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노킴의 동시대 미술가 (2)] 로버트 슈에이몽(Robert Suermondt), 이미지와 이미지들
[가비노킴의 동시대 미술가 (2)] 로버트 슈에이몽(Robert Suermondt), 이미지와 이미지들
  • 가비노 김
  • 승인 2018.06.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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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출신 벨기에 활동 동시대 미술가
살아있는 이미지...탈중심주의, 탈재현주의 전략

로버트 슈에이몽(Robert Suermondt, b.1961)은 스위스 출신 미술가다. 주로 벨기에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Robert Suermondt (c) Allegrarte
Robert Suermondt (c) Allegrarte

그는 보헤미안 경향의 네덜란드인 아버지와 슬로베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0년 아버지가 스위스 제네바 소재 미국 기업에 취직하면서 가족들은 네덜란드에서 스위스로 집을 옮겼고, 한 달 뒤에 로버트가 태어났다. 로버트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그에게 슬로베니아어로, 아버지는 그에게 네덜란드어로 말했다. 그가 살던 마을은 프랑스어가 공용어였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3가지의 언어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 그 언어는 로버트에게 미지의 소리와 같았다. 언어가 별로 믿을 만하지 못하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낀 어린 로버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언어를 배우는 대신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그의 가족은 매년 여름에 유고슬라비아로 가서 한 달 정도 휴가를 보냈고, 3주 정도는 그의 어머니 고향에서 지내곤 했다. 이러한 경험은 로버트가 화가의 길을 걷게 하는 필연적 요소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연관이 없지도 않았다. 당시 현대화되지 않은 유고슬라비아의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로버트는 그 풍경 앞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꼈으며, 그 공간을 완전히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어린 로버트는 종종 천식을 앓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의 장면을 자신의 시야에 온전히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 큰 숨을 마시면 천식 증상이 한동안 사라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노력이, 대상을 자신의 시각장에 모두 담아보려는 노력들이, 그를 진정으로 살게 해줬다고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에 눈을 뜨다

어린 로버트가 본격적으로 이미지에 눈을 뜬 것은 학창시절에 사진을 찍고 이에 대한 서사를 엮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은 뒤부터다. 학교 선생들은 로버트에게 영화제작을 제안했고, 그는 이러한 인정 속에서 자기자신이 되는 것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는 제네바에 있었던 예술 관련 학과에 지원해서 고등학교 교육을 마쳤고, 이어 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총을 쏘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에 결국 군에서 쫓겨나 우체국에서 복무했다. 그는 거기서 만난 친구와 함께 아시아,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일본에서 그는 전통적 건축물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집의 구성요소들, 곧 내부와 외부 사이에 대한 개념, 모듈화된 집들의 모습이 매우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0년 후인 1992년 암스테르담에서 제프 월(Jeff Wall)이 쓴 댄 『그레이엄의 소극장』(Dan Graham's Kammerspiel, 1991)을 읽고 일본 건축물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다. 제프 월은 현대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로버트는 숲 속에 세워진,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필립 존슨의 집에서 이미지의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곧, 그 집은 어두워졌을 때 유리문을 경계로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볼 때 내부와 외부의 이미지가 중첩되는 경험을 선사해줬던 것이다. 어떤 이미지가 ‘앞에’ 위치하고, 어떤 이미지가 ‘뒤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로버트의 본원적 물음은 이때부터 피어나기 시작했다.

Philip Johnson's Glass House, in New Canaan, Connecticut. The property is also home to several additional buildings by Johnson. ©Architecture + Design
Philip Johnson's Glass House, in New Canaan, Connecticut. The property is also home to several additional buildings by Johnson. ©Architecture + Design
Philip Johnson's Glass House in Dining Area ©misfits' architectue
Philip Johnson's Glass House in Dining Area ©misfits' architectue
Philip Johnson's Glass House in New Canaan, Connecticut ©Eirik Johnson
Philip Johnson's Glass House in New Canaan, Connecticut ©Eirik Johnson

