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사회구조적 문제 해결의 주체”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사회구조적 문제 해결의 주체”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9.17 2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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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토론 ‘장애인 아고라’ 이룸센터서 진행
정신장애인은 보편적 장애인 복지정책에서 소외
당사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 마련해야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 만들어야

한국장애인총연맹이 주최하고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장애인 아고라’가 17일 여의도 이룸센터 교육관에서 열렸다. 장애인 아고라는 발언자와 참석자 구분 없이 해당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는 광장형 토론의 장으로 행사는 올해 3번째다.

이번 주제는 ‘정신장애인은 지역사회 정착을 원한다’로 진행됐다.

2014년 말 기준 등록된 정신장애 유형의 장애인 수는 9만5천여 명이다. 이는 전체 등록장애인의 3.8% 수준으로 지체, 청각, 뇌병변, 시각, 지적장애 다음으로 많은 분포를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201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 조사에 따르면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은 25.4%로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장애인들이 겪는 법적 제도적 차별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정신건강복지법 상의 정신질환자를 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정신장애인이 정신건강복지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이유로 이들을 보편적 장애인 복지전달 체계에서 배제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겨우 장애인 복지시설의 서비스를 받은 것만 제한되고 있는 듯 하지만 실제 이 규정에서 파생된 관행적 제도들은 정신장애인을 장애인 복지 영역에서 분리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강하게 나오고 있다.

이번 아고라 행사는 이에 따른 제도적 모순 외에도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에서 사회복귀를 가로막는 문제들을 짚어보고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데 실질적 어려움 등을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현장 전문가가 함께 공론화해 보는 의미로 마련됐다.

이길성 한울정신건강복지센터 활동가는 “2017년 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범죄 건수가 200만 건이었는데 이중 정신장애인의 범죄 건수는 8천300건이었다”며 “정신장애인을 위험한 존재로, 감시를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자신의 지인(知人)이 일하던 일터의 업체 사장이 더 이상 일을 함께 할 수 없다는 통고를 해 왔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이 활동가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성을 언론이 부각시키니 정신장애인이 일을 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며 “언론이 정신장애인과 관련한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경진 서초열린세상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강남역 살인 사건 보도 이후 고용공단과 함께 정신장애인 체험 활동 및 고용을 준비 중이었는데 기업들이 이를 취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취업했던 당사자가 사무보조로 취업했는데 업체에서 당사자를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외근으로 돌렸다”며 “이유를 물으니 관계자 얘기로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무슨 일 생기면 책임질 수 없다고 답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1년 이상 당사자와 일해 본 회사는 정신장애인들을 인정하고 이해를 한다”며 “이는 실제 정신장애인이 위험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권오용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사무총장은 “정신장애인의 문제는 제도 및 정책적 장벽이 있고 재원 또한 부족하다”며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라고 언급했다.

권 사무총장은 “그러나 당사자들은 자각이 아직 안 돼 있고 조직력 또한 부족하다”며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사회 구조로 바뀌게 하려면 당사자가 힘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8년 보건복지부 총 예산은 63조1천554억 원이었다. 이중 정신보건 예산은 600억 원에 불과했다.

유동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이는 정신장애인 자립 등 서비스 혜택의 기본 틀이 미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신장애인들의 경제활동 또한 타 장애분야와 비교해 열악한 실정이다.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월 개인 수입 평균액수는 타 장애인들이 96만 원인데 비해 정신장애인은 38만 원 수준이다.

주거 생활의 불안정성도 정신장애인이 여타 장애분야에 비해 강하다.

유 센터장은 “공동생활가정 들어가면 최대 4년밖에 있지 못해 기간이 차면 경기도 쪽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며 “이동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고 정신과 외래 진료도 멀리까지 와서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신장애인은 자립 면에서 소외돼 있다”며 “예산 편성도 낮은 점 등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플로어에 있던 최지연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 사회복지사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그 의미와 느낌을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면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단절된 분들이라 피부에 와 닿지 않고 불편함을 못 느꼈을 것”이라며 “오히려 사회복지사 입장에서 당사자들보다 더 속이 상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약만 잘 먹으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약만 잘 먹어서는 그냥 살아가는 것일 뿐 의미 있는 사회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게 최 복지사의 주장이다.

