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문턱 높은 ‘정신질환 산재’ 그 해결점은?
아직도 문턱 높은 ‘정신질환 산재’ 그 해결점은?
  • 임형빈 기자
  • 승인 2018.10.04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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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낙인을 지우지 않는 한 실질적 효과 거두지 못해
편견 때문에 근로자들이 업무로 인한 정신적 고통 드러내지 못해

서울 근교의 한 콘도에서 근무하던 B씨는 상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에 시달리던 중 객실 배정에 불만을 품은 고객에게서 욕설을 들은 일을 계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B씨가 생명과 바꿀 정도의 불가항력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업무로 인한 자살을 인정하지 않았다. B씨가 생전에 업무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없었다는 점도 공단의 판단 근거가 됐다.

현재 근로자가 정신과적 진단을 받으면 그 후유증이 오래 간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부터 정신질환자가 되어 근무에 악영향을 받는다. 회사에서의 업무 환경의 입지가 좁아지게 되고 나쁜 소문까지 발생해 직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그후 자기와의 긴 싸움에서 스스로 지쳐 원하지 않는 정신질환자가 돼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게 된다. 정신질환에 대한 산재보상은 힘든 고개 중 하나다.

현재 산재로 인정받는 정신질환에는 업무와 관련해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정받아야 한다. 또한 업무와 관련해 고객으로부터 폭력 또는 폭언 등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이거나 또는 이와 직접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적응장애 또는 우울증 에피소드가 있어야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보상을 받는다.

문서 상으로도 피해자 본인이 산재에 해당하는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느냐는 증거가 남아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산재보상은 물건너간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규정은 현실적으로 정신질병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업무와 자살의 관련성이 인정될 여지를 매우 좁게 해 놓았다”고 지적했다.

정신질환 산업재해 신청과 인정의 문턱을 크게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제도를 개선한다 해도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회적 낙인을 지우지 않는 한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3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자살을 포함해 정신질환으로 인한 근로자의 산재신청은 총 194건이다.

이중 112건(57.7%)이 산재로 인정받았다. 정신질환 산재는 2013년 137건 신청과 53건 승인(38.7%)에 그쳤지만 신청 숫자와 승인은 모두 꾸준히 올랐다.

김애란(32.여) 씨는 최근에 회사에서 성희롱으로 우울증 및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고통을 받다 이를 산재로 인정받아 보상을 받았다.

“기숙사 행정 직원으로 시보 기간 동안 장학부장으로부터 끊임없는 추파와 불쾌한 신체접촉, 성적 모멸감을 주는 폭언으로 인해 우울증이 걸려 회사에 나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자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 정신과적 상담을 한 후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요양급여를 신청했는데 산재로 인정돼 장학부장은 법적으로 계류가 돼 한편의 보상을 받았다.”

이와 같은 회사 내의 폭언, 성희롱, 성폭력 등이 난무한데 많은 직원들이 쉬쉬하고 있다. 그런데 미투운동으로 직원들 한두 명이 충격적인 고백을 하면서 산재신청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정신질환 산재신청 건수가 지나치게 적다는 것이 일반적 여론이다. 이용득 의원실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최근 개최한 ‘자살 정신질환 산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이이령 가톨릭대 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 교수는 “국내 성인의 25.4%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에 걸리며 지난 1년간 정신질환을 앓은 비율도 11.9%(470만명)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관련 산재 신청수는 너무 적다”고 설명했다.

인구가 우리의 2.5배인 일본은 정신장애 산재청구가 1천512건(2015년 기준)에 달해 우리나라보다 8배나 많았다.

근로자들이 정신질환 산채 신청을 꺼리는 이유는 유병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꼽힌다. 정신질환자로 분류되면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홀로서기가 어렵다는 이유다.

또 불안장애나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은 산재 승인이 나지 않는다. 이 병을 가지고 있어도 공론화되면 직장에서 근무 열외되거나 퇴출되기 때문이다. 제도 행정상의 문턱이 너무 높다는 것이 문제다.

이 의원은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과 자살에 가진 편견 때문에 근로자들이 업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며 “근로자가 정신질환 산재 접근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자의 정신질환 산재신청과 보상에 다각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인 근로자의 열린 시야도 중요하지만 책임자인 회사와 국가가 그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해결점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직장 내 괴롭힘과 고객의 폭언으로 인한 정신질환도 산재로 인정하는 내용의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안도 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아직도 계류 중이다. 근로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정부 역시 다각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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