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우 “고통받는 당사자가 증언할 때 국민을 설득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백종우 “고통받는 당사자가 증언할 때 국민을 설득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8.10 18: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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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인터뷰
삶의 의미를 갖고 사는 사람이 최악의 상황을 견뎌
긍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의미 찾아야
자살은 사회적 연결 다 끊어졌을 때 발생...의미 있는 존재와 연결돼야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정신장애인 인권은 제자리걸음
친구 임세원 교수 사망 후 트라우마 겪어...동료상담 통해 안정
정신건강심판원이 강제입원 결정해야 가족 책임 덜 수 있어
찾아가는 정신건강 서비스 있었으면 강력 사건 안 일어났을 것
미국은 코로나 치료도 돈 없어 못 받지만...정신질환은 무료 서비스 받아
한해 1만4천명 극단적 선택이 ‘성장통’?...국가의 존재 의미 묻는 질문
해외 반낙인 운동가들 “웬만하면 누구를 비난하지 말라” 조언
한국사회 문제 인식하면 빠르게 긍정적으로 변해...희망의 근거돼
국회 움직이려면 해외 사례와 문제 해결 확신 심어줘야 해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살아온 과정을 좀 듣고 싶다고 하자 그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의 경험을 말했다. 의대 1학년이던 1990년 광주에서 열린 전대협 출범식에 참여했던 에피소드, 그리고 대학 사회과학학회에서 활동했던 이야기들, 소비에트가 무너지면서 조직이 와해되고 방황했던 시절, 산재 노동자들과의 인연, 의대 졸업준비위원회 모임을 만든 기억들, 진보적 사회진출에 대한 고민들. 그에게 대학은 그런 기억의 원형이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뭔가 아쉬울 때, 뭔가 아팠을 때 치열하게 살고자 했던 대학시절은 그에게 거울과 같았다. 그 시절에 자신의 현재를 포개보는 것. 운동권으로 학생회에서 일하면서 일 년을 낙제했다.

의대 친구들은 예방의학, 의료관리학, 산업의학, 가정의학을 택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지만 그 전공의 선택은 당시의 모순적 사회구조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의사로서 도울 수 있는 전략적 선택지들이었다.

그는 그 틈바구니에서 전공을 선택하느라 고민했다. 그때 가까운 선배가 진로를 묻자 그는 아직 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배는 말했다. “정신과 해. 정신과는 고민하는 과니까.”

정신과 전공의 1년차일 때 의대 동기 임세원 교수는 2년차였다. 같은 시기에 대학을 들어왔지만 학생운동에 몰입하다 일 년 늦게 전공의가 되면서 임 교수는 자신에게 친구이자 스승이 됐다. 100일 동안 병원에서 당직을 서야 하는 기간에 임 교수와 그는 같은 당직실에서 함께 지냈다.

그에게 임 교수는 육친적인 존재였다.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사람. 살면서 그런 사람 하나를 만난다는 건 축복이다. 인간의 자살도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인연 하나 없을 때, 그래서 삶이 고독해지고 우울해지고 마침내 실존적 위기에 처하게 될 때 선택하게 되는 '사회적 타살'이다. 이후 임 교수는 강북삼성병원으로 그는 경희대병원으로 가게 된다.

2018년 12월 31일 오전, 그는 임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모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살예방강의를 나눠서 해보자는 연락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임 교수는 내담자가 휘두른 흉기에 사망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 유가족의 전화를 받았다. 임 교수의 동생은 전화상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쉽게 편견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임 교수의 유지’라고 말했다. 머리를 도끼로 맞은 듯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장례와 추모, 안전한 치료환경에 대한 세부적 일들에 몰입했다. 그러나 친구의 죽음은 그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사소한 것에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기대를 했던 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했을 때 그는 화를 냈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슈퍼바이저에게 동료상담을 받으면서 그 분노의 원형에 친구의 황망한 죽음이 개입돼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임 교수 죽음 이후 2년이 지났다. 그는 이제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고 했다. 꼭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는 욕심도 많이 버렸다고 했다. 다만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고민하는 정신과 의사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결론은 그랬다. 국민을 설득하는 것. 서로의 의견을 내놓고 합의하고 그 합의안을 국가에 요구하는 것. 결국 설득은 사회의 모순적 시스템 안에서 직접적으로 고통당하는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는 것.

그리고 당사자의 목소리가 국민의 마음을 울릴 때 제도는 변하고 국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됐다. 그리고 10년 이내 한국 정신보건 시스템이 빠르게 변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다. 그건 젊은 시절 꿈꾸었던 정의로운 사회와 그 결을 같이 하는 정치적 사유다.

백종우(50)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난 건 지난 4일 서울 중구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다. 그는 지난해 2월, 중앙자살예방센터장으로 부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힘든 시기를 이겨낸 사람들의 공통점이 이타적 마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본성상 이기적이지 않습니까.

