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언의 만남-길을 묻다] 송승연, “당사자운동이 지금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박종언의 만남-길을 묻다] 송승연, “당사자운동이 지금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8.22 03:4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사자주의를 옹호하는 활동가 송승연 씨 인터뷰
회복 패러다임과 지역사회 중심의 삶 실천하고 싶어
한국 사회에 Mad studies 연구 활성화 필요
반(反)정신의학은 세계적으로 실패…이탈리아는 성공
비하적 Mad를 전복적으로 당사자화해야
생정신의학 지배 체제는 장기적으로 바뀔 것
Sanism(정상주의) 개념으로 접근할 때 차별 드러나
정신장애인 문제는 신자유주의체제와 무관하지 않아
세상을 바꾸는 건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이 이끌어야
비주류적으로 급진적 주장 글로 쓰고 싶어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전교조 활동을 하는 분이었다. 그를 통해 민족과 같은 거대담론을 접하게 된 그는 그때서야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머리를 삭발하고 공부를 했고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가 졸업했다. 대학 시절은 학내 운동보다는 사회운동에 더 관심이 쏠렸다. 군포청년회에서 활동했고 진보적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해 정치적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다. 대학 4학년 때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하며 처음 정신장애인을 만났다. 아니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인천의 70병상 정도 되는 한 소규모의 정신병원에서 사회복지사 수련을 했다. 정신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위해 선택한 병원이었다. 그러나 답답했다. 사회복지사는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권리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전문가 중심주의였고 의료적 서비스체계가 주류였다.

우연히 이용표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글들을 읽으며 그는 답답하고 의아했던 정신보건 체계에 대해 궁금증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당사자주의와 회복 패러다임.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고 비주류였던 사유에 대한 성찰이었다. 그는 바로 이 교수를 만나 석사 공부를 시작했다.

석사를 마치고 다시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공부한 것을 써먹을 곳이 없었다. 현장은 현장대로, 학계는 학계대로 평행선을 달리는 정신장애인 서비스전달체계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의문점을 더 멀리 밀어나가고 싶었고 공부를 마치고 싶다는 생각에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지금은 논문을 준비 중이다.

비주류였던 미국의 정신의학자 토마스 사스와 이탈리아 정신의학자 바살리아를 통해 반정신의학 운동을 알게 됐다. 이들 사상가는 젊은 30대의 그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구글에 올라온 토마스 사스의 인터뷰 모음집을 혼자 번역해 읽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을 비주류의 자리에 위치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장애인들이 정신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존엄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 지지 활동가 송승연(35) 씨. 가을이 시작된다는 처서(處暑)를 이틀 앞두고 그를 봉천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송승연 활동가 (c)마인드포스트
송승연 활동가 (c)마인드포스트

-사회복지학 박사 과정이시죠. 가톨릭대학으로 간 이유가 있습니까.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 뭘 할까 고민을 했어요. 그때 시민단체에도 관심이 있었고 장애인 쪽에도 관심도 있었거든요. 정신건강사회복지사라는 자격증이 있는데 그거를 따려면 일 년 간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인천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는데 일 년 수련을 받고 나서도 고민했어요. 내가 뭘 할까.

수련을 다 받고 6개월간 쉬었어요. 백수생활. 그러다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뭔가 사회에 소속되지도 못하고 어디 가서 떳떳하게 나의 일에 대해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에 취업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2년 반 근무를 했는데 다시 고민이 들더라고요. 뭔가 좀 더 공부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석사 과정을 지원했습니다. 가톨릭대로 가게 된 이유가 그 당시 진보적 정당에 참여하면서 정치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을 했었는데요.

