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이야기] "내 딸에게 차마 정신과 약을 먹일 수 없습니다"
[가까운 이야기] "내 딸에게 차마 정신과 약을 먹일 수 없습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8.06 0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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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청와대국민청원게시판에 내 딸 입에 차마 정신과 약을 먹일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인은 딸아이가 학교 교사의 일상적 폭력에 노출돼 정신적 고통으로 이제 정신과 약을 먹일 수밖에 없는 사연을 올렸다.

교사는 아이를 음성적으로 학대했고 청원인 A씨는 그 학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학교와의 싸움이 있었지만 학교는 오히려 A씨를 교권침해로 경찰에 고소했다. A씨는 자신이 아이의 말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했었고 아이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었어야 했다고 자신을 책망했다.

마인드포스트는 청원인 A씨가 올린 글을 단편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A씨의 이야기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기자의 잘못이다. 최대한 사실 그대로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초등학교 아이가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요청하고 싶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1

꿈. 모든 풍경이 꿈처럼 퍼져간다. 햇살이 참 맑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디쯤 나는 와 있는 것일까.

오늘, 아이와 함께 정신과에 가서 약을 타왔다. 의사는 내게 1년 정도 치료하자고 권했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을 먹이고 딸아이에게 정신과 약을 먹여야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어진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저 약. 정신과 약이라는데, 나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그 약을 10대 초반의 내 딸에게 먹여야 한다. 나는 가방을 열지 않았다.

딸아이는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다. 이제 13살. 밑에 남동생도 한 명 있다. 5학년 초기에 학교에서 온 딸이 내게 말을 걸었다.

“엄마, 우리 반 한 아이가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심하게 대하는 것 같아.”

나는 설거지를 하다가 아이를 돌아보았다.

“그래, 그 아이랑 친하게 지내. 니가 친구 해주면 되잖니.”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손을 닦은 후 소파에 앉았다. 아아,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어. 그렇지만 나는 그때까지 내 딸애가 훗날 정신과 약을 먹어야 될 정도로 선생으로부터 폭언을 들었다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아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돌아왔다. 딸은 내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자꾸 걔하고 나랑 체육시간에 남으라고 하곤 쌍욕을 해. 왕따 당한다던 걔하고 나하고. 싸가지 없는 년들이라고 하고.”

나는 아이의 얼굴을 무추름하게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하는구나. 설마 선생님이 초등학생인 너에게. 나는 그때까지 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후 상황이 크게 번질 때쯤에야 나는 그때 딸애의 말을 조금이라도 신중히 들었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그때의 나를 나는 용서할 수 없다.

딸애는 이따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중얼거리듯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높은 신발 신고 내 발을 밟아. 팔도 꼬집고 스템플러로 눌러서 심이 박혔어. 근데 심이 한쪽만 박혔어. 이것 봐.”

딸애의 손가락을 나는 보았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뭔가 상채기가 나 있었다. 딸애는 말을 이었다.

“엄마, 근데 내가 재채기를 소리 내서 했는데 선생님이 남으래. 수업 끝나고 너 때문에 수업 방해됐다고 핸드폰 모서리로 막 때려.”

나는 그때서야 뭔가 의아한 생각을 가졌다.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딸의 친구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아이에게 물었다. 딸애의 말이 진짜냐고.

그 아이는 “선생님께서 효민(가명·딸 이름)이하고 저하고만 심하게 대해요”라고 건조하게 말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물었다.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냐고. 너는 정직하게 말해주길 바란다고 말하며.

그 아이 말에 따르면 자신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왕따를 당해왔다고 했다. 부모님이 늘 바쁘신데다 자신을 챙길 여력이 안 돼 늘 혼자였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 선생님이 “야, 좀 씻고 다녀라. 넌 옷도 없냐? 맨날 똑같은 옷 입고 다니니”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고 말했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 아이는 선생님이 자주 내 딸 효민이와 그 아이에게 “싸가지 없는 년, 니들 둘은 병신들이야”라고 말했다고 했다.

2

아이들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몰랐다. 그렇지만. 나는 담임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과 이혼해 한부모 가정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늘 딸애가 그런 사실로 상처입을까 염려하며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몇 번의 신호가 가고 담임선생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효민이 엄마입니다. 선생님께 여쭤볼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하고 예의를 갖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담임선생에게 왜 아이들에게 그런 상처 주는 말을 하냐고, 제가 한부모 가정이라서 그런 편견을 갖고 아이들을 대하시냐고 정중하게 항의했다.