“감염병 시기에 혐오의 감정은 이기적이고 생존을 위한 즉각적 감정이에요. 코로나 시기에 혐오가 심하면 확진된 사람들은 사회에서 내모니까 이 사람들이 겁이 나서 숨어버리지 않습니까. 지나친 혐오는 사람을 숨게 만들어서 모두가 위험해져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죠. 혐오가 우리를 위험하게 만든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요. 사스나 메르스 때 추적조사 해보니까 대부분 초반에는 불안이 높다가 이후에 우울이 생기고 일부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생겨요.

오히려 잘 견뎠던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었어요. 내가 자가격리를 하고 불편하고 힘들지만 타인과 내 가족을 지키는 일이고 사회에 도움이 되니까 참자. 이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이 제일 후유증이 없었어요.”

-베토벤, 처칠 등 천재들이 인류의 삶과 문화를 풍성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교수님은 이타적인 삶을 굉장히 중요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사느냐를 생각할 때 즐거운 삶이 있을 것이고 어디에 몰입해서 재미를 찾는 게 있고 의미를 찾는 삶이 있어요. 진료실에서 보면 삶의 의미를 갖고 사는 사람이 최악의 상황을 견뎌요.

정신과 진료를 좋아서 오는 경우는 별로 없고 삶의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오는 경우가 많죠. 답은 본인이 알고 있는 건데 잘 견디는 분들을 보면 긍정심리학에서 얘기하듯이 즐겁고 뭔가에 집중하면서 의미를 찾을 때 인간은 행복을 느끼는 거 같아요.”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정신의학자 빅토르 프랭클이 삶의 의미를 아는 자는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다고 했죠.

“아우슈비츠 같은 최악의 환경에서는 낙관적인 사람들이 먼저 죽었어요. 잘 될 거야, 좋다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죠.

긍정심리학을 공부하는 분도 그걸 ‘짝퉁’ 긍정이라고 표현해요. 현실이 안 좋은데 현실을 자꾸 좋다고 보는 건 생각의 왜곡이라는 거죠. 긍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면서 의미를 찾는 게 이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죠.”

-코로나19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믿을 수 있는 사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인간은 우울을 이겨낼 수 있다고 했죠.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까.

“자살을 생각하는 건 가족, 친구, 사회의 연결이 다 끊어지고 점이 돼 버릴 때에요. 모든 선이 다 끊어지고 점만 남는 거죠. 최악이거든요. 앞이 안 보이고 현재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극도의 우울 상태가 돼요.

(상담을 해 보면) 얼마나 괴롭고 힘들까라는 마음이 전염이 됩니다. 그런데 옆에 한 사람이나 반려견이라도 의미 있는 누군가와 연결이 되면 살더라고요. 인간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연결을 가지고 살아요.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에 마을 공동체는 서로 연결돼 있었어요. 가족이나 이웃이 자기 일처럼 돕는 거죠.

1998년에 치매 노모를 누가 모시냐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98%가 가족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2018년에 30%로 드라마틱하게 떨어졌어요. 코로나19 시기에 대응하는 게 핵가족이고 일인 가구에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사회적 네트워크 지수에서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냐에 대한 질문에 우리나라가 최하위에요. (사람을) 살게 하려면 누군가와의 연결이 제일 중요합니다.”

-코로나19 감염병은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의 정신장애인을 가장 먼저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는 우리 한국사회의 정신보건 시스템의 전면적 파산 선고를 알리는 신호는 아닐까요.

“굉장히 부끄럽고 전문가로서 책임을 느낍니다. 저는 ‘파산 선고’에 백 퍼센트 동의합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국민소득이 2~3만 달러가 됐을 때부터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어요.

미국은 1970~80년대에 시작됐고 유럽은 1980~90년에 많은 일들이 이뤄집니다. 우리나라도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정신장애인 인권에 대한 고민이 많지 않아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구나 느낍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죽을 용기로 도전하라는 말이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의미 없는 주장을 하는 이유는 그 조언하는 사람의 정신이 미숙하기 때문일까요.

“자기가 어떤 문제를 해결했던 방식을 기준으로 사람에게 조언할 수 있습니다. 누가 굉장히 우울해서 힘들어하면 그를 두들겨 패고 ‘죽으려는 용기로 힘내서 살아’ 하면 한 명은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상당히 위험하죠. 절망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다가도 연속적 위기를 겪는데 나약한 사람으로 내몰릴까봐 말도 못하고 있다가 어렵게 말을 꺼내요. 거기에 죽을 용기로 살라고 말하는 건 공감이 안 돼요. 그럼 위기를 겪는 사람은 입을 닫아버려요.

제가 자살 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2006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심리부검소위원회에 참여하면서부터인데 거기 (자살) 기록에 지금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말들이 수두룩했습니다. 군인이니까 ‘죽고 싶다’라고 말하면 ‘다음에 한잔하자’라고 해요. 이건 양반입니다.

