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왜곡한 SBS ‘여우각시별’ 제작진은 사과하라
조현병 왜곡한 SBS ‘여우각시별’ 제작진은 사과하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0.03 2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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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당사자 폭력적으로 묘사
위험성 이데올로기는 미디어를 통해 강화
조현병 당사자들을 사회적 격리의 대상으로 해석
극중 텍스트에 조현병은 죽음이 이미지와 결부
왜 드라마는 조현병에 대해 이토록 모진 것일까
SBS 월화드라마 '여우각시별' 스틸컷 (c)SBS
SBS 월화드라마 '여우각시별' 스틸컷 (c)SBS

참담했다.

지난 1일 첫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여우각시별’ 1회를 본 소감이었다.

이 드라마는 인천국제공항 여객서비스처를 배경으로 소속 직원들의 갈등과 사랑을 테마로 하고 있다.

인천공항 입사 1년차인 한여름은 이전 부서에서 ‘사고’를 쳐서 여객서비스팀으로 발령 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자신보다 연차가 낮은 이수연이 한여름의 사수가 된다. 한여름은 직속 상관 양서군을 찾아가 “저는 1년차인데 왜 신입을 사수로 둔 것이냐”고 따졌지만 양서군은 “그럼 일 똑바로 하라”고 무안을 준다.

시작은 그랬다. 하나의 장면이 바뀌고 70대의 여인이 공항 직원들에게 “우리 아들 좀 찾아달라”고 호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수연은 한여름에게 무전을 해 “미아 발생 신고가 들어왔다”고 전한다. 양서군에게 한마디 듣고 쳐져있던 한여름, “잃어버린 미아는 내가 찾는다”고 혼자 외친다.

다음은 이수연과 한여름의 대화다.

이수연: 약을 안 먹은지 여섯 시간이 지났다고요. 미아가 발생했다고.

한여름: 남자아이에요, 여자아이에요?

이수연: 남자아이요.

한여름: 몇 살인데요?

이수연: 31살입니다.

한여름: 장난해요 지금. 31살이면 성인이잖아요.

그랬다. 조현병 환자로 추정되는 이는 분명 성인이 아니라 31살 먹은 미아였다. 성년후견인에 의해서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조현병 당사자는 어떤 경우에도 성인이 될 수 없다. 드라마 작가가 어떤 의도로 31살의 성인을 어린아이로 묘사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의식에도 조현병 환자는 지극히 위험하고 자기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그래서 후견인이 있어야만 하는 ‘불완전한 존재자’라는 편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불완전성은 혐오와 배제의 대상으로 유도된다.

그런데 이 31살의 ‘어린아이’는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노란색이라. 그냥 밝은 색깔의 옷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색깔이 가지는 이데올로기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흔히 성인들은 물론 밝은 옷을 입기도 하지만 보통 짙은 곤색 등 차분한 옷을 선호한다.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옷은 중요한 장치로 작동하는데 어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장소에 가는 데 노란색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어린아이’는 노란색을 입고 있다. 마치 유치원생들이 입는 노란색 옷과 의식적으로 포개진다. 작가는 정신장애인을 미성숙한 자로 어린아이에 준하는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수연은 무전으로 직원들에게 알린다. “2인 1조로 움직입니다. 상대는 조현병으로 의심되는 환자고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요. 혼자 떨어지지 마세요.”

그 가운데 조현병 환자의 신원이 확인된다. 31세. 김근우.

이수연과 직원들이 ‘어린아이’ 김근우를 찾아 라운지를 뛰어다니는 동안 배경 음악은 지극히 무겁고 음산하고 급박하다. 마치 수사반장에서 범인을 체포하기 직전의 분위기를 연상시킬 정도다. 정신장애인은 위험하며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성 이데올로기가 고스란히 음악과 이수연의 무전에서 드러난다.

2인 1조로 움직이라는 지시도 상황의 급박성과 위험성을 알리는 알레고리로 작동한다.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기 때문에 한 사람으로서는 제압할 수 없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이수연은 “혹시 모르니까 남자 화장실까지 꼼꼼하게 체크합시다”라고 말한다.

‘혹시’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혹시 모르는데 왜 화장실을 그토록 체크하려고 했을까. 기자는 이 부분에서 지난 2016년 1월, 인천공항 1층 남자 화장실에서 폭발물 의심 물체가 신고돼서 한동안 공항이 마비됐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실제 일어난 사건이었다. 당시 화장실에는 종이 상자 안에 부탄가스, 가스통, 브로콜리, 바나나 껍질, 전선, 건전지 등이 담겨져 있었다. 메모지도 발견됐고 그 안에는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라고 씌어져 있었다. 엉터리 아랍어 문법이었다.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용의자는 검거됐다.

왜 이 장면이 떠올랐던 것일까. 그만큼 작가의 의식 안에는 조현병 환자가 위험하고 ‘폭탄’을 들고 다닐 수 있으며 화장실에 폭탄을 설치할 수 있을 가능성까지 연상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화장실을 ‘꼼꼼히’ 체크한다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의미로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수연을 비롯한 직원들이 라운지를 뛰어다니는 동안 불길하고 음산한 음악은 끊임없이 흐른다. 한여름은 화장실 체크를 위해 이수연이 화장실로 들어가자 바깥에서 기다리던 중 노란색 옷을 입은 남성을 발견하고 그를 뒤쫓아간다. 그러나 남성 역시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추격은 멈춘다. 불길한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마치 정신장애인이 이토록 위험하다는 걸 알리려는 듯.

그때였다. 대기실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직원에게 말을 건다. “비행기 왜 바꿨어요?”. “네?” “비, 비행기”

그는 직원에게 말을 걸면서 눈을 맞추지 못한다. 그리고 직원이 설명하는 동안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마치 환청을 듣고 괴로워하는 듯한 표정이다. 다시 날카로운 음향이 흘러나온다.

