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은 끝났다…그러나 끝난 건 아니다
파업은 끝났다…그러나 끝난 건 아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5.22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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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파업 후 4년의 성찰
당시 파업 요구는 임금 인상 아닌 고용 안정 논의가 의제
자치구센터들 고용 안정 요구했지만...협상 대상 불분명해
투쟁의 대상이 모호한 상태에서 집중 투쟁 어려워져
신자유주의 관리시스템은 책임 주체 분산시켜
사회의 태도 변화 없으면 변화 한계 부딪힐 것

2016년 10월에 발생했던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파업에 대한 전면적 성찰과 혁신을 묻는 대담회가 22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당시 파업이 전략과 역할의 부재, 적절하지 않은 파업 시점, 명확한 대화 주체가 없는 가운데 발생하면서 오류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협상의 대상이 숨어버리면서 파업의 동력이 떨어지는 역효과를 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대담회는 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가 주최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 파업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앞서 2015년 서울시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를 포함한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27개 중 24개 센터가 고용 안정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서울시와 지자체가 협상 주체로 나와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러나 서울시와 지자체는 자신들이 협상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발을 뺐다. 센터장도 병원장도 지자체도 자신의 주체 역할을 거부했다. 2015년 말, 서울시 소속 센터 전체회의가 있을 때 일부에서 노조 설립이 조심스럽게 논의됐다.

당시 노원구정신건강복지센터는 보건소 직영으로 바뀌면서 보건소장이 센터장이 됐다. 보건소는 직원들 계약을 10개월마다 한 번씩 하는 ‘쪼개기’ 계약을 맺었고 서울시 센터 직원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없었다.

센터의 사업 범위는 알코올중독에서 자살로, 치매와 우울까지 늘었지만 인력도 예산도 늘 부족했다. 게다가 인건비까지 깎인다는 소문이 맴돌았다.

2016년 2월 센터들은 기습적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산업노조의 산별 노조로도 가입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투쟁의 대상은 불분명했다. 시와 구, 민간병원은 자신들이 권한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런데 노사정협의체 구성에 시와 구가 참여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고용 안정을 통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정상화 등의 합의안들을 도출해냈다. 그렇지만 자치구들이 서명을 거부했다. 2016년 말, 마침내 파업이 발생했다. 이 파업은 51일이나 이어졌다. 파업의 요구 조건은 고용 안정과 단체협약이었다.

노조가 만들어질 때 보건소에서는 노조 가입자들의 명단을 요구했다. 그때, 보건노조가 명단 공개의 부당함을 알리는 공문을 보냈다. 명단 요구는 자취를 감췄다.

그렇지만 파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혐오의 논리가 번지기 시작했다. 바로 센터에 등록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반발이었다.

주상현 서울시정신보건지부장은 “정신장애인 당사자 혐오로 번져서 욕을 먹기 시작했다”며 “충격이었고 반성의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파업 노조원들을 향해 센터가 당사자 얘기를 듣지 않고 부모가 와서 사설이송단 불러 발을 묶은 채 입원을 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6개월 뒤 퇴원하면 다시 센터로 보냈다가 다시 입원시키는 반복된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당사자들은 “정신장애인 인권 무시하면서 너희들이 파업을 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당사자들은 태도를 조금씩 바꾸었다. 그리고 파업 지지 발언들이 나왔다.

파업 과정에서 주 지부장은 두 번 울었다. 한 번은 제대로 준비 안 된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의 단결된 모습을 보고서였다. 또 한 번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파업 장소로 와 지지발언을 했을 때였다.

주 지부장은 “보통 파업은 임금 때문인데 우리는 아니었다”며 “서울시에 공무직으로 만들어달라가 아니라 고용안정을 위해 같이 논의해 보자는 거였다”고 말했다. 당시 보건노조에서도 이런 파업은 생소했다고 한다.

파업은 실패가 아니었다. 주 지부장 말에 따르면 “저희가 해냈다”는 긍정의 과정이었다. 이후 센터 종사자들이 유급휴가를 눈치 받지 않고 받을 수 있었고 감정노동이 보호받을 수 있는 토대로 만들었다.

