앞머리가 답답해 보이는 내 눈이, 콧방울이 예쁘게 모이지 않은 내 코가, 밤낮으로 뛰어노느라 옷소매 선에 맞게 탄 내 팔뚝이 싫었다.

아름답지 않은 여자아이인 날 어서 바꾸고 싶었다.

이유는 달리 없었다. 글쎄. 루피는 늘 친절하고 발그레한 뺨을 가졌고, 태왕사신기의 여자주인공은 악당보다 아름다웠고. 또 화장하지 않은 여배우를 놀리는, 민낯에도 아름다운 미모를 찬양하는 예능을 봤겠지.

이렇게 비관으로만 가득한 것 같은 유년(엄밀하게는 외모에 관해)에도 볕은 들었다. 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잖나. 못생긴 여자는 없다. 게으른 여자만 있을 뿐. 피부, 키는 마음에 들었으니 희망은 있었다. 그 길로 유튜브를 비롯한 온갖 매체를 뒤집어엎고 다니면서 내게 맞는 화장법과 옷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중학교 졸업까지 시간은 훌쩍 날았다. 제주도로 향하는 수학여행에서 나는 크롭티(배꼽이 보일 정도로 짧은 티셔츠)와 너무 짧아서 풀밭에 앉지 못했던 바지를 입었다. ‘수학여행’을 위한 쇼핑으로 석 달 용돈을 썼다. 이만 원이 차곡차곡 세 달 모여 봤자 살 수 있는 건 많이 없었다. 화장품이 어디 여간 비싼가. 대신 그 대가로 석 달을 학교에 걸어 다녔다.

분홍 렌즈, 초커, 사진 속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사진을 위한 여행이었다. 버스 안에서 수시로 입술과 피부를 수정하고, 제주의 강한 바람에 섀도우가 날아가면 오후에 다시 덮어줘야 했다. 풍경보단 그 속의 나, 정확하게는 신체 부위 하나하나를 채점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피곤한 여행이었다.

그리곤 9월에 머리를 싹둑 쳐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던 숏컷 미인들이 너무 좋았다. 한참 배구에 빠져서 매일 운동장을 뛰어다녀 치렁거리는 긴 머리를 관리할 수 없기도 했지만, 긴 머리보다 짧은 머리가 어울릴 거라는 인터넷의 ‘숏컷 측정기’의 설득이 공이 컸다.

창백한 피부와, 하얀 아우터(점퍼처럼 겉옷 위에 입는 옷) 속의 내가 나름 마음에 들었다. 머리를 자르니 주변에서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실연, 인생의 터닝 포인트, 엄격한 부모님, 트랜스젠더. 내 머리칼은 꼭 공공재 같았다. 자르려면 타당한 이유가 필요한 공공재.

19세기 중엽, 유럽 여성들의 '코로셋' (c)ko.wikipedia.org
19세기 중엽, 유럽 여성들의 '코로셋' (c)ko.wikipedia.org

투블럭으로 자르고 나니 세상이 편했다. 고등학교 내내 머리가 짧은 상태였다. ‘탈코르셋’ 외관을 갖추고 고등학교에 다녔다. 평소에는 선크림을 바르고 투블럭에 매일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교복 치마를 거부하는 학생. 화장은 내게 다만 치트키였다. 운동장에 섞여 있으면 영락없는 남학우와 같은 모습이라서, 내 얼굴에 붉은 빛을 올리는 게 참 어색했다.

나는 특별한 날에만 특별한 화장을 입었다. 짧은 머리에 속눈썹을 바짝 올린 눈, 갈색 립스틱이 좋았다. 그렇게 페미니즘 책에서 말하는 여성의 외모 강박, 족쇄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왜냐하면 난 긴 머리에 집착하지도, 매일 굶지도 않았다. 초콜릿 음료나 캐러멜 마키아토를 먹으면 저녁을 굶고는 했지만 거식증 환자처럼 앙상하지는 않았고. 더군다나 제일인 것은 내가 아는 모든 여성은 이런 모습이었으니까. 문제될 건 없다.

"7월 24일에 방학식, 7월 21일에 배구 경기 볼 텐데. 아쉽다. 여자 아이돌을 보고 외모 자극을 받지는 않아도 태민이나 차학연같이 마른 아이돌을 보면 다이어트 욕구가 강해져. 그렇게 여윈 체형이 너무 좋다. 살 10kg만 빼고 찢어진 검은 청바지+세븐틴 지금 활동에서 입는 옷 입고 싶다. 다 내 취향이야. 벌써 열일곱인데 내 취향을 알아가는 것 같아서 좋다.

