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언의 만남-길을 묻다] 김도희, “당사자들이 얘기를 하세요. 저는 변호사 겸 활동가로 조력(助力)할 테니까요”
[박종언의 만남-길을 묻다] 김도희, “당사자들이 얘기를 하세요. 저는 변호사 겸 활동가로 조력(助力)할 테니까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8.15 0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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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변호사 김도희 씨 인터뷰
대학에서 사회운동에 일찍 눈돌려
변호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하나의 무기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 꿈꿔
일본 ‘베델의집’ 관련 책 읽고 정신장애운동 관심
강제입원 위헌 결정은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
정신건강복지법 개정한다면 의료계와 대화도 가능
사법심사든 준사법기구든 일단은 시도해 봐야
중요한 건 당사자들이 직접 권리 요구하는 것
행정입원, 보호입원은 장기적으로 폐지해야
변호사 겸 활동가로 공익법 운동 하고 싶어

수원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는 경기도 용인의 놀이시설을 갈 때면 당시 용인정신병원을 자주 지나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회와 괴리된 듯 산 속에 있는 병원을 보며 ‘왜 병원이 산에 있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가 격리되고 억압된 정신장애의 상징성을 보게 된 첫 사건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정신병원을 억압의 장소로 재해석하게 된다.

안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다시 수원으로 와 법대에 들어갔다. 국가와 민족과 같은 거대담론이 사라진 2001년 대학에 들어간 그는 학교 내 운동보다는 사회활동에 더 관심을 가졌다. 사회가 정의로워지는 데 미시적이 어떤 운동을 하고 싶었다. 다산인권센터와 국회 인턴 등을 하며 사회를 배우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사회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안산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낼 때 늘 보았던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그 시절 성소수자였던 친구를 보면서 그는 이주노동자와 성소수자의 삶과 권리에 대해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에게는 이들을 돕기 위한 하나의 무기가 필요했다. 법이라는 무기였다. 충북대 로스쿨 1기로 들어가 2009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어느 날, 일본 베델의집 이야기를 다룬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고 정신장애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당시 정신보건법 개정과 폐지를 두고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태동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정신보건법 바로잡기 추진위원회에 들어가 이 운동단체 명칭이 공동행동으로 바뀌는 과정들을 모두 지켜봤다. 그는 법과 현실의 괴리, 현실과 이론의 괴리를 느꼈다. 법이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전망을 고민해야 했다. 가진 자들의 법이 아니라 약자와 소수자들의 법. 그럴 때 법은 법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우연히 용인정신병원을 지나가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하나. 왜 병원이 공동체가 아닌 산 속에 있어야 했는지, 그 모순에 대한 질문들을 그는 운동을 하면서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변호사 김도희(36) 씨. 현재 그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인권 담당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던 날, 그가 일하는 서울 마포구 서울시복지재단의 사무실을 찾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도희 변호사 ©마인드포스트.
김도희 변호사 ©마인드포스트.

-대학 시절 묻고 싶습니다. 운동권이었습니까?

“당시 비운동권이던 총학생회에서 홍보부장으로 일했어요. 직속 선배가 총학생회장이었고 선배가 비권(비운동권)이어서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2000년대 학번인 저는 학교 안에서의 학생운동이라는 것에 대해서 안 중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큰 매력을 못 느꼈어요. 그래서 학교 밖으로 일찍 눈을 돌렸던 거 같아요. 1~2학년 때 학생회 활동을 하고 3~4학년 때는 인권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했죠. 인권 세미나 같은 것도 하고요. 매주 촛불문화제를 수원역에서 했어요. 그때는 평택에서 대추리랑 도두리 주민들을 밀어내고 미군기지를 만들려하는 이슈가 있었어요. 매주 금요일마다 촛불 문화제 개최를 했죠.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평화 대장정 걷기 이런 것도 하고요.”

-학생에서는 비권이었는데 사회운동에서 사회주의적으로 활동한 것 같네요. 매치가 잘 안 되네요.