로버트는 일본 여행을 마치고 홍콩, 타일랜드, 인도 등을 거쳐 유럽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이듬해 곧바로 제네바 시각예술대학(l’Ecole supérieure d’art visual de Genève, 현재는 the Geneva School of Art and Design)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그는 혼합매체(mixed media)를 다루는 실비 & 셰리브 드프라위(Silvie & Cherif Defraoui)의 작업실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는 여기서 비디오, 영화, 사진 등을 만들었으며, 물론 회화작업도 병행했다. 당시 로버트의 관심사는 주로 ‘이미지들’, 곧 연속된 화면(sequences)을 구성하거나 이미지의 파편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은 회화보다는 오히려 영화적 기법에 가까웠다.

당시 그는 누보로망(le Nouveau Roman)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특별히 영화적 기법을 통해 플롯, 배경, 인물까지 사실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실험하면서 누벨바그(nouvelle vague) 영화를 탐닉했다. 그가 좋아했던 작가는 이탈리아 영화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였다. 특별히 안토니오니의 ‘라 노테’(La Notte, 밤, 1961)를 좋아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그들이 탈출하려는 삶의 조건, 곧 그들과 만나는 사람들과 사건들 속에서 24시간 동안 헤매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Michelangelo Antonioni ©MUBI
Michelangelo Antonioni ©MUBI

로버트의 스승 셰리프가 그에게 회화 작업과 병행해 영화를 제작해보라고 제안하자, 그는 코닥 카메라 브랜드(pellicule super 8)를 활용해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놀랍게도 그 교수는 로버트의 창작물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고, 로버트는 용기를 내어 본격적으로 야심차게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를 이탈리아 남부 호텔방처럼 꾸미고 영화촬영 준비를 했다. 말하자면, 방 안에 호텔 방이 있었던 것이다. ‘방 안의 방’이라는 공감각적 주제는 그의 작품에서 여러 층위로 변형되어 등장한다. ‘방(Salle)’ 연작은 이 같은 체험에서 확장된 작품이다.

Robert Suermondt, Salle des Heures, 2016, acrylic on canvas, 115 x 115 cm©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des Heures, 2016, acrylic on canvas, 115 x 115 cm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Rose, 2016, acrylic on canvas, 120 x 120 cm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Rose, 2016, acrylic on canvas, 120 x 120 cm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Adrian, 2016, acrylic on canvas, 56 x 55 cm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Adrian, 2016, acrylic on canvas, 56 x 55 cm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bleue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bleue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été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été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des Changes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des Changes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pointille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Salle pointille ©Robert Suermondt


본다는 것


그는 ‘보는 것’에 대한 물음을 끈질기게 연구했다. 어렸을 때 그는 이탈리아에서 미켈란젤로, 반 고흐, 피카소의 작품들을 보았고, 그 작가들의 복제 스케치를 가지고 와서 이리저리 연구했다. 로버트에게 이 거장들이 가장 매력적이었던 점은 하나의 형상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어쩌면 미완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장들의 스케치 안에서 ‘증발한(vanished)' 형상에 주목하는 것이었다. 그 증발된 형상은 로버트에게는 하나의 물음이었고, 결단을 유보한 상태와 같았다. 그 후에 경험한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은 로버트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특별히 모네의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1872)는 먹어 치우고 싶을 정도였다. 아울러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ney) 역시 로버트에게 영향을 끼친 동시대 미술가다. 호크니가 묘사한 모더니즘 건축의 콘크리트 벽에 투영된 그림자와 수영장에 등장한 그 층위의 깊음은 매우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Claude Monet, Impression, Sunrise, 1872, oil on canvas, 48x63cm.
Claude Monet, Impression, Sunrise, 1872, oil on canvas, 48x63cm.
David Hockney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1972 Private Collection © David Hockney
David Hockney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1972 Private Collection © David Hockney

