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과 정신지체 구분 못하는 언론...‘인간’인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기를 시급히 요청한다
조현병과 정신지체 구분 못하는 언론...‘인간’인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기를 시급히 요청한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8.19 2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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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매체, 조현병과 정신지체장애를 구분 없이 사용
조현병은 위험하다는 낙인 효과에 언론도 자유롭지 못해
정신장애인은 치료의 대상일 뿐…왜곡이 차별 불러와
언론이 인간 존엄의 시선에서 성찰해주길 바라

지난 17일 일부 언론에서는 ‘조현병’을 가진 아들이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했다는 기사를 일제히 내보냈다.

동일한 기사를 생산한 이들 언론들은 한국일보, 국민일보, 중앙일보, 민영통신사 뉴시스, 주간 타블로이드신문 일요서울 등이었다.

먼저 한국일보를 보자.

이 매체는 ‘부산서 조현병 아들이 친모 살해’라는 제목을 달았다. 기사에 따르면 부산 북부경찰서는 컴퓨터를 오래한다며 자신을 꾸짖는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존속살해)로 A(19)군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고 기사에 실었다.

그런데 다음 구절을 보면 ‘경찰에 따르면 정신지체장애 2급인 A군’으로 실려 있다.

조현병과 정신지체장애를 이 매체 기자는 구분하지 못한 것일까.

다음, 국민일보다.

제목은 ‘부산서 10대 조현병 아들이 어머니 흉기로 살해’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신문 역시 기사 말미에 ‘정신지체장애 2급인 A군은 경찰조사에서’라고 나와 있다.

뉴시스 또한 다르지 않다. 이 통신은 리드에 ‘부산에서 조현병을 앓고 있는 10대 아들이 자신을 꾸짖는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기사 말미에 ‘정신지체장애 2급인 A군’이라고 적고 있다.

타블로이드 일요서울 역시 마찬가지다. 이 매체 역시 조현병으로 시작해 기사 말미에 ‘정신지체장애 2급인 A군’으로 기사를 생산했다.

조현병과 정신지체장애는 같은 질병인가. 우선 그 질문부터 하자.

조현병과 정신지체장애는 다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둘의 질병 분류체계가 다르다. 현행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 제1항 별표1은 장애인의 종류를 규정하고 있다. 모두 15가지 항목이며 이중 신체의 장애 12가지, 정신적 장애 3가지로 분류된다. 신체의 장애는 지체장애와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등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이어 정신적 장애는 지적장애, 정신장애, 자폐성장애로 나뉜다. 지적장애는 정신발육이 영구적으로 멈춘 상태로 지능지수 70 이하일 때 진단명을 받을 수 있다. 자폐성장애는 소아 자폐 등으로 사회적응 등이 일상생활을 하기에 현저하게 제약을 받는 장애로 규정하고 있다. 이 두 장애를 통칭해 발달장애라고 부른다.

마지막, 정신장애다. 이 법은 정신장애를 정신분열병(조현병), 분열형 정동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반복성 우울장애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정신적 장애라 부르면 통칭해서 발달장애와 정신장애라고 나눠서 인식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언론이 규정하고 있는 정신지체장애는 이 분류표에는 없다는 점이다. 당연하다. 지난 2007년 10월 12일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기존의 정신지체장애는 지적장애로 진단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0년 넘게 지났는데 언론이 이 변경된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처음부터 몰라서일까. 아니면 경찰에서 보도자료를 낼 때 ‘정신지체장애’라고 적어놓았으니 문제 의식 없이 그대로 받아쓰기를 한 것일까. 문제의 ‘적(敵)’을 찾아올라가면 경찰과 검찰, 정신병원이 소환되는 것일까. 어쨌든 좋다.

그런데, 정말 그런데 말이다. 혹시 이 언론들은 불편한 사회적 위험 요인인 정신장애의 대표적 유형이 조현병이기에 -그렇게 믿고 싶었기에- 조현병을 언급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최근 조현병에 의한 사건사고가 터져나오면서 그 조현병의 위험성을 더 강조하기 위해 ‘지적장애’라는 표현 대신 ‘조현병’을 사용한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조현병은 자신의 친어머니까지 죽일 수 있는 흉악한 범죄적 장애라고 학습되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17일자 언론의 사건기사에 오른 저 ‘정신지체장애’(지적장애)와 ‘조현병’은 엄밀하게 다른 정신적 질병인데도 말이다. 그토록 조현병에 강조점을 주어서 이들이 얻고자 하는 이익은 무엇일까.

