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각예술 비평가 아네트 미켈슨(Annette Michelson)
영화/시각예술 비평가 아네트 미켈슨(Annette Michelson)
  • 가비노킴
  • 승인 2018.09.19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술작품의 원본성이 유효하지 않다며 형식주의적 시각을 벗어던지면서 미술 글쓰기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옥토버 October」의 공동 창립자로 미국 시각예술과 문화비평을 조력하는 한편 영화연구와 관련해 수많은 대학생들, 평론가들, 학자들에게 학문적으로 영향을 끼친 '아네트 미켈슨(Annette Michelson)'이 2018년 9월 17일 월요일 미국 맨하탄 자택에서 타계했다. 향년 95세.

그녀의 오랜 벗이자 영화연구가 스튜어트 립만(Stuart Liebman)은 미켈슨이 말년에 치매로 고생하다 건강이 악화됐다고 전했다.

미켈슨은 뉴욕 출신이지만 1950년대 파리의 지적 동요에 깊이 스며들었던 사람 가운데 하나다. 뉴욕대학에서 영화를 주제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아트포럼 Artforum」에 해박한 기사를 기고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아울러 1976년 초반에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와 공동으로 「옥토버 October」를 창간한 인물이다.

1977년의 아네트 미켈슨(왼쪽). 그녀는 시각예술비평에 큰 영향을 끼쳐오고 있는 '옥토버'를 창간하는 데 1년 전 도움을 줬다. (c) Robert Haller
1977년의 아네트 미켈슨(왼쪽). 그녀는 시각예술비평에 큰 영향을 끼쳐오고 있는 '옥토버'를 창간하는 데 1년 전 도움을 줬다. (c) Robert Haller

미켈슨은 러시아 영화감독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와 라트비아 출신 구소련 영화감독 겸 영화이론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과 관련된 수많은 에세이를 썼다. 현재까지 시각예술 비평에 큰 영향을 끼쳐오고 있는 잡지 「옥토버 October」도 에이젠슈타인의 1920년대 무성영화 '옥토버: 세계를 흔들었던 열흘'에서 따온 것이다.

1960년대 미켈슨의 「아트포럼 Artforum」 기획기사들을 통해, 그리고 훗날 「옥토버 October」 창간을 위한 협업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 분야에 엄청난 영향력을 불러 일으켰으며 미술관과 갤러리 등지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영화나 영상 매체 내에서 움직이는 이미지와 관련한 시각예술 매체에 대한 물음은 지금도 재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옥토버' 1986년 봄호.
'옥토버' 1986년 봄호.

사실 그녀의 풀네임은 Annette Michelsohn이다. 나중에 미국식 이름으로 바꾸기 위해 H를 뺐다. 맨하탄에서 1922년 11월 7일에 아버지 아드리안과 어머니 테레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디시어를 구사하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양말이나 스타킹류를 다루는 사업을 했고, 어머니는 독일어를 구사하는 헝가리 출신으로 전업주부였다.

가족이 브루클린으로 이사를 간 후에 아네트 미켈슨은 공공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굉장히 많은 책을 읽었다. 맨하탄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브루클린 대학을 1945년에 졸업했다. 이어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1950년에 뉴욕을 떠나 파리로 간 뒤에는 파리 대학에서 연구를 계속 이어갔다.

미켈슨은 본래 여배우가 꿈이었다. 로저 블린(Roger Blin) 감독 주위에 있는 영화계 인물들에 빠져 지난 1953년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연 리허설을 관람하기도 했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그녀는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의 수업을 들었다. 이 철학교수들의 미학적 관점과 구조주의 철학이 미국에 들어오는 데 있어서 미켈슨의 도움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그녀는 수많은 출판물을 편집했으며 직접 집필활동도 했다. 또한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등의 에세이를 미국에 번역해 소개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건 1966년이었다. 뉴욕대학 인문과학대학원에서 영화사와 영화이론에 대한 프로그램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 뒤 뉴욕대학에서 수십년 동안 강의했고 광범위한 주제로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러한 공적을 기리는 뜻으로 지난 2004년에는 '여성' 명예교수(professor emerita)로 임명됐다.

돌이켜보면, 문학의 부분집합에 존재했던 영화연구를 재정립하는 최전선에서 약 50년 동안 집필생활과 강의생활을 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시각예술과의 대화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국내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66년의 미켈슨. (c) The Peter Hujar Archive LLC; Courtesy Pace/MacGill Gallery, New York and Fraenkel Gallery, San Francisco
1966년의 미켈슨. (c) The Peter Hujar Archive LLC; Courtesy Pace/MacGill Gallery, New York and Fraenkel Gallery, San Francisco

사실 1970년대 이후 미술에 대한 글쓰기는 흔들리지 않는 포지션 위에 있는 '저자'의 입장에서 작품의 기원과 모범정답 같은 기원을 밝히는 '미술비평(art criticism)'에서부터, '독자'의 입장에서 작품이 속한 맥락(context)을 더듬어가는 '미술이론(art theory)'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래서 미술 이론가들은 미술을 닫힌 형식이라기보다 다른 모든 영역으로 열려 있는 담론으로, 그래서 프레임 안을 배타적으로 바라보기를 그치고 계층, 젠더, 광기, 동성애, 인종, 이주/민 등 프레임 바깥의 현안들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안과 바깥의 관계를 면밀히 살피게 됐으며, 따라서 이들의 논조도 평가라기보다 진단의 톤을 드러내게 됐다.

1970년대 중반 「아트포럼 Artforum」의 편집진이 바뀌면서, 그러니까 1975년말에 이 잡지의 편집장이 된 막스 코즐로프(Max Kozloff)가 동료 존 코플란스(John Coplans)와 함께 편집방향을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규정하자 새로운 미술에 대한 글쓰기의 원동력으로 부상했지만, 막스 코즐로프가 1년만에 편집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그 논조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편 존 코플란스는 아네트 미켈슨이 쓴 영화나 비디오에 대한 논문을 실으려고 하지 않았다. 로잘린드 크라우스에 따르면 당시 코플란은 프랑스 철학이론이나 비평을 몹시 싫어했다.

아네트 미켈슨의 글은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매체이론, 곧 영상 및 비디오 관련 시각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미켈슨의 팬은 아니었다. 1987년에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종의 '대화'를 건네기 위한 시도로 『옥토버: 더 퍼스트 데케이드 October: The First Decade』를 펴냈다. 여기에는 인덱스(Index),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 제도비평(Critique of Institutions),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 수사학(Rhetoric), 더 바디(The Body) 등의 주제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대미술 비평 관련 주요 글들이 수록돼 있다. 아울러 조르주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 호미 바바(Homi Bhabha),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로저 카이유아(Roger Caillois) 등의 저자를 새롭게 발굴해 시각예술과 접목시켰다.

'October: The First decade' (c) Gabino Kim
'October: The First decade' (c) Gabino Kim

미켈슨은 2015년에 자신의 연구작업 일체를 게티연구소(LA)에 모두 기증했다. 국내에는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듯한 모양새다. 지금이라도 그녀의 작업을 조명해야 한다.

「옥토버 October」가 창간되기 1년 전에 많은 도움을 줬던 그녀는, 이제 옥토버(10월)가 되기 1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 없는 옥토버는 이제 그리움이 될 것이다.

가비노 킴(Gabino Kim)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