그런데 제가 정신건강전문요원으로서 수련을 1년 간 받을 때 재사회화가 됩니다. 정신의학적인 이론하고 정신의료 패러다임 등의 이론들을 제가 공부를 해야 되는 거죠. 물론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사로서 해야 되는 역할도 같이 배우지만 기본적인 베이스 자체가 굉장히 의료화돼 있습니다. 사실 익숙한 부분은 아니죠. 왜냐면 저는 사회복지를 공부했던 사람이고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의문이 있었죠. 의문이 있었지만 지역사회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지역사회로 왔습니다. 병원에서 수련했던 거는 사실 그때 아니면 병원을 경험할 길은 없을 것 같아서 한번 경험을 해보자 (생각했죠).

저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경험을 해보고 나서 나만의 비판의식을 형성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돼서 지역사회에 취직을 했는데 지역사회에서 일을 하면서도 뭔가 답답한 게 좀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권리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해야 되고 그들과 연대해서 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지역사회조차도 전문가 중심으로 이뤄져 있고 당사자들은 수동적인 입장이고 또 굉장히 의료적인 기반의 서비스들이 이뤄지고 있었어요.

그런 것에 대한 의구심과 답답함도 있었고 왜 그럴까 하는 고민도 있었는데 (가톨릭대) 이용표 교수님 글 보면서 사회복지를 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이런 주장을 하신 분들이 있구나 (싶었죠). 굉장히 비주류이고 소수의 관점이지만 당사자주의를 지향하고 회복 패러다임, 지역사회 중심의 삶이라든지 이런 글을 보면서 저하고 잘 맞겠다, 이용표 교수님한테 가서 보면 배워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고 나서 가톨릭대에서 석사 졸업을 했고 취직을 바로 하려고 했는데 막상 취직하려고 하니까 제가 공부한 것을 써먹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냥 필드(현장)는 필드대로 운영이 되는 방식이고 학계는 학계대로 따로 하는 방식이 있어서. 고작 석사 학위 가지고 또 연결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박사까지 따고 생각해 보자 싶어서 박사 과정 들어왔고 이제 2년 반이 지났습니다. 수료를 하고 지금은 연구도 하고 논문도 쓰고 강의도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신보건 쪽으로 관심을 가지신 게 사회복지학과 졸업하고 정신병원 수련 가서 정신장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전에도 한번 실습을 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수원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한 학기 실습을 했습니다. 그때 많이 배웠고.”

-거기서 정신장애인 처음 만난 겁니까.

“그렇습니다.”

-거기서부터 고민하기 시작한 겁니까.

“그 전에는 막연한 관심이 있었어요. 사회운동이라든지 정치운동이라든지 관심이 있었지만 또 장애인 부분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사실은 20살 대학생 때 막연한 호기심 같은 게 있었어요. 이런 건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 걸까. 어떤 공부를 하는 걸까. 따로 정신건강사회복지라는 걸로 접근하기 보다는 처음에 철학, 심리학 쪽으로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학 때) 심화실습이라고 해서 일주일에 두 번씩 가는 실습이 있었어요. 그래서 정신건강센터에서 한번 일해 보면 나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경험했었고 그때 많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정신장애인 처음 만났을 때 어땠습니까. 기분이.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인상을 특별하게 받지 않았던 같습니다. 그러니까 나쁘다 좋다 떠나서 그냥 자연스러운 존재, 다양한 존재 중의 하나로서 봤어요.”

-Mad studies에 대해 공부해 오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설명 좀 부탁합니다. (Mad studies는 광기학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학제간 합의된 명칭이 없어 원어 그대로 사용한다-편집자 주)

“Mad studies가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Mad studies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는 석사 졸업하고 나서였는데 그전부터 당사자주의와 당사자운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왜냐, 저는 정신장애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서야만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와 관련된 이론과 학문적 기반은 굉장히 취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비당사자 활동가로 근무하던 중에 운영위원회를 하는데 장애인학을 전공하신 한 교수님이 요새 영국이나 외국에서 Mad studies가 이슈를 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궁금했죠. Mad studies가 뭐야 광기학, 미친 학문, 이게 뭐지? 호기심이 일었고 그래서 구글로 한번 찾아봤어요.