그가 자신만의 아틀리에에서 처음으로 만든 작품은 ‘사진’에서 변형을 거친 것들이다. 로버트에게 캔버스는 이미지가 변형을 이루는 공간이자 하나의 평면에서 또 다른 평면으로 전환되는 매개체였다. 깊음 자체로 들어가는 공간성과 함께 캔버스의 평면성 뒤에 혹은 그 너머에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주목하는 방식인 것이다. 로버트는 직감적으로 이를 레이어(층위, 막, 층)에 대한 물음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부분대상(petit objet a)과 탈출구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프로이트를 해석하면서 ‘부분 대상’ 혹은 ‘프티 오브제 아(petit objet a)’라고 불리는 개념을 설명한 바 있다. 리비도(libido)와 연관을 갖는 이 개념은, 욕망의 원천이자 욕망을 추동시키는 원동력이면서도 동시에 결코 우리가 파악하거나 포착할 수 없는 개념이다. 우리가 그 대상을 움켜쥐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대상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로버트가 작품을 통해 추구하려는 것이 정확하게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눈이 캔버스에서 무언가를 포착할 때, 그 대상 혹은 형상은 곧바로 달아난다. 예컨대 우리의 응시가 로버트의 작품에서 어떤 특정한 형상을 발견하고 그것에 집중했을 때, 우리가 집중하는 응시의 주변에서 또 다른 형상이 동시에 우글거리며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의 응시가 그 주변부로 옮겨가면, 처음의 그 형상은 고정된 형상으로 남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지난 2017년에 작업한 <자연 Nature> 연작들에게서 그러한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연작들은 심리학에서 로흐샤흐 검사(Rorschach Test)를 환기시킨다. 이 검사는 사고장애와 정서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흑색과 몇 가지 색으로 이뤄진 10가지 잉크얼룩을 보여준 다음, 피검자가 본 것에 대해 말하게 하는 투사시험(projective test)이다. 가끔 심리적으로 불안한 피검자는 얼룩을 보고 밟혀 터져 죽은 벌레 형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로버트의 <자연 Nature> 연작들도 이러한 효과를 겨냥한다. 우리는 로버트의 작품들에게서 어떤 형상이나 대상을 보지만, 대부분 그것들은 ‘가상적으로 재현된 결과’ 혹은 각각의 관람자가 ‘투사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Robert Suermondt, Nature, 2017, Laque sur carton, 20x30cm photo=gabino kim
Robert Suermondt, Nature, 2017, Laque sur carton, 20x30cm. photo: gabino kim
Robert Suermondt, 3 Natures, 2017, laque sur carton, frame 20 x 30 cm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3 Natures, 2017, laque sur carton, frame 20 x 30 cm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Nature, 2017
Robert Suermondt, Nature, 2017
Robert Suermondt, Nature, 2017
Robert Suermondt, Nature, 2017
Robert Suermondt, Nature, 2017
Robert Suermondt, Nature, 2017
Robert Suermondt, Nature, 2017
Robert Suermondt, Nature, 2017

관람자의 시선이 한 곳에 쉬지 못하도록 재촉당하는 이러한 로버트의 전략은 탈중심주의(decentralization)와 궤를 같이 한다. 지난 2008년 아트 바젤 언리미티드에서 설치된 로버트의 작품은 <엑스 EXE>였다. 당시 이 작품은 흑백으로 만들어졌고, 한쪽 구석으로 몰아가는 광기에 가득차 있었다. 재현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하나의 문, 혹은 하나의 중심, 혹은 하나의 탈출구만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작품은 어디서 보든지 간에 모든 형상들이 우글거리며, 수많은 탈출구를 동시에 보여주고, 그리고 각각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로버트는 이 작품을 컬러로 덧칠해서 다시 작품을 ‘구축’했다. 이어 고함을 치고 있는 새로운 탈출구들을 모아 매우 작은 미니어처로 만들기도 하고, 혹은 세부를 확대해서 별도의 큰 캔버스로 다시 그리기도 했다. 이들은 소위 <엑스 EXE>의 아기들과 같은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Robert Suermondt, Art Basel Unlimited, 2008.
Robert Suermondt, Art Basel Unlimited, 2008.
Robert Suermondt, Art Basel Unlimited, 2008.
Robert Suermondt, Art Basel Unlimited, 2008.
Robert Suermondt, EXE, revision
Robert Suermondt, EXE, revision
Robert Suermondt, EXE revision
Robert Suermondt, EXE revision
Robert Suermondt, Alpha-EXE baby, 2017
Robert Suermondt, Alpha(EXE baby), 2017
Robert Suermondt, Ground of fantasy, 2017, black and white newspaper clips, wooden box and plexiglas, 100 x 100 x 15.5cm
Robert Suermondt, Ground of fantasy, 2017, black and white newspaper clips, wooden box and plexiglas, 100 x 100 x 15.5cm