“비권과 운동권의 차이를 학교 내에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오히려 소수자 쪽에 관심이 있어서 시민사회운동 쪽으로 기웃거렸던 거 같아요.”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 변호사 자격증이라는 무기가 필요했다고 말했는데요.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요?

“자원 활동을 하면서 대학 졸업을 하면 인권단체에 상근활동가로 갈 생각도 있었고요. 국회에서 정책입법보조 인턴십도 했었는데 국회 보좌관님이 생명 환경 단체를 소개해 주셔서 그쪽으로 갈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합리화를 해서 말하자면 뭔가 무기를 하나 더 가지고 하면 좋겠다, 어차피 내가 이쪽 일을 할 거라면.”

-이쪽 일이 무슨 말입니까?

“소수자 관련해서 인권 옹호 운동을 하려면 뭔가 무기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당시 집에서도 시험 보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단체에다가 변호사 자격증 따서 돌아오겠다고 얘기를 했고. 그래서 일종의 타협으로서 공부를 시작했죠.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안 했지만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까?

“(웃음) 스무 살짜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었냐? 그냥 혼자만 잘 사는 세상 말고 운동권들이 잘 하는 말이지만 대동 사회, 다 같이 잘 사는 그런 사회. 같은 시공간을 살면서 어떤 사람은 굶어죽고 고통받는데 나 혼자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해도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거 같아요.”

-성소수자, 이주노동자에 관심을 가졌다고.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제가 관심을 가졌던 주제가 성소수자나 이주 노동 쪽이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안산에서 중·고등학교 나오다 보니까 거기 외국인 노동자도 많고 한국 사람들이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을 굉장히 하대하는 모습들을 직접 본 적도 있고 해서. 그리고 성소수자 같은 경우에는 제 친구 중에 성소수자가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좀 익숙한 주제이긴 했어요.”

-처음 정신장애인 당사자 만났을 때 기억나십니까. 기분이 어땠는가요?

“저는 기분이 어떤 게 아니라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웃음). 그냥 이 분이 정신장애가 있다 이런 거를 굳이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2014년 정신장애인 관련된 책 읽다가 ‘필이 꽂혔다’고 하는데. 그게 정신장애인 운동하게 된 계기가 된 겁니까?

“맞아요. 네.”

-그게 무슨 책입니까?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고 일본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집에 관한 책인데요. 그때 인문학 공동체 ‘수유너머’라는 데서 공부를 하면서 읽게 됐죠. 예전부터 수유너머의 이진경 선생님을 좋아하고 그 분 책도 너무 좋아해서. 저의 이런 생각의 팔 할은 이진경 선생님 탓인 거 같아요(웃음).”

-어떤 부분에 필이 꽂힌 겁니까?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거 같은데, 저는 처음에 여기(공익법센터) 와서 홈리스 쪽만 하고 있었고 장애 쪽 일을 할 거라 생각을 안 해봤어요. 다른 장애 쪽은 목소리를 세게 내서 그런 요구들이 가능하고 몇 년 지나서 보면 실행이 돼 있기도 하고, 저 고시 공부할 때도 장애인 이동권 투쟁 같은 이슈가 나오곤 했는데 또 몇 년 지나니까 저상버스도 도입되더라고요. 당사자 운동이 받쳐주니까요. 그리고 장애 쪽은 변호사들이 꽤 있는 거 같고 그래서 내가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겠다. 나는 조금 더 안 보이는 그런 걸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 책을 읽었을 때 정신장애 쪽은 다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필 꽂힌 게 두 가지였는데 한 가지는 말씀하셨는데 다른 하나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는 정신장애라는 거에 대해 저에게 처음 인식을 시켜준 책이었어요. 그 책이 하필이면 홈리스와 비슷하긴 한데 말해도 들리지 않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근데 그 책은 심지어 희망 같은 거까지 보여주잖아요. 물론 완전한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건 아닐지라도 지금 거기서 충분히 본인들이 만족하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죠).”

-그때 정신장애 운동에 관심을 가진 겁니까?

