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사랑을 선택할 권리도, 이별로 인해 상처받을 권리도 모두 내게 있어요"
[이관형 기자의 변론] "사랑을 선택할 권리도, 이별로 인해 상처받을 권리도 모두 내게 있어요"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5.26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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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엄마의 통제와 감시에 결국 헤어져
엄마가 여자친구 과잉보호하면서 자립심 잃게 돼
여자친구는 가족 안에서 자신 목소리 무시당해와
사랑한다면 자식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다하도록 도와줘야
인간은 성장하는 존재...성장 가로막지 말아야
(c)webto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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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멀리 미국에서 왔습니다. 만나게 된 과정도 먼 거리만큼이나 극적이었죠. 5년 전 쯤,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운영하는 조현병 관련 카페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살면서 조현병을 축복으로 마주하게 된 짧은 이야기였죠.

그리고 며칠 뒤, 한 통의 메일이 왔습니다. 미국 남부에 살고 있는 한 중년의 여성이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카페에 올린 제 글을 읽고 감동 받아서 메일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도 한국에서 조현병 치료 중에 있는데 한번 만나서 좋은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마침 그 여성분의 딸은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이모네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저도 흔쾌히 딸을 만나겠다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직접 만난 그녀는 착하고 순수하게 느껴졌습니다. 말하는 톤이 조금 높았으나 전혀 아프거나 이상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죠. 그렇게 몇 번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를 만나는 날부터, 어머님은 카톡을 통해 자신의 딸에 대한 안부를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었죠. 거의 날마다 제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연애를 시작하면서는 이틀에 한 번 정도 제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오늘은 어디서 만났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아주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조금 귀찮았지만 먼 타지에 두고 온 딸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차마 연락을 거절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제 여자친구 역시도 어머니에게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왔던 것 같습니다. 데이트를 하면서 나누었던 대화와 일들을 모두 보고하듯이 말해 온 것이죠.

한 번은 여자 친구가 어머니에게 보내야 한다며 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엄마는 오빠가 살을 빼기를 원해요”라고 말했죠. 사실 제 여자친구도 다소 통통한 편으로 둘 다 살을 빼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둘 다 원래는 말랐으나 약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살이 쪘기 때문이죠.

여자친구는 약으로 인해 살이 찌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단식원에도 들어갔었죠.

단식원에 들어가 있는 동안 통화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여자 친구는 문 밖에서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통화 내용을 엿듣는다고 말이죠. 전 그게 아니라고,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감시받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통화를 통해 그녀의 성장 과정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왜 그런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어릴 적, 온 가족이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생계를 유지하고자 도너츠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두 쌍둥이 자매를 소홀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자매는 학교에서 많은 상처를 받은 듯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머니는 두 자녀를 보호하고자 마음먹습니다. 학창시절 동안 늘 학교까지 차로 태워다 주고, 하루 일과를 물어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심해져 과잉보호로 연결됩니다. 다행히 쌍둥이 언니는 미국 동부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고 가정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자립심을 길렀습니다.

(c)scienceoflo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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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 여자 친구는 근처 대학에 입학해 집에서 생활하게 되죠. 두 자녀를 향했던 관심과 보호가 여자 친구에게로 쏠리자, 점점 더 자립심을 잃게 됩니다. 심지어 옷 입는 것 하나, 물건을 놓는 것 하나까지 모두 부모님의 참견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어머니를 두려워하게 되고, 보호 받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죠.

여자친구도 처음부터 조현병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온 건 눈이 나빠져 치료를 위해서였죠. 그리고 외할머니와 미혼으로 남아있던 이모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와 이모 역시, 여자 친구를 과잉보호하게 됩니다. 미국에 있는 어머니가 이모에게 수시로 연락해서 딸에 대해 묻기도 했고, 집안 내력으로 인한 영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견디다 못한 여자 친구는 어느 날 탈출을 모색합니다.