쳐보니까 꽤나 많은 논문과 자료들이 떠요. 이런 게 있었구나. 그때부터 자료를 찾기 시작했었고. 실제로 60년대 반정신의학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흐름이 있었어요. 저도 답답한 게 뭐냐면 반정신의학을 제가 정신건강 수련을 하면서도 접하지 못했고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면서도 접하지 못했어요. 공부를 하면서도 접하기 힘들었습니다.

분명히 60~70년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학문인데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번역돼 있는 책도 한 권도 없을까. 왜 논문에서 다루지 않았을까. 사실 정보와 학문의 세계에서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Mad studies가 반정신의학에서부터 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의사들 중에 진보적인 분들이 있었고 그 당시 이뤄지고 있던 약물치료 중심, 그리고 아무래도 치료라는 것들이 정립돼 가던 시기였으니까 잔혹한 치료법들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지만 전기치료라든지 전두엽 절제술 같은 것도 그 당시에 과학적인 치료법이라고 인식이 됐죠.

그런 것들에 반해서 반정신의학이라는 흐름이 나타났고 반정신의학의 영향을 받아서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지에서 70년대부터 당사자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그 당시 환자로서 자기들을 규정했던 당사자들이 반정신의학을 접하면서 의식의 변화가 시작됐고, 특히 주디 챔벌린이라는 여성 정신장애인이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써서 ‘On our own’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라는 책을 써서 당사자운동이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물론 외국에서도 비주류이지만요. 특히 Mad studies가 중시하는 거는 당사자의 관점과 당사자의 경험입니다.

반정신의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반정신의학이 이 또한 전문가들이 주도를 했고 당사자의 관점과 주장은 사실 많은 부분 배제돼 있었다라고 한계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Mad studies는 반정신의학도 포함하고 당사자운동도 포함합니다.”

-그 용어가 우리나라 말로 합의된 게 없죠?

“합의된 건 없고 저는 개인적으로 ‘광기학’으로 생각하는데 아직 규정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를 멸시하는 용어인 퀴어(Queer)를 미국의 동성애 활동가들이 50년대에 자기 언어로 만들었습니다. 전복적으로. Mad studies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맞습니다. Mad studies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정체성입니다. 퀴어(Queer)가 성 소수자를 비하했던 용어를 스스로 받아들여서 그걸 긍정적 의미로 전복시켰습니다. 자기들의 정체성을 만든 거죠. Mad studies 또한 비슷하게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mad, madness가 ‘미친 놈’부터해서 ‘미친’ 식의 의미들로 비하적인데 그걸 Mad studies에서는 자기들의 정체성으로 가져온 거죠.

Mad라는 정체성 자체가 지금 정신장애인이 처해 있는 현실을 더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장애인이 억압받고 있는 삶, 빈곤의 문제, 혹은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현실들을 Mad라는 정체성을 씀으로써 오히려 날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거죠.”

(c)마인드포스트
(c)마인드포스트

-역사적으로 보면 정신의학이 기존 수용소에서 신경성질환으로, 다시 정신분석과 반정신의학, 생물정신의학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대안적 정신의학 이데올로기가 나올 것으로 보십니까.

“정신의학이라는 역사에서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실제 수용소 시대에서 정신분석 시대로 오면서 그 당시만 해도 정신분석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걸 깨고 뇌의 문제로 규정해 버리는 생정신의학이 주도권을 잡고 이 헤게모니가 굉장히 길게 이어져 왔습니다. 거의 60년 정도. 이게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헤게모니 역사라는 건 무조건 장기 체제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변증법적으로 새로운 것들이 도출되는 게 역사의 흐름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Mad studies라든지, 대안적 접근법인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logue), 혹은 일본의 베델의집, 미국 소테리아 하우스, 반정신의학까지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당장은 생정신의학의 지배 체제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서서히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금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과도기적 단계라 생각합니다.”

