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인권과 삶의 질 향상보다 사회적 입원 고착시켜
정신건강복지법 인권과 삶의 질 향상보다 사회적 입원 고착시켜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9.03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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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우 박사, '이슈와 논점'에 정책방안 기고
사회적입원 고착시키는 방식으로 입퇴원 작동
퇴원환자 대상 찾아가는 방문 서비스 활성화해야
외래치료명령 거부시 장기지속형주사제 투입도 고려
응급입원에 경찰 호송 법적 의무화해야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들 근로환경 개선 필요
중증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치료 지원 전달 체계 재구축

중증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치료 지원의 전달체계를 잡고 정신보건의 제도적 장치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 입법조사처 이만우 사회학 박사는 최근 이 조사처가 발간하는 ‘이슈와 논점’에서 ‘정신질환자 범죄 예방 및 치료 지원을 위한 정책방안’을 기고했다.

기고문에서 이 박사는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논란보다 정신보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제도적으로 실현한다는 관점에서 서비스 제공의 가용 자원을 동원하는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문에 따르면 정신질환 전체 범죄자 수는 2007년 5천726명에서 2016년 8천343명으로 10년 간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또 정신질환자 범죄 중 강력 범죄 비중은 2015년 9.71%로 이는 비정신질환자의 1.46%를 상회하고 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치료가 시급하지만 이들의 의료 이용률은 낮은 상태다. 조현병은 2016년에 2010년 대비 14% 증가했지만 이 진단을 받은 사람 중 22.2%만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신질환 미치료 기간(DUP)도 한국은 84일로 일본, 미국 등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 박사는 “이는 정신건강복지법이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호와 삶의 질 향상이라는 법 취지에 따라 작동하기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입원’을 고착시키는 형태로 입·퇴원 및 절차가 마련돼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적 입원’은 외래 진료만 받아도 될 정도의 정신질환자가 장기간 정신의료 기관에 입원하는 현상을 말한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제52조에 따르면 정신의료기관의 장은 정신질환자의 퇴원 사실을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지만 정신질환자 본인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통보가 불가능하다.

이 박사는 “하지만 퇴원 환자들이 지역사회 센터와 연계 되지 않는 이유는 퇴원 사실이 통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통보를 해도 센터에 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환자 동의 없이도 통보를 할 수 있게 법 개정이 이뤄져도 자동적으로 사례관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박사는 “지역사회에서 사례관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퇴원환자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방문 서비스(Outreach Service)’를 병원이 실행할 수 있도록 수가를 신설해야 하며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정신재활시설로 연계되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외래치료명령제 역시 현장에서 보호자의 거부, 외래치료명령 대상자에 대한 관리인력 부족 때문에 활용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법 규정 자체가 선언적이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규율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이 박사의 주장이다.

현행법 제64조 제5항에 따르면 시군구청장이 외래치료명령을 위해 구급대원에게 호송을 요청할 수 있지만 경찰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외래치료명령제를 강화한다 해도 시행 요건과 서비스의 수준이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또 상당수의 환자는 보호자가 집으로 데려가지 않고 주소지에서 멀리 떨어진 정신병원에 반복적으로 입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군구청장 직권으로 외래치료명령제에 대한 권한을 주는 것이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박사는 “투약을 거부하고 자·타해 위험이 높은 경우 행정입원으로 이어지게 되므로 그 이전 단계인 외래치료명령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투약을 거부할 경우 지정 의료기관에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투입할 수 있게 하는 등 구체적 시행수단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기반을 확충하고 예산과 인력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 방안에 따르면 지역사회의 다학제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을 따로 꾸려서 퇴원 후 방문 관리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어떤 법적 근거에 의해 무슨 예산으로 어디 소속의 인력을 동원해서 방문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이 박사의 지적이다.

이미 지역사회의 다양한 전문가들과 연계된 다학제팀이 일하고 있는데 또 하나의 다학제팀 구성의 정책 목표가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이 박사는 “만약 다학제팀이 자·타해 위험이 높은 정신질환자에 대해 경찰이나 소방과의 연계를 통한 위기개입과 응급입원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라면 유의미할 것”이라며 “이 경우도 인력 배치와 역할 규정이 기존 정신보건 전문요원들과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정신과적 응급상황에 대한 대응 능력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발견 시 출동·호송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등록되지 않은 정신질환자의 경우 민원 발생을 우려해 경찰이 개입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여전히 심하다. 이 박사는 그 이유로 응급입원의 경우 경찰의 호송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들도 정신의료기관에 환자를 이송하면서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대부분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은 1년 계약직 여성이 다수이며 당직수당이나 위험수당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있다.

이 박사는 “응급환자 대응에 무조건적 개입을 의무화하는 것은 센터 직원의 근로환경 개선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커뮤니티케어의 핵심은 보건과 복지의 연계 서비스 제공이지만 현재 시군구 희망복지지원단은 정신건강증진 서비스에 욕구가 있는 일반인들을 통합사례관리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중증 정신질환자는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박사는 “정신질환자가 커뮤니티케어에 포함돼 복지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환영할 만하나 보건의료 서비스와의 연계는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이 실질적으로 네트워킹되는 적절한 자원동원 프로그램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사례시스템(MHIS)이 단순 정보연계가 아니라 서비스 연계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정부 지원방안이 향후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없는 인천 옹진군 등 15개 군에 센터를 모두 설치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센터가 없는 군의 경우 인구가 매우 적으며 수탁기관을 선정하거나 정신보건 전문 인력을 고용할 가능성이 매우 낮았던 곳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박사는 “인프라 확충 과제는 센터 지정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며 “정신보건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향후 정신보건 수요에 대한 정확한 예측에 입각해 전국적 차원의 표준을 설정하고 지역별로 차등화된 예산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원방안에서 향후 5년에 걸쳐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문 인력을 1천455명으로 확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1년에 300여 명에 불과하다. 전국 230개 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1년에 한 명꼴로 직원을 늘리겠다는 것은 위기개입이나 응급입원이 늘고 있는 현실에 미흡한 조치라는 게 이 박사의 지적이다. 또 인력에 대한 예산뿐만 아니라 전체 예산에 대한 언급이 없어 정신보건 수요에 대한 정확한 예측에 근거하지도 않았다고 그는 비판했다.

그는 “정부 지원방안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지역사회 치료 지원의 전달 체계를 재구축하는 방향에서 정신보건의 제도적 장치를 재정비해야 한다”며 “본인 또는 가족 책임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책임에 의해 제도가 운영되고 그 수준에서 전달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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