보통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나약한 소리라고 화 내고. 그럴 마음 있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 이런 얘기를 통해 어떤 상황인지 알고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거죠. 굉장히 뼈아팠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짜 자살 위기에 놓은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정말 모르고 있구나 생각했죠.”

-고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인간의 죽음, 그것도 ‘평생의 동반자’로 불린 육친적인 이의 죽음은 인간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맙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고 제가 한 번 잘려서 정신과에 일 년 늦게 들어갔죠. 그래서 임 교수가 2년 차일 때 제가 1년 차였죠. 지금은 없어졌지만 병원에서 100일 간 사는 100일 당직이 있었는데 임 교수랑 당직실 2층 침대를 같이 썼어요. 2층은 임 교수가 쓰고 나는 1층. 왜냐하면 사고가 나면 2년차가 슈퍼비전을 하는 거죠.

동기지만 스승이기도 하고 선배였던 거죠. 주말에도 같이 생활할 정도로 서로를 잘 알게 됐어요.

(2018년) 12월 31일 오전에도 연락을 주고 받았어요. (그날 사고가 발생하고 2019년 1월 1일인) 다음 날 모였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어요. 일단 글은 써 놓고 유가족의 의견을 먼저 듣고 나서 움직이자고 결론을 내렸죠.

1월 2일 아침에 모르는 전화번호가 왔어요. 임 교수 동생이에요. 그분이 ‘환자들이 비난받는 게 가장 고인이 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요. 그리고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편견과 차별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유지라고 생각한다’고. 머리를 도끼로 맞은 기분이었어요. 어떻게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날 점심 때 중앙부처에서 전화가 와요. 장관이나 윗분들이 조문을 가도 되겠냐고요. 오시면 되죠 했더니 이런 자리에 오면 앉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살려내라고 항의를 받으니까 잘 오지를 못한다고. 그래서 아침에 그런 전화를 받았으니까 걱정 말고 오시라고 했죠. 유족이 그렇게 마음을 정해줘서 저희도 짧은 시간에 방향을 정할 수 있었어요.

임 교수 별명이 ‘독일 병정’이었어요. 되게 뻣뻣해요. 무표정하고 완벽하려 하고 공부하는 거 좋아하고. 그렇게 철저한데 환자 앞에서는 잘 웃었어요. 응급실에 환자가 오면 몇 시간씩 왔다갔다합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저 분의 생애 첫 번째 만나는 의사고 그 사람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책임을 다하라’고 해요.

환자에 대한 책임감이 훌륭했죠. 그런 친구에게 사건이 발생하면서 저도 트라우마를 겪은 건 맞습니다. 저는 집에 가서 머리만 대면 잠드는 편인데 한두 달은 잠이 안 와요. 악몽도 꾸고 비슷한 사람이 지나가면 연상이 되고.

사실 유가족의 그 말 때문에 한동안은 우리가 이걸 꼭 해야 될 일이다 생각해서 처음에는 아픈 줄을 몰랐어요. 저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 이사였으니까 추모와 관련된 일을 몇 달 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서 아픈 걸 잘 몰랐어요.

그런데 지나보니까 나도 도움이 필요하구나 느꼈죠. 어떤 사람에게 기대했는데 기대대로 안 될 때 굉장히 화가 나고 그랬어요. 눈물이 나기도 하고 대인관계에 영향을 준다고 느껴서 동료에게 도움을 받아 동료상담을 했죠. 사실 (감정이) 작년보다는 낫습니다.”

-사설이나 칼럼, 오피니언으로 신문에 연재한 글을 보면 임세원 교수가 상흔처럼 자주 등장하더군요.

“임 교수와는 거의 모든 일을 같이 하는 동지적 관계였어요. 아쉬운 건 너무 일만 같이 벌였고 임 교수가 허리가 아플 때 같이 못 해 준 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임 교수는 허리의 만성통증을 겪으면서 우울 증상을 겪었고 자살 직전까지 갔다고 고백한 바 있다-편집주)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에 국회에서 30여 건의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의료인 폭행에 대한 가중처벌 의료법 개정, 외래치료지원제를 담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정신응급센터 설치 응급의료법 개정안 등이 법제화됐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요.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사회적 문제는 그걸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증언할 때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러면 해결이 됩니다. 그렇게 따지면 정신장애 당사자와 가족의 목소리가 국민을 설득하는 게 맞죠. 당사자와 가족의 목소리에 우리 사회가 충분히 반응하고 있지 않아요.

두 번째는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다 같이 합의해야 합니다. 정신건강의 문제는 굉장히 복잡하고 여러 시각과 철학이 있고 해결 방법도 다양하지 않습니까. 어렵더라도 단체들이 함께 틀을 만들어서 합의하면서 일을 진행하는 게 옳다고 봐요.