담임선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곧 “욕한 부분은 인정합니다. 사과드립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뜨거운 입김을 내뿜듯 말했다. 나는 순간 울컥했다. 그래서 담임선생에게 “우리 효민이가 저와 아빠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컸습니다”고 말했다. 바보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울면서 부탁했다.

“저도 이런 전화드리는 게 조심스러워요. 잘못을 했다면 그냥 손바닥을 때려주세요. 말로 상처 주지 마시고요. 부탁드립니다.”

담임선생도 수화기 저 너머에서 꺽꺽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듯 말했다. “어머님, 제가 잘 보듬을게요. 전 이혼하신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같이 수화기에 대고 울었다. 서로의 꺽꺽하는 울음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길게 퍼져나갔다.

“선생님. 효민이는 이혼한 아빠가 바빠서 자주 못 봐요. 선생님이 나 없을 땐 또 다른 보호자니까 잘 좀 봐 주세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날 이후 딸애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는 했다. 그때 뭔가 물었어야 했고 알았어야 했는데. 그 당시 나는 작은 가게를 세내 오픈을 준비하느라 저녁이면 지쳐 아이와 대화하는 것도 귀찮을 정도였다.

어느 날이었다. 딸애는 내가 일하는 가게로 왔다. 그리고는 가게의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누구랑 싸우듯이 혼잣말을 했다.

“넌 벌레 같은 년이야. 뒤져버려.”

“효민아 지금 뭐 하는 거야?”

“선생님하고 상황극하는 거야.”

딸애는 짧게 말하고는 가게를 나갔다. 그때, 아, 그때 딸애를 붙들고 다그쳐서라도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다. 상황극은 딸애가 동생이랑 늘 하던 것이려니 하고.

3

탁자 위에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더니 놓고 나간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의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게임 상에서 만난 애랑 이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적(性的)인 분위기가 풍기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물어보면 창피해 할까봐 이 사실을 담임선생에게 전화해 상담을 했다. 나는 선생에게 부탁했다. 저한테는 말 못할 수도 있으니 선생님이 잘 상담 좀 해 달라고.

그날, 딸이 학교에서 와서 내게 심통을 부리듯 말했다.

“엄마, 내가 잘못하면 그냥 때려. 선생님한테 말하지 말고. 너무 마음이 아파.”

아이는 급기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딸애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황망하게 물었다. 딸애가 목을 놓아 울면서 말을 하나씩 뱉어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자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더러운 짓 안 했다면서 그건 더러운 짓이야. 더러운 년. 유튜브에서 보고 씨부리고 다니지 말라고 했단 말야.”

나는 뭔가 세상이 기우뚱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헛된 풍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고 딸애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들고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엄마도 내 말 안 믿을 거잖아. 아무도 나 같은 병신 말 안 믿어 줄 거라고. 말해봤자 나만 병신 된다고. 선생님이 그랬어. 살면서 니 같은 것들 처음 본다고. 차에 치어 뒤져버려라 쌍년들아. 그것 못하겠으면 자살이라도 해, 더러운 것들이. 엄마, 아빠한테 일러봐. 내가 니네 엄마 아빠 죽여버릴 테니까.”

나는 전에 청소하다 우연히 아이가 학교에 낼 반성문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반성문 내용은 변이 마려워서 화장실에 있다가 늦게 영어시간에 들어와서 선생님께 사과하는 투의 글들이 적혀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선생은 효민이와 그 아이를 지목해 ‘너희들 때문에 쪽팔린다. 사과해’라고 했다고 한다. 반성문을 쓴 이유였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선생에게 상담을 신청한다는 편지를 써서 아이 손에 들려 학교로 보냈다. 그날 학교서 온 딸애는 선생이 안 보여줘도 되는 걸 왜 보여줬냐고 했다고 말했다.

나는 깊은 모욕감을 느꼈다. 나는 딸애와 딸애 친구에게 교장선생님하고 교감선생님 만나서 니네 선생 혼내주겠다고 종주먹을 흔들 듯이 말했다. 나는 교감선생에게 전화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런 일은 부모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 같아서 이혼한 남편한테도 전화해 이튿날 함께 학교를 찾았다.

교감선생은 건조한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나는 우리 효민이하고 효민이 친구하고 이렇게저렇게 당하고 있으니 둘을 불러서 얘기를 좀 들어보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교감선생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지금 수업 시간인에 어떻게 부릅니까.”