“네. 관심을 가졌고 저희 공익법센터의 운영위원이신 염형국 변호사님이 장애 쪽 일을 오래 하셨으니까 제가 정신장애 쪽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죠.”

-필이 꽂혀서 정신장애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직접적으로 참가하게 됐어요. 2014년 때. 그때 들어가시고 바로 정신장애인 복지법 제정 공동행동이 있었거든요. 거기 참여한 거죠? 어떻게 참여하신 겁니까?

“염 변호사님이 데려가 주셨어요. 그때는 '정신보건법 바로잡기 공동대책위원회'였는데 중간에 '정신장애인 복지지원법 추진 공동행동'으로 바뀐 거죠. 그 당시에는 정신보건법을 폐지를 외칠 것이냐, 개정을 외칠 것이냐(가 문제였죠). 정신보건법은 개정하더라도 또 다른 빈 구멍, 복지가 빠지는 그 구멍. 그러니까 입·퇴원 제도가 개선돼서 퇴원 퇴소를 하더라도 그럼 다시 재입원할 거냐. 지역사회에 아무런 인프라가 없으면 다시 재입원하거나 길거리로 가거나 교도소로 가거나 할 텐데, 그런 인프라를 만드는 것을 우리가 추진을 해나가는 게 좋지 않겠냐 (논의가 있었죠).”

-그때 들어갔을 때 정신보건법에 알고 있었나요? 들어가서 운동하면서 공부하신 겁니까?

“맞아요. 들어가서 공부했죠.”

-공동행동 들어가서 정신장애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고 정신보건법 공부하고요. 강제입원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나는 데 수년 걸렸는데 변호사님도 헌재 가셨고 어쨌든 위헌받았습니다. 소감이 어땠습니까?

“조심스럽지만 예상 내지 기대는 했어요. 왜냐면 공개변론 결정을 했다는 건 헌재가 이 사안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지만 모르는 거니까 열심히 준비를 했던 거 같고 공개변론이 끝나고 나서도 추가로 더 보이지 않는 거였지만 자료들도 더 내고.”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그때 공개변론하고 다음 선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한 줄 알겠지만 사실 그 사이에도 계속 자료나 이를 뒷받침할 자료들 같은 것을 헌재에 냈거든요. 그래서 (위헌 결정) 나왔을 때는 제 인생에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변호사님 인생에 있어서 세 번째 중요한 사건이었다?

“네. 아니 두 손가락.”

-태어난 것과 헌재 판결?

“아뇨(웃음). 판결 중에 개인적으로 첫 사건인데 대법원에서 승소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파기환송 받은 게 있어서요.”

-무슨 사건입니까?

“그건 제가 홈리스랑 정신장애 쪽 (일을) 하지만 저희 센터 차원에서는 사회보장 쪽도 하거든요. 제가 와서 처음 한 사건이었어요. 육아휴직 급여 사건이었는데 엄마가 육아휴직을 내고 나서 장애인인 아빠와 아이와 함께 외국에 나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출국 직전에 아이아 아파가지고 친정어머니한테 아이를 맡기고 갔는데 그것 때문에 육아휴직급여를 다시 반환하고 추징까지 하라고 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육아휴직이라는 자체가 육아를 하기 위해서 휴직을 한 건데 육아를 하려면 반드시 동거가 전제돼야 한다, 그런 논리인 거죠. 근데 아이를 놓고 갔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안 되는데 그걸 받았기 때문에 이제 부정수급이다 해서 쟁점들이 좀 있었어요. 근데 일심에서 이기고 이심에서 지고. 그러다가 삼심에서 다시 이겼거든요. 그 가족이랑은 인간적으로도 많이 친해지고 첫 사건이다보니 더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다툰 거 같아요.”

-현행 비자의입원, 강제입원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단은 동의입원이 문제죠. 동의입원이 도입된 취지는 알지만 이게 자꾸 악용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잖아요. 형식적으로는 자의입원의 형식을 취해서 비자의입원을 했을 때에 병원이 가져가야 할 부담을 회피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비자의입원 형태로 운영되는데 동의입원 제도가 악용되고 있는 거 같고. 또 하나는 입원의 필요성이나 자타해 위험성을 판단하잖아요."