주 지부장은 센터와 정신재활시설, 광역센터의 기능과 역할이 분명하게 분할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주 지부장은 “센터에서 직업재활하고 사회복귀 프로그램하면 정신재활시설과 다를 게 없다”며 “광역도 지역센터도 역할들이 구분돼야 하는데 광역에서도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비칠까봐 직접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부의 존립과 연관된 중요한 단체가 당사자들”이라며 “저희가 성찰과 혁신을 위한 얘기하자면 여기 당사자들이 더 많이 와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노조 파업 협상에서 고용 안정이 궁극적 목적이긴 하지만 현장에서 합리적이고 사기치지 않는 건전한 집단을 만들어야 한다”며 “서울시정신보건지부가 그런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 A팀장은 “(파업 당시) 3차례의 서울시와 보건소를 대상으로 임단협을 진행했지만 결정권자가 없다는 핑계와 책임 회피로 무산됐다”며 “(우리 요구는) 임금 인상 이야기는 없었다. 출산 및 육아 휴직자들의 고용 안정과 지역 센터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한 인력 충원과 안정적 서비스 제공 환경 마련이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파업 당시) 고용안정협약서를 통해 정신건강전문요원의 고용이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작성해 재협상을 진행했다”며 “그러나 역시나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의 진짜 사장은 그 누구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정신건강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인데 그 누구도 책임감 있게 나서지 않았다”며 “실적 요구 할 때는 서울시, 복지부, 자치구도 나서더니 우리를 책임져 달라고 하니 너무 나도 무관심하다는 걸 느꼈다”고 토로했다.

A 팀장은 “파업을 통해 핑계가 아닌 행동이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경험의 중요성을 느꼈다”며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가지고 파업을 종료한 게 아니라 파업을 통해 새로운 여러 현실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최명민 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파업 당시 큰 그림을 그렸다기 보다 집행부도 초보였고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이 아쉬웠다고 했다.

그는 “(파업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9월에 서울시 정신보건 사업 실적 다 내주고 파업을 시작하니 공무원들이 아쉬운 게 없었다”며 “사회복지계는 언제 우리와 소통했냐, 이제 와서 연대를 이야기하냐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사회복지사 중심으로 파업이 진행되면서 파업 끝나고 나서 사회복지사를 탄압하고 간호사를 선호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우리가 바꾸고 싶었던 건 불합리한 구조였다”며 “실무자가 느끼는 고통과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은 별개가 아닌 같은 맥락에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같은 관할 주체의 불명확성 등은 신자유주의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최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끊임없이 경쟁을 시킨다는 점”이라며 “경쟁은 단기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다. 경쟁에서 밀린다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속이고 과장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최소 비용으로 사회적 위협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통치 철학을 갖고 있다.

최 교수는 “정신장애인은 위험 요소이며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며 “소비자가 필요한데 정신장애인은 소비를 할 수 없다. 위험한 존재이자 쓸모없는 존재여서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돈이 지원된다”고 지적했다. 사례관리는 이 같은 신자유주의 철학에서 불가피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신자유주의는 기본 책임을 지는 책임자를 두지 않는다.

최 교수는 “신자유주의에서는 책임성 있는 이들이 찾기 어렵고 관리 시스템만 남는다”며 “이 같은 (주체의 부재는) 센터 파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공공도 아니고 민간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에서 정신건강서비스를 해 오면서 그 밑에서 일하는 이들은 불합리하다고 느끼지만 정확한 부분을 짚어서 투쟁하기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권한을 쪼개면 저항할 대상이 모호해진다”며 “권력을 집중하지 않고 분산하면 투쟁할 때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에서의 저항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태도 전환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없으면 한계에 부딪힐 거라고 전망했다.

최 교수는 “코로나19로 청도 대남병원과 제2미주병원 등 정신병원에서 정신장애인들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인권 문제가 다시 재기됐다”며 “의료담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투쟁은 지나가지만 지난한 투쟁은 변화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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