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다이얼로그는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대화를 통해 자기결정을 경험하는 이념”
“오픈 다이얼로그는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대화를 통해 자기결정을 경험하는 이념”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7.19 0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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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기본적 인권
시설에서의 삶이 인간 존엄에 폭력을 행사
정신요양시설 입소자 10명 중 7명이 10년 이상 입소
지역사회 내 삶에서 배제되지 않는 통합이 지역사회 정착
다양한 주택공급 확대를 통해 안정적 주거 확보해야
자립생활의 핵심 이념은 자기 삶에 대한 선택과 결정
정신장애인 운동의 지원과 단체 형성 필요
장애인 쉼터 전국에 7개뿐…돌봄 체계 형성 안 돼
비자의입원의 폭력성은 당사자 존엄 인정 않는데서 출발
정신과의사와 간호사 수 일본 대비 현저히 적어
국가보고서 나왔지만 지속적 점검 안 이뤄져
오픈 다이얼로그는 정신장애의 생물학적 원인론 재검토를 요구

부산 정신장애인 당사자 모임 '침묵의 소리' 지미루 회장이 “우리 옆집에 정신장애인이 산다면?”을 화두(話頭)로 던졌다.

객석에 모인 200여 명의 관객들이 숨을 죽였다.

18일 부산광역시의료원 건강증진센터 대강당. 건물 바깥은 폭염이었지만 대강당 안은 다른 열기가 피어올랐다. 공감과 지지의 열기였다.

 

우리 옆집에 정신장애인이 산다면?

지 회장은 “당사자 스스로가 이웃이 되어 정신장애인이 우리 옆집에 산다면 당사자 스스로도 이를 탐탁지 않게 느낄 것”이라며 “이는 많은 차별 대우 때문에 당사자의 긍정적 마인드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사자가 당사자의 이웃됨을 경계한다는 의미다.

그는 “막연하지만 정신장애인이 주위에 산다는 것을 알 때 무서워하거나 불안해한다는 점 때문에 정신장애를 알리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며 “캠페인을 할 때 조사를 해보면 편견보다는 수용하는 통계가 더 많이 나오지만, 실질적으로 텔레비전이나 SNS(사회관계서비스망)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 회장은 이어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인간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기본적 인권”이라며 “돌발적이거나 통제가 어려운 상황은 정신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들에게 복지시설 등의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이 보호하는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부산시에는 13개의 정신재활시설이 있고 441명이 이용하고 있다. 350만 부산시민 중 중증정신질환자를 1%로 감안하면 3만5천 명을 위한 재활시설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부산시에는 여전히 복지시설과 문화시설에 정신장애인 이용을 거절하는 조례들이 있다.

그는 “복지관과 박물관, 기념관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출입을 막는 잘못된 조례를 고쳐 정신장애인도 부산 시민이 누리는 복지서비스를 함께 누리고 싶다”며 “‘우리 옆집에 정신장애인이 산다면?’이라는 질문에 ‘우리 옆집에 이웃이 산다’는 긍정의 답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신장애인의 복지시설 이용 제한은 평등권 침해

은종군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탈시설 욕구과 관련해 한 정신장애인의 이야기를 전했다.

“차라리 교도소는 징역 채우고 나갈 수라도 있는데 여기는 언제 나가는지도 모르고….”

은 관장은 “시설에서의 삶이 인간 존엄에 어떤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정신요양시설 거주인의 입소기간은 65.4%가 10년 이상이었고 62.2%가 강제입원이었다. 이들은 인권위 조사원들과의 대면조사에서 생계비, 거주 장소, 일자리 등이 마련되면 69.7%가 퇴소하겠다는 욕구를 밝혔다. 53.8%는 즉시 퇴소를 원한다고 답했다.