"서로 다른 병원 소속의 2인의 의사가 똑같은 의견을 내야 한다고 하는데 똑같은 의견이라고 하는 게 똑같이 중증의 우울 에피소드라든지 이런 식으로 진단명이 똑같은 게 아니라 이 사람에게 입원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로 판단되거든요. 굉장히 넓잖아요."

"입원 필요성 여부만 합치되면 되는 거죠. 너무 넓게 추상적으로 잡아 놓은 게 문제라고 생각이 들고요. 또 행정입원의 경우 아무래도 경찰권이 남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죠). 사실 그렇게 안 해도 경찰관직무집행법에 그것은 경찰의 의무로 규정돼 있어요. 근데 굳이 뭔가 권한을 강화하는 듯한 문구로 법에 넣어둔 거잖아요. 현장에서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떤 건지 경찰도 알 거고 이미 경찰관직무집행법에는 근거가 있고 경찰이 남용하지 않고 잘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근데 굳이 정신건강복지법에 그런 식으로 권한을 하나 더 넣으면서 시정하려고 했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행정입원의 경우 경찰이 자타해 위협이 있으면 바로 집어넣을 수 있잖아요. 문제는 경찰의 경우 자타해의 위험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된단 말이에요. 행정입원 하기 위해서는. 그 부분들도 문제가 있죠.

“그렇죠.”

-최근에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정보를 그가 퇴원할 때 센터와 보건소에 알리도록 정부가 추진하고 있습니다.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 했던 문제점이 몇 가지 더 있었는데 입원적합성심사가 제대로 된 운영이 어려운 문제가 있고 면회·통신의 자유가 여전히 제약이 많이 되는 문제도 있고요. 또 하나 말씀드리려고 했던 게 그거에요. 입·퇴원 신고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의 도입 취지는 잘 알겠는데 의료 기록은 굉장히 민감한 개인 정보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빅데이터가 되고 보안도 여기저기 다 뿌리면 이게 보안이라고 할 수가 없잖아요. 개인의 자기결정권이기이도 하고 개인정보보호권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근데 이것이 결국 어떻게 쓰일 것인가. 개인정보보호권이 침해되는 한 축의 큰 문제이고 그리고 이 정보를 누가 어떻게 이용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문제죠."

-반대하시는 건가요?

“반대. 근데 약간 유보적이죠. 정말 필요한 경우 가령 강제입원과 장기입원을 막기 위해서만 제한적으로 보안을 철저히 해서 이용하면 모를까 확실한 보안장치도 없이 정보 제공을 그렇게 한다라고 했을 때는 근본 문제가 큰 거죠.”

-외래치료명령제가 이제 보호자 동의 없이도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했거든요. 미국에도 외래치료명령제가 있는데 나미(NAMI·전미정신장애인가족협회)에서는 찬성하고 있더라고요. 우리 외래명령치료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될까요?

“외래치료명령제는 양면성이 있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만약 병원에 오랫동안 장기입원을 한 사람이 나가고 싶을 때 ‘네가 나가서 열심히 잘 치료를 받으면 퇴원을 할 수도 있어’라고 당사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면이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이것도 결국 자기결정권의 문제잖아요. 내가 치료를 받을지 안 받을지, 내가 암 걸리면 항암치료를 할 지 안할지 자기가 결정하는 건데 그것을 강제하고 명령을 해서 안 하면 병원으로 입원을 시킨다 이렇게 하는 거는 민감한 문제인 거 같아요.”

-입·퇴원 과정에서 절차보조인 주체로 정신건강복지센터, 당사자 자조단체, 장애인 인권옹호기관이 담당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체가 너무 협소합니다. 애매하기도 하고요.

