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강박 증세는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의 강박 증세는 안녕하십니까?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8.06 2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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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정말 우연히 찾아온 확인강박 증세
클로자핀 약물에 의한 강박이라 설명 들어
강박 이기려 또 다른 약물 처방받는 악순환
약물과 개인 태도로 조금씩 변화할 수 있어
우리 모두는 조금씩은 강박 증상 환자들

나는 2009년부터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클로자핀 네 알이었다. 그리고 5년 정도 흘렀을까, 어느 날 집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스레인지의 불이 꺼졌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떨이의 담배꽁초들이 꺼졌는지도 살피고 있었다.

그날부터였다. 나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긴 시간을 방 안에서 헤매기 시작했다. 적어도 집 안에서 무엇이 잘못된 건 없는가를 살피는 데 30분, 문을 열고 나와서 문을 잠그고 난 다음에도 진짜 잠겼는지를 백 번도 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백 번이라니. 아주 심할 때도 220번까지 문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모두 1시간을 나는 밖으로 나가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했다.

주치의는 나의 강박이 약물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클로자핀을 오래 먹으면 그런 상황이 종종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그 증세를 없애기 위해 약물을 더 올려야 한다고 했다. 아이러니했다. 약물로 생긴 부작용을 다른 약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여름이면 증세는 더 심해졌다. 내가 사는 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5층이었다. 5층에서 문을 잠그고 확인하고 1층으로 내려오면 목적한 장소로 가기 위해 발을 떼어야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한참을 걷다가 다시 돌아서서 5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확인을 했고, 나는 ‘확인한 거야, 지금 확인한 거야’라고 중얼거리고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5층으로 올라가는 게 일상이 돼 버렸다. 땀이 솟구치고 5층까지 올라오느라 숨이 턱턱 막혔다.

어느 날은 내가 문 손잡이를 계속 돌려대니까 옆집 여자 분이 문을 열고 나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도대체 왜 그러냐는 식의 눈짓이었다. 문 손잡이를 돌리면 끼긱하고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100번 정도 들었다면 어느 누가 문을 열어보지 않겠는가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나를 해명했다. “강박증세가 심해서 어쩔 수 없네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닫았다. 나는 다시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그만해, 이제 제발 그만해’라고 외치면서. 잠겼는지 확인을 위해 문 손잡이를 돌리다보면 고통스러워서 문 자체를 다 부셔버리고 싶은 마음이 확 올라오곤 했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그 때 나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이해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백남준이 피아노를 무대에서 망치로 부수는 걸 보면서 그가 인류의 문명에 대해 강박을 그렇게 부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외래를 가면 나의 최대 관심사는 강박을 어떻게 증세를 줄이느냐였다. 주치의도 나의 강박 증세에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증가된 약물들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강박장애 치유 책을 사서 읽기를 권유했다.

프로이트는 강박을 ‘문명의 불편한 부분’이라고 했다. 수렵시대에는 강박의 문제가 없었지만, 농경사회로 들어오면서 강박이 고착됐다고 했다. 해마다 비만 오면 나일강에 의해 범람되는 토지를 재측정하기 위해서는 강박적 사유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문명은 강박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강박의 한 현상으로 문고리를 붙들고 30분을 헤매고 있다.

내가 아는 이는 저장강박증이 있다고 했다. 아무 것도 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방 안에 쓰레기가 쌓이면 어머니가 치운다고 했다. 그는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했다. 강박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래서 불편하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려울 때가 많았다. 일어나면 회사로 나가야 하는데 집 앞에서 한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것에 대해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가스레인지가 잠겼는지를 확인한 후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혹 불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확인을 해야 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와서 닫고 열쇠로 문을 잠근 후 그때부터 30분간 문고리와 씨름을 해야 했다. 나는 이마의 땀을 자주 그렇게 닦았다.

약물이 증가했고 나는 예전의 강박증상이 100이라면 지금은 70으로 줄어든 것 같다. 약물에 의한 증세의 완화일까? 여전히 1층으로 내려왔다가 5층으로 다시 걸어올라오지만 예전에 비해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문밖으로 발을 내디디면 불안이 확 올라온다. 그 불안은 30분을 지속하기도 하고, 2시간을 지속하기도 한다. 그 불안의 부분을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치의는 말한다. 불안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해도 밖으로 걸음을 옮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말에 가끔 도서관에 가면 거기에도 강박이 개입했다. 밤이 돼서 가방을 챙기고 열람실 (4층에 있었다)에서 내려와 1층으로 오면 다시 올라가야 했다. 혹시 놓아둔 것은 없는지, 빠뜨리고 온 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가 방금 앉았던 4층의 그 자리로 올라간다. 일종의 회의주의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 물건이 없는지 눈으로 확인해도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손으로 책상을 문지른다. 두 번 세 번 문지르면 옆 자리의 사람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언제쯤이면 이 고통이 사라질까.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싶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어쩌면 내일도 문을 잠그고 그 공간을 떠나기 위해 ‘투쟁’을 벌일 것이다. 그리고 닫힌 문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을 것이다. 어서 속히, 이 병이 나를 떠나기를 바라면서. 혹 어느 날 이 강박이 우연으로라도 사라져 내가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독자는 나 같은 경우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강박은 안녕하신지 묻고 싶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의 강박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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