“지금 수업이 문제예요, 교감 선생님. 지금 둘 불러서 한번 들어보시라고요.”

“수업시간이라 안 됩니다.”

남편과 나는 쉬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이, 일 분 일 초가 왜 그토록 더디 가는지.

쉬는 시간 종소리가 울리자 교감선생은 딸애 반으로 가서 딸애만 데리고 왔다. 딸애는 나와 남편을 원망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오지 말지. 그럼 더 심해진댔잖아”라고 울상이 되어 말했다. 나는 딸애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교감선생님하고 아빠한테 다 말해.”

교감선생은 나와 남편에게 같이 진술을 듣자고 했지만 다 들은 후 공황에 빠질 것 같아 남편을 남겨두고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교실에 있는 담임선생을 불러 복도에서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흥분상태였다. 선생의 눈을 보고 나는 말했다.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당신이 뭔데 내 딸 보고 죽으라고 해. 니가 선생이냐. 효민이 친구가 왕따를 당하면 보듬고 애들하고 잘 지내게 하는 게 선생 아니야. 효민이 친구가 자살 시도를 했어.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다 부수고 찢고 칼로 피아노도 부셨다고. 커트칼로 자살할 생각까지 할 정도야. 얘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데. 니가 뭔데. 진짜 이 말이 사실이면 넌 선생할 자격 없어. 진짜면 끌어내릴 거야.”

선생은 숨을 고르는 듯 했다. 그러다니 “교무실로 가서 얘기합시다”라고 말했다. 나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왜, 창피해? 니가 우리 딸한테 상처주고 창피주고 했잖아. 응?”

소리가 커지자 옆반 선생이 와서 교무실로 가자고 내 팔목을 조심스럽게 당겼다. 나는 못 이기는 척 교무실로 따라들어갔다.

교무실에 있던 남편도 딸애 말을 듣고 흥분했는지 선생에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변명이 소름끼쳐 그 곳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딸애를 데리고 딸애 반으로 가서 아이들에게 “아줌마가 미안하다. 친구 왕따시키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어른들이 밝힐 테니까 너희들은 신경 쓰지 말아라” 한마디를 하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남편과 나는 다음날 경찰서 여성청소년부를 찾기로 했다. 나는 딸애와 딸 친구에게 저녁을 사 먹이고 헤어졌다.

4

그날 밤이었다. 딸애 친구 아버지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경찰서를 가지 않겠다며 제 딸애의 욕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 딸이 왕따예요. 우리 딸이 당신 딸 감싸주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장작이 타는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이건 뭘까 하는 헛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튿날 나는 딸을 데리고 경찰서를 찾았다. 나는 경찰관들에게 내 딸애 말이 거짓말인지 감정해달라고, 거짓말 탐지기로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두려웠지만 나는 딸애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했고 그 심리적 고통을 딸애 혼자 겪도록 내버려 둔 내 무관심에도 분노해 이윽고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아동학대심리관들이 딸애와 상담을 시작했다. 심리관은 나도 같이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거부했다. 딸애의 모든 진술을 들으면 내가 무너질까봐, 혹 중심을 잡을 용기가 없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심리관에게 당신들이 전문가이시니 듣고 판단을 내려달라고, 당신이 듣고 거짓말 같다고 한다면 내가 선생에게 용서를 빌겠다고 말하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딸애의 진술은 왜 그토록 긴 시간 이어지는 걸까. 나는 교감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임선생님 출근하셨나요?”

“아우, 당연히 했죠. 효민이 학교에 보내셔야죠. 왜 애들 말만 그렇게 믿으세요.”

“난 내 딸 말 지금 안 들어요. 심리관들,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거예요.”

“어머니, 학교로 오시죠. 오늘 교장선생님 계시니까 오세요.”

“싫습니다. 우리 애가 아프고 힘든데 이 일이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나는, 내 딸은 지금 죽을 것 같은데.”

나는 전화기를 끊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상담관이 나를 불렀다. 그는 책상 앞에서 차트를 넘기며 말을 시작했다.

“어머니, 효민이가 다 겪은 일 같습니다. 아이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이런 말 드리긴 그렇지만 심리 치료가 급한 것 같습니다. 신고는 효민이 심리치료 끝나고 해도 늦지 않아요.”