"근데 절차보조인 제도 자체가 좀 애매한 것 같아요. 절차보조인이라는 게 저조차도 사실 (감이) 잘 안 잡혀요. 이 얘기가 왜 나왔냐면 헌법재판소에서 (강제입원 위헌) 결정이 나올 때 비자의입원 절차에서 조력인의 조력을 받을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아 당사자가 입을 피해가 너무 크다. 그런 이유가 위헌을 결정한 이유 중의 하나였거든요."

"그러니까 정부 입장에서는 절차보조인 제도를 안 뒀기 때문에 위헌이 났으니까 절차 보조인 제도를 두면 되겠네. 근데 우리나라에 어떤 특정한 절차보조인 제도가 있어서 그 제도를 따온 게 아니고 보니까 독일에서는 비슷한 걸 두고 있는 거 같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국선변호인 제도나 신뢰관계인 동석처럼 그런 조력이나 지원을 통틀어서 그냥 절차보조인 제도라고 표현을 했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 부분은 아직까지 개념이 안 잡혀 있다. 거의 대부분 집단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세 단체를 주체로 언급을 한 거는 당사자가 절차보조에서도 주체로 참여해야한다는 생각에서 자조모임을 얘기한 거고, 권리옹호기관도 일정 부분 당사자들이 차지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권리옹호제도 말한 것이고. 근데 사실 지금 있는 공적 전달체계가 정신건강복지센터밖에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세 개로 말씀드렸던 같아요.”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절차보조인 제도라는 게 현행법에는 공백이니까 이 제도를 도입에서부터 잘 디자인해서 비자의입원 과정 전반에 걸쳐 당사자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해야죠. 저는 후견인제도도 큰 틀에서 절차보조인 제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봐요. 절차보조인 제도를 통해 당사자 의사를 존중하고, 인권적인 치료가 이루어지고, 부당한 입원을 한 당사자에게는 권리옹호수단으로 활용되고, 치료, 특히 강제치료가 더 이상 끔찍한 일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바탕이 되도록 그런 고민이 들어가야 한다고 보고 그렇게 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겠죠."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정신장애인은 1.1%입니다. 그것도 중복장애고요. 정신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는 어떤 의미입니까? 신체장애는 굉장히 긴급하거든요. 그런데 정신장애는 아직 그런 긴급함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긴급함이 나오지 않는 게 아니라 활동보조인이 있으면 긴급한 상황들이 발견이 될 거라 생각해요. 지금은 활동보조를 받을 수 없으니까 그것을 개인들이 다 감내하고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별로 긴급한 일이 없어 보이죠. 비유를 들자면 홈리스 쪽에도 쉼터가 거의 다 성인 남성 중심이에요. 홈리스 여성은 아동을 많이 동반을 하거든요."

"근데 아동을 동반한 여성들은 잘 안 보여요. 왜 그러냐면 거리는 위험하잖아요. 그러니까 더 안 보이는 곳으로 숨어들어가는 거예요.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숨어들어가니까 이게 안 보이고 정책입안자들도 보니까 성인 남성들밖에 없으니까 쉼터나 임시보호 시설들도 다 성인남성들만 있어요. 그렇게 계속 정책이 만들어져 왔던 거죠. 근데 계속 문제 제기를 하고 여성 전용 쉼터 같은 것을 만들어 놓으니까 거기가 터질 듯이 사람들이 모이는 거예요. 그 비유를 들고 싶어요. 그래서 정신장애인도 마찬가지로 활동보조가 지금 필요 없는 게 아니라 지금 드러나지 않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정신건강복지법은 바뀌어야 합니까? 내용은 다르지만 의료계에서도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의료계와 차별되는 부분도 같이 얘기해 주시죠.

“의료계가 경우의 수를 많이 나눠놨더라고요. 그래서 똑같이 사법심사를 이야기하더라도 그 속내는 조금 다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수단으로서의 법 개정안이 비슷하다면 저는 같이 얘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경우의 수들 중에서 좀 납득이 안 되는 부분들도 있고.”

©마인드포스트.
©마인드포스트.

-어떤 부분들입니까?