마른 몸에 짧은 머리, 째진 눈, 누드톤 블러셔, 속눈썹이 강조된 강한 눈화장, 초커, 이런 거 너무 좋아. 짜릿해. 2017.07.03."

열일곱 여름의 일기다. 친구들은 화장하지 않은 날이면 부끄럽다며 마스크를 쓰고 등교했다. 농담 두 스푼 보태 아파 보인다며 뒷주머니에 틴트(화장품)를 넣어주는 게 참된 친구였다. 시험이 끝난 뒤 스트레스를 푸는 정석은, 노래방을 가고 로드샵이나 드럭 스토어에서 새 틴트를 고르는 것이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우리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예뻐지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었고, 이게 각자의 취향이었으니까. 꾸밈은 강요가 아니었다. 더불어 나는 꾸미기도, 내 공부도, 친구 관계도 원만한 삶을 원했다. 모두 뛰어나고 싶었다. 성공한 여성의 이미지란 그랬다.

그 성공을 학교에서도 이루기 위해 쉬는 시간 10분씩 4교시가 지나면 화장은 완성된다. 교실의 분진과 딱 교복 카디건 만치 깨끗한 붓으로 완성한 얼굴. 급식실은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었지만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얼굴에 차곡차곡 화장품을 올렸다.

친구들은 살이 찌면 슬퍼했다.

간단했다. 교복을 입으면 태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시내에 나가 옷을 살 수 없었다. 사실 여자 하복은 배꼽 위를 겨우 걸치는 길이에, 겨드랑이와 팔뚝 중간 그 어드매인 길이로, 거수를 위해 겨드랑이 대공개를 고려해야 한다. 군살이 그렇게도 부각되는 교복은 끝없는 다이어트를 은밀히 부추겼다. 아무도 모르게 우리는 여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상’ 체중이어도 바지 사이즈는 XL을 입었다. ‘비만’에는 상체 비만과 하체 비만이 있기 때문이다.

키가 큰 난 부담스럽지 않은 롱스커트를 좋아했다. 내 몸의 갖은 단점을 감춰주면서 가벼워 보이지 않고 제일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쇼핑몰은 제각각 사이즈 표가 달랐기 때문에, 모델이 아닌 나도 몸의 치수를 외우고 다녔다.

나는 장염이 걸리면 내심 기뻤다. 노력 없이 살이 후루룩 빠지니까. 석식 시간 급식실에는 저녁밥을 굶는다는 친구가 사과 하나를 베어 물고 있었다. 그 사과는 매일 아침 7시에 등교해 밤 10시까지 자습을 하는 친구의 저녁 식사 전부였다.

이 모든 건 당연한 여성의 성장이었다.

소녀가 여성이 된다는 것은

튼튼한 다리로 너른 길을 달려 나가는 것이나,

강인한 팔로 무거운 짐이라도 거뜬히 들어 올리는 것,

밤새 앉아 공부해도 아프지 않은 건강한 허리를 가졌는지,

눈으로 하늘의 구름을 개수하거나,

격한 팀 스포츠 뒤, 승리의 땀방울이 얼마나 시원한지

잊어버리고

소녀가 여성이 된다는 것은

이상적이지 않은 허벅지 안쪽 살을 도려내는 상상을 하고,

승모근과 팔 근육 없는 매끈한 상체라인을 동경하고,

‘개미허리’ 아이돌을 따라 산 크롭티를 입을 때 접히는 살이 없는지 긴장하며,

꼬막눈, 쌍꺼풀, 속쌍커플, 무쌍, 눈꼬리, 홍채 비율, 곡률을 따져가며 유튜브에 상주하는 것,

남학우들이 뛰노는 운동장의 구석 차양에 앉아 수영장에 갈 때 살 ‘워터프루프’ 파운데이션 간증을 전해 듣는 것을 뜻한다.

화장한 얼굴이 만족스러울수록,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맨 얼굴의 나는 나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화장이란 얼굴에서 결점을 찾아내 메꾸는 과정이기에 완성물이 마음에 들수록 맨 얼굴의 나는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의 광고판들은 그 찰나의 달콤함을 큰 가치로 포장하고 있었다. 클렌징 티슈 한 장에 지워지는 권력을 고시 3관왕에나 비유하고 앉아있었으니. 더 설명이 필요한가.

