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정신병원 폭력은 왜 변하지 않는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정신병원 폭력은 왜 변하지 않는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9.27 2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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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 씨, 청와대청원에 정신병원 폭력 고발
“내가 들어온 곳은 병원이지 군대가 아니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특별한지 알게 돼”
“인간 이하로 대우하는 태도에 인간적 수치심 느껴”
“환자 동료들 평생 생각하며 살 것…그것뿐이서 죄송”

정신병원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상황을 날것으로 고발한 이야기가 27일 청와대 국민청원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청원자 김모(여) 씨는 지난 9월 5일부터 10일까지 입원해 있던 정신병원의 폭력적 상황을 기록한 후 정신병원과 직원들에 대한 조사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요청했다.

김씨는 불면증이 3주간 반복되면서 2018년 9월 5일 저녁 9시경 인천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는 당시 폐쇄병동에 들어가기 위해 망상과 분노조절장애에 해당하는 모습을 의사에게 보였지만 주치의 황모 원장은 오히려 김씨의 병명을 조울증으로 진단해 한 달 간 폐쇄병동에 입원해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김씨는 입원 첫날 저녁 1인실에 들어가 주사를 맞았고 6일 밤까지 거의 24시간 동안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혼자 일어서지를 못해 보호사들에게 양팔을 부축 받아 입원실로 들어섰고 중간에 구토까지 했지만 자신을 몰랐으며 나중에 입원실 동료 환자들에게서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9월 9일, 김씨는 하나의 사건을 목격한다. 5층 병동에 입원 중이던 A(28) 씨가 아침에 보니 오른팔이 왼팔에 비해 두 배 가량 심하게 부어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A씨는 전날 조무사에게 주사를 맞은 후 팔이 부어올랐다고 당시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일요일이었고 김씨와 동료들은 주치의 황 원장에게 보고해줄 것과 응급실 이동을 요청했지만 간호사와 보호사들은 얼음팩으로 A씨의 팔을 찜질만 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A씨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팔을 손으로 쓰다듬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고 김씨는 적었다.

김씨와 동료들이 A씨에 대한 치료 조치를 계속 요구하자 직원들은 환자들의 이름을 호명한 후 “당신이 A씨의 보호자냐”는 비아냥을 듣게 된다. 화가 난 김씨는 간호실에서 나와 복도 끝 상담실로 가서 베개를 벽에 대고 주먹질을 했다.

이어 CC(폐쇄회로)TV로 이 행동을 보게 된 보호사가 간호실로 김씨를 끌고 가 왜 화가 났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김씨는 “A씨의 보호자도 아닌데 주제넘게 참견해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팔짱을 낀 채 대답한다. 그러자 보호사는 “팔짱 풀어. 태도가 그게 뭐야. 팔짱 풀라고”라고 반말로 명령을 내렸다.

김씨는 “내가 팔짱을 끼고 있는 게 죽을 죄냐”라고 응수한 뒤 간호사실을 나왔다.

김씨는 이 사건으로 퇴원을 결심하게 된다.

김씨는 “내가 들어온 곳은 병원이지 군대가 아니”라며 “저명하신 원장님이 반말로 명령이 난무하는 계급 체계를 만드는 직원들을 데리고 병원을 운영하고 계실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적었다.

이어 “정신적으로 질환이 있는 환자들이기 때문에 약물로, 통제로, 명령으로, 협박으로, 말도 되지 않는 변명으로 치료 중인가”라며 “많은 입원 환자들이 간호사와 보호사가 오히려 화를 돋구고 기다렸다는 듯이 1인실 침대에 손을 묶어 가두는 일을 빈번히 겪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그 1인실도 낡은 철제 간이침대와 재래식 좌변기만 있는 불쾌한 공간이었다고 김씨는 지적했다.

김씨는 “저 역시 그런 (1인실 감금) 기회를 드릴 뻔 했는데 그렇게까지는 도발에 응해 드리지 않아서 박모 보호사가 아쉬워하는 감정을 느끼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고 적었다.

당시 김씨는 간호사 4명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당했지만 차분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1인실에 끌려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후에 동료들이 김씨의 행동을 칭찬하는 가운데 그런 방식으로 1인실 강박과 격리를 취하게 되는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10일 퇴원을 위해 아버지와 언니, 남편에게 병원으로 연락을 취해서 황 원장을 면담해 줄 것을 요청한다. 환자가 직접 요청할 경우 간호사는 “원장님이 외래 진료 중이라 언제 올라오실지는 본인들도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실제로도 신규환자 유치업무가 더 중요하실 테니 그럴 것”이라고 적었다.

정신병원 내 통제는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김씨가 병원 내 공중전화를 사용할 때 일이다. 공중전화는 간호사실과 1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통화를 하고 있는데 박모 보호사가 김씨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돌아보니 박 보호사는 “지금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안 보이냐”고 질책했다고 한다.

김씨는 뒤에 기다리는 두 명에게 “먼저 전화 하실래요, 양보해 드릴까요”라고 물었으나 두 명은 괜찮다는 답변을 전했다.

김씨는 “박모 보호사의 행동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이 병원 원장님은 간호사와 보호사에게 무엇을 지시하고 가르치셨습니까”라며 “제가 (박모 보호사의) 간호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격분했다.

이상한 일은 또 있었다.