“이게 말씀을 드리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법안을 제가 정식 루트로 본 것도 아니고, 의료계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상태라.”

-그럼 그 법을 의료계에서 만들어놓았단 말입니까?

“그렇죠.”

-정신건강복지법을 대체할 법을 말입니까?

“네.”

-우린 아직도 안 만들었는데요.

"아뇨. 저희도 만들었어요. 다만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바꿀 때처럼 전면 개정을 한 건 아니고요. 지금 입원적합성심사제도라는 것도 의사 중심으로 돼 있는데 기존의 정신보건심판위원회 있었잖아요, 그거랑 지금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사법심사 내지는 준사법심사로 가져가는 그런 법안으로 바꾸는 게 하나 있어요."

"지금처럼 의사가 주축이 되고 부수적으로 몇 사람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판사가 있고 그 다음에 의사나 인권을 옹호할 수 있는 누군가가 들어가야죠. 사회복지사가 될 수도 있고 변호사가 될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의사 얘기를 듣더라도 거기에 대등한 영향력을 가진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판사가 결정을 내리는 형태의 사법심사(가 필요하죠). 물론 당사자 대면은 일순위로 전제되어야 하고요."

-의료계와 차별되는 부분하고,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을 하면 이후의 대안은 무엇인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의료계와 차별되는 부분은 의료계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게 없어서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저희는 이미 법안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법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입원적합성심사제도 폐지하고 사법심사나 준사법심사로 가자.”

-우리가 만들었다는 그거, 국회에서 발의된 겁니까.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겁니까?

“공동행동 쪽에서 주축이 되어 만들었어요.”

-초안 형식입니까?

"아뇨. 이미 5월에 김상희 의원실을 통해 발의했어요. 근데 법을 다 바꾸려고 하면 개정되기가 힘들어요. 2015년만큼의 진통을 또 겪어야 되니까. 이번에는 포인트를 잡아서 하자. 그래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사법심사 제도로 바꾸는 게 하나가 있고요. 다음에는 면회·통신의 제한조항을 바꿨어요. 그게 저는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면회·통신의 자유가 면회통신의 권리이잖아요. 당사자의 기본적 권리인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가자마자 휴대폰 뺐고 뭐 스테이션 안에 들어가서 전화를 하지 않으면 바깥이랑 소통할 수 없고. 이 분들이 권리행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외부와 차단이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가족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당사자 자조모임이나 권리옹호센터나 해당 병원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연락을 취할 수 있고 그러면 가서 얘기를 들어볼 수도 있고. 그리고 이 사람은 입원할 필요가 없었네라고 하면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고요. 지역사회 전환 계획도 같이 세울 수 있고. 그런 것들이 면회나 통신의 자유가 보장이 돼야 시작이 될 수가 있는 건데 의사에 의해서 그냥 치료에 방해됩니다, 안 됩니다라고 하면 (끝이에요). 가족조차 제대로 면회를 안 시켜주는 병원들도 여전히 많이 있잖아요."

-사법입원이 필요합니까?

“저는 사법입원을 도입한다고 입·퇴원제도가 극적으로 제대로 돌아가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게 최선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지라고 했을 때 차선 정도.”

-차선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사법입원을 할 때 서류 대면을 계속하잖아요.

“아니요. 법원에서는 서류보다는 사람을 직접 보고 대화를 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독일의 경우 강제입원율이 적기 때문에 판사의 심사가 가능하다. 근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몇만 명을 심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할 거냐라는 질문도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얘기하기 시작하면 이건 시도를 못하는 거죠. 그래서 사법심사든 트리뷰널이라고 해서 행정기구를 따로 만드는 거 있잖아요. 독립적인 준사법기구. 근데 그 두 가지는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선진국 쪽에서도 이걸 택한 나라도 있고 저걸 택한 나라도 있어요. 근데 거기서 가장 중요한 거는 당사자를 만나는 거예요. 지금 우리는 그렇지 않잖아요. 입원적합성심사위에서도 그렇지 않고 물론 조사원은 만날 수 있지만, 그전에도 당연히 그렇지 않았고. 만나도 의사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게 전제가 돼야 되는 거죠.”