나는 늘 궁금했다. 갖은 것들에 반응하는 "프로 불편러"로 자라나서 그랬을까. 학교 건물 속 그다지 골격의 드라마틱한 차이라든가, 교육의 내용에 차이가 없는 남자아이들이 우리와는 다르게 개성적인 얼굴을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의문스러웠다. 왜 이렇게 다른 모습일까. 당장 제 또래들이 화장하는데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남자아이들을 믿는 구석이 있나?

우리는 우리 몸의 주체 (c)연합뉴스.

방금 같은 자잘한 고민을 하며 어느새 대한의 수험생에 접어들었다. 매일 학교에 7시까지, 독서실에 새벽 1시 30분까지 남아 견디며 이게 말인지 암호인지 모를 비문학이랑 씨름하느라 먹어 치운 초콜릿은 거대한 허벅지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돌아도 근육은 착실히 지방으로 환원됐다.

고3은 원래 살찌는 시기라지만, 우리는 튿어지는 교복을 보며 불안해했다. 엉망인 호르몬이 여드름을 피워내면 “화장하면 가려지니까 괜찮아”하며 서로를 다독였다.

성인이 되면 살을 빼고, 피부과도 다닐 거라는 친구들의 다짐 사이에서 나도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고 나서 ‘시술’에 쓸 돈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시술인 이유는, 수술은 너무 인위적이고 맨 얼굴은 절망적인 까닭이었다. 아울러 우리는 학생으로서 수수했지만 언젠가는 예뻐질 가능성이 무궁한 여성이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열아홉 칠월,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서 외모를 향한 집착은 차츰 광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체중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난 거울을 보기도 싫었다. 저주하고 싶은 거울을 마주하는 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끊임없는 자기혐오와 자학. 나는 쉼표가 필요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면 “완벽한 성인 여성”을 향한 여정을 내려놓아야 했으니. 나를 여학생이 아닌 학생으로 정의하는 휴전선을 그었다.

8월, 9월, 10월, 11월.

독서실 선인장으로 산 8월, 9월 만족스러웠던 모의평가, 10월 설마 이게 수능 점수겠어, 공든 탑도 무너지는 대수능.

이렇게 시간은 쏜살같이 달려 나는 그토록 바라던 성인이 되었다.

술집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었고, 득달같이 달려오는 깍쟁이에 짜증나는 학생주임도 없었다. 야호, 해방. 온갖 불량아의 심볼을 걸쳐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얻은 교훈과 경험이 있었다.

마침 난 “남자 머리”에서 “똑 단발”로 변하는 와중에 신비한 경험을 했다. 아주 짧은 숏컷일 땐 기본 티, 청바지, 크로스 백 정도면 멀끔하고 단정하던 것이 이상하게도 단발에 가까워지자 밋밋해 보였다. “길거리의 여성”에 가까워질수록 우스꽝스럽게만 보이던 초커, 노출을 의도로 지어진 짧은 바지, 치렁한 치마 같은 것들이 잘 어울리는 기묘한 경험 말이다. 멀끔하고 준수하다는 평가의 허들이 훌쩍 높아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여성은 꾸밀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했다. 내 개성, 내 스타일로 특별해질 수 있는 기회 또한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90, 95, 100 기성복 사이즈로 통일되는 남성복 시장도 모르고 잘도 꾸밀 자유가 국한되는 남성들을 내심 안쓰럽게 생각했다.

학창 시절 내내 특별한 날에만 ‘여성성’을 뒤집어쓰던 습관의 영향으로 일주일 중 최소 3일, 내 여성성은 무급휴가를 냈다.

여느 때와 같이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당신은 예쁠 필요가 없다. 당신은 반짝거리는 쇼윈도의 포장된 상품이 아닌 사람이다”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신선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아름다운 존재였는데, 선택을 기다리는 상품이 아닌 상품을 골라내는 사람이라니.

문장은 보기보다 단단해서 그 후로 틈만 나면 반추위로 역류했다. 질겅질겅 구절을 곱씹을수록 글리터가 역해지는 탓에, 수능이 끝난 뒤 고집스럽게 눈 아래에 바르던 글리터를 내려놓았다. 웃기는 일이었다. 탈코르셋 담론 전에도 ‘탈코’한 모양새였으면서, 여학우들 사이에서 탈코르셋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불편해했던 이유. 화장이 주는 신기루 같은 권력을 이해하면서도 카카오톡 로드샵 세일을 챙겨보고 있었던 이유.