-반정신의학은 실패했습니까.

“저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탈리아에 정신과 의사 바자리아(Basaglia)가 있었고 그는 반정신의학자로 분류됩니다. 근데 이탈리아의 바자리아 모델은 성공했습니다.

반면에 미국의 토마스 사스(Thomas szasz)는 반정신 의학자이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차이가 뭐냐면 바자리아는 급진적 주장을 펼쳤지만 독단적으로 끌고 간 게 아니고 연대체를 꾸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민주정신의학회라는 연대체를 만들었고 거기에 개혁에 동의하는 정신과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사회학자, 심리학자, 일반 시민, 노동운동가, 그 당시의 급진정당까지 연대해서 개혁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개혁을 유지하고 있는 기틀이라 생각합니다.

반정신의학 운동이 실패했던 것 중의 하나는 나쁘게 말하면 독단적으로 급진적 주장을 했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바자리아의 운동을 보면 조금은 급진적일지언정 연대체를 구축해서 광범위하게 이 운동을 끌고 간 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반정신의학은 전 세계적으로 실패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특수하게 성공한 케이스다.

“네. 성공한 케이스라 생각합니다.”

-미 정신의학자 토마스 사스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에 대해 좀 설명해 주십시오.

“그 사람이 1961년에 낸 ‘정신병의 신화’라는 책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는데 말 그대로 정신병원은 허구다,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억압과 사회적 통제의 구실을 위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토마스 사스의 의견에 100%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한 번쯤은 같이 논의해보고 토론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토마스 사스는 실제 자신을 반(反)강제주의자, 다르게 말하면 자유지상주의자라고 표현합니다. 토마스 사스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강제적 치료를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제입원부터 해서 강제적 약물복용까지. 내가 강제적으로 들어가야 하고 나갈 수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감옥이라고 표현을 했거든요. 당시에도 정신과 치료의 중점은 강제적 치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토마스 사스는 그것에 반대해서 끝까지 싸운 사람입니다. 그가 정신병은 없다고 설명하면서 예를 든 게 동성애입니다. 이 호모 섹슈얼리티는 1983년까지 공식적 정신질환이었습니다. 토마스 사스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과거에 해군에 군의관으로 있을 때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병사들에게 동성애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려내는 일이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타임지 표지 모델로 동성애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의 병은 어떻게 되었나라고 말하고 있죠. 사회가 변했다면 그들의 병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인가 질문하면서 정신질환의 허구성 주장을 펼칩니다. 또 그런 얘기도 합니다. 당시 사회적 배경, 사회적 문화가 정신질환을 구성하는 데 굉장히 많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이죠. 사회적 통제라는 역할에도 굉장히 많이 영향을 미친다. 또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규정한 것은 이성애 중심으로 가야한다는 사회적 통제 논리가 거기에 있었다는 거죠.”

-정신병원에 수용되면 자유는 사라진다. 바자리아는 ‘자유가 곧 치료다’라고 했는데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이런 주장을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어떤 대안을 내놓아야 합니까.

“굉장히 범위가 넓습니다.”

-강제입원으로 주제를 줄일까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정신과 병상이 증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물론 일본이 우리보다 병상수는 많지만 일본은 서서히 줄고 있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역행하고 있는 체제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게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혹은 정신장애인의 주체성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강제입원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주체성이 거의 배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우리가 얘기하려면 강제입원 제도에 대해서 당연히 문제 제기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와 사법입원 기관 중 어떤 것이 더 필요할까요.

