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가진 태아(胎兒), 낙태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정신질환 가진 태아(胎兒), 낙태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0.05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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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청원글에 ‘정신질환’ 태아 낙태 도움 요청 글
정신장애인의 탄생은 아무도 원하지 않아
모성과 국가로부터 이중차별 받는 게 정신질환 태아
모자보건법의 낙태죄 폐지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
정신장애 태아의 탄생 거부는 사회적 구성물에 근거
만약 정신장애 태아를 임신하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톡소플라즈마라는 병에 감염돼 유전학적으로 정신장애를 갖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한 여성의 청원글이 5일 청와대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왔다.

임신 7개월에 접어들었다는 청원자 A(여)씨는 톡소플라즈마라는 질병에 걸렸다. 톡소플라즈마는 사람과 개·고양이 등에 기생하는 기생충으로 덜 익은 고기를 섭취하거나 동물 분비물 등에 노출되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신부가 톡소플라즈마충에 감염되면 태아의 경련, 정신질환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게 의학계의 설명이다.

임신 초기 A씨는 산부인과를 찾았고 의사는 대학병원으로 가 볼 것을 권유한다.

A씨는 “첫 진단을 받았는데 저에게 아이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다음에 다시 갖는 게 어떠냐고 묻지도 않았다”고 적었다.

대학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A씨에게 아이가 아무 문제없이 태어날 수 있고 초음파 검사를 한 후에도 태아가 잘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만 했다고 했다.

A씨는 “최소한 괜찮으시겠어요라든가, 다음에 임신 시도해 보는 게 어떠한지요라고 한 마디만 했어도 이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병원에서는 그냥 낳으라고만 했다”고 토로했다.

이후 그녀는 낙태를 결정했고 관련 병원들에 전화를 했지만 모두 수술을 거부했고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응답한 병원은 낙태 비용 500만 원을 요구했다. A씨는 현재의 가정형편상 그만한 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

A씨는 “정신적 장애를 갖고 아이가 태어날 것에 이대로 그냥 낳아야 하는지”라며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자신이 없고 무섭다. 회사를 그만 둬 재정 상태도 엉망”이라고 밝혔다.

또 “혼자서 어찌 키우겠습니까. 낳아서 아이를 봐줄 분도 없고 일은 해야 하고 살 집도 없다”며 “아이 아빠도 자신이 없다고 한다”고 적었다.

A씨의 남편 B씨는 아이를 낳을 경우 이혼할 거라고 말했다. 이후 남편과는 실제 헤어지게 된다. 시댁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정신이상자’가 될 게 뻔하니 아이를 낳지 못하게 압박했다.

친정도 마찬가지였다.

“(친정에서) 전 사람 취급 못 받고 있어요. 집에 손님이 오면 전 방에서 못 나가고 투명인간이 돼야 하고 친정엄마가 집을 비우면 제가 집에 있어도 인기척이 없어야 합니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A씨는 “이런 대우까지 받으며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라며 “사고만 터지면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그랬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무섭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낳고 나서도 불안하고, 자라면서도 불안하고, 성인이 돼서도 불안하다”며 “살아갈 희망도 없고 자신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청원글에 “수술 받게 도와 달라”는 요청을 적었다.

현재 그녀에게는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자녀 세 명이 있다.

A씨는 “뱃속에 있는 아이보다 제 옆에서 엄마하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지만 삶이 무거워 챙겨주지 못하고 있다”며 “제가 살 희망은 이 아이를 지우는 것”이라고 적었다.

또 “시간도 별로 없고 낳는다고 해서 병원비도 없다”며 “친정엄마가 아이를 낳으면 병원에서 바로 다른 데로 보내버린다고 했다”고 전했다.

A씨는 자신의 친정과 시댁에서 정신장애가 있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정신장애인을 돌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양가에서 출산을 적극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A씨는 “모자보건법 중에 엄마가 병이 있으면 중절수술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며 “전 왜 해당 사항이 안 되냐. 톡소플라즈마라는 병도 제가 걸려서 아이에게 간 건데”라고 토로했다.