뭔가 하늘이 기우뚱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주저 않았다. 아, 그렇구나, 그렇군요, 아이가, 내 딸아이가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마음병이 깊어졌나요. 아, 저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죠.

나는 딸애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택시를 탄 것 같았다.

나는 그 이후 며칠 간 네 번 불려갔다. 세 번은 경찰서에 한 번은 학교에. 학교는 나를 교권침해와 모욕죄로 고소한 상태였다.

내가 어리석었던 것일까. 나는 아이의 정신적 질환을 학교에 알렸다. 그러나 학교는 내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오히려 학교 측은 변호사까지 선임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 일과 상관없는 학부형들을 불러 아이들에게 선생 편을 들도록 시켰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다. 나도, 고소장을 경찰서에 써냈다.

다시 며칠이 지났고 학교는 내게 교권침해위원회를 연다면 나를 불렀다. 나는 검은 상복을 입었다. 그리고 교문 앞에 학교를 비판하는 푯말을 세우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나는 화가 나 있었다. 내 딸 영혼을 죽여 놓고 교권을 살리려하는 학교 측 행태에 이미 선의(善意)를 포기한 상태였다.

교무실에 들어서니 위원회에 소속된 학부모 둘, 선생 둘, 교감선생이 있었다. 학부모라는 남성이 나를 비켜서서 말했다. “교권을 침해했습니다. 제일 큰 벌을 주도록 요청합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나는 잠깐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왜 이런 학교를 딸애가 다녀야 하는지, 학교에 CCTV가 의무화 됐다면 이런 억울한 일도 없었을 텐데. 우리 아이 말고도 당하는 아이들이 있을 텐데. 이 학교에서만 벌써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생겼다는데. 왜 반복되고 쉬쉬하는 걸까. 나는 얼마 후 비틀거리듯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5

정신과 의사는 “치료를 우선 1년 정도 해 봤으면 합니다. 약을 드릴게요. 감기약 먹인다 생각하고 복용시키세요, 어머니”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이가 인지장애가 온 것 같습니다. 백에서 삼십 몇을 빼는 것도 힘들어 하는군요”라고 진심으로 염려하는 투로 말했다.

내 가방에는 아이의 정신과 약이 들어 있다. 그러나 나는 약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딸아이는 상태가 심해져 “나는 벌레야, 나는 오염원이야” 중얼거리며 거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집에 놀러온 이모한테도 “이모, 내 옆에 있으면 이미도 피해 보니까 내 옆에 앉지 마”라고 호소하듯 말했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도 온순했던 애가 동생한테 그토록 상처주고 때리고 울리고 독설을 했는지 이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선생이 자신에게 했던 행동 그대로를 남동생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에게 심하게 당한 날은 집에 돌아와 “검은 물체가 선생님이 말한 그대로 귀에다 말하고 있어”라고 말하곤 했다. 아이는 학교에도 더 이상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어떤 연락도 없었다.

딸애는 자꾸 이런 말을 했다. “그것 봐, 엄마. 내 말 안 믿어준댔잖아.”

안 믿어준댔잖아. 안 믿어준댔잖아. 안 믿어준댔잖아.

나는 거울 앞에 섰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거울을, 온 세상을 다 깨뜨려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가 밝은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까운 지인(知人)은 이 사건을 그냥 누르라고 조언했다. 또 어떤 지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사실을 써서 올리라고 말했다.

왜 내 딸이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하지. 누구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지. 학교에 CCTV 설치를 왜 의무화하지 않았는지. 학교에서 조사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 학교 학부모가 아니라 다른 학교 제3자의 학부형을 무작위로 뽑아서 위원회를 열 수는 없는 것인지.

나는 청와대국민청원게시판에 글을 남기기로 했다. 쓰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나는 청원자로서 국민에게 요청드리고 싶었다. 다시는 또 다른 아이가 정신과 약을 먹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세요.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를 갈 수 있게 교사 폭력을 엄격하게 관리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나는 청원판의 등록을 클릭했다. 내 손을 떠난 이야기들. 그러나 온전히 나의 이야기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는 학대당할 것이 분명하기에. 나는 깊이 숨을 들어마셨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이에게 말하고 싶었다. 괜찮아. 시간이 흐르고, 아픔이 잊혀지면 슬픔도 낫는 거야. 슬픔도 자라면 힘이 되는 거야. 그건, 아니, 나에게 말하고 있는 나를 향한 요청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바로가기(클릭): 제 딸 입에 차마 정신과 약을 넣어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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