은 관장은 “2009년과 2010년 서울, 부산, 광주 광역자치단체가 관내 거주시설 장애인의 욕구를 파악한 결과 절반 이상이 아무런 지원 없이도 지역사회에서 살기를 희망했다”며 “지역사회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당위”라고 강조했다.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한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은 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5년마다 범정부 차원의 계획을 수립하고 장애인정책의 발전 방향을 정립하고 있다. 그러나 은 관장에 따르면 지난 3월 발표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은 물리적인 주거공간을 지역사회로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며 “장애인이 거주하는 지역사회 내에서 (그들이) 삶의 모든 측면에서 배제되지 않고 통합되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퇴원·퇴소 전부터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퇴원·퇴소 후 지역사회 정착 전 단계에서는 자립생활센터 등에서 운영하는 한시적인 체험홈이나 자립주택 등의 전환주거에서 지역사회 생활을 준비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최종적인 지역사회 정착단계에서는 전담기관인 전환지원센터가 설치돼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는 주거보장과 관련해 “주거는 단순한 주택의 의미를 넘어 장애를 적응하는 일차적인 공간이자 일상과 사회적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삶의 전부라 할 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는 장애인 주택의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시설을 갖춘 주택을 건설하는 경우 건설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거나 세제혜택 등을 지원하고, 지원을 받아 건설한 주택은 일정 기간 장애인에게 임대하도록 하고 있다.

은 관장은 “다양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통해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 구입 및 전월세 보증금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삶의 모든 측면에서 배제되지 않는 게 지역사회 정착

현재 장애인과 관련한 별도의 주택금융 정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 주거보장을 위해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거급여 이외에 별도의 주거수당을 도입해야 한다. 그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자립생활의 핵심적 이념은 자기 삶에 대한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에서 장애인의 소득과 관련된 직접적 제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장애인연금제도다. 하지만 엄격한 수급자격 요건과 충분하지 않는 급여 수준, 근로소득과의 연계로 인한 불합리성으로 소득보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애인연금의 경우 수급 자격을 1급, 2급, 3급 중복장애인으로 제한하고 있어 정신장애 3급의 경우 소득보장에 대한 권리가 차단되고 있다. 다만 장애등급제 폐지 등으로 2022년부터 장애인연급 수급 자격을 종합소득 조사를 통해 근로가 어려워 소득이 낮은 장애인으로 기준이 변경됨에 따라 사각지대가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정부는 정신건강복지법 제7조에 근거해 5년마다 국가와 지역의 정신건강증진과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기획, 집행, 평가 등 전 과정에 정신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정신건강심사위원회의 위원회에도 반드시 당사자인 ‘정신질환을 치료받고 회복한 사람’이 포함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중앙부처와 시도에 등록된 장애인 단체는 2012년 기준 347개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약 230개 정도가 지역사회에 있다.

그는 “하지만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대변하는 단체는 거의 전무한 수준”이라며 “정신장애인의 복지 향상과 자립을 지원하고 대변하기 위해서는 관련 단체들의 지원과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직업선택의 전제 조건이 되는 자격 및 면허 취득을 제한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2조의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과 제27조의 자유롭게 선택한 직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정한 자격과 면허를 취득할 때 ‘미성년자, 피후견인 등’과 함께 정신질환자를 결격사유로 규정한 부분은 폐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정신장애인이 보편적인 장애인복지전달체계에서 배제되도록 규정한 장애인복지법 15조가 폐지돼야 한다”며 “이를 폐지하지 않고서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정착하는 것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지난해 서울·경기·인천 지역을 대상으로 학대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정신장애, 발달장애, 뇌병변장애, 청각·언어 장애인을 대상으로 정서적·신체적·경제적·성적 학대실태를 조사했다. 결과 전체 조사대상의 25.8%가 학대를 경험했으며 이중 59.2%는 피해에 대해 아무런 대응조치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해야