당사자와 가족, 전문가 집단이 국민 다수를 설득했을 때 해결이 되는 거죠. 작년에 안인득 사건 때 편견이 악화됐고 한 발 뒤로 가기도 하지만 그 다음에 또 차분히 설득해 나간다면 다 같이 가는 게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인득 사건은 2019년 4월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거주자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한 사건이다. 그는 망상 등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고 오랜 기간 홀로 방치돼 있다가 사건을 일으켰다. 안인득은 현재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상태다-편집주)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안인득 사건의 경우 주민이 정신건강심판원에 조사를 요청하고 심판원이 전문의를 파견해 입원 치료나 복지 서비스를 지원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신건강심판원은 잘 모르는 제도입니다.

“사법입원은 법원에서 결정하는 시스템이고 정신건강심판원은 독립된 준사법 또는 행정기관으로 영국과 호주에서 시행하고 있어요. 대개는 법조인이 위원장이고 정신과 전문의 한 명, 시민단체 추천 위원 한 명 해서 모두 3명으로 구성돼요.

비자의입원(강제입원) 여부를 심판원이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 기구죠. 정신건강 국가책임제 중에 정신건강심판원은 일부지만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전에는 정신장애인을 가족이 책임졌지 않습니까. 가족이 제일 잘 알고 가족이 아픈 사람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할 거라고 믿어왔죠.

그런데 최근 20년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거죠. 가족이 때로는 트라우마를 주고 방치하기도 하거든요. 아무 지원도 안 해 주면서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게 옳은가. 가족이 감당을 못해요. 그 피해를 누가 보고 있냐. 일차적으로는 당사자와 의료진, 가족이 다 보고 있어요. 넓게는 국민이 피해를 봐요.

왜 요즘에 이전보다 정신장애인의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는가. 이는 일차적으로 언론의 보도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40~50대 중증정신질환자들의 부모님들이 연로해요. 전에는 형제자매가 돌봄을 했지만 지금은 형제자매가 없거나 한 명에 불과해요. 찾아가는 정신건강 서비스가 턱없이 모자라요.

몇 달 전에 덩치가 큰 분이 멀리서 왔어요. 한 달 전에 국립법무병원에서 나온 거예요. 차트를 보니까 죄명이 살인미수예요. 아이고, 나한테 왜 왔을까. 그분 눈빛이 날카롭기도 해서 심장이 떨리더라고요.

처음에는 겁이 났는데 10분 정도 얘기하다 보니까 너무 선량한 거예요. 부모님 위하는 마음도 따뜻하고. 경계심이 풀렸죠.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분이 조현병에 뇌졸중이 있고 부모님이 돌보던 분인데 몇 년 전에 어머님이 암이 생겼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간병하려고 같이 입원을 한 거예요.

혼자 있었던 거죠. 아무 사고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분이 내가 어떡해서라도 돈을 벌어서 엄마한테 보내야지 이 생각만 한 거예요.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취직시켜 달라고 했는데 문전박대를 당했죠. 그러다가 어느 가게에 들어가서 세게 요구했는데 거기서 큰 사고가 일어나서 몇 년을 살다 나온 거예요.

선량한 사람인데 살인미수 사고가 일어난 건 한 달이 안 걸린 겁니다. 혼자 살다가요. 제가 심리부검을 하면서 보니까 똑똑하고 촉망받는 직장인, 군인, 잘나가는 사업가가 몇 번의 스트레스를 겪고 자살하는 데 몇 주 안 걸리더라고요. 똑같아요. 그 중간에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고 약이라도 챙겨줬으면 어땠을까.

약을 챙겨주고 평소와 달리 일을 구하고 있다는 걸 알았거나 안 좋은 상태라는 걸 아버지한테 알렸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겠죠.”

-그 연장선에서 질문하고 싶은데 안인득 사건에서 응급입원이 안 됐다는 문제에 앞서 정신건강복지센터 사례관리자들이 안인득의 집을 직접 찾아가 약을 주고 이를 거부하면 장기지속형주사제를 제공했다면 그 사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맞습니다. 저는 90퍼센트는 안 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찰이 안인득을 보고 센터에 연락했을 때 센터에서 가서 얼굴만이라도 한번 보고 이웃의 얘기만 들었어도 거기까지 갔겠냐는 거죠. 정신건강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중에 응급은 큰 이견이 없어요.

응급일 때 경찰과 경찰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고 갈 수 있는 정신응급센터가 있어야 돼요. 안인득 사건은 이것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응급 시에 경찰이 가고 경찰을 지원하는 센터의 사례관리자가 한 명만 쫓아가서 상황만 파악했어도 응급입원으로 한 번 걸러지는 거죠.

그 다음에 행정입원이 안 되는 건 법의 문제라기보다는 지자체의 책임성 문제입니다. 법에 할 수 있게 돼 있잖아요. 일본에서는 행정입원 시킬 때 지자체장이 결정해서 하는데 위험인물을 발견해서 지자체에 신고하면 공무원이 센터의 전문의랑 같이 갑니다. 공무원이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갈 권한이 법에 서술돼 있어요.

(우리도 그런 법이 있다면) 안인득의 집에 가서 만났겠죠. 그럼 막을 수 있었겠죠. 그런데 그 진단을 누가 하느냐가 법에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응급실로 데리고 오면 진단합니다. 그럼 응급실로 누가 데려가나.