바로크 이미지들


로버트는 때때로 보도기사에 실린 사진에 등장한 인물들을 분해 혹은 가위로 잘라서 얼굴이 없게 만든다. 그런 다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잘려져서 너덜너덜해진 이미지들에게서 새로운 이미지를 읽어내고, 그걸 기반으로 유화 작품을 제작한다. 다시 말해 그는 조형적으로 매우 뛰어난 직감으로 목이 잘린 형상들에게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 사실, 사람들의 눈이 보도기사 사진에서 처음으로 도달하는 지점은 인물들의 얼굴이다. 그러나 만일 그 중요한 지점, 곧 그 ‘중심’을 건너 뛴다면 무슨 일이 발생하는가? 그 응시는 자신의 시각장에서 무언가를 완성시키거나 통합시키려고 끝없이 순환하게 된다. 그러나 결코 한 지점에 머물러 휴식을 취하지 못하며, 계속해서 응시가 순환한다. 마치 잔잔한 수면 위에 떨어진 돌멩이 때문에 수면의 파장이 일어나듯, 응시는 순환하며 확장된다.

Robert Suermondt, Tectonique 2013, huile et acrylique sur toile, 184 x 169 cm
Robert Suermondt, Tectonique 2013, huile et acrylique sur toile, 184 x 169 cm
Robert Suermondt, Lente, 2006, huile et laque sur toile, 200 x 280 cm
Robert Suermondt, Lente, 2006, huile et laque sur toile, 200 x 280 cm
Robert Suermondt, Suspens, 2007, huile et acrylique sur toile, 97 x 80 cm
Robert Suermondt, Suspens, 2007, huile et acrylique sur toile, 97 x 80 cm
Robert Suermondt, « Décoche », 2013, Oil and acrylic on canvas, 185 x 230cm
Robert Suermondt, « Décoche », 2013, Oil and acrylic on canvas, 185 x 230cm
Robert Suermondt, Ventue
Robert Suermondt, Ventue
Robert Suermondt, sans titire, 2017
Robert Suermondt, sans titire, 2017

로버트가 직감적으로 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기호와 이미지들이 융합하고 합성되는 지점에 무의식적으로 끌려가기 때문이다. 그는 저널리즘의 장면을 비롯해 자신이 마주하는 일상의 모든 장면에서 영감을 얻고, 그 이미지들의 유사성에서 이미지 자체의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낸다. 이 작품들은 언뜻 보기에 무엇인지 모르는, 혹은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구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니다. 하지만 그 이미지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움직임이 발생하며, 마지막에 항상 그 작품은 하나의 ‘얼굴 형상’을 갖는다. 그는 자율적으로 탈선한 이미지들에게서 새로운 존재를 취해 각각에 하나의 ‘얼굴들’을 되돌려주려고 노력한다. 그 얼굴들은 때로는 괴이하게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만화 형상처럼, 혹은 단순히 관람자가 보고 싶어하는 투사적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무엇이 ‘뒤에’ 있고 무엇이 ‘앞에’ 있는가.


