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재개정은 우리 모두가 요구하는 사안”
“정신건강복지법 재개정은 우리 모두가 요구하는 사안”
  • 임형빈 기자
  • 승인 2018.07.20 18: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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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계, “잠재적 범죄자 만드는 현행 법 전면 개정 필요”
정신장애계, “비자의입원 개정 앞서 정신병원 폐습 고쳐야”
당사자, 가족, 의료집단이 머리 맞대기 전에 화해해야

최근 일각에서 발생하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의 사건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들이 흘러나온다.

지난 17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성명서를 내고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주장했다. 학회는 정신질환자의 범죄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최적의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며 이를 통해 환자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학회는 지난 6일 발생한 강릉의 한 정신병원에서 보호관찰 중인 정신질환자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폭행한 사건에 대해서도 대책을 요구했다.

학회는 사전이 이 정신질환자의 위험성이 감지돼 여러 차례 보호관찰소에 신고를 했지만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무부가 정신질환자 보호관찰 대상을 지역사회정신보건기관과 정신의료기관으로 연계하는 방법을 요구해 왔으나 보호관찰 시스템의 개선 및 보호관찰 안전망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지난 8일에는 경북 영양군에서 퇴원한 조현병 당사자가 경찰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이 학회는 정신건강복지법의 전면적 개정 요구에 힘을 싣고 있는 추세다.

정신장애인의 급성기 대처의 주의성, 범죄에 따른 피해 사항 예방 교육 등을 강화해 조현병 당자사들이 스스로 범죄에 대한 예방 대처법을 세우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별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낮병원 프로그램 기능을 강화해 반복되는 학습으로 법과 사회, 관습에 대한 인지적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게 학회 지적이다.

정신건강복지법 보완이 시급하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그 개정 취지에 많은 공감이 있었지만 의료계 등에서는 정책적 부작용이 점점 나타나고 있어 법의 보완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계속 내고 있는 실정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정신질환자들의 대대적 탈원화 운동으로 많은 수의 환자들이 지역으로 퇴원했지만 이들을 지켜줄 복지센터 등의 미비로 재입원하거나 범죄자가 돼 구치소에 갇히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미국정부는 지역사회 의료시스템 구축에 힘을 기울이는 계기가 됐다.

한국의 정신건강복지법은 2015년 개정돼 2016년 5월 30일 시행에 들어갔다. 통상 강제입원으로 불리는 비자의입원을 위해서는 기존 정신보건법보다 그 형식을 엄격히 규정해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 서로 다른 의료기관의 정신건강전문의 공통된 2차 진단, 입원 한 달 이내에 요청할 수 있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입원적정성 심사, 정신건강복지심의위원회의 재심 등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학회는 지역사회 등 치료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는 정신질환자의 대책은 전무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 학회 이민수 전 이사장은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우리나라 정신보건의 최전방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방식을 전혀 배려해 주지 않았다"며 "더 큰 문제는 법의 시행에 있어서 부족한 인프라와 행정적 절차들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현실 상황에 법 시행을 위한 절차를 끼워 맞추는 식으로 무리한 운영을 하면서 법의 근본 취지를 무시하는 꼴이 됐다. 인권과 치료진의 보장을 위한 법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법 시행을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2명 이상의 전문의가 일치된 진단을 내려야 하는 2차 진단 체계는 국공립병원의 의사 인력 부족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복지부는 지난해 말까지 같은 민간병원의 의사가 2차 진단을 하는 것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다가 인력 부족이 이어지면서 그 예외적 시행을 올해 말까지 연장하도록 했다.

학회는 이러한 주먹구구식의 법이 아닌 근본적으로 정신과 환자들의 인권 보호 강화를 위해 국가가 나설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광 정신건강전문의는 “한 병원의 전문의 2명의 뜻이 맞아 진료 판단을 내리는 것도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서로 다른 기관의 전문의가 환자의 연장 입원을 판단하는 것을 넌센스다. 한 사람이 마음이 틀어지면 진료도 할 수 없다. 결국 피해 보는 것은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맞춤형 진료를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환자가 치료가 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지역사회 기반의 외래치료권고제 등 다양한 개입 전략 시급

학회는 또 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만드는 것이 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필요충분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퇴원해도 재발을 반복하는 정신질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는 촘촘한 치료 시스템 및 지역사회 관리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지역사회에서 방치되어 있는 정신질환자의 자타해 위험성이 분명하지 않다고 대책없이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처럼 지역사회 기반의 외래치료권고제와 같은 다양한 유형의 개입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또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심판 적합성에 회의하고 있다. 환자가 비자의입원 한 달 이내에 입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조사원이 파견해 대면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실제로는 대면 검사보다 서류 조사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다. 그리고 그 진단의 최종 법적 책임은 진단 의사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우려도 표명했다.