정신장애인은 학대 경험이 28.0%로 발달장애인(48.3%)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정신장애인 역시 피해에 대해 64.1%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장애인 학대 피해가 증가하면서 2017년 2월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돼 ‘피해 장애인 쉼터’ 설치의 근거가 마련됐다”면서 “쉼터의 주 기능은 1차적으로 학대행위자로부터 분리돼 피해자에 대한 긴급보호와 돌봄”이라면서 “그러나 피해 장애인 쉼터는 현재 전국에 7개만 설치·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 장애인 쉼터는 한시적인 보호시설로 일정기간만 거주할 수 있다. 그러나 쉼터를 이용하는 다수의 피해 장애인은 원가정 복귀나 지역사회로 다시 돌아가기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쉼터의 지원이 종료된 이후 이들에 대한 지역사회 내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그는 “장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되기보다 격리돼야 하고 보살핌의 대상으로 여기는 낙인을 이제는 끊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신장애인 규모 더 확대시키는 현행 입원방식, 대안은?...오픈 다이얼로그

이용표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5월 핀란드의 정신장애인 사회복지 현황을 둘러보고 왔다. 그는 이전부터 그곳에서 구성된 기존 정신장애인 대상 치료와 재활과는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른바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logue·열린 대화)’다. 이 교수는 비자의입원 과정에서 드러나는 폭력성과 비인간성을 지적했다.

그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박하는 (폭력적) 행위는 정신장애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주체라는 의식을 상징한다”며 “그가 정신장애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주변 사람들의 언술이 중요하며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끼리주사라는 의료적 처치는, 정신장애가 뇌의 화학적 이상 상태이므로 약물 처치가 치료 수단이라는 전제를 드러낸다”며 “독방 감금은 정신장애인이 타인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이며 기저귀 강제 착용은 그들이 모욕감조차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이 내재해 있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정신의료기관에의 입원 방식은 강제입원의 형태가 압도적이었으며 항정신성의약품의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치료의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는 오히려 정신장애인의 규모가 확대되거나 만성화되는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부작용이 그만큼 크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이 부분에서 오픈 다이얼로그를 소개했다. 오픈 다이얼로그의 전반적인 치료체계는 다음과 같다.

가족 중 누군가 정신장애로 위기가 발생해 병원에 연락하면 24시간 이내에 첫 모임이 만들어진다. 그곳은 당사자의 집일 수도 있고 병원일 수도 있다. 당사자와 가족 구성원은 모두 이 회의에 초대된다. 가족들과 이 문제로 접촉했던 의사와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전문가도 이 회의에 초대된다.

첫 모임에 초대된 사람들은 당사자의 위기상황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고 이 과정에서 당사자의 약물 처치는 억제된다. 약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필요한 동안 지속적으로 회의에 참가한다. 이 과정에서 토론과 치료에 관한 결정은 당사자, 가족,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된다.

오픈 다이얼로그는 핀란드 북부의 인구 7만 명의 작은 마을 서부 라플란드에서 1980년대 초에 시작됐다. 1984년 토르니오 케로프더스 병원에서 환자의 입원 수속 처리 방법을 바꾸고자 한 것이 시초가 됐다. 또 1960년대 알라넨(Alanen) 교수 팀이 한 정신병원에서 개발한 욕구맞춤치료와 체계적 가족치료모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욕구맞춤치료는 진단 중심의 접근법이라기보다는 개인과 가족의 변화하는 욕구에 따라 치료적 접근법을 맞추는 것을 강조하며 빠른 조기 개입, 지속적 치료 과정 및 결과 모니터링을 강조한다.

이 교수는 “오픈 다이얼로그는 욕구맞춤치료에 ‘대화주의’와 ‘불확실성의 관용’과 같은 실천 원리들이 추가돼 형성됐다”며 “오픈 다이얼로그라는 명칭은 1996년 가족 및 사회적 관계망 중심의 치료법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오픈 다이얼로그는 현실이 담론이나 대화를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이야기 치료’와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당사자의 이야기를 긍정적인 이야기로 만들어 내려는 의도가 있는 이야기치료와 달리, 오픈 다이얼로그는 사전에 계획된 주제나 형식 없이 진행되며 클라이언트가 삶의 어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구축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존재한다.