그 남성은 소리친다. “누구 맘대로 비행기를 바꾸냐고. 나한테 말도 없이. 응, 응?”

그는 그러면서 가방으로 남성 직원을 때린다. 남성 직원은 쓰러져 조현병 당사자가 후려치는 가방에 맞고만 있다. 날카로운 음향은 계속 흐른다. 남성 직원은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저 건장한 공항 남성 직원이 체구도 작은 저 조현병 당사자에게 일방적으로 맞을 이유가 있었을까. 가방을 휘두르면 물러설 수도 있을 것이고 특별히 업무를 위한 자기방어 무술을 배웠다면 조현병 당사자의 가방에 맞아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조현병 환자를 제압했으면 했지 흉기도 들지 않은 조현병 당사자에게 무진장 폭행을 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자는 조현병 증세가 심해지면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 일상적으로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것에도 괴로움을 느끼곤 했다. 어쩌면 저 조현병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행동은 조현병의 한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이해하겠다.

그러나 조현병 남성은 “그만 괴롭히라”며 공항 남성 직원을 계속 가방으로 내리친다. 아팠을까. 가방으로 내리치는 게 그렇게 아팠고 그토록 제압하지 못할 행동이었을까.

'여우각시별' 스틸컷 (c)SBS
'여우각시별' 스틸컷 (c)SBS

조현병 당사자는 환청이 오면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그 들리지 않는 들림에 휩싸여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 만약 환청이 계속 괴롭히면 “그만 괴롭히라”고 큰소리를 칠지언정 주변 사람에게 폭행을 가하지는 않는다. 너의 가족과 너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가 다 죽여버리겠다는 환청 때문에 어떤 이는 달리는 택시 안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손으로 귀를 막고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곤 한다.

그런 조현병 당사자가 가방을 들고 “그만 괴롭히라”며 상관없는 대상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왜곡된 시선 때문일 것이다. 조현병 당사자에게 폭력성은 있다. 그렇지만 아무에게나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저 폭력은 극이 만들어낸 폭력일 뿐이다. 여전히 괴성에 가까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위험성 이데올로기는 더 증폭된다. 저 순간 저 폭력의 장면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또 하나의 왜곡된 두려움을 갖게 된다.

한여름은 조현병 당사자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말한다. “지금 밖에 어머니께서 찾으세요. 저하고 잠시 같이 가시겠어요.”

조현병 당사자는 “너 경찰이지? 가까이 오지 마. 너 나 잡으려고 왔잖아”라고 소리친다. 그는 잠시 흐느끼더니 텐스베리어(승객들의 줄을 세우는 시설물)로 한여름을 내리치려고 한다. 이때 이수연이 달려와 한여름을 안고 그 상황을 피한다. 이수연은 조현병 당사자에게 “어머니가 갖다 주라고 했다”며 정신과 약물 리스페리돈을 내민다. 조현병 당사자는 텐스베이러를 내려놓는다.

그러면 생각해 보자. 저 조현병 당사자 김근우 씨는 하루에 약을 몇 번 복용하는 것일까. 기자는 저녁에 약을 먹는다. 하루에 한 번이다. 저녁에 먹고 아침에 소량의 약을 복용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 약을 하루 안 먹었다고 해서 내 증상이 올라와서 사건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런데 저 김근우 씨는 여섯 시간 전에 약물을 복용했다. 여섯 시간 전에 먹었는데 증상이 심해질 수 있으니 약을 또 먹어야 한다면 이 사람은 하루에 약을 4번 이상 먹어야 한다는 것일까.

그리고 여섯 시간 전에 약을 먹고 지금은 먹지 않았으니 세계를 왜곡할 정도로 폭력과 같은 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하는 것일까. 기자 역시 약을 깜빡 잊고 하루 정도 먹지 않았을 때도 있다. 매일 먹는 약이고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지만 매일 깜빡 깜빡 잊는다. 어떤 때는 잠자리에 들었다가 그날 약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주섬주섬 약을 챙겨 먹을 때도 있다.

그런데 내가 약을 하루 먹지 않았다고 해서 무슨 사건이 발생하는 건 아니다. 약을 복용하지 않고 지내는 정신장애인들은 보통 3개월을 전후로 재발을 한다. 물론 그보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약 효과는 그렇게 조금은 늦은 발걸음으로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여섯 시간 동안 약을 안 먹었다고 저 김근우 씨가 공항에서 행패를 부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장면들은 정신장애인은 약을 먹어야 하며 약을 먹지 않으면 폭력적 인간으로 변해버린다는 것, 그 폭력은 때로는 끔찍할 수도 있다는 작가의 왜곡된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SBS ‘여우각시별’ 팀은 정신장애인들에게 사과하기 바란다. 당신들에게는 한 번의 사소한 장면일 수 있지만 드라마를 시청한 시민들은 왜곡된 정신장애인의 폭력성와 위험성을 더 깊이 내면화하는 과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위험성 이데올로기는 결국 정신장애인의 공동체 바깥으로의 격리와 배제를 합리화하는 시선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하라. 우리를 죽음의 이미지와 결부시키지 말라. 정신장애인은 살고 싶은 것일 뿐, 이처럼 극단적이고 첨예한 폭력의 주체가 될 수가 없다. 오히려 사회가 가하는 폭력에 길들여져 있을 뿐이다. 정신장애인을 삶의 주체가 아닌 사회의 타자로 바라보는 시각은 미디어를 통해 강화되고 확산된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기자는 참담한 심정을 숨길 수 없다. 사과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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