따라서 학회 등은 선진국처럼 사법 혹은 준사법기구가 입원 적합성을 심판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입원 초기에 독립된 사법기구의 판사나 정신과 의사가 직접 환자를 평가해 판정함으로써 인권 침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또 선진국처럼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촘촘한 조직망을 갖춰 서로 소통과 유대감을 강화해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센터 이동을 보장하고 센터의 순환적인 교육망을 완성해 당사자가 어디를 가든 기본적인 사회법제교육을 이수하도록 해 범죄의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사자들의 공동체 구축도 필요

당사자들의 경우 소통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 단체와 집단의 지지체계 구축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탈리아의 경우 정신장애 당사자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 작업, 공동 생산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들은 조합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정신장애인 공동체 생활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일본에서도 홋카이도 우라카와 지역에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공동체 마을인 베델의집이 있다. 매년 3천~5천 명의 사회복지사와 복지 관계자, 일반 시민들이 다녀갈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보유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 같은 당사자 지지형 공동체는 형성되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전국 220여 개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조현병 당사자들의 자립을 위한 교육과 프로그램을 제공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회는 여전히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부족한 부분을 지적한다. 법적인 문제도 있지만 지역사회에 정신보건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 대규모 탈원화의 경우 자칫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학회는 최근 조현병 당사자들에 의한 범죄가 발생하자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됐다며 고민을 전했다.

학회들의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정신장애인들과 이에 우호적인 단체들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비롯한 관련 학회들의 주장에 대해 못마땅하다. 그동안 정신질환이 있다는 의사 소견서만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강제입원돼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더 깊이 병들어 갔던 시절들에 대한 반성을 의료권력이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정신장애인 운동가는 “응급입원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병원의 치료 환경에 있다.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곳에서 어떻게 치료가 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어 “우리도 정신건강복지법이 어느 정도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어쩌면 전면 재개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많은 시간 동안 의사들은 지역사회 인프라와 탈원화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다가 이제 탈원화가 이어지니까 정신질환자를 범죄자로 여겨 이의 시행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먼저 반성해야 할 이들은 의료권력과 함께 정신과 의사들이다. 국가에 대한 투쟁은 그 다음”이라고 덧붙였다.

학회든 정신장애인 인권 운동 단체든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에 공감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위해 당사자, 가족, 전문가 들이 협력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사자, 당사자 가족, 전문가 집단은 한 배를 탄 선원들

무엇보다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정신장애인을 위한 더 나은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가족, 전문가 집단이 서로 화해하는 게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어쨌든 정신장애인들의 보건과 복지를 위한 유일한 법률이다. 이 시행에서 터져나오는 허점들은 고쳐나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의료계과 정신장애인계가 서로를 불신하고 서로를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면 또 다른 부족한 법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급하게 먹어 체하면 허사라는 옛말이 있다. 조현병 당사자를 비롯한 정신장애인들이 더 나은 복리후생을 위해 정신건강복지법의 보완은 필요하다. 선진국과 같이 지역사회에서 치료받는 법이 엄격하게 집행되고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사각지대에 방치되지 않는 촘촘한 지역 정신건강서비스 인프라가 있어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 정신장애인 인권운동가는 “우리는 많은 시간 국가권력과 의료권력으로 인해 깊은 피해를 입은 어떻게 보면 피해자들이다. 국가와 의료권력이 자신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그 많은 고통에 대해 해명하지 않고 법만 고치라고 하는 것은 이중으로 우리를 차별하는 것”이라며 “이들은 우리를 여전히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사회의 인식에 편승해 있다.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법을 바꾸라는 패러다임이 이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당연히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이 학회 관계자는 “보건복지부는 더 이상 아픈 환자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히고 사회에서 외면받는 집단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제대로 된 인권보장을 위해 비자의적 입·퇴원 시스템을 전면 재개정해야 하며 사각지대 없이 촘촘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잘못된 법은 바꿔야 한다. 그게 정도(正道)다. 다만 그 과정에 소외되는 주체가 없이 다 같이 참여하는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화해가 그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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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결 2018-07-20 23:38:55
정신과 전문의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진단의 의견차이라고 봅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에 의해 DSM-5 등이 발표되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냥 홍보 및 적용하고 있지만 진단 자체는 불확실할 가능성이 큽니다. 정신과전문의들은 자신의 편익을 고려하기 보다는 정신장애 당사자 입장에서 이들이 소득을 보장하고,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공간을 마련하고, 세인의 차별과 편견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