-법이라는 국가권력의 도구를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와 전망이 고민된다고 했습니다. 최근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거는 전통적이 고민인 것 같아요. 전통적으로 법이라는 게 기득권의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자기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수단으로 만든 거니까요. 그리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이 목숨 걸고 투쟁해서 조금씩 얻어온 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법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법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법 하나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고 이거는 절대 아니거든요. 법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수단이다. 보조도구인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잖아요.”

-여러 가지 방법은 어떤 의미입니까?

“가장 중요한 거는 당사자들이 직접 요구하는 거죠. 법으로 하는 운동 말고 다른 사회운동들. 인식개선, 캠페인 같은 게 될 수도 있고, 교육이나 홍보도 할 수 있고 서명운동이나 시위 같은 걸 통해서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도 있을 수 있고, 시민불복종 저항권 행사도 있을 수 있고요. 근데 그 중에 하나로써 법은 쓸모 있을 수 있다(라고 생각해요).”

-2016년 4월 정신보건법 24조 강제입원 조항 헌재 공개변론에서 DSM(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DSM에 의한 진단 인플레이션(과잉 진단)의 문제 제기였죠. 당시 상대측이 이 논리에 반박하지 못했죠. 현재 DSM에 대한 맹신, 제약사 권력의 횡포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은 이 논리에 꼼짝 못했습니다.

"(웃음) 그 사람은 그 책을 안 읽었더라고요. 공부를 해야지 의사도. 하필이면 제가 정신장애 부분 공부를 하면서 읽었던 책 중의 하나가 DSM 허상에 대한 얘기였고요. 그래서 다른 할 말도 많았지만 그 얘기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당시 헌재 변론에서 의료측 방어인으로 나온 의사는 모든 것을 DSM의 객관적 기준에 맞춰 입원시킨다고 말했고 김 변호사는 진단 과잉의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편집자 주)

"그걸 만든 사람이 이거는 너무 문제가 많다. 이건 남용 악용되고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너무 그것을 신성시하면서 DSM 얘기를 하니까. 그래서 그냥 그 DSM을 만들었던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저는 그걸 믿고 얘기를 한 거였어요."

-때론 그렇게 용감한 게 필요하죠.

“네(웃음).”

-강제입원 비율이 37%로 떨어졌어요. 이는 긍정적인 현상입니까. 혹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이게 어쨌든 변화가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봐요. 하지만 아까 제가 동의입원 말씀드렸잖아요. 동의입원을 해 버리면 (강제입원에) 안 들어가잖아요, 자의입원이니까. 근데 이 동의입원이 실질적인 비자의입원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면 그걸 자의입원으로 봐야 되는 걸까. 그럼 그건 제도의 허점 속에 뒤에 숨어 있는 비자의입원의 부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뒤에 숨겨져 있는 명암(明暗)의 암(暗)을 늘 우리가 촉수를 세우고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 동의입원은 폐지시켜야 합니까?

“일단은 사법심판으로 바뀌면 비자의입원은 무조건 사법으로 가게 만들었어요. 만약에 사법심사로 가게 되면 동의입원 자체가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강제입원제도 폐지돼야 합니까?

“개인적으로 저는 폐지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대안이 뭐가 있을까요?

“대안은 지금처럼.”

-응급입원?

“응급입원은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행정입원이나 보호입원 같은 경우는 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게 운영을 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잖아요.”

-어떻게 운영한다고요?

“이탈리아 같은 경우에 강제입원을 할 수 있는 국립병원이 극소수잖아요. 심한 경우 빼고는 강제입원 제도나 치료 자체를 다 철폐를 한다는 기조에서 운영을 하고 있잖아요. 입법도 그렇고 이탈리아가 그런 정책적인 결정을 하게 된 거는 당시의 정책입안자들과 행정가들이 어느 정도의 의식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느냐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걸로 인한 소위 부작용도 없지는 않지만 지금 강제입원 제도 때문에 나오는 부작용은 어떻게 할 건가 (비교해보면).”