우리 사회가 해결 못 한 게 호송의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20% 가까운 입원을 보호의무자들이 사설응급을 불러서 입원시키고 있어요. 말이 안 되는 거죠. 지자체장이 책임 있게 하고 전문의가 평가한 다음에 행정입원을 해야 하는데 가족이 있다 하면 95%가 중단되지 않습니까.

정신건강심판원을 저희가 얘기하는 건 국가책임의 시작이라는 거죠. 인권과 치료권 보장을 국가가 책임져야 경찰도 행동을 하죠. 경찰도 민원이나 소송이 두려워서 못하고 있고 병원은 자·타해 위험이 확실하지 않다고 거절하고 어떡하란 말입니까.”

-뉴욕주는 공무원 15만 명 중 1만4천 명이 정신보건국 공무원입니다. 서울은 시민건강국 산하 정신보건팀 7명과 시립은평병원 200여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왜 이런 엄청난 격차가 존재하는 걸까요.

“미 연방정부에 국립정신건강 물질남용정신건강청은 있지만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국은 없어요. 지자체는 정신건강국 없는 주는 없습니다. 유럽에도 다 있어요. 지자체는 100% 있어요. 왜냐하면 지자체가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미국은 돈 없어서 코로나 치료도 못 받는 나라 아닙니까. 그런 나라도 정신건강에는 주정부의 책임을 넣습니다. 조현병이 있으면 한 달 내에 메디케이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어요. 퇴원 후에 사례관리하고 지역사회에서 움직이죠. 집까지 주잖아요.

뉴욕주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주거 지원이 3만9천 베드(병상)가 있습니다. 뉴욕주가 인구 2천만 명에 4만 베드라고 치면 우리나라 서울이 1천만 명이면 2만 개의 정신장애인을 위한 주거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주거가 있어야 지역사회 서비스를 하지 않겠습니까.

주거는 서비스의 핵심인데 뉴욕 주민들은 반대 안 할까?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주거 서비스는 레벨(단계)별로 있어요. 병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주거시설은 의료진이 24시간 같이 있어요. 한 단계 더 나가면 독방을 주는데 병원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요.

최종 단계인 제일 자유로운 시설은 수십 명이 사는데 사회복지사 한두 명이 얼굴만 보고 밤에 프로그램 하나 해요. 중간중간 서로 평가하고 이 모든 보건복지 서비스가 본인 동의 후에 의무기록을 다 공유합니다. 의사가 보는 기록을 거주시설 사회복지사도 보고 일주일마다 회의를 하니 재발을 하겠습니까.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사고가 10년째 없으니까 주민들이 반대를 안 하는 거죠.

우리같이 아무것도 없으면 멀쩡하던 사람도 한 달이면 위기에 빠져요. 가족이 돌보지 못해 재발하고 누가 다치면 그게 가족 탓입니까. 환자 탓입니까. 암 치료는 미국보다 더 잘 한다고 하는데 조현병이나 중증정신장애인 치료는 싼 치료로 장기입원 중심의 서비스에 머물러야 되겠냐는 거죠. 이제는 바뀌어야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면 고통을 청취한 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뭔지를 묻는다고 했습니다. 종교, 신념 등을 꼽지만 그 중에서 ’가족‘을 떠올리는 경우가 제일 많다고요. 왜 그럴 걸까요.

“임세원 교수가 만든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의 핵심이 처음에는 자살의 경고신호를 보고 다가가는 거죠. 그 다음에 자살을 생각하는지를 묻고 이때부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얘기하거든요. 저희 진료실 상담실에서 크리넥스 티슈를 제일 많이 쓸 때가 그때예요.

그 얘기를 듣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말하기로 넘어가기 직전에 묻는 질문이 ‘그래도 우리가 지금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서 여기서 만나고 있잖아요’예요.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참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아니면 살아가야 할 이유가 떠오르는 게 있던가요. 이걸 묻습니다. 없다고 그러면 응급이고 대처해야죠.

