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약자를 옹호했던 인간 노회찬을 보내며
장애인과 약자를 옹호했던 인간 노회찬을 보내며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7.26 20:5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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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정신장애인은 살아남은 자들…정의로운 사회 소망
정신장애인도 행복한 사회 만들 것
약속은 두려운 것, 그러나 정의로운 사회 약속하고 싶어
마인드포스트도 정신장애인의 자유를 위해 노력할 것
(c) 정의당
(c) 정의당

노회찬이라는 한 인간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지인(知人)이 보내온 카톡에서였다. “노회찬 의원 투신 사망.”

회사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던 나는 아주 짧은 현기증을 느꼈다. 황망한 느낌이었을까, 마치 세계가 거대한 허구처럼 느껴졌다. 이후 사흘간 우울증을 앓았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가슴 안에서는 뭔가 쏟아내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살아온 삶의 편린들을 여기 다 적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 인간의 삶을 어찌 몇 개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와 대면해 본 적도 없고 그가 속한 당을 위해 표를 던져준 적도 없다. 최근 치러진 미니총선에서도 나는 비례대표란에 정의당을 찍지 않았다.

그런 내가 정의당의 당원 노회찬을 떠올리며 우울해 하는 것은 그가 꿈꾸었던 정의로운 세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데 대한 어떤 미련 때문이었다.

노회찬은 2005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최저임금법에도 장애인만 적용 제외 대상이 되는 등 장애인은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에 명시된 장애인 의무 고용률 2%조차도 국가기관은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작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상버스 도입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너무나 미약합니다.”

기자로서 나는 정신장애인 대안 인터넷신문을 만들어 오면서 종종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머리가 나빠 정신장애, 정신질환과 관련된 그 많은 법령들과 시행령, 시행규칙, 정신질환자가 면허를 취득할 수 없는 자격증들, 문화시설과 공공도서관에 출입할 수 없도록 지방조례에 규정된 그 많은 현실의 문제들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오늘도 한 주간지에서 조현병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며 몇 가지 자문을 구해왔다. 나는 내가 아는 한도에서 설명을 했다. 그렇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치유되지 않은 어떤 멍자국 같은 것이 마음에서 만져졌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내가 정신장애인이며 저 인간 노회찬이 함께 하고자 했던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노회찬이 장차법을 발의했을 때 우리 정신장애계는 정신장애인 운동의 태동기에 들어서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정신장애인 인권단체들이 하나씩 둘씩 그 시간을 관통하며 구성돼 오던 세월이기도 했다.

그가 시대와 사회에 요청했던 사회적 약자의 권리보장은 그가 장차법을 발의했던 시점에서 13년이 돼 가지만 여전히 사회는 약자의 권리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권리 옹호 역시 여전히 지난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인간 노회찬은 정신장애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쩌면 그가 오래 살았다면 나는 그를 취재하러 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물어 보았으리라. “정신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나의 엄숙하고도 어리석은 질문에 그는 웃음을 터트릴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것으로도 나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떠났다.

떠난 이후에 인간은 후회한다. 왜 그를 지켜주지 못했을까.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받은 4천만 원이 뭐라고, 조금은 더러운 것에 몸을 내주고 스스로도 진흙탕에서 진흙을 바를 수도 있지 않을까. 정치라는 그 흙탕물에서 연꽃이 피도록 하는 게 아닌가. 어떤 심사였기에 그는 그토록 자신에게 추상 같았던 것일까. 나라면 저처럼 당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었을까.

어쨌든 그는 떠났다. 그리고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 지하철에서 옛날 노통(노무현 대통령) 떠나보내고 홀로 부르던 그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를 나지막히 불렀다. 나도 모르는 저 마음 어딘가에서 어떤 뜨거운 눈물이었을까, 더운 분노였을까, 차가운 그리움이었을까, 그런 불기둥과 물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부치지 않은 편지’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2011년 어떤 대담회에서 정치인 노회찬은 이렇게 말한다.

“결코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가족이 불행할 때 나 혼자만 행복할 수 없다. 이웃이 불행한데 우리 집의 행복이 지속될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한다.

“세상은 사람이 바꾸는 것이고 우리는 많이 바꿔왔다. 절망과 체념이 행복의 가장 큰 적이다.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행복해지기 위한 용기와 확신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이는 올 수 있는 행복도 더디 올 것이다.”