거울(Miroir)


소위 ‘창문’으로 불리는, 혹은 ‘거울’ 연작이기도 한 이 작품들은 그가 사진과 이미지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준다. 이 작품들은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 등 기하학적 형태로 중앙을 향한 축에 대한 응시를 암시하고 있다. 이 중심축의 방향은 마치 카메라 렌즈가 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중심과 주변의 이미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예컨대 우리가 어떤 직사각형의 모서리에 응시를 집중시키면, 그 공간감을 실감하면서 주변부의 공간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곧, 어떤 지점에 우리가 주의를 집중하면, 그 주변에 예기치 않는 다른 이미지가 동시에 발생한다. 이에 따라 집중화는 분열되고, 응시는 순환하게 된다. 하나의 중심을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지만, 우리의 응시는 계속 순환하며, 혹은 안으로, 바깥으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계속해서 옮겨간다. 중심주의를 강조하려는 듯하지만, 사실은 탈중심주의를 선언하는 작품인 셈이다.

Robert Suermondt, Miroir (Schaffausen), 2016, acrylic on canvas, 240 x 250 cm (20 x 60 x 60 cm)
Robert Suermondt, Miroir (Schaffausen), 2016, acrylic on canvas, 240 x 250 cm (20 x 60 x 60 cm)
Robert Suermondt, 20 Miroirs, 2016, acrylique sur toiles, each 60 x 50 cm_installation Museum zur Alleheiligen, Schaffausen, nov. 2017
Robert Suermondt, 20 Miroirs, 2016, acrylique sur toiles, each 60 x 50 cm_installation Museum zur Alleheiligen, Schaffausen, nov. 2017
Robert Suermondt, Miroir (quatre) 2016, acrylic on canvas, 60 x 50 cm each
Robert Suermondt, Miroir (quatre) 2016, acrylic on canvas, 60 x 50 cm each

이 연작들은 홀로 존재하기도 하며, 무리를 이루기도 하고, 나열되기도(series) 한다. 한꺼번에 무리를 지은 거울 연작들을 보면, 우리의 시각장에서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일종의 다공적(porous)의 특질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전략은 배치의 다양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란 없으며, 주변적인 것도 없다는 데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작품들이 유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나의 평면에서 다층적 공감각을 느낄 수 있다.

Robert Suermondt, Miroir (neuf), 2016, acrylic on canvas, 60 x 50 each
Robert Suermondt, Miroir (neuf), 2016, acrylic on canvas, 60 x 50 each
Robert Suermondt, Miroir (tryptique), 2015 & 2016, acrylic on canvas, 55x46 cm each
Robert Suermondt, Miroir (tryptique), 2015 & 2016, acrylic on canvas, 55x46 cm each

추상과 구상의 비율


로버트는 추상화에 관심이 없다. 만일 추상적인 ‘형상’을 그려넣고 그 캔버스에 ‘제목’을 붙인다면, 이미 그것은 추상이 아니라 우리가 이름 지을 수 있는 무언가를 재현한 것과 같다. 따라서 그것은 더 이상 추상화가 아니다. 물론 이때의 추상은 형상을 제거하거나 구상을 피하려는 노력의 결과라는 의미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이후 흰색 캔버스 안에는 잠재성 혹은 온갖 가능성으로 우글거리고 있다는 관점이 가능해지긴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추상의 ‘0도’가 실현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 흰색 캔버스나 텅 빈 캔버스에서 관람자가 무엇을 보는 것은 제한적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정식을 이론적으로는 수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실천적으로는 전혀 영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1980년대 아카데미가 회화의 죽음을 선언했다지만, 그것을 조롱하기도 하는 듯 1990년대부터 표현주의 계열의 수많은 회화 작품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쉬운 예로, 당장 우리 주변을 보더라도 추상화가들이 너도나도 흰색 캔버스를 내세우며 추상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추상화가들은 또 다시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로버트는 형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미지 자체에서, 캔버스 내에서 관람자가 형상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시간 안에서 유예되도록 만든다. 다시 말하자면, 관람자가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볼 수 있을 때까지는 그것이 구상인지 추상인지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 다른 도전들