떠올리는 게 가족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대게는 가족 때문에 참죠. 부모님한테 미안해서 참고, 자식 때문에 참고. 가족이 원수인 경우도 있어서 모든 경우가 가족은 아니고요. 자기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돕고 희망을 찾는 연결로 넘어가는 거죠.”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한 한국 경제학자는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의 문제를 ‘성장통’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 글을 읽고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자유주의 국가들조차도 지자체와 협력해 자살 위기에 빠진 사람을 빨리 구조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정신건강 시스템의 접근을 손쉽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유럽과 일본은 자살을 구조할 책임이 사회에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있었고 그에 기반해 지자체 중심의 사회복지 의료서비스가 만들어졌죠. 자살률을 줄이는 게 좀 더 살만한 사회가 되는 과정이거든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은 살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가 도움을 주지 못한 거죠. 얼마든지 살 수 있었던 죽음인데 일 년에 1만3760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게 성장통일까요. 노인 자살률이 높은 게 오히려 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게 아니냐고 회의 다 끝난 다음에 얘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코로나 때 제일 사망률이 높은 분들이 노인, 장애인인데 이들이 다 빨리 죽어 없어지면 사회가 이득이 되는 것인가. 사회가 뭘 위해 존재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죠. 국가가 죽음을 내 일로 생각하고 해결하기 위해 달려들면 분명히 바뀌고 얼마든지 정책적 효과를 볼 수 있는 영역입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정신과 진단, 투약, 정신치료 기능이 없습니다. 정신응급 상황에서도 입원 결정 대신 요청할 권리만 있고요. 이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지금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너무나 어렵게 일을 하고 있어요. 국민 소득 3만 불의 나라에서 센터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나라는 없어요. 센터에서 진단도 못하고 외래치료지원제를 하면서 관리를 아무 권한도 없는 센터에 맡겼잖아요.

외래치료지원제를 하면 다른 나라들은 사례관리자가 약을 갖다 줍니다. 약이 불편하면 장기지속형주사제도 주고. 우리는 그런 걸 할 수 없죠. 센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말로 설득하는 겁니다. 한 사람이 백 명을 설득해야 하는 거죠. 이는 당사자와 가족에 도움을 줄 수 없어요.

외국에서도 이런 저강도 수준의 사례관리는 재발 시에 입원을 빨리 시키는 거 외에 도움이 안 됩니다. 삶의 질을 높이거나 취업률을 높이는 데 효과가 없어요. 그럼 고강도 사례관리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게 세금이지 않습니까.

정신건강이 중요하다는 우선순위를 높이고 국민이 이를 내 문제로 생각하게 만들려면 결국은 설득해야 되거든요. 설득을 누가 할 것이냐. 전문가들도 역할을 해야 되겠지만 핵심은 마인드포스트처럼 당사자의 목소리로 국민을 설득하는 겁니다.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자살 문제, 치매, 발달장애 다 그렇습니다.

발달장애인 가족이 조직을 만들어서 목소리를 내고 청와대 앞에서 삼보일배(三步一拜)하며 기어가요. 그 목소리에 사람들이 감동하는 거죠. 세월호나 재난 상황의 경우도 국민들이 저게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고 마음이 움직이면 국회나 정부가 예산을 만들게 돼요. 딴 방법은 없어요.

제가 올해 제일 기분이 좋았던 건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 사외이사가 됐다는 겁니다. 가족의 목소리가 국민을 설득해야 돼요.

제가 외국에서 반(反)낙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로부터 많이 들은 얘기가 ‘우리는 웬만하면 누구를 비난하지 않는다’예요. 왜요? 정신건강 문제를 하다 보면 시스템의 문제로 열 받을 때가 많다. 그렇게 얘기하니까 ‘안 그래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지 않냐. 분노하면 사람들이 잘못된 메시지로 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항상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긍정적 메시지를 주려고 하면 꼭 유머를 넣으라고 해요. 그걸 통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운동하는 단체들을 많이 만났어요. 웬만하면 남 탓을 안 해야겠구나. 우리는 시스템이 너무 황당하니까 때로는 트라우마를 받지 않습니까.

의료 공급자들도 그걸 원해서는 아니지만 트라우마를 준 책임이 없지 않죠. 그런데 이걸 합의하고 같이하고 따뜻하게 해야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요.”

-강제입원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적 사유에서 출발한 정신건강복지법이 오히려 입원이 필요한 이들을 방치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선한 의도가 꼭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은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항상 악마는 디테일에 있어요. 시대가 산업화와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 책임에서 국가 책임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법이 충분히 (시대정신을) 담지 못한 거죠.

일본의 정신건강복지법 제2조는 ‘장애인복지법에 있는 모든 서비스를 정신장애인도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한다’입니다. 우리는 그게 안 되고 있잖아요. 정신건강복지법에 복지를 좀 넣었지만 실제 서비스가 나아진 것도 없고 재원도 없어요. 이걸 왜 자꾸 따로 차립니까.

기존 장애인복지법에 담긴 활동보조나 주거, 자립지원 등의 서비스를 신체장애와 차별받지 않게 받는 걸 이 정신건강복지법에 넣고 시작했어야죠. 또 자·타해만 이야기를 하는데 자·타해 위험만 있는 사람이 정신질환자는 아닙니다.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3년이 됐으니까 문제를 보완하고 합의해서 대안적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걸 올해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제가 친구 임세원을 잃고 나서 슈퍼비전 받으며 도움이 된 게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게 돼요. (YTN 홀에서 열린) 임세원 일주기 추모 콘서트에 이은미 씨 등 가수들이 일정이 있었는데 바꿔서 왔어요. 콘서트를 한 YTN이 이렇게 힘이 센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분들 본인이 우울증 치료받고 그래서 여기 와서 이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해요. 유가족이 웃고 가는 걸 처음 봤어요. 저도 도움을 받았고요.

