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통해 멸시가 사랑이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잖아요”
“음악을 통해 멸시가 사랑이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잖아요”
  • 임형빈
  • 승인 2018.07.02 23: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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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출신 콩나물밴드 리더 이경오 씨 인터뷰
밴드 참여자 모두 조현병 당사자…음악은 치유의 방편
소규모 행사 자주 갖고 1년에 30여 차례 정식 공연
“아픔이 있지만 우리에겐 음악이 있어”

 

콩나물밴드라고 했다. 콩나물이라. 기자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하고 많은 밴드 이름 중에 콩나물이라니.

이 밴드를 이끌고 있는 리더 이경오(60)씨는 “콩나물시루에서 같이 자라듯 태어난 환경은 틀려도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랑, 소망을 함께 노래해 우리가 달려가는 목적지까지 성장하고 달려가자고 다짐했다”고 작명(作名) 배경을 설명했다.

콩나물밴드는 지난 2011년 ‘수원시성인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음악에 대해 열성적인 정신장애인 당사자 4명이 모여 결성됐다. 현재 리더 이경오 씨를 비롯해 보컬 이기탁, 일렉기타 박찬기, 베이스기타 조장혁 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60대 경오 씨를 빼고 모두 50대다. 3년 전에는 세컨드보컬을 맡은 홍무량대수(26)씨가 합류해 그나마 ‘다양한’ 연령층이 포진한 셈이다.

경오 씨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바이올린 유학을 한 학구파 음악인이다. 빈에서 생활하던 30대 어느 날 조현병이 찾아왔다. 불면과 환청, 우울증이 겹쳐왔고 자신을 괴롭히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공부를 포기한 채 쓸쓸하게 귀국했다. 이후 한국에서 그는 꿈을 잃었다.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는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어느날 복지센터에서 정말 우연히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잃어버린 음악에 대한 향수가 피어올랐다. 그는 이들을 조직했고 밴드를 만들었다. 콩나물밴드의 시작이다.

나머지 멤버들도 조현병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낸 동료들이었다. 밴드가 꾸려졌고 때마침 사단법인 ‘여럿이 함께 NGO’ 단체가 이들을 지원했다.

“똑같은 취지의 당사자 출신들이라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음악을 통해 우리의 아픔을 노래해 조현병 회원들에게 빨리 가까이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당사자들과 공감하며 보람도 느껴 치유의 방편이 되는 것 같아요.”

콩나물밴드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조현병 당사자들에게 치료의 매개체가 되는 것으로 정했다. 노래를 통해 그들의 인권 개선과 권익 증진, 자존감 회복을 돕는다. 팬들 가까이로 더 다가가 그들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소망을 노래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과 소통한다. 팬들이 비록 소수지만 그들을 위해서라면 달려가 음악을 들려준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작은 음악회를 연다. 2주에 한 번씩은 지역의 호텔 밀알에서 소규모 공연도 갖는다. 경기도 지역 정신보건기구에서 공연 신청이 자주 들어온다. 특히 병원에서 송연기념 공연이 들어올 때면 환자들과 호응하며 공연을 가지는 것도 뜻 깊다.

경오 씨는 “그들의 맑은 눈동자를 볼 때마다 (저희도) 힐링이 되고 기도하게 된다”고 말했다.

콩나물밴드는 한해 크고 작은 공연을 보통 25~30차례 가진다. 8년이 넘게 공연을 해 온 팀이라 지명도가 쏠쏠하다. 경기도정신보건기구에서는 이른바 음악의 ‘작은 용사들’로 통한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경오 씨의 독주는 들어본 이는 모두 “감동적”이라고 말한다. 콩나물밴드는 가곡에서부터 대중가요, 팝까지 레퍼토리가 다양하다.

밴드는 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음악을 손수 전수한다고 했다. 벌써 여러 팬들이 이들의 손을 거쳐갔고 또 누군가는 음악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치유되기 위해 찾아온다.

어려움도 있지 않았을까?

“연습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행사특성에 맞게 순환시키며 연습해야 되는데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금요일 각 두 시간씩 총 4시간 연습하거든요. 멤버들 하는 일도 있고 해서 짜투리로 시간내서 연습하는 거죠. 특히 새로운 곡이 들어오면 새로운 행사에 맞춰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돼서 애로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경오 씨는 시간표를 짜고 멤버들을 모아 연습시킬 때가 항상 긴장된다고 했다. 정신장애인은갑자기 환경이 바뀌거나 삶의 부담이 많아지면 종종 재발을 겪는다. 그래서 일을 매개로 그들에게 접근할 때 조심해야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혹시 서로가 부담감을 가지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 모두가 조현병 당사자들이라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긴장이 많이 된다.”

그렇지만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이들은 아픔을 넘어설 수 있었다.

경오 씨는 “우리들에게도 아픔이 있지만 음악이 있잖아요”라고 농을 친다.

“음악을 통해 멸시가 사랑이 되고 어둠이 빛이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잖아요. 함께 음악을 통해 조현병을 극복하고 보람도 느끼고 진정한 하나가 되는 것이고, 당사자 인권과 인식 개선에 우리가 음악으로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자부심을 느껴요,”

처음에 음악을 다시 시작했을 때 경오 씨는 다만 현재의 문제, 현재에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조현병 당사자인 멤버들과 함께 해 오면서 지금은 멤버들이 친형제 이상으로 느껴지고 고맙다고 여긴다.

“멤버들이 다 형제죠. 우리가 다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우린 극복했다 생각합니다. 우린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죠. 그만큼 동고동락한 시간이 얼마인데요. 주어진 시간이 우릴 배신하지 않는다면 당사자들을 위한 음악의 여정은 계속 될 겁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무니까요.”

공연을 하면 환호하는 당사자들 앞에서 밴드 동료들은 힘을 얻는다. 앙코르를 외칠 때도 힘이 난다. 같은 동지애를 느끼고 같은 동질감으로 밴드를 맞이해주면 가족애 이상의 깊은 여운이 남는다고 했다.

경오 씨는 음악을 하면서 특별한 사명감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많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까지 음악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우문(愚問)일 것이다.

경오 씨에게 콩나물밴드는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그 무엇)”이다.

하지만 현실적 문제들도 있다. 연습실이 너무 빈약하다. 지하실에 꾸려진 연습실은 방음 처리도 충분하지 않다. 동네 주민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이유다.

악기에 습기가 차 튜닝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악기를 습기 없이 보관하는 게 제일 큰 문제다. 이들에게는 방음이 된 습기 없는 곳에서 마음껏 연습하는 게 작은 소망이다.

“비록 환경은 열악하지만 저희에겐 음악이라는 큰 무기가 있어요. 조현병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작은 치유와 같은 효과가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들의 슬픔, 아픔이 우리들의 음악으로 함께 즐기고 기뻐한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죠. 우리들의 연주에 순박하게 웃어주던 아픔의 팬들, 그 모습이 저는 그렇게나 좋습니다.‘

‘아픔의 팬들’이 음악을 통해 치유되는 날. 콩나물밴드는 그 치유를 통해 그들도 치유받는 것이리라. 그와 헤어지면서 기자는 ‘모두의 치유’라는 짧은 소망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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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애 2018-07-17 00:18:56
콩나물밴드 너무 훌륭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