-결론은 강제입원은 될 수 있으면 폐지해야 한다?

“네 될 수 있으면 폐지하고.”

-탈시설화를 위해서 예산분배 바뀌고 서비스 전달체계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탈시설화와 예산 분배는 어떻게 바꿔야 하냐면 시설수급자라고 해서 시설로 간 분들이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 시설로 들어가는 예산을 지역사회에 나와서 살 수 있게 '집'이라든지 초기 지원정착금이라든지 지역사회에서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예산으로 바꾸자는 거예요."

"돈을 시설로 보내지 말고 지역의 그 당사자에게 주자는 거죠. 그렇게 되면 자연히 개인예산 제도도 이루어질 거고. 그래서 예산을 바꾸자는 거죠. 또 전달체계는 전달체계를 바꾸자는 게 아니라 만들자는 거죠."

"지금은 이게 어떤 용어로 확정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탈시설지원센터 혹은 자립생활지원센터 이런 얘기가 되어가고 있거든요. 탈시설지원센터라고 하면 그런 전달체계는 지금 없는 거죠. 그래서 아까 정신병원에 옹호기관이나 자조단체가 들어가서 당사자 상담을 해보고 지역사회로 나오게 되면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각종 자원을 연계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역할을 그대로 하는 거예요."

©마인드포스트.
©마인드포스트.

-법이 정신장애인들의 삶에 어떻게 개입해야 할까요?

"적절하게(웃음). 법으로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 인식이 지금 이 정도 수준이고 언론들 행태가 이 정도인 수준에서는 아무리 법이 잘 만들어진다고 해도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법과 시민의식과 또 하나 중요한 건 당사자의 권리의식, 이게 잘 맞춰져야 되기 때문에 법은 그 구성요소 중의 하나죠."

"법이 너무 앞서가거나 뒤처지면 당연히 안 되겠고요. 법이 이렇게 만들어져 있으니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면 또 부작용이 생기겠죠. 당사자들의 권리의식과 시민의 시민의식이 법을 끌어주고 밀어줘야죠. 법, 네가 아직까지 뒤쳐져서 뭐하는 거야.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해서 법을 등 떠미는 형태가 좀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법이란 어떤 가치입니까?

"어려운 무기 같아요. 제가 그냥 변호사라서 그런가? 이런 권익 활동을 전업으로 하지 않고 공익 활동으로 소송만 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저는 공익을 전업으로 하는 거잖아요. 소송뿐만 아니라 입법도 하고 어떤 때는 기자회견이나 시위도 하고 토론회 같은 것도 많이 하죠. 그래서 법이 부작용이나 혹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말씀드렸는데 그런 고민들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써야 돼요. 왜냐면 제가 가진 무기는 법이니까."

"근데 저는 적어도 활동가라는 마인드로 공익법 운동을 하려고 하거든요. 그러면 변호사인 활동가인데 이 활동가들이 바꾸려고 하는 방식과 법률가들이 법으로 바꾸려고 하는 그 사이에서 계속 줄타기를 해야 하거든요. 근데 제가 가진 무기는 법이고 활동가라는 마인드로 계속 일을 해나가고 싶기 때문에 그 법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줄타기를 하는 게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서 어려운 무기(웃음)"

-정신장애인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본 정신장애인 분들은 하나같이 다 너무 여리세요. 그래서 좀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여리고 착하기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정신질환이 있는데 누가 내 얘기를 들어주겠어 내지는 해도 소용없을 거야 내지는 나는 어차피 몰라 이런 생각들을 하지 말고요. 저 같은 사람은 서포터거든요. 당사자 분들이 말씀을 안 해 주시면 얘기를 해도 힘이 없어요. 당사자의 말만큼 힘이 있는 건 없어요. 그래서 말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아프다는 말?

“본인이 필요한 것을 요구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요구가 있으면 요구에 맞춰서 조력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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