잘못된 정신보건 시스템으로 피해를 보는 이들이 많지만 작년처럼 마음이 급하지는 않아요. 결국 다 설득해서 같이 가야 되는 거구나 생각했죠. 내가 아무리 이게 옳고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도 지원하고 당사자나 가족이 앞으로 나서서 국민을 설득해서 합의가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집단이 죽어도 안 된다고 하면 그 법은 통과가 안 되더라고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요. 그러니까 결정을 하는 건 국민이다. 따라서 이 문제로 가장 고통받는 당사자와 가족이 해야 하는 거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중증정신질환자 국가책임제를 주창해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국가책임제는 가족에게 맡겨놨던 책임을 사회가 가져간다는 거죠. 뉴욕에도 1만5천 명이 소속된 정신건강국이 있지만 발달장애국에는 더 많고 교정국에도 그만큼 있어요.

정신건강의 문제를 사회가 가져가는 거예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삶의 질의 문제이자 생명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으로 가야 한다.

국가책임제의 경우 응급 때 경찰과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함께 출동하고 급성기에 좋은 치료환경에서 단기간 치료받고 빨리 지역사회로 가도록 해야죠. 또 사례관리와 보건복지 네트워크가 주거까지 합해서 제공돼야 하고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성은 거부하는 분이 별로 없을 겁니다.

제가 한국사회를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떻게 이렇게 엉망일까 싶다가도 이게 문제라고 인식되면 순식간에 따라잡습니다. 굉장히 빨라요. 메르스 때도 대응 방식이 ‘개판’이었는데 한 번 겪고 나니까 확 바뀌어요. 지금은 세계적 수준이 됐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일을 잘 하고 문제라고 생각하고 에너지를 투입하면 또 합니다. 제 생각에 정신건강 문제는 결국 국민을 설득한다는 마음으로 하면 10년 안에 어떤 분야보다도 빠른 속도로 나아질 겁니다.”

-재난은 인간성을 시험한다. 재난에 맞서 이기는 힘은 이 같은 인간성이 누적된 사회적 사회적 신뢰에 기반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회적 신뢰는 어떤 의미입니까.

“재난 상황에서는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남습니다. 재난이나 전쟁의 초기에는 그렇습니다. 저 사람 감염된 거 아냐, 또 전쟁 때는 누가 내 코를 베어가지 않을까 의심하는데 적응적 행동이지만 이 의심이 지속되면 고립되고 우리 편이 다 죽어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중증정신질환의 문제도 지금이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 닭의 모가지를 비트는 때가 아닌가 위안 삼으려 합니다. 좋아지기 직전의 최악의 어둠에 있는 거라고요. 저도 에너지를 충전 받는 건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정말 고통을 겪어본 분, 자살 유가족이 관련된 일을 하면서 이겨내는 분, 제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분들이 우리가 희망을 가져야 할 증거라고 믿습니다. 임세원 교수 추모 책 제목이 ‘희망의 근거’예요. 왜 그랬냐면 사실 희망이 안 보여서요(웃음).

그런데 이게 바뀌더라고요. 일본을 보면 치매, 발달장애, 자살, 알코올 순으로 해결이 되더라고요. 법이 바뀌고 국민 인식이 바뀌고 예산이 투여돼 지원이 많아지는 거죠. 일본이 치매(국가책임)는 지금 세계 최고 아닙니까. 커뮤니티케어라고 해서 집을 찾아가는 서비스도 최고 수준이고요. 자살도 35% 줄이고 그 다음에 알코올 관련 법을 만들더라고요. 중증정신장애는 일본도 커뮤니티케어라는 이름만 걸어놨지 투자는 우리보다 많이 합니다만 완전히 해결을 못했죠.

우리도 비슷합니다. 치매국가책임제를 하면서 그 분야가 바뀌었잖아요. 발달장애 국가책임도 작년에 선포됐고 조금 더 있으면 자살에도 투자를 할 거고요. 그 다음 시기에 알코올과 중증정신장애에 대한 법적 해결의 시점이 올 것이라고 봐요.

그런데 그런 때가 정말 올까. 이에 대한 희망의 근거가 지금 만나는 당사자와 가족협회 분들이고 이들의 진정성 때문에 몇 년 안에 그쪽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낙관적인데요.

“그게 저만의 생각은 아니에요. 국회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국회의원을 설득해야 하냐고 했더니 어떤 분이 국회의원은 여론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논리의 근거는 두 가지라고 하더라고요.

하나는 우리나라에 통할 수 있는 해외 사례. 두 번째는 지금 이걸 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신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확실해야 국회가 법을 만든다고.

제가 미국, 유럽, 대만, 호주, 홍콩에 가서 웬만한 기관에 물어봤어요. 어떻게 해서 해결됐냐고. 그분들은 젊은 시절 거기에 노력을 다 바친 분들인데 우리에게 ‘우리도 옛날에 그랬다. 우리도 80~90년대에 해결이 될까 했는데 조금씩 나아지고 인식이 개선되고 하면서 어느 순간에 많이 와 있더라’라고 해요.