여성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었다. 정말 그 이유였다.

캐릭터들도 자연의 쥐는 미키마우스고, 속눈썹과 블러셔, 땡땡이 치마를 입으면 미니마우스다.

인구의 절반이 자신이 여성임을 사회에 증명하기 위해 갖은 화학물질에 자신을 절이고 있었다. 우린 장모종이 아닌데도 구태여 머리를 기르기도 하면서.

왜 몰랐을까. 청년, 장년, 노년. 그 속에서 다양한 삶을 반영하는 것, 아버지도 소심한 아버지, 돌싱 아버지, 미혼 아버지(미혼에 육아를 하는 남성은 따로 지칭어가 없다.), 비정규직, 정규직, 명문대, 히스테릭 이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존재들. 그리고 그 옆에서 하하 웃는 가녀리고 예쁜 엄마, 아내, 연애 상대인 여성.

미디어에 나오는 하나같이 아름답고, 완벽한 치장을 한 여성들. 그 옆에서 트로피같이 그들을 끼고 있는 중년의 배불뚝이, 맨 얼굴의 남성들.

다시 이 미디어와 협력해주는 길거리의 풍경. 점점 아이돌같이 예뻐지는 학생들.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성인 여성은 무엇이었을까.

3...2...1.. Happy new year!

아이섀도가 퐁퐁 샘솟지 않았다. 입술이 도톰하니 붉게 채워지지 않았다. 모공에서 미백크림이 도포되지 않았다.

학생 뷰티 유튜버가 ‘성인 여성’의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 바르는 그 화장품은, 다시 직장인 브이로거가 ’청소년답게‘- 활기차게, 생기 있게 보이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맙소사.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된 ‘퍼스널 컬러’, ‘인생 립/파데/블러셔’를 찾기 위한 ‘유목민’ 생활로 내가 들인 돈, 시간이 전부 얼마더라. 점막을 찌르지 않고 단숨에 아이라인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거울 앞에서 울었더라.

통곡의 벽도 아니면서 그토록 뻔뻔하고 파렴치한 통한의 남녀의 구별이라는 게, 숱한 여자아이들을 ‘여성’으로 길러냄으로써 재생되고 있었다니. 우리를 속였다니.

만약 내게, 미취학의 나에게, 또 중학교 사춘기를 헤매던 나에게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 는 말보다, '예쁘지 않아도 되는 같은 사람이다'라고 누군가 말해주었다면 그간 거울 앞에서 흘린 내 시간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예쁜 어린이집 선생님은 예쁘다는 것 말고는 다른 특징이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미취학 시절의 내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일 텐데, 긴 머리와 오목조목한 얼굴, 길고 가느란 팔다리 말고는 내게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짧은 단어에 그득히 서글프다.

긴 머리와 오목조목한 얼굴,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 말고는 기억되지 못하는 선생님이라니.

인형과 같이 여성을 토막 내는 시선을 벌써 습득한 미취학의 나라니.

맙소사.

그런데 다시 사촌동생에게 “언니는 왜 여자인데, 머리도 짧고 남자 같아?” 질문을 받았다.

오, 세상에.

이 거대한 연극은 여성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구나. 우리 스스로가 끈을 잘라버리기 전까지는 백방 방법이 없구나.

여지껏 아름답지 않은 나의 모습과 치열하게 벌이던 전쟁, 그리고 잠시 휴전 중이던 전쟁은, 국제적 내전이었다. 내 속에서 벌어지지만, 결국 사회와 나 사회화를 받아들인 나 스스로가 모두 동조해 발발된 전쟁.

그래서 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당신은, 우리는 사람이라고. 꺾이는 꽃이 아니라 나무이고, 불꽃이라고. 당신의 모든 결점은 결점이 될 수 없노라고 말해야 할 것만 같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c)신승연.

실제 필자의 화장품이었다. 분노와 슬픔에 젖어 사진이 깨끗하지 않은 점, 양해 부탁한다.

이 간단하고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끈을 잘라내고 나면, 세상은 달라진다. 나는 크롭티와 딱 붙어 질염에 소화불량을 유발하던 바지를 버렸다. 또 머리를 다시 짧게 잘랐다. 무엇보다 내가 사람이라는 걸, 반짝일 필요가 없는 ‘선택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친구를 대할 때 그 아이의 피부 화장, 립라인, 몸이 부었는지를 한눈에 보는, 정육점 도살자의 시선을 버릴 수 있었다. 여자 연예인들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무슨 화장품을 쓰고 무슨 필라테스 학원에 다니는지가 아니라 말씨와 거기에서 풍기는 가치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거울 속의 내가 그냥 나로 보인다. 버리기 직전, 도톰한 박스 하나에 꽉 차던 화장품으로 좌우지되는 자존감 말고, 그냥 내가 보인다. 애당초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훅 줄어들기도 했고.

