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관리·감독의 대상이 될 뿐일까?
우리는 왜 관리·감독의 대상이 될 뿐일까?
  • 임형빈 기자
  • 승인 2018.07.24 2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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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강제외래치료명령제 개선·강화할 것
퇴원 환자 정보 지역 센터에 공유 제도 강화
정신질환자를 위험군으로 분류해 프라이버시 침해
사회 안전과 개인 인권 충돌…피해 최소화해야

지난 1일 경남 하동 인근을 달리던 고속버스 안에서 조울증을 앓던 20대 여성이 40대 남성 승객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이어 8일 경북 영양군에서는 조현병 환자인 40대 남성이 자택에서 난동을 부리다 출동한 경찰을 흉기로 휘둘러 숨지게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후 시민과 언론의 시선은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담론을 생산해 내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정신장애인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추적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지난 22일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조현병 환자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퇴원할 경우 그의 퇴원 사실을 해당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보건소에 환자 동의 없이도 알릴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기로 했다.

복지부는 조현병 환자의 보호자 동의 없이도 외래치료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도 강제로 입원시키는 ‘행정입원’도 가능하다. 국가가 입원과 퇴원 이후의 삶까지 관리하겠다는 의지다.

 

퇴원 환자 동의없어도 지역사회에서 추적 조사…“인권 침해” 반발

이는 국가가 정신장애인의 돌발적 ‘불상사’를 예비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내겠다는 국가의 보건철학적 사유가 담긴 담론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들이다.

그렇지만 퇴원 환자의 동의 없이 환자의 각종 자료들이 국가기관들에 통보되는 것은 자칫 개인 프라이버시에 치명적 손실을 입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현병이 있다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혀 치명적인 감시체계는 아니겠지만 사적인 공간에 국가기관이 자유롭게 침범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이유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복지부 정책은 환자들을 잘 치료해 주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위험할지 모르니까 잘 관리하겠다는 차원”이라며 “인권 침해 우려가 상당히 크다”고 우려를 표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인구는 2013년 11만3천289명에서 2017년 12만70명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조현병 환자들이 약만 꾸준히 잘 먹으면 극단적인 상황에 빠질 위험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조현병 환자들은 병의 특성상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약 복용을 번거롭게 여겨 약 복용을 중단할 때가 잦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더 많은 예산과 인력 투입해야

주로 조현병 초기 증상에서 이런 사례에 빠지는데 치료를 받아야 하는 당사자들은 “내가 왜 정신병 약을 먹어야 하지? 난 정신질환자가 아니야. 이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병이다. 약은 조금만 먹고 다음에 먹지 말아야 한다”라며 약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최근 발생한 정신질환자들의 사건사고는 이처럼 약물 투입을 거부하고 자기 식대로 병식을 처리하려다 발생한 경우가 많다.

정신질환자들이 병식을 갖고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기능이 더 강화돼야 한다. 그래서 퇴원한 당사자들이 아침에 일어나 갈 공간이 생기고 센터 모임에서 정보를 얻고 함께 치료를 해 나갈 수 있어야 이러한 급성기에 따른 사건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의료기관과 정신요양시설에서 퇴원·퇴소한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치료적 개입의 강도를 높여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혼자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정책 제시가 나쁜 건 아니지만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인력과 불평등한 서열, 불안정한 일의 연속성, 비규정직 처우 등으로 직장을 떠나는 복지사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실제 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요원의 평균 재직 기간은 38.1개월에 불과하다. 이는 장애인복지관 종사자의 43.4개월에 비해 현저히 짧다.

이는 정부가 정신건강복지센터를 개소하는 조건으로 민간에 위탁하는 구조로 만든 게 화근이다. 당시 정부는 센터 전문 인력에 복지사들을 공무원으로 전환시키는 걸 막았다. 정부 쪽에서는 이렇게 할 경우 국가 예산이 그만큼 낭비되지 않으니 좋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민간에 위탁시킬 경우 민간 업체들끼리 경쟁관계를 이루면서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단견을 내놓기도 했다. 결과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총체적 재앙으로 이어졌다.

직업의 안정성과 개인의 신분이 불안정한 곳에서 일을 오래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인 셈이다.