오픈 다이얼로그의 원칙으로는 ▲즉각적인 지원 ▲사회적 관계망 토론을 통한 문제 정의 ▲환자와 가족의 변화하는 욕구에 따른 유연성 및 유동성 ▲책임감 ▲중간에 치료에서 벗어나는 현상을 예방하는 심리적 연속성 ▲위기 상황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불확실성의 관용 ▲환자의 정신증적 언어를 중시하는 대화주의 등이 있다.

이 교수는 오픈 다이얼로그는 정신장애에 관한 생물학적 원인론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항정신성 약품의 궁극적 치료 효과에 대한 의문, 정신장애에 관한 생태체계적 관점의 재조명, 치료 주체로서 당사자와 당사자와의 소통 강조, 강제입원이 유용한 치료 수단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여러 함의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오픈 다이얼로그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역할과 기능을 기존 일반 사례 관리에서 위기 지원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위기 상황에서 당사자, 가족, 친구, 동료상담가, 주치의, 정신재활시설 담당 직원을 소집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위기 시의 입원 여부, 입원 유형 및 병원의 선택 등 사전의료 지시서를 사전에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하도록 한다. 이때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공적 증명을 통해 주치의의 참여를 건강보험에서 상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다면 우리 정신보건 영역에 오픈 다이얼로그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이 교수는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대화를 통해 자기결정을 경험하는 것이 높은 치료효과를 가진다는 것은 오픈 다이얼로그의 이념이며 실천 원리”라며 “정신재활시설의 실무자는 보상 없이도 위기를 지원할 수 있는 사회관계망을 개발하는 일을 중요한 역할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호사 1인이 돌보는 환자수 60명…일본은 간호사 10명이 환자 40명 돌봄

박경덕 대한간호협회 정신간호사회 회장은 지난 봄 일본의 정신의료기관 방문에서 받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일본은 차도 호텔도 작고 어딜 가든 다 작은 데 유독 병원은 넓다고 했다. 그는 방문한 한 정신병원에서 보호실에서 환자가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그 곁을 간호사가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병동에서 헤어드라이기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헤어드라이기는 위험하지 않은 물건이기에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전선이며 뜨거운 바람이며 던지기 쉬운 물건이기에 이런 핑계로 치료진들은 환자 가까이에 헤어드라이기를 두는 것을 염려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법적 간호 인력은 환자 대비 13대 1이다. 이는 3교대를 하며 24시간 환자를 돌보는 역할을 하는 간호사로서 환산해보면 간호사 1명이 근무하는 동안 돌보는 환자 수는 60명이 넘는다. 환자 40명에 간호사 10여 명이 근무하는 일본의 정신의료기관과 비교해 한국의 간호사 인력은 터무니없이 적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치료받고 회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 첫 경험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지속적 치료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정신병동에서 만난 간호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을 돌보는 간호사의 인력구조는 매우 중요하다. 간호사들이 간호의 가치를 실현하며 돌봄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

박 회장은 직업 재활을 통해 정신장애인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은 그들이 위험하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병을 만났을 뿐, 당당하지 못할 이유 없어

박경덕 회장에 따르면 장애인을 고용하겠다는 회사에 정신장애인이라는 말을 꺼내면 대부분 “위험하지 않냐”고 질문을 한다. 그러나 함께 일을 해 보고 나면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며 충원이 필요할 때 정신장애인을 고용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는 “직업을 갖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고용을 통해 일반인과 함께 어울려 일을 하는 것은 인식개선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다”며 “직업재활이 활성화되도록 국가의 제도적 지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생활가정이나 주거제공시설들은 처음 입주할 때 옆집 모르게 조용히 들어간다. 이건 노하우처럼 정신건강전문의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박 회장은 몇 년 전 일본의 주거시설을 방문했을 때 민원이 없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주거시실 관계자는 너무나 당연한 듯이 “민원은 없다. 일본은 민원이 생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은 지역복지가 발달했다고 배웠는데 이게 바로 그런 이유였구나 생각했다”며 “어쩌면 우리나라에 더 필요한 건 정신보건복지보다 지역복지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정신장애인 인식개선과 관련해 오랜 시간 정신질환을 돌보는 일을 해 온 사람으로서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정신장애인들)은 안전하고 남들에게 해를 끼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아주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며 작은 것에 행복해 한다. 자그마한 관심이 그들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치료받는 것을 당연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는 “우리는 안타깝게 병을 만났을 뿐이다.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마음을 열고 봐주기 바란다. 뉴스에서 나오는 보도를 일반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멘털리 디스에이블드 → 멘털리 핸디캡드 → 멘털리 챌린저