어렸을 때 로버트의 가족은 이방인이었다. 따라서 로버트의 내면에는 언제나 ‘이방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그 꼬리표는 말하자면 그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왔고, 지금도 스위스 대신 브뤼셀에서 이방인의 삶을 택해서 살고 있다. 그는 이방인이자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화가 외에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미술을 소명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예술가적 소명의식에 따른 치열한 작품활동 덕분에 로버트는 스위스와 암스테르담 등 유럽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지난 2006년에는 스위스 최고의 현대미술 문화상인 메렛 오펜하임 상(Meret Oppenheim Prize)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울러 유명한 스포츠 센터 건물이나 종교적 건축물 내부 벽화나 장식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Robert Suermondt, Wallpainting in situ 2008, BkSM, Strombeek, Maline
Robert Suermondt, Wallpainting in situ 2008, BkSM, Strombeek, Maline
Robert Suermondt, Wallpainting in situ 2008 (detail), BkSM, Strombeek, Maline
Robert Suermondt, Wallpainting in situ 2008 (detail), BkSM, Strombeek, Maline

최근에는 사진 이미지 뿐 아니라 패션 장르를 결합시켜 접기-회화(folding-painting)를 창안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로버트는 우연히 패션 디자이너 동료의 마네킹에 캔버스로 옷을 디자인하는 실험을 통해 ‘접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실 그동안 캔버스라는 매체에 의문을 표명한 작가들은 많았다. 예컨대 캔버스 표면을 포기하고 개념미술적으로 나아간 ‘쉬포르-쉬르파스(Support-Surface)’ 작가들이나, 캔버스 지지체를 포기한 클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 캔버스를 구기고 채색한 뒤 펼쳐서 작업한 시몽 앙타이(Simon Hantai) 등의 작가들이 있었지만, 로버트는 이들과는 다른 독창적 전략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넘버 2> 작품에 등장하는 운동감을 실제 캔버스의 표면으로 구현했다. 이러한 접기 전략을 통해 우리는 한 지점에서 캔버스를 보지 않고 조각처럼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작품을 관람하게 된다. 접힌 부분의 그림자와 빛의 밝기에 따라 이미지는 살아 움직이는 듯 끊임없이 형상의 변형을 이어나간다. 이제 캔버스는 의상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혹은 캔버스 자체가 의상이 되기도 한다.

Robert Suermondt, Bachanale 2017, huile sur toile, 140 x 105 cm
Robert Suermondt, Bachanale 2017, huile sur toile, 140 x 105 cm
Robert Suermondt, Canterbury collaps 2017, acrylique sur toile, 83 x 75 cm
Robert Suermondt, Canterbury collaps 2017, acrylique sur toile, 83 x 75 cm
Robert Suermondt, Acceleration, 2017, huile sur toile, 46 x 53cm.
Robert Suermondt, Acceleration, 2017, huile sur toile, 46 x 53cm.
Robert Suermondt, Acceleration, 2017 (detail), huile sur toile, 46 x 53cm
Robert Suermondt, Acceleration, 2017 (detail), huile sur toile, 46 x 53cm
Marcel Duchamp,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 1912, oil on canvas.
Marcel Duchamp,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 1912, oil on canvas.

아울러 이미지의 이러한 움직임을 영화 필름처럼 캔버스 화폭에 담아낸 실험도 이어간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시네마’이며, 문자 그대로 시네마다. 앞으로 그가 보는 이미지들은 또 어떤 형태로 등장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무엇을 보든, 그가 이미지를 가지고 놀 것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Robert Suermondt, Cinéma, 2017, laque sur toile, 240 x 200 cm
Robert Suermondt, Cinéma, 2017, laque sur toile, 240 x 200 cm
Robert Suermondt, Cinéma II 2017, laques sur carton, modules de 78 x 115 cm
Robert Suermondt, Cinéma II 2017, laques sur carton, modules de 78 x 115 cm
Robert Suermondt, Mirage 02 2017, acrylic on wall, 70 x 120 cm
Robert Suermondt, Mirage 02 2017, acrylic on wall, 70 x 120 cm

 

 

가비노 킴(Gabin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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