그는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가장 문제”라며 “정신장애인들이 역량을 갖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정신장애인 인식 개선과 관련한 공익광고 2편을 제작한 바 있다.

윤선희 한국정신재활협회 사무총장은 이를 두고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에게 자동차를 광고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광고가 혐오성 개선을 강조하는 데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내용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 부분”이라며 “인식개선은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신건강복지센터는 기초 226개소, 광역 16개소이다. 복지부 예산 중 정신장애 예산 600억 원은 242개 정신건강복지센터 인건비밖에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될 당시 정신보건센터측은 퇴원한 이들이 재입원을 하는 문제를 고민했다. 이후 약물관리가 재입원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한다. 그러나 23년이 지난 지금도 약물 복용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가에 대해 윤 사무총장은 반문했다. 그때와 지금의 욕구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금은 지역과 의료기관에서만 이 욕구를 해결할 수 없다”며 “당사자들이 포함돼 해결책에 대한 자원을 찾아야 욕구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신건강복지센터로 변경되면서 복지의 개념이 강조되고 있지만 이 센터는 보건소가 관리하는 등 여전히 의료적 모델로 기능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신장애와 관련한 정신건강보험과 일반 예산은 이원화돼 있다. 이중 지역사회 지원은 일반 예산으로 한다. 탈원화를 시켜야 한다고 해서 건강보험이 지역사회 예산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이 예산은 기초단체에 위임돼 있는 실정이다.

현재 장애인복귀시설은 전국적으로 3천399개소가 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단체는 정신장애인기구 4개, 가족기구 3개로 7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질 좋은 서비스는 없고 계속 반복만 된다”며 “우리도 결국 치료와 재활중심으로밖에 머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2015년 정신보건시설 입원자 수는 8만1천105명이었고 이들 중 조현병, 우울증 환자는 5만1천472명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환자 가운데 퇴원 환자수를 제외한 계속 입원 환자 비율은 2014년 35.6%에 2015년 371.%로 늘어났다.

입원 환자의 수가 증가하는 것은 실제 지역사회 인프라가 부족해 퇴원하고 싶어도 퇴원하지 못하는 사회적 입원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정신의료기관을 퇴원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지역사회 지원과 관리는 주로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보건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전국 234개소에 설치돼 있으나 중증장애인 사례 관리 인력은 4명 내외에 불과하다. 이들이 1인 당 70~100명의 중증 정신장애인을 담당하고 있어 사실상 사례관리가 제약당하고 있다.

퇴원한 정신장애인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시설 역시 부족한 실정이다. 입소생활시설, 주간재활시설, 공동생활가정, 직업재활시설 등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은 2016년 전국 336곳으로 시군구 별로 1곳씩 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퇴원 환자들이 생활할 수 있는 25명 정원의 입소생활시설은 서울의 경우 4곳에 불과하다. 퇴원 후 정착할 곳이 없어 재입원을 부추기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권오용 사무총장은 “커뮤니티 케어에서 중요한 것은 1차 진료와 케어를 확대하는 것”이라며 “서비스 당사자와 가족을 서비스에 참여시키고 정신의료기관을 자유로운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신건강 정책이 국립병원 역할 확대 중심인데 이는 잘못된 정책”이라며 “공공 정신병원에 지원하지 말고 지역사회 서비스에 지원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당사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 욕구에 맞춰서 행정과 법제도 서비스가 진행돼야 한다”며 “병원을 줄이고 의사들을 지역사회 중심으로 돌리고 건강보험 예산도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선희 사무총장은 “복지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몇 개의 기관에만 집중돼 있어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마련할 때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로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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