“저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법입원이냐 입원적합성심사냐에 너무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역사의 흐름은 한번 바뀌면 뒤집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탈원화 패러다임에 이미 탔다고 생각하고 이를 역행하기에는 쉽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근데 입원이 어려워지고 까다로워졌지만 실제 탈원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입원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머물러 있다. 물론 자의입원으로 바뀌었고 동의입원으로 바뀐 부분은 긍정적 의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병원들이 그만큼 당사자 권리에 대해 신경을 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근데 왜 이들이 탈원화 되지 않느냐. 결국에는 사회적 서비스, 사회적 자원, 인프라에 대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들을 억지로 강제입원시킬 게 아니고 강제입원이 필요 없게끔 하고 내가 선택하는 옵션이 다양하면 굳이 병원까지 갈 필요가 없겠죠.

지금은 길이 이것 하나니까 싫든 좋든 갈 수밖에 없는데 이게 만약 필요 없는 옵션이 돼 버리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강제입원은 다 없애고 응급입원은 강제적으로 놔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강제적인 치료에 대해서 안 된다라고 급진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근데 실제 전 세계에서 강제적인 치료가 없는 국가는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강제입원을 옹호하려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조차도 정신병원이 없지만 응급입원은 강제적인 치료로서 존재를 합니다.

물론 (병원에 머무는 기간은) 굉장히 짧죠. 원칙적으로는 강제입원이 없어지고 응급입원만 강제적으로 남고 나머지는 자의입원, 개방병동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폐쇄병동을 줄이고 개방병동을 늘리는 쪽으로 단계적으로 가고 강제입원보다는 자의입원을 늘려야 합니다. 자의입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이들의 권리와 절차를 보장해줄 수 있는 권익옹호 제도들, 절차보조인 제도 등이 확립돼서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존) 정신보건법은 말 그대로 정신의료법이었어요. 하지만 정신건강복지법은 복지서비스가 새로 들어왔기 때문에 의료법의 성격에 더해 복지법의 성격이 있습니다. 저희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되고 이것을 근거로 (정부와 병원에) 압박을 해서 강제적 치료를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은 사회 서비스를 강화시켜서 굳이 이쪽(병원)으로 가지 않도록 막는 거죠.”

-비자의 입원율이 37%로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혹시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요.

“왜 탈원화는 되지 않았는가. 왜 시설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가에 대해 주목할 때라 생각합니다. 자의입원으로 전환된 건 의미가 있습니다. 어쨌든 강제입원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들이 지역사회로 나오지 못했다는 것은 지역사회에 머무를 수 있는 주거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사자운동과 Mad studies는 의료적 모델이 아닌 사회적 모델로서 당사자의 문제에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당사자운동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사자들끼리만 하는 게 당사자운동입니까.

“편협한 시각으로 보자면 당사자로서 정체성이 부여된 사람들만이 참여하는 것이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당사자입니다. 그럼 비당사자들은 이 당사자운동에 끼지 말라는 거야라고 편협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당사자운동의 조직력은 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 조직의 확충을 위해서 당사자운동을 주장하는 것이고 나중에 당사자조직이 엄청나게 확충이 된다면 그때 분명히 이런 논쟁이 있을 겁니다. 당사자운동의 정의는 어떻게 할 거냐. 비당사자는 여기 포함돼야 하는 거야 말아야 되는 거야. 이런 정의들의 문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논쟁이 나오게 되는 순간이 오히려 박수칠 만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당사자운동은 당사자로서 정의된 사람들이 전면적으로 나서는 게 맞다고 봅니다.

또 정신건강전문요원이라는게 있는데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건강간호사, 정신건강임상심리사가가 그들이죠. 1995년 법이 제정될 때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이 들어간 것은 그것이 지향점이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죠. 특히 사회복지사는 지역사회 통합과 자립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적 관점으로서만 정신건강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되겠죠.

저는 반(反)억압적 실천가라는 용어를 자주 씁니다. 사회복지사가 반억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실천가로서 당사자하고 같이 간다면 당사자운동의 연대를 꾸릴 수 있는데 가장 큰 조력자이자 파트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Sanism(정상주의)의 강화가 정신장애인 차별을 더 강화시킨다는 지적이 큽니다. 하지만 정상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사회가 작동하지 않을까요.