또 외모와 상관없이,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공부하는 깊이가 달라졌다. 예뻐서. 연애해서(남자와 똑 닮아 보이는 내가 연애 시장에서 ‘여자’ 역할을 소화할 수는-나 스스로도, 그남도 용납할 수 없기에). 결국 언젠가는, 결혼해서 누군가에게 종속될 내 인생 말고, 우리 모친들이 상상하기만 했던 정말 나 자체로 온전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야망. 그를 위한 공부 말이다.

우리는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비통하지만, 이는 종결이 있는 소설이다. 당신은 당신에게 매어진, 또는 매어둔 끈을 끊어버릴 수 있다.

(c)신승연.

전쟁의 승리로 결국 잘려나간 내 탈색 3번 한 뒷머리카락. 다음날 싹 밀려버리는 종말을 맞이했다.

PS. 혹시 눈치챘는가? 시종일관 탈코르셋 기행이었고, 설득이었다.

아마 지금쯤 한 곳에서 “지나친 일반화를 삼가라. 스스로 가꾸는 것도 자기관리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며 당신의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려 할지도 모른다. 워워, 총구를 내려라. 장장 5페이지 가량을 견뎌왔던 당신의 참을성을 조금만 더 발휘해주길 간곡히 부탁한다.

우선 필자는, 당신의 머리채를 잡고 화장품을 불태우지 않았다. 이 기괴한 구조 속에서 당장 사회 기득권과 남성을 잡아 아우슈비츠에 넣자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 코 모양이, 눈 앞머리가, 다리 길이가, 또 '쓸데없다는' 그 근육 모양이, 끝없는 이 단점이 당신에게 그림자가 된다는 것, 또한 이 그림자가 완벽하게 불필요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여기서 쉽게 빠져나가는 탈출구를 찾았다. 하여 소개했다. 간략히, 내가 해보니 이다지도 자유로워 권한다. 자매여, 방법이 있었다.

처음 탈코르셋을 접했을 때의 보편적 감상은 불편함과 분노이다. 코르셋 차보지도 않은 사람이 탈코르셋을 운운한다며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이 모든 부조리에 동의하면서도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이 불편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전자의 이유로 분노하고 있다면, 이 모니터를 내려 보길 권한다. 화면을 끄면 이 불편함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 밖엔 무엇이 남나. 발가락이 변형되도록 아파도 굽을 신는 언니, 고등학생 뷰티 유튜버를 보고 올리브영에 쌈짓돈을 챙겨가는 동생. 관광명소와 번화가에 민낯으로 나가지 못하는 친구들.

바로 이 글이 자해, 가정폭력,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같은 주제와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 이유. 너무나 만연한 풍경이다. 키즈 코스메틱 분야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더 많은 여자 아이가 거울 앞에서 자신의 결점을 속속들이 찾고 있다.

만약 당신이 후자의 이유로 불편하다면, 그것으로 시작이다. 하루아침에 잔 다르크가 될 필요 없다.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는 것들은 천지에 놓여있다. 네일아트나 이미 찬장을 채운 립스틱에 지갑을 열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친구에게 화장을 종용하지 않는 것, 민낯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모두 방법이다. 어디서 시작하든, 늦은 때는 없다. 네일 말고 내 일 잘하자. 자매여, 정상에서 만나자.

글쓴이 소개

신승연(20·멘탈헬스코리아 피어스페셜리스트 1기)

모든 게 날 미치게 해. 2001년 외동딸로 태어났다. 예민하기 그지없던 탓에 아토피와 공감성 괴로움을 달고 살았다. 책을 좋아한다. 여중 공학 여대 루트를 밟고 있다. 서사시 같은 벅차오름을 특별히 사랑한다. 멀쩡한 사람은 상시 죽고 싶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반항의 시작이었다. 소심한 반항으로 청소년 자해 대유행 포럼에서 유일한 청소년 연사를 맡았다. 성공한 사람으로 대서특필 될 날을 준비하고 있다. 범죄자나 자살자 말고, 성공한 생존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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