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일기장] 첫 번째 페이지: 조현병 환자로 사는 이유
[옥탑방 일기장] 첫 번째 페이지: 조현병 환자로 사는 이유
  • 이관형 기자
  • 승인 2018.09.18 23: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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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이며 <마인드포스트> 시민기자인 이관형 기자의 수필입니다. 최근 그는 『바울의 가시』라는 책도 출판한 문인이기도 합니다. <마인드포스트>는 이 기자의 글을 총 10회에 걸쳐 싣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옥탑방 일기장 첫 번째 페이지. 조현병 환자로 사는 이유.

 

기록 시점 : 2018년 기적 같은 많은 일들이 진행되는 중.  

마음 날씨 : 걱정과 부담감으로 흐렸다가 기대감의 햇살이 밝음.

인터넷 갈무리

얼마 전 정신장애인 인권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마인드 포스트>라는 언론사를 알게 되었다. 3년 전 정신질환 관련 뉴스를 모아 놓은 커뮤니티 카페가 시초가 되어 2018년 6월 정식으로 언론사를 창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직원 대부분이 당사자, 즉 정신장애인이라고 한다. 소속 기자는 물론 글을 기고할 수 있는 자격도 당사자와 가족들만 가능하다.

마침 나의 신앙 자서전 '바울의 가시 (나는 조현병 환자다)'를 SNS에 홍보하는 중이었다. 관련 인터넷 카페와 커뮤니티에도 홍보글을 올렸었다. 그리고 마인드 포스트에도 광고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고자 메일을 보냈다. 그러자 뜻밖의 답장이 왔다. 바울의 가시 책을 무료로 배너광고 해줄테니 주기적으로 글을 기고해 달라는 것이다. 과거 출판사, 언론사에서 글 쓰는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말이다. 나 역시도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본래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책도 홍보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론,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마인드포스트>라는 정신질환 관련 언론사에 당사자의 자격으로 글을 쓰는 게 꼭 즐겁지는 않았다. 홈페이지에서 ‘조현병’, ‘정신 장애인’, ‘당사자’라는 단어를 보며 “내가 정말로 이곳에 글을 써도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15년 전 대학병원에서 조현병 판정을 받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나았다고 생각했다. 대학원도 졸업했고 짧은 직장생활도 했으며 대인관계도 원만한 편이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도 날 정신질환 환자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난 완전히 건강한 사람이 아니란 걸 받아들여야 했다. 오늘도 아침에 샤워하다 과거의 사건과 인물들이 떠올랐다. 내게 수치와 고통을 주고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때로는 너무 괴로워서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걸을 때나, 차를 탈 때, 일할 때도 떠오른다. 게다가 밤마다 잠들기 전이면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함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그래서 1~2주에 한 번씩은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여전히 약이 없이는 편히 잠들 수 없는 상태다. 게다가 계절마다 우울증, 불면증, 망상, 조울증이 번갈아 찾아온다. 나 자신도 인지할 정도로 심하게 찾아온다.

조현병 발병 초기에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억울하고 분했다. “나는 왜 정신질환자일까?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같은 병들도 있는데, 왜 하필 그 중 최고봉인 조현병 환자일까? 그것도 뉴스에 나오는 흉악한 살인범들이 겪었다는 바로 그 조현병 환자일까..?”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혐오스럽고 위험하게 여겨지는 조현병 환자인게 억울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나의 마음도 서서히 바뀌었다. 그동안 나를 소중하게 아껴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교수님과 친구들, 교회의 신앙 선후배들과 목회자분들까지. 내가 조현병 환자임을 고백했을 때도, 나를 대하는 시선이나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나를 예전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다. 이를 통해 나 스스로도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끔 증상으로 힘들고 괴로울 때 그들은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비밀을 남들에게 함부로 발설하지 않고 보호해 주었다. 그래서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 그들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의 병을 알고 나를 이상하게 여기더라도, 내 주변의 사람들만큼은 나를 지켜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현병은 내게 사명이자 축복이 되었다. 세상의 차별과 편견을 받는 사람들의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조현병 관련 공모전에서 수필 부문 대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책을 출판했고 몇 번의 언론사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교 특강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마인드포스트>에 글을 기고하게 된 것도 내겐 너무 귀한 축복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병으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지낸다. 당사자는 물론, 배우자나 자녀들의 병을 들킬까 걱정하며 살아간다. 숨을 수밖에 없는 그들을 위해 책을 냈다. 이제는 언론을 통해, 강의를 통해서도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특히 <마인드포스트>의 옥탑방 일기를 통해 소소하지만 진솔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고 싶다. 우리들도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어쩌면 더 아름답고 강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조현병 환자로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 '바울의 가시' 작가 겸 옥탑방 프로덕션 대표 이관형의 일기

otbp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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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결 2018-09-30 21:42:18
좋은 글을 기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말씀이 크게 와닿는 것 같아요. 정말 어떤 사람보다 아름답고도 강인하게 살아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