뒤돌아보니까 자기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우리도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료받던 환자가 정신적 아픔을 이겨내고 결혼한다면서 청첩장을 들고 찾아온 경우도 몇 번 있었다고요. 그때의 기쁨이 상상됩니다. 혼자 눈시울을 붉혔다고요.

“(웃음)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은 때로는 중립성도 중요합니다. 그 중립성이라는 의미는 차갑다는 게 전혀 아니에요. 정신과 의사는 클라이언트가 자기가 원하는 결정을 하는 걸 도와주는 사람이지 대신 결정해주는 게 아니거든요. 그걸 중립성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그 사람의 인생에 너무 다가가서 집을 찾아가거나 결혼식장에서 가족을 만나고 하면 어떤 무의식을 다룰 때 방해가 돼요. 그래서 조심해요. 저는 인지행동치료를 하는 사람이라 프로그램 마치고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보고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약도 끊었다가 재발하면 다시 치료하기도 하고 그렇죠.

한 네 분 정도가 청첩장을 보내주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갈 때 솔직히 얘기했죠. 내가 가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또 아파서 도움을 청할 때 의사가 결혼식에도 왔었는데 창피해서 치료를 못 받거나 이런 부담은 없겠냐. 그래도 괜찮다고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면 가죠. 가서 부모님 인사드리고 대신 뒤에서 조용히 결혼식 끝까지 보고 가겠다고 하죠.”

-그럴 때 의사로서의 보람이 참.

“아유, 정말 보람 있죠. 힘들게 고생했던 분이 저렇게 또 (생각하면). 물론 결혼하고 행복하냐(웃음). 새로운 스트레스가 시작되겠지만 그런 순간을 같이 했다는 게 굉장히 (보람되죠).

제가 우울증 치료 종결 때 꼭 물어보는 게 있어요. 우울증이 없으면 좋겠지만 삶에 도움이 된 적이 있냐라고. 이걸 미리 얘기하면 우울증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욕먹습니다.

저는 치료 종결하는 날에 물어요. 열에 열은 다 있다고 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는지 여태 몰랐다고 답해요. 또 내 주변에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있는지 알았다, 현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현실에 맞는 목표가 생겼다라고 해요.

우울을 정신과 의사로서 질병의 일부로 알아야 되는 시각도 있지만 그런 게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겁니까. 우울이나 슬픔이나 그건 인간의 삶에 대한 거니까. 그런 힘든 순간들을 잘 이겨내고 그걸 증언할 수 있다는 게 정신건강 전문의로서 특권이고 가장 보람 있는 일입니다.”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도문을 좌우명으로 갖고 계신다고요.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요청했어요. 이 삶을 위한 기도인가요.

“그게 인지행동치료의 목표라고 많이 얘기합니다. 우연히 슈퍼바이저의 인지행동치료 강의를 듣고 그 말이 정말 다가왔어요.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인지행동치료 사고기록지에 써 보거든요.

내 생각의 왜곡은 없는지, 지나치게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는지. 왜곡이 있는지 점검해보고 왜곡이 없으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쓰면서 지금도 많이 참고합니다.”

-인간은 어떤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까.

“결국 그 답을 찾는 게 인간의 숙명인 거 같아요. 자기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죠. 나는 어디서 의미를 찾을 것인가. 각자의 질문일 수밖에 없어요. 저는 정신건강 전문가로서 거기에 대한 수백만, 수천만 가지의 삶의 의미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본인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죽음밖에 길이 없다고 느낄 때 아무리 99%가 죽고 싶어도 1%는 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그 소망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 끈이 끊어지지 않고 연결될 수 있으면 고통에 있던 사람이 살아난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다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저도 제 환자 분을 열 명 정도 잃었습니다. 그게 저의 최고 트라우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면 살 수 있더라고요. 좀 더 치유적인 사회가 될 수 있으면 기대하고 있습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더 하실 말씀이.

“저는 마인드포스트의 구독자입니다. 사실 하고 싶은 얘기들이 정말 많았는데 오늘은 뵙고 질문하다 보니까 조금 아쉬운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동안 관심 있게 지켜본 건 (마인드포스트 슬로건인)  ‘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가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그리고 이 문제가 해결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결국은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을 설득하면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합의를 하기 위해 때로는 밤을 새워 논쟁도 하고 술도 한잔하는 게 얼마든지 좋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나니까 저도 더 이상 쫓긴다거나 부정적 감정에 휩쌓이지 않고 해야 될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인터뷰를 정리하던 지난 5일. 부산의 한 정신과 전문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의 흉기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참담한 기분이었다. 기자는 백 교수에게 전화를 하려다 문득 멈췄다. 그가 깊이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실존적인 애도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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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yousong 2020-08-11 14:29:21
박종언 기자님, 백종우 센터장님! 좋은 기사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