“현재 정신장애인이 겪고 있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개념이 저는 Sanism이라고 생각합니다. Sanism은 sane(정상)과 insane(비정상)이 있는데 sane에 ism을 붙여서 정상주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정신장애차별주의라고 해석을 합니다. 왜 그러냐면 정신장애인의 억압 문제는 지금의 정상으로 규정되고 있는 개념들과 비교를 했을 때 조금 더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문제들과 개념들이 있습니다.

재작년인가, 정신장애인이 강제입원을 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이 테이즈건을 쏴 당사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대다수 언론과 언론에 달린 댓글들은 경찰을 옹호하고 당사자를 비난하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폭력적으로 행동하니까 당연히 그랬겠지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이걸 Sanism 관점으로 보면 다르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왜냐, 이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강제입원을 겪었기 때문에 그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이고 당연히 억지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해 거부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병원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자유가 통제되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이 컸을 겁니다. 또 언제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Sanism의 개념으로서 접근을 했을 때 차별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재작년 영등포의 한 정신병원에서 35시간 강박돼 있던 사람이 결국 사망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또 당연시합니다. 저는 Sanism의 관점에서 왜 어떤 권한으로 이 사람을 그렇게 오랫동안 묶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처벌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Sanism이 사회적 통제를 당연시 하게 만든다.

“그렇습니다. 정신장애인의 차별과 억압을 숨기고 있는 이 흐름을 Sanism 관점으로 봤을 때 드러낼 수 있다. 정신장애인은 위험하고 무능력하다는 편견조차도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게 Sanism이라고 보면 됩니다.”

(c)마인드포스트
(c)마인드포스트

-외래치료명령제가 강제적 치료와 자발적 치료의 차이를 불러온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외래치료명령제가 정신보건법에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영되지 않았죠. 죽은 제도였습니다. 근데 우리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폐쇄병동에 강제입원되는 것보다 지역사회에서 외래치료명령을 받는 게 당사자에게는 인권적으로는 훨씬 진보한 겁니다. 폐쇄병동에서 강제입원 당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외래치료명령은 분명히 진보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보건법 하에서도 외래치료명령제를 활성화해서 강제입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죠. 왜 그런 의견들이 나왔는지 저도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서 최근에 정신의료계가 사법입원과 외래치료명령제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게 악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법입원이 되면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필요 없습니다. 말 그대로 법원이 판단하는 겁니다. 그런데 법원이 판단하게 됐을 때 정신과 전문의 의견이 대부분 반영될 거라는 게 저의 추측입니다.

김원영 변호사가 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보면 강제입원 당했을 때 이를 구제할 수 있는 법률이 인신구제청구 제도인데 이것 또한 정신과전문의 소견이 굉장히 많이 반영된다라는 식의 글을 썼습니다. 사법입원 또한 그렇게 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호의무자가 없어지고 사법입원으로 가게 되면 정신과 전문의 힘이 세질 수 있다.

그랬을 때 정신과전문의가 조금 더 쉽게 입원을 시킬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외래치료명령제입니다. 그러니까 외래치료명령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신과전문의는 쉽게 법원을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봐라, 이 사람 지금 외래치료명령제 받고 있는 사람이니까 빨리 강제입원시켜야 된다. 그게 악용될 수 있는 시나리오죠. 외래치료명령제와 사법입원이 시너지 효과가 되면 이 사람을 내보내도 내가 언제든지 입원시킬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외래치료명령제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는 있습니다. 외래치료명령제에 대해서 문제제기하지만 제가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고요, 강제입원보다야 낫다는 것에 대해 분명히 저도 동의합니다.

