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길
[칼럼]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길
  • 염형국 변호사
  • 승인 2018.07.27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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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출근길에 스웨덴의 예테보리 공항을 이륙하려던 항공기에서 한 대학생이 좌석 착석을 거부하는 시위를 벌인 끝에 아프가니스탄 난민 신청자의 추방을 중지시켰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예테보리대학교에 재학 중인 엘린 에르손(Elin Ersson)은 아프간 난민이 이 비행기를 타고 추방될 것이란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뒤 비행기 좌석을 구매해 시위를 계획했다고 한다. 에르손은 “나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승객이 서있는 한 기장은 이륙할 수가 없고, 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행위다. 나는 그의 추방이 중지되길 원하고, 그게 이뤄진다면 여기 규칙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당국이 강제력을 동원해 에르손을 끌어내리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결국 아프간 출신 난민 신청자는 비행기에서 내리게 됐고 승객들은 박수를 치며 이를 환영했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엘린 에르손 (c) The Guardian
엘린 에르손 (c) The Guardian

사진 속 어린 대학생 에르손의 용기 있는 행동을 보고 울컥했다.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에르손은 아마 아프간 출신 난민과 아무런 개인적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아프간 출신 난민이 추방되건 추방되지 않건 에르손의 일상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프간 출신 난민이 스웨덴에서 쫓겨나 아프간으로 돌아가게 되면 분명 생명이 위험해지고 위협이 가해질 것을 알았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과 아무런 상관 없는 사람이 위험에 처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자기에게 불이익이 올 것을 감수하고서 이타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기사를 내 페이스북에 링크를 걸어 게시했다. 그랬더니 페친 한분이 "학생이 굉장히 이기적인 것 같다. 자신의 가치관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것도 이기적이다"는 내용으로 댓글을 달았다.

최근 언론들이 다루는 정신질환자 범죄를 다루는 방식도 이와 아주 유사했다. 언론이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태도, 대중들이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태도 말이다. 범죄를 저질렀거나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정신장애인들은 정신병원에 강제로 가둬야 하는데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강제입원 절차가 어렵게 됐고, 그래서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이런 범죄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해야한다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되려 일반 시민들이 위험해지고 불편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중들의 지독한 편견과 정신장애인에 대한 낙인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 사실과 다르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보다 (그 비율로도) 훨씬 더 많은 범죄가 정신장애가 없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다. 정신장애인이 일반 대중에게 위험을 끼치는 것보다 일반 대중의 혐오와 낙인에 의해 정신장애인을 가두고 인권침해하는 경우들이 훨씬 더 많다.

일반 대중들은 정상인 혹은 평균인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그와 다른 것들을 끊임없이 분리·거부하고 격리시켰다. 인종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장애가 있고, 정신질환이 있고, 종교가 다르고,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등 수만가지 이유를 들어 자신들과 다른 점을 부각시켰다. 그렇게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틀렸고, 다르게 대우해도, 인권을 제한해도 괜찮다고 정당화시켰다. 그렇다면 (전혀 가능하지 않겠지만) 정상인 혹은 평균인이라는 사람들만 모여사는 사회는 안전하고 평화롭고 행복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범죄들은 정상인 혹은 평균인으로 불리워지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그러면서 정상인 혹은 평균인들은 끝없이 사회를 정상화 혹은 평균화시키려고 갖은 애를 써가며 누군가를 끝없이 분리하고 배제·제한·거부할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의 이해와 상관 없는 타인을 도와주려고 하는 이타심이다. 자기 의지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사람답게 사는 것은 우리의 존재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좀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 역시 이타심일 것이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회는 가장 불행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아야 하는데, 이기심은 이러한 ‘연결’의 고리들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결국 스스로도 고립되어 불행해진다. 결코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이웃이 불행한데 우리 가족만의 행복이 지속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남들이 아닌)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애정을 기울여야 한다. 조금은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타자를 포용하고 함께 살아야하는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평생 정신병원에 강제로 갇혀 있거나 갇힐 공포를 안고 사는 정신질환자를 진정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커뮤니티 케어와 지역사회 복지지원이 하루속히 이루어지면 좋겠다. 모두가 조금씩 불편해야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 배제되는 사람이 없어야 우리 모두 행복하다.

ps. '자신의 가치관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것도 이기적‘이라는 댓글을 남겼던 페친은 이후 본인이 잘못 생각했다고 댓글을 달았다. 페친님, 고맙습니다. ^^

염형국 변호사
염형국 변호사

염형국 변호사님은...

제43회 사법시험 합격 (2001)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지원센터장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마인드포스트 논설위원(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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