이러한 센터의 불안정성은 직접적으로 센터를 찾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넘어갔다. 애써 센터 복지사와 라포(rapport,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놓아도 복지사가 일을 그만두면 또 다른 복지사와 라포를 형성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길고 라포가 이전보다 더 강화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퇴원·퇴소한 정신장애인의 정보를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보건소에 넘긴다고 했지만 이 같은 센터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정신장애인의 안정적 삶은 여전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외래치료명령제도 결국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을 "관리"하겠다는 것

정부는 또 그간 유명무실했던 ‘외래치료명령제’도 손보기로 했다. 이 명령제에 따르면 자·타해의 전력이 있는 정신장애인에 대해 국가는 강제로 지속적 통원치료를 명령할 수 있다. 이 경우 보호자 동의를 얻어 의료기관의 장이 시군구청장에게 외래치료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보호자 동의가 없이도 외래치료를 명할 수 있게 된다. 지역사회에서 통원하며 치료받는 정신장애인이 불규칙적으로 치료받거나 치료를 거부할 경우 외래치료명령을 할 수 있다. 이는 의사가 통보하면 시군구청장이 직권으로 치료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외래치료명령제는 정신질환자가 입원을 대체해 지역사회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강제함으로써 입원을 줄이려는 조치다.

그렇지만 이 같은 정책들 역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주 별로 환자들이 사람들에게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거주 선택권이 주어지도록 함으로써 이들이 정신병원이나 시설에 격리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도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적극적으로 임해 자신이 원하는 사항을 결정하기 전에 지역사회를 방문해서 임시로 거주해 보는 기회를 받을 수 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에도 환자 본인의 의견이 우선시된다. 또 환자의 동의 없는 입원에 대해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외래치료명령제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이를 강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개선한다는 입장이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편견의 악순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타해 위험이 있는 사람은 지속적인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모든 환자들의 사회적 회복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치료가 중단되고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는 정신장애인들을 발굴해 이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외래치료명령제도 이 같은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국가의 직접적 치료 개입과 당사자 프라이버시의 충돌…인권 침해 최소화해야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외래치료명령을 받고도 환자가 치료에 응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며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도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신장애인에 외래치료명령을 내려도 당사자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이를 강제할 규정이 마땅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외래치료명령제도 강화를 통해 급성기의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장애인에 대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를 예방하겠다는 의지와 정신장애인의 개인 프라이버시와 정보를 모두 지역사회에 공개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두 가지 원칙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인력을 2022년까지 1천455명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또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없는 전국 15개 시군구에 센터를 모두 설치해 인프라를 확대하고 정신건강전문요원 1인당 적정 환자 수를 현 100명에서 25명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는 정신장애인들은 자신의 정보가 행정기관에 전달되는 걸 꺼린다. 취업 등에 불이익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공단에서 관리하는 정신병력과 치료내역은 다른 정부기관이나 기업에서 절대 알 수 없다”며 “정신병력뿐 아니라 어떤 병력을 가졌더라고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확률은 없다”고 말했다.

기사의 처음 논지로 되돌아 가보자. 분명 정신장애인들이 최근 사건사고를 많이 일으키고 있다는 사회적 우려가 있다. 정부는 정신건강복지서비스 전달 체계 일부를 개선할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치료명령제를 개선·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지역사회 센터에 정신장애인의 퇴원을 자동적으로 통보할 수 있도록 법령을 손본다는 계획이다. 그렇지만 인권단체 등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국가 기관에 의해 유출돼 또 다른 ‘낙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의 입장

마인드포스트는 급성기 정신장애인이 자타해의 위험에 빠져있을 경우 이의 신속한 입원이 진행돼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정신장애인이 입원을 대체해 지역사회에서 치료를 받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지역사회치료명령제의 도입에 대해서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마인드포스트 박종언 기자는 “일반 범죄율의 0.4%에 불과한 정신장애인들의 범죄를 두고 사회적으로 안정을 해치는 특정인구집단으로 매도하고 이를 계기로 정신장애인들의 개인 정보를 과도하게 유출하는 것에는 분명히 반대한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국가는 정신장애인을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엄을 갖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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