“전 무섭습니다. 지금이라도 중절수술이 된다면 받고 싶네요. 제발 저 중절수술 받게 도와주세요. 여기서 더 늦으면 아마 전 못 살 거 같네요. 그러니 저 좀 살려주세요.”

청원글은 이런 호소로 끝난다.

현재 모자보건법 14조 1항은 인공 임신중절 수술, 즉 낙태를 허용하는 사유가 다섯 가지로 규정된다.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가 첫 번째다. 이어 본인이나 배우자에 전염성 질환이 있을 경우, 강간으로 임신한 경우, 법률상 혼인이 불가능한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한 경우, 모체의 건강이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이다.

이 경우 법은 의사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 외의 경우에는 낙태는 불법이 된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신장애인 태아의 낙태 허용이다. 정신장애를 가진 태아는 애초에 태어날 수 없는 존재자라는 점이다. 정신장애인은 살아가면서 사회 생태계를 교란하는 위험한 존재자가 될 개연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생학적 근거에 따라 낙태가 허용된다.

이 부분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국가가 정신장애인의 탄생을 통제하는 지점과 만나게 된다. 국가는 우생학적 조항을 통해 장애인의 재생산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구조를 강화해 왔다.

위의 청원글에서 청원자는 태아의 중절수술을 원했다. 왜냐하면 태아가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장애인의 탄생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이데올로기와 겹쳐진다. 이 둘은 태아 출산 거부의 차이점이 없다. 정신장애인 태아는 모성과 국가로부터 이중적으로 차별받고 통제받고 제거돼 버린다.

정신장애인은 출생에서부터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우생학은 좋은 유전자를 늘리고 나쁜 유전자를 없애자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는 독일 민족의 유전적 순결성을 위해 정신장애인들을 조직적으로 절멸시켰다. 정신장애인들은 강제적 불임수술의 대상이었고 나치는 정신요양시설에 사는 정신장애인들을 가스실로 보내 그야말로 ‘살처분’했다. 8만여 명의 정신장애인과 신체장애인이 그렇게 절멸됐다.

20세기 초반 미국도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는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불임시술을 했다. 일본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모두 우생학에 근거한 국가적 조치였다.

여성은 아이를 낳을 자유와 중절할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해왔다. 합법적 중절수술의 경우에도 남성인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여성들은 자기 몸의 자기 통제권, 권리에 대해 요구했고 국가는 이를 통제했다.

그런데 만약 여성이 태아가 정신장애인이 될 확률이 100퍼센트에 가깝다면 그녀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에 따라 그 아이를 낳을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존재자이기 때문에 낙태를 결정할까. 이 결정에 국가는 어떻게 개입하는 것일까.

현재 10만여 명의 등록 정신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청소년, 청년기에 발병해 만성화된다. 반면 어린 시절부터 정신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성장기에 발병하는 병적 특성 때문이다.

유아기에 아이가 정신질환에 걸린다고 생각할 부모는 없다. 그렇지만 태아가 정신장애인이라는 게 확실하다면 모성은 이를 지울 확률이 더 크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아이를 재생산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아이의 질병과 함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겹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은 출생 이전과 출생 이후 모든 공간과 시간에서 차별적 존재가 된다. 모성과 국가는 아무리 아니라고 하지만 정신장애인의 ‘폭력적’ 출생 과정에는 우생학적 논리가 담지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행위는 태아에서부터 출발한다. 정신장애를 가진 태아는 모성과 국가에서 배척된다. 차이는 있다. 모성은 거기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는 것이고 국가는 사회 안정을 위한 법적 제도적 활동이라는 점이 그렇다.

어쩌면 사회적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위험한 존재자로 규정된 정신장애인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의 편견과 격리 이데올로기에 의해 공동체에서 쫒겨나야 하는 정신장애인이 처한 환경이 정신질환 태아의 출생을 가로막는 사회적 구성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정신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적 존엄에 기반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장치들이 구성된다면 어쩌면 여성은 정신질환 태아의 탄생을 존엄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은 태아를 임신하고 있다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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