배제와 격리 이데올로기로 회귀하는 조현병 범죄

인간은 사회적으로 학습되며 자란다. 문화와 젠더, 민족, 인종 등에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고 차별적 생태계를 배우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학습은 전 세대가 부여하는 가치를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언론이 생산하는 주류 이데올로기를 학습하면서 더 크게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 하나의 정신질환이 있다. 조현병이다. 장애인복지법에는 여전히 정신분열병으로 진단하지만 지난 2011년 이 분열병은 조현병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낙인에 대한 대안적 의학용어로써 말이다. 그러나 조현병 집단에 의한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이 전복적 언어는 다시 위험성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시민에게 재소환됐다. 낙인의 의미가 더 강화돼 버린 것이다.

언론은 이 낙인의 강화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조현병은 언론이 기사의 가치판단을 할 때 가지는 특이성이 아니다. 언론을 구성하는 기자들은 조현병이라는 이 낯설면서 불편한 진단명을 가진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 두려움은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배제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언론의 내밀한 배제 논리는 시민적 불안을 강화시키고 시민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정신장애인 혹은 정신질환자는 정신병원이나 정신요양시설라고 불리는 집단수용소로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

1940년대 독일의 파시즘은 정신질환자를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다. 이들은 국부(國富)를 창출하지도 않고 국가의 순결성에 봉사하는 존재도 아니다. 이들을 먹여 살릴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정신질환자는 그 존엄성의 가치가 더 사라져 버린다. 이윤을 낼 수 없는 잉여적 존재를 어떤 자본주의 체제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 기자가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을 구별해서 사용하지 않는 점을 먼저 말해야겠다. 우리 정신장애인들을 옹호하는 -옹호한다고 믿고 싶은- 정신건강복지법은 우리를 ‘정신질환자’로 규정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정신질환자는 의료적 치료의 대상이다. 따라서 의료서비스 전달체계에 적합한 집단으로 분류된다. 지역사회에서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병원 시스템 안에서 살고 약물을 평생 복용해야 하는 존재로 규정된다. 복지서비스 지원 체계는 여기서 빠져있다. 만약 복지서비스의 비중이 강화된다면 우리는 우리를 정신장애인으로 규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정치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체성이 없다

북미 정신장애인 운동은 정신장애인을 's/c/ex'로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즉 생존자(survivor), 소비자(consumer), 이전 환자(ex-patient)로 자신들이 불리어지기를 요구한다. 영국 역시 서비스 이용자(serviced user)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 북미와 대륙의 정신장애인 정체성 규정을 따르려는 운동의 막 태동기에 서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 정체성이 없다. 우리는 정신질환자이면서 정신병자이며 또라이이고 예측불허의 존재이고 불편함을 주며 위험하며 흉기를 수시로 들고 다니며 잉여적 가치도 없는 존재이며 사회적 범죄의 낙인자로 언론에 소환되며 더럽고 게으르고 사회 질서를 해치는 무가치한 존재들이다.

언론은 이 위험성의 프레임 안에서 정신장애인은 차별이 정당화되는 존재로 믿게 된다. 왜냐면 두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란한 언어로 정신장애인의 존엄과 지역사회 공존을 이야기해도 이들의 무의식에는 정신질환자(정신장애인이 아니다)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내재해 있다.

속이지 말자. 언론은 포함한 시민들은 우리를 모른다. 사회적 규범에 들어갈 수 없는 이질적이고 저주받은 존재, 그것이 우리 정신질환자들이다.

그 깊은 두려움은 어떻게 발화되는가. 바로 언론이 ‘정신지체장애’를 ‘조현병’으로 바꿔 불러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차별적 이데올로기로 발현된다.

우리는 조현병 당사자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지체장애는 우리의 병명이 아니다. 이 병명은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따라 정신적 장애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해 정신지체장애는 지적장애로 불리며 이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묶어 발달장애로 부른다. 그리고 거기에 포섭되지 않는 또 하나의 고유한 정신적 장애로 조현병을 포함한 정신장애가 있는 것이다.

오랜 기간 정신장애인은 그 질병의 이질감 때문에 차별의 대상이 되어 왔다. 우리는 현재 장애인복지법의 서비스 이용에서도 제외되는 3등 시민이다. 비정신장애인(일반인)이 있고 신체장애인이 있고 정신장애인이 있다. 이 열등성이 젠더, 인종, 문화와 교차되면 그 차별성은 더 확장된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언론은 끊임없이 이 혐오 이데올로기를 끝없이 유포하는 것일까.

좀 더 성찰해 주길 바란다. 이 성찰은 우리를 존엄한 존재로 이해해달라는 요청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픔만으로도 충분히 고통받은 생존자들이다. 우리를 격리하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지 말라. 삶의 당연한 가치들마저 우리 정신장애인들은 확보해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정치적 권리의 확보를 위해 그 누군가는 거리로 나와 우리의 존엄을 외치고 있다. 이제, 그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길 바란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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