미국에서 운전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다짜고짜 차를 몰고 서울에서 경기도 남부까지 내려온 거죠. 어딘지도 모를 동네에 원룸을 잡고 아르바이트까지 구합니다. 이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 준비가 되어 있던 겁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어머님은 딸을 찾기 위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게 됩니다. 결국 흥신소를 통해 딸을 찾아내고, 딸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인지 병원에 입원시킵니다. 병원은 딸에게 조현병 진단을 내렸고, 몇 달간 입원시켰습니다. 그곳에서 약을 먹으며 여자 친구의 몸도 마음도 점차 의존적으로 변해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퇴원한 뒤 어머님의 소개를 통해 저를 만나게 되었죠.

당시 전, 대학원 재학 중으로 방학 기간이라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을 10시간 가까이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여자친구를 다시 건강하고 자립적으로 만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여자친구 역시 제가 상담사처럼 느껴진다고 말할 정도였죠. 하지만 당시 제가 학생 신분이라 돈이 넉넉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매일 오랜 시간 만나다보니, 그에 따른 데이트 비용이 부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자친구에게도 비용을 부담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여자친구의 어머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죠. 이로 인해 여자 친구의 집은 뒤집혀졌다고 합니다. “마음 가는 곳에 돈이 따라 가지 않느냐?”, “여자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죠.

아마도 어머님은 저를 완벽하고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만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여자친구 집안에서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도, 1억3천만 원이면 미국에 좋은 집을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요즘 시대에 혼수는 안 하지 않느냐고 말했었습니다.

남자 쪽에서 집은 사되, 여자 쪽에서 혼수는 없다는 뜻이었죠. 물론 저희 집에서는 결혼이고 뭐고 간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자 쪽 집안을 조금 이상하게 바라볼 뿐이었죠.

물론 저도 결혼에 대한 마음이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가까운 곳에 살아야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는 어머님의 말을 듣고, 절대로 가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저까지 여자 친구와 세트로 과잉보호 받을 게 뻔하니까요.

심지어 미국에서 어머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저까지 강제입원시키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자친구와 약속을 했습니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어머님이 한국에 오더라도 찾을 수 없도록 지방에 내려가서 살자고요.

그러다 어느 날, 미국에서 여자친구의 쌍둥이 언니가 한국에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직접 만나서 눈을 봐야 믿을 수 있다”고 말했던 어머님의 대리인으로 왔나 싶습니다. 저와 여자친구와 언니까지 셋은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 또 여자 친구네 집안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여자친구의 언니가 블루레몬에이드를 주문했는데 제가 잘못 듣고 레몬에이드를 시킨 것이죠. 이 사실이 이모와 할머니를 거쳐, 미국의 가족들에게까지 알려졌고, 제가 여자친구와 언니를 무시한 거라고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여자친구로부터 “엄마가 오빠와 헤어지기를 원해요”라는 통보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히 작은 오해 때문에 헤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쯤에 한 가지 일이 더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처음 만난 계기가 된 조현병 관련 카페는 한 정신과 의사가 운영하는 카페입니다. 그곳 회원들은 그 정신과 의사를 무한히 신뢰하죠.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그 의사를 통해 병이 회복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은 책으로도 나왔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의학계에서는 그 정신과 의사를 평범하게 바라보지 않았죠. 괴짜라는 말도 있고, 탁월하다는 평도 있고, 논란이 많은 의사입니다. 분명한 건, 그곳 카페의 많은 회원들이 그 의사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여자 친구의 어머님도 그 중 한 명이고요. 심지어 의사가 카페에 올린 글을 프린트하여 간직할 정도입니다.

그런 어느 날, 의사가 카페에 글을 하나 올립니다. 조현병 환자들의 결혼을 적극 찬성하고 장려하지만, 조현병 환자끼리의 결혼은 반대한다는 글이었습니다. 이유는 양쪽 다 조현병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면서 조현병을 가질 확률이 40%이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어머님은 그 글을 분명 읽었을 것이고, 저도 그때 쯤 이별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자 친구는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제게는 미련도 아쉬움도 전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를 통해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여자 친구가 안타까웠죠. 제게는 헤어져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만 남아 있습니다. 한편으론 조현병의 또 다른 발병 원인과 사례에 대해 경험하고 공부하게 되어 감사하고요.