미국에서도 지역사회치료명령제 비슷한 것이 있는데 캔드라법이라고 해서 캔드라라는 여성이 뉴욕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신과 병력이 있던 노숙인이 그 여성을 밀어서 사망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캔드라법을 통해 지역사회 치료명령제를 만들었는데 여기서도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정신장애인의 행위 주체성에 대해서 굉장히 철학적 토론을 하더군요.

외래치료명령제라는 게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나아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당사자의 관점으로서, 혹은 한 사람의 인격적 주체성으로서 접근했을 때는 이 또한 강제적인 치료 범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게 옳은 것이냐에 대해서는 철학적 고민과 토론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리커버리 패러다임(회복 패러다임)이 1980년대에 시작됐죠. 리커버리 패러다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복 패러다임이 많은 진전을 이끌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회복 패러다임으로 가면서 그래도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당사자의 인권을 생각해주고 그들의 권한을 보장해주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점도 명확하게 있습니다.

요새 리커버리 패러다임은 의료계든 당사자든 사회복지계든 다 얘기합니다. 각자가 리커버리 패러다임을 외칩니다. 하지만 각자가 외치는 리커버리 패러다임의 정의는 다릅니다. 그러니까 리커버리 패러다임의 한계점으로는 모호성이 있습니다. 좀 더 비판하자면 그만큼 좀 두루뭉술하다. 투쟁의 과정에서 두루뭉술한 개념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외국의 경우 정신의학 지배 체제에서 이 리커버리 패러다임을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적용을 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리커버리 패러다임도 의료화 됐다라는 식의 비판이죠. 저는 Mad studies가 리커버리 패러다임을 좀 더 발전시켜서 나아갈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베델의집에 가서 ‘열심히 하지 않기’라는 사무실에 붙어진 문장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열심히 살지 않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떤 생각들을 했습니까. (베델의집은 일본 홋카이도 우라카와에 있는 정신장애인 공동체 마을을 의미한다-편집자 주)

“정신장애인의 문제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문제를 떼어놓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회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우파들에게는 세금을 낭비하는 존재들일 수 있고요.

베델의집이 놀라운 건 철학적 통찰력입니다. 베델의집에 갔을 때 아침에 모여서 그 사람들이 회의를 하고 나서 스터디를 하는 걸 봤습니다. 스터디를 하는데 그때 책이 자본주의와 관련된 책이었어요. 베델의집의 철학이라는 것이 한순간에 나온 게 아니겠구나, 저 사람들도 오랜 시절 이런 사회적 구조, 자본주의의 논리,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그런 것들이 정신장애인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 노력들이 ‘열심히 하지 않기’라는 한 문장이지만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정신장애인의 삶의 질이 나아지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바뀌지 않고서는 나아가기 힘든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에게 중요한 문제는 빈곤과 계급의 문제입니다.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정신장애인의 절반 이상이 수급자고 취업률도 굉장히 낮습니다. 이걸 바꾸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타파를 하고 복지국가 체제로 가서 정신장애인의 다양성을 인정해주어야만 정신장애인의 주체성이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에 대해서 정신장애 당사자운동은 반대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베델의집 같은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각 나라의 문화와 각 나라의 고유의 색깔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일어난 당사자운동, 반정신의학, Mad studies를 그대로 따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베델의집, 미국의 소테리아하우스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가 없죠. 결론은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이식해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베델의집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무카이야치 사회복지사가 주도했고, 가와무라라는 정신과 의사가 같이 연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델의집이 지금 정신과 병상이 없죠. 그리고 약물 복용도 가와무라 의사가 최소 약물 복용을 지향하면서 굉장히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저는 베델의집 모델의 성공 요인이라 생각합니다.

베델의집의 경우 다시마 사업이라든지 주거 사업이라든지 지역사회 주민들과의 통합도 중요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들고 이런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혹은 간호사 또 작업치료사가 모여서 그런 모델로 갔던 게 베델의집이 주는 하나의 함의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져도 괜찮겠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있으면 너무 좋죠.”

-따라가지는 말자.

“억지로 따라가지 말자.”

