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태어날 권리도 없는 존재들
정신장애인, 태어날 권리도 없는 존재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7.08 2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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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모자보건법 정신질환 등 일부 한해 낙태 허용
정신질환자는 태어나기도 전에 낙인받는 존재
정신병 이유의 낙태 조항 전면 삭제해야
낙태죄 논쟁에서 정신질환 태아의 존엄성 담론 사라져

낙태죄 위헌 논쟁이 다시 법정을 달구고 있다. 지난 2012년 낙태죄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린 이후 6년만이다.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크지 않다”며 4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 기간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며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사회적 운동도 확대됐다. 지난해 9월 낙태죄 폐지 청와대청원에서는 한 달 만에 23만 명이 추천을 받을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지난 7일에는 안국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1천500여 명의 시위대가 ‘낙태죄 위헌 결정과 폐지’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낙태한 여성과 시술한 의사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269조1항과 270조 1항에 대한 위헌소송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1953년 제정된 형법에서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형법은 낙태를 한 여성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하고 있다. 당시 낙태에 대한 어떤 예외도 허용하지 않았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적극적인 인구정책 드라이브 속에서 나온 산물이다. 국가는 가족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인구를 통제해왔고 모자보건법은 인구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 법에는 모든 낙태를 불허하던 법적 통제를 다소 완화해 유전적 정신질환 등을 가진 태아에 대해 낙태를 일부 허용하고 있다.

최규진 인하대학교 의대 교수는 “모자보건법은 1949년 일제의 우생보호법을 모체로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이 법은 독일 나치의 우생학 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지난 1996년 우생보호법을 폐지했다.

독일은 20세기 초 정신질환자가 사회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 ‘기생충’ 논리를 내세워 정신질환자의 국가적 돌봄을 폐지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했다. 이 이데올로기를 수용한 독일 나치는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자 열등인종'인 정신장애인 8만 명을 가스실에서 ‘제거’했다.

모자보건법에서 낙태의 예외를 인정하는 ‘정신질환자’는 이 같은 국가주의 담론과 맥락이 닿아 있다. 나태한 자와 기생충이 될 확률이 높은 존재는 국가가 먹여살리는 게 아니라 초반에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모자보건법을 통해 국가에 필요한 태아를 선별했고 국가에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태아는 우생학적 조항을 통해 임신중지를 강요했고 여성의 재생산을 통제했다.

이를 통해 정신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의 재생산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 구조를 강화시켜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모자보건법 시행령은 유전성 정신분열증, 조울증, 현저한 범죄 경향이 있는 유전성 정신장애 등의 유전적 질환이 낙태 가능한 질환 등을 포괄적으로 명시했다.

정신질환을 가진 태아는 국가에 의해 탄생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경우가 된다.

이광호 사랑과책임연구소장은 “우생학적 낙태 사유는 유전학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생명을 경시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신병을 유전적 낙태 이유로 허용하는 것 역시 의학적 근거가 희박하다”며 “유전병도 전부 자녀가 물려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예외 조항이 모두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올해 3월 공개한 개헌안 초안에서는 생명권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논쟁이 일고 있다. 헌법 개정안 12조에는 ‘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가지며 신체와 정신을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행 헌법 조문은 생명권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는 대신 헌법 10조의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에서 간접 유추하거나 헌법재판소 판례를 통해 생명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 생명권은 낙태법과 관련해 여성의 신체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이분법적 구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태아가 유전적 정신질환을 가졌다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태아를 죽여야 하는지 아니면 살려야 하는지는 윤리적인 문제와 더불어 법적 해석의 충돌을 가져올 수도 있는 사안이다.

최규진 인하대 의대 교수는 “낙태죄 폐지 논쟁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 대(對) ‘태아의 생존권’이라는 낡은 구도를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선진국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는 맥락은 임신-출산-낙태가 인간(여성)이 살면서 부득이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그룹은 태아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가톨릭대 구인회 교수는 “내 몸은 내 것인데 왜 국가가 개입하느냐는 생각은 상당히 위험한 비민주적 발언”이라며 “아무런 방어 능력도 없는 가장 약한 태아를 희생시켜 태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집단이기주의”라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이어 “태아는 당분간 산모의 몸에 의존할 뿐이지 하나의 존재”라며 “내 삶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태아를 죽일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라고 말했다.

낙태죄는 여성과 태아의 생명권의 문제이자 국가의 개입과 통제를 ‘민낯’으로 드러내는 피뢰침 같은 작용을 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주목받는 이유다.

그러나 이 속에는 정신질환과 같이 태어날 권리를 가지지 못한 특정 장애 존재에 대한 담론은 없다. 정신질환은, 정신질환자는 어머니 뱃속의 태아(胎兒)에서부터 국가의 관심 밖에 서 있는 외로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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