9월 10일 저녁식사 시간에 환자와 직원들에게 배식이 끝나고 남은 반찬이 있어 한 환자가 반찬을 더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배식담당 직원이 서둘러 반찬통을 치우려 했고 화가 난 환자가 “우리가 거지냐, 내 돈 내고 여기 있는 거”라며 “모자라는 반찬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닌데 왜 구걸하게 만드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직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반찬을 주었다.

김씨는 “배식 담당 직원들이 남는 반찬을 싸가는 게 아닌 이상 이런 상황이 왜 벌어져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김씨는 “황 원장님이 어떤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며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영리단체라는 거. 그러면 환자들이 대가를 지불한 만큼의 대우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병원비를 실제 지불하고 있는 사람만 관심과 관리의 대상인 겁니까”라고 지적했다.

시설 또한 엉망이었다.

김씨는 자신이 지내는 병원 5층 여성전용 병동의 문제도 지적했다. 개인 사물함 손잡이가 제대로 된 게 4인실 방에 단 하나뿐이었다. 김씨가 오랜 기간 입원 중인 환자들의 불편을 고려해 보호사에게 수리를 요청하자 보호사는 “부속품이 그렇게 쉽게 구해서 바로 구칠 수 있는 줄 아냐”며 “간호사실 집기도 고칠 거 투성이”라고 화를 했다고 한다.

김씨는 “(원장의) 손발이 되어 일하는 간호사들, 보호사들의 능력과 인성 관리는 좀 하셔야죠”라며 “우리가 직원 보고 병원 택했습니까? 원장님하고 5분, 10분 고작 그 시간 진료 받자고 24시간을 함께하는 직원들에게 도대체 무슨 취급을 받는 건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극정성으로 며칠간의 일을 기록했다. 자신 있어서 공개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도 당연히 요청했다”며 “신고서가 병원에도 비치되어 있던데 오른팔이 퉁퉁 부은 김모 환자가 서면 종이를 가져갈 때 박모 보호사가 피식 웃어주었다고 하더라”라고 적었다.

김씨는 박모 보호사의 경우 기분이 좋으면 환자에게 농담도 먼저 걸지만 환자가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마음 약한 환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며 “참 재능 있는 분”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황 원장의 말대로) 직원들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다는데 그럼 이 보호사들은 신경정신과의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김씨는 퇴원 시에도 인권이 침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짧은 입원 생활 후 퇴원 준비를 위해 환의를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을 때였다. 박 보호사가 1인실로 데려가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고 탈의를 하던 순간 1인실 밖으로 박 보호사가 지나갔다고 했다. 김씨는 “지금 실수하신 거 알죠”라고 물었고 박 보호사는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비웃으며 대답했다.

김씨는 CCTV 공개를 요청했고 9월 10일자 저녁의 간호사실과 1인실의 CCTV 영상을 제공해 줄 것을 구두상으로 약속받았다.

김씨는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보다 환자이기 때문에 인간 이하로 대우하는 듯한 태도에 인간적 수치심(을 느낀다)”며 “이에 대해서는 민사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만날 것”이라고 적었다.

김씨는 “이번 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픈 분들의 고통을 절감했고 그분들에게 적지 않은 비용을 받아서 치료하는 일을 봉사인 거처럼 대외적으로 포장한 썩어빠진 병원과 의료진의 행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해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적었다.

김씨는 이 병원 원무 팀장이 “정신병원에 다녀가면 평생 F코드가 붙어서 불이익이 적지 않은데 왜 이런 일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는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 것보다 제 인성이 어떤 경험을 하고 누구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게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이어 “6일을 보낸 5층 병동에는 대부분 본인이 환청 자체가 무서워 퇴원을 했다가도 다시 병원에 들어와 스스로 갇혀서 살고 있다”며 “그분들 앞에서 감히 눈물도 보이지 못하고 퇴원하고 집에 와서 남편에게 얘기하며 펑펑 울었다. 우리가 매일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이라고 소회했다.

김씨는 “그분들은 지금의 가을 하늘을 책가방만한 쇠창살 창문을 통해서만 본다”며 “옥상처럼 트인 공간도 없다. 위험해서, 자살할 수 있어서, 그 분들에게 제한된 것은 상상 이상”이라고 토로했다.

또 “마음의 병을 앓는 분들도,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범죄를 저지른 분들도 사실 다 우리 자신이며 가족”이라며 “저는 그분들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것을 알게 돼 감사하고 죄송하다. 모든 환자분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저 역시 무심하고 잔인했던 삶을 살았음을”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김씨는 퇴원 후 참치김밥과 주먹밥을 사서 병원 환자들을 방문한다. 그러나 병원 측은 가족과 가까운 친척 외에는 면회도 간식 전달조차도 금지되어 있다며 이를 막았다.

그는 “교도소도 친구, 지인, 교우, 자원봉사자들의 면회까지 가능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김씨는 보호자에 의한 강제입원 문제도 지적했다. 자신이 알게 된 환자 중 한 명은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며 살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 ‘몸서리치게 싫어도’ 남편이 찾아오면 면회를 해야 하고 남편 동의가 없이는 퇴원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는 “대체 여기가 병을 치료하는 곳이 맞는가”라며 “제가 다시 입원하거나 완치되어 퇴원하지 않는 한은 볼 수가 없는 그분들을 평생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밖에 할 수 없어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청원 글을 마쳤다.

이 병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곳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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