그녀에게 조현병은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약점이었습니다. 마음대로 옷을 입을 수도, 물건을 놓을 수도,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녀도 자신의 주장을 하고 싶었죠. 화도 내보고, 소리도 질러 봤지만 돌아오는 건 “쟤, 또 조현병 도졌네”라는 반응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가족들로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무시당했습니다. 또한 강제적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도 스스로 움츠러들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현병이라는 증상과 고통이 아닌, 조현병이라는 타이틀 그 자체가 가족들로 하여금 그녀의 목소리와 자아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여자친구의 집안은 언제나 화목하고 사랑이 넘쳐야 했습니다. 적어도 보여지는 모습에 어떠한 고통도, 실수도, 잘못도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서 평화로운 가족사진과 함께 댓글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남기는 것도, 자신이 다니는 한인 교회의 목사가 사임했을 때 좋은 목사가 새로 부임하도록 제게 기도를 부탁했던 것도, 키우던 강아지가 늙고 병들어 쓰러졌을 때 비명을 질렀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모습, 완벽한 목사와 좋은 성도들만 있는 교회, 늘 곁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강아지를 지키기 위해 어머님은 하루 2시간씩 장롱에 들어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딸은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평생 딸을 보살펴주고 이해해주고 경제력까지 갖춘 사위를 찾아야 했습니다. 살도 찌지 않으면 더 좋았을 거고요. 하지만 전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눈을 직접 마주쳐야 사람을 믿을 수 있고, 외출을 할 때도 문고리를 여러 번 확인하는 강박증까지 가진 어머님에게 전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저의 작은 실수도, 저의 작은 잘못도 하나님께 드린 하루 2시간의 기도 제목에는 포함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딸이 가진 조현병을 겪게 된 것도 마찬가지고요.

제게도 그녀는 부족함이 많은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만났던 건, 그녀의 부족함을 제가 채워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희 부족함도, 언젠가 그녀가 채워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의 연속이 결혼생활이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관형 기자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이관형 기자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조현병의 유전적 확률이 40%라 해도, 40%라는 숫자에 저의 인생을 결정할 필요성도 못 느꼈죠. 제게서 태어난 아이는 분명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살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조현병이 있든, 자녀가 조현병이 있든, 그 가정의 행복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서로의 연약함과 약점을 인정하고 감싸줄 때, 그 가정은 더욱 성숙해질 기회가 많아지는 거죠.

아마도 많은 분들이 조현병이나 조울증, 우울증으로 인해, 혹은 또 다른 여러 가지의 장애로 인해 연애와 결혼을 머뭇거릴 겁니다. 저 역시 조현병이라는 타이틀이 연애와 결혼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곤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고, 모든 선택은 내가 자유롭게 합니다. 그에 대한 책임도 제 몫이고요. 사랑을 선택할 권리도, 이별로 인해 상처 받을 권리도 모두 나에게 있습니다.

가족들의 판단으로 인해, 사회의 만류로 인해, 어쩌면 의사의 권유로 인해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결혼을 포함한 모든 인생 문제들은 나의 것입니다. 때로는 실패도 아픔도 고통도 우리의 삶을 깊이 있고 풍성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두려워서 피하려고만 든다면, 나를 더 강인하게 성장시킬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부탁드립니다. 조현병을 비롯해 장애가 있는 당신의 자녀, 당신의 형제, 당신의 아내와 남편은 결코 결함이 있거나 열등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 또한, 연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도움과 보호의 대상도 아닙니다.

다만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염려와 걱정으로 자신의 테두리에 가두기보다, 세상 밖으로 나가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풀어 주십시오. 당신이 신앙을 갖고 있다면, 당신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맡겨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인간은 원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지만, 도전하고 때로는 실패하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장의 과정을 가로막고 안전을 위해 새장 속에만 가두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병이 있다는 이유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품 안에만 가두는 것은 사랑으로 포장한 과잉보호에 불과하죠. 과잉보호의 본질은 사랑이 아닌 정서적인 폭력입니다. 그 대상이 가족이라 하더라도, 장애 당사자라 하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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