-보호의무자 입원제도는 정신자애인의 보호 책무를 가족에게 부담시키고 국가는 이 책무를 회피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금의 정신건강복지 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족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운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나뉘었을 때 당사자의 문제는 사적 문제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해라라는 식의 접근법이죠. 이렇게 갔을 때는 탈원화가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의 지역사회 자립도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강제입원 과정에서 정신장애인 가족들도 나쁜 마음에서 사실 그러진 않습니다. 자기들도 힘드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도 많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도 죄책감을 많이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국가가 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강제입원 제도를 없애고 자의입원과 응급치료 중심으로 가게 된다면 가족들도 그 죄책감이 적어질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생각이 들고요. 지역사회에서도 가족들과 같이 사는 것만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독립생활을 하든 공동체에서 지원주거를 살든 해야 오히려 가족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가족들에게만 문제를 지워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당신에게 정신장애인은 어떤 존재입니까.

“정신장애인도 시민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배제돼 있는 취약 집단이죠. 사회적 배제 집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시민운동, 혹은 인권운동 하시는 분들이 더더욱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에 귀를 기울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저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도 하면서 흘러들어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쨌든 여기서 열심히 하면서 알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겠구나.

그러니까 대학 졸업하고 시민단체나 사회운동으로 갔어도 열심히 했겠지만 정신장애 운동이 너무 취약하기 때문에 이건 내가 일종의 인연이 아닌가. 당사자운동을 경험하면서 느낀 거는 저 같은 사회복지사들이 아무리 날뛴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더라고요. 그 힘이 당사자운동에 있다고 봅니다. 일종의 전략일 수 있을까. 저는 당사자운동이 나서야만 지금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운동은 결국 우리가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잠재력이 있고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능력이 당사자운동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경험의 힘이고 삶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보다 더 전면적으로 등장할 수 있도록 저도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c)마인드포스트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다양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의 당사자운동도 하나로 일원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소비자로 정의내린 집단들이 있고 자신들을 죽음과 같은 정신의료 현장에서 살아남았다라는 의미에서 자부심을 주기 위해 생존자라는 용어를 쓰고 이전에는 환자였지만 지금은 환자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patient라는 정체성을 넘어서기 위해 ex-patient라는 용어를 쓰는 분들, 급진적인 당사자 단체도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로 당사자운동을 묶어서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다만 약하지만 포괄적인 연대체계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은 필요하고 서로 간에 동일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활발한 토론과 활발한 논쟁이 굉장히 발전적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어주는 약하지만 진한 연대 체계를 구축해서 조금 더 빠르고 조직적으로 정치적으로 싸울 수 있는 구도로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 게 있습니까.

“비주류적이고 의료 패러다임이 아닌 대안적인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당사자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도 하고 글도 쓰고 활동도 하지만 사실 좀 외롭습니다. 고독하기도 하고.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아직 지지를 해주지 않고 같이 힘을 모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건 없어서 외로워요. 외롭지만 전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같이 좀 삐딱한 사람 한 명이라도 이런 얘기를 해야지 모두가 동일한 얘기를 해버리면 이 세상이 재미도 없고 바뀌지도 않을 거라고요. 거시적인 어떤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엄청나게 똑똑하거나 뛰어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다만 혼자 꾸준히 비주류적으로 급진적인 주장을 글로 쓰는 데는 떳떳하게 계속 하고 싶은 희망은 있습니다.”

-비주류로 남겠다.

“네. 싸움은 길게 가는 거라 생각이 들고 제가 소심하지만 또 끈질김은 있습니다. 한 번에 불태우는 건 힘들지만 10년, 20년 저는 꾸준히 갈 자신이 있습니다.”

폭염이 다시 찾아온다고 기상청이 예보했지만 이날, 바람이 상쾌하게 불고 있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권혜경 2020-07-18 02:56:56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송승헌선생님 당사자와 연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