황태연 대한사회정신의학회장은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계정신사회재활협회 학술대회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그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이의제기를 듣는다. 정신장애인은 “왜 당신들은 계속 멘털리 디스에이블드(mentally disabled)를 쓰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황 학회장은 “이 용어 이후에 멘털리 핸디캡드(mentally handicapped)를 사용하게 됐고 이후 멘털리 챌리저(mentally challenger)라는 말을 쓴다”며 “이는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기 때문에 도전 정신을 발휘하는 의미로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정신보건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부터다. 서울 강남구정신보건센터가 처음 생긴 이후 현재 전국에 226개의 기초센터와 16개 광역센터가 존재한다. 지역사회 정신보건에 기여하는 부분은 긍정적이다.

그는 그러나 우리나라 보건 예산 중 정신보건 예산이 6~7%로, 이는 선진국의 15~18%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인권위가 2009년 정신장애인 국가보고서를 냈지만 그 이행에 있어 지속적인 점검을 해오지 않는 부분도 지적했다.

“모든 사회, 그 이해 집단이 적합한 전략을 만들어서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와 가족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으로 끝날 게 아니라 사회운동화돼야 한다. 가족과 당사자, 전문가들이 같이 모이는 연합체가 사회운동을 벌일 때 사회구성원 모두가 건강한 정신건강과 웰빙을 누릴 수 있다.”

그는 “인구 5천만 명에 우리나라의 정신과 의사는 4천 명밖에 안 된다”며 “이를 늘려야 하고 재활에 대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서 복지서비스와 연결이 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픈 다이얼로그는 가족과 당사자들을 위한 소통의 방법”이라며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 통합된 시스템을 지속해서 입원과 외래치료에 연결시키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치료 계획을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과 당사자가 직접 들을 수 있다. 어떤 것이 나한테 도움이 되는 치료법인가를 직접 들으면서 본인의 의견을 낼 수 있다. 결국 치료자와 가족과 당사자가 소통을 해서 계획을 수립한다는 게 핵심인데 여기에 약물을 쓰지 말라는 얘기는 없고 약물이 필요하면 약물을, 입원이 필요하면 입원을 하고 그 모든 결정을 치료자와 가족, 당사자가 같이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당사자와 가족 삶 변화 위해서는 전략적 사회운동화돼야

황 학회장은 “현재의 의사들이 가진 마인드는 가부장적”이라고 지적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 하에서 최대한의 정보를 갖고 최소한의 선택법을 선택하면 가족과 당사자는 그냥 받아들이는 이런 가부장적인 모델에서 이제는 치료자와 당사자가 함께 의사결정을 하는 모델로 바뀌어야 한다.”

그는 “치료자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지역사회 선택을 포함한 치료법을 추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정보를 제공받은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과정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자기결정권이 중요한데 어떻게 보면 치료자와 당사자가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하라면서도 의사가 이야기를 하고 결국 결론은 당사자가 동의하게 하는 수단이 아니냐 하는 위험성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황 학회장은 “적극적인 정보를 갖고 당사자가 의견표명을 해 나갈 때 자기결정권은 강화될 것”이라며 “과정을 같이 해 나간다면 치료 결정에 대한 불만도 줄어들고 스스로 결정한 것에 책임을 지는 당사자와 가족에게 약물 순응도도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포럼이 진행되는 내내 청중들은 고요하게 듣고 있었다. 간간이 웃음과 박수소리만 들렸을 뿐.

어쩌면 그들은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행사는 정신건강 인식개선 및 사회통합을 위한 2018 전국순회 정신건강포럼 두 번째 행사였다. 다음 포럼은 8월 21일 전남대학교 의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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