나는 인간 노회찬을 만난 적은 없지만 아주 오랜 친구처럼 그를 기억하고 싶다. 2만 볼트의 뜨거운 시대를 헤치고 나와 더운 사랑의 입김을 남긴 채 떠난 그 사람을 나는 잊고 싶지 않다.

우리도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어쩌면 어리석은 질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저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 공동체도 그 공동체에 소속된-소속되기 위해 투쟁해온- 정신장애인들도 언젠가, 마침내 행복해졌다고 소리 높일 수 있을까.

그래서 장애가 비난이 되지 않고 장애가 특권도 되지 않는 그냥 일반 시민으로서의 삶의 규율에 따라 살아가고 작은 행복들을 만들어가는 그런 평범한 시민적 삶을 우리는 누릴 수 있을까.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삶에 대해 만족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전체 장애인은 55.6%였다. 정신장애인은 32.9%에 불과했다.

긴 시간 경직된 공동체가 규정한 미친 자로서, 위험한 타자로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 배제되고 격리됐던 그들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그들은 행복해지는 걸 모르는 것일까. 그럴 리가 있나. 그렇다. 정신장애인들도 누구보다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끝없이 찾아오는 실존적 불안과 고통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누가 말했다. 우리는 그 격리와 강제입원, 병원 안에서의 훈육과 구타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으며 그 부조리와 싸우고 고통을 넘어서면서 성숙해진다고.

그렇다면, 성숙해진다면 위의 장애인실태조사에서 행복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열 명 중 여덟 명은 삶의 고난에 만족하고 감사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실제 만족한다는 비율은 열에 세 명뿐이었다. 기자로서, 또 정신장애인으로서 나는 그 부분이 늘 의아했다.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라는 노회찬의 요청은 지금, 우리 정신장애인들이 지켜나가야 할 삶의 가치일 것이다. 괴로움도, 슬픔도 어느 순간 지나갈 것이니 (하지만 이 말은 얼마나 위선적일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성공한 사람들과 권력자들의 말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정신장애인의 회복의 과정에도 개입해 영향을 미치곤 했다. 사회적 모순에 눈 감고 사회적 연대에 더 힘껏 눈을 감게 만드는 저 신자유주의적 정신치료는 이제 멈춰야 할 때가 됐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문제이며 공동체의 문제이며 우리가 함께 머리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에서 노회찬을 추모하는 추념사를 내보냈다.

전장연은 “노 의원이 이루지 못한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멈추지 않고 투쟁할 것”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인간 노회찬이 이루지 못한 꿈이라 했다. 그가 꿈꾼 사회는 무엇이었을까. 장애가 부끄럽지 않은 사회, 정신장애인이기 때문에 격리되지 않는 사회, 인간이기 때문에 온전히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 무엇보다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었을까.

오늘, 나는 그를 보낸다. 그리고 독하게 끓어오르던 우울증도 떠나보낸다. 그를 보낸다는 것을 그를 기억하겠다는 의지다. 애도한 후에 그를 진정으로 떠나보내는 것만이 내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내적 의지다.

우리 정신장애인도 우리 뒤에 오는 정신장애인들이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먼저 깨어난 자들이 앞장서서 우리의 권리를 외칠 것이다. 우리를 가두었던 저 수많았던 금기와 억압과 예속을 깨고 우리가 관리의 대상이 아닌 자유로운 삶의 주체라는 것을 선언하게 되는 날까지 우리는 한 발씩 걸어갈 것이다.

무언가를 약속한다는 것은 진실로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려움을 넘어 약속-아, 약속이라는 전언은 왜 이토록 뼈아픈 것인가-하고자 한다. 더 나은 사회,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참여하겠다고.

그를 보낸다. 잘 가라. 진실로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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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19-10-20 09:57:36
노회찬님,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남은 정의당의원들도 잘지낼거얘요~!!!!

전민 2018-07-31 08:45:04
정신적 귀족이었던 그대. 진정으로 고귀한 영혼이었던 그대. 안녕히. 그대는 진정으로 고결한 사람. 진정한 인간이었다.

송승연 2018-07-27 13:25:33
그를 보